연재 초부터 소설, 영화, 만화, 소설 등 픽션의 세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감성 넘치는 글쓰기로 회마다 독자들에게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이 글은 인간의 세계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게 된 성년과, ‘아직’ 그렇게 되지 못했으되 이제 곧 그렇게 될 대기 중인 이들인 미성년 사이에서 ‘이미’ 그렇게 되지 않은 이들을 열외의 비성년이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 곁의 비성년들로 기억될 바틀비, 홀든 콜필드, 카프카 들이다. 작가는 애정을 갖고 그들을 관찰하고 투시하며 그들의 심중의 못다 한 이야기처럼 심도 있게 그려나간다.
이 책은 실재했거나, 또는 실재했을 법한 에피소드와 실존했던, 또는 실존했을 법한 인물들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절실하게 분석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분명 그들이 가지고 있을 또 다른 자아 발견에 이어 그 영역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내면을 탐구하도록 한다. 보통사람들과 생태적으로 다른 우주에 살았던,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누구와도 합쳐질 수 없이 스스로 소외를 선택했던 인물들의 세계에 시선을 보낸다는 것은, 그들의 무위와 세상을 거부하는 부정적인 삶의 충동을 애정 어린 눈으로 이 시대를 불행히 살고 있을 비성년들, 비성년의 자리를 분연히 지키고자 하는 내가 누구인가를 누구보다 고민하는 성년들에게 보내는 오마주로부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미성숙한 인간은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란단다. 하지만 성숙한 인간은 같은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려고 하지. 선생은 콜필드의 미성숙을 부드럽게 타이르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아무래도 콜필드는 고귀하게 죽는 쪽에도, 묵묵하게 살아가는 쪽에도, 혹은 위악적으로 타락하는 쪽에도 속할 수 없는 것 같다. 그가 스스로 고귀해지려는 순간 유령과 아이들은 사라진다. 파수꾼을 잃는 셈이니까. 그가 묵묵한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 어느 순간 유령과 아이들은 사라질 것이다. 파수꾼이라는 사실을 파수꾼 스스로 잊고 말 테니까. ‘이미 인간이 아닌’ 유령들과 ‘아직 인간이 아닌’ 아이들의 파수꾼으로 남기 위해서는, 싫은 세계를 꿋꿋이 받아들일 수도 좋은 세계를 향해 막무가내로 날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콜필드가 이 세계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정신병원일 수밖에.
-61p, 「비타민이라는 미들네임-홀든 콜필드」
문학적 에너지를 위해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결혼의 포기라기보다는 차라리 결혼에 대한 ‘목마름’ 자체가 아니었을까. 결혼을 아예 단념해도, 결혼이 성사되어도, 목마름은 해소된다. 결혼하고 싶지만 결혼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만 갈증은 유지될 수 있다. 카프카 자신이 언제나 죄책감에 사로잡혀 말했듯 그는 결혼이라는 문제를 두고 펠리체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자신을 괴롭혔다. 펠리체 없이는 살 수 없지만 펠리체와 함께 살 수도 없다는 모순 속에 계속 빠져 있으려 했다. 해소 불가능한 목마름을 이어가는 것만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삶의 방식인 듯.
-149~150p, 「결혼장애증후군, 혹은 당신의 악마-프란츠 카프카」
암브로스의 마지막 나날을 서글픈 자학의 시간으로 바라보는 눈길에 약간의 덧칠을 가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자기 말살이나 파괴라기보다는, 그림자라는 자신의 존재를 망각 속에 밀어넣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아니었을까, 하고. 삶의 하인이라는 자리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해, 그림자로서 짐짓 실체인 척하지 않기 위해, 그는 그곳에서 그런 식으로 고집스럽게 복종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네 삶의 주인이 돼라. 암브로스로서는 이 명령에 응하지 않는 것만이, 어쩌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절 바른 복종, 자율성의 삭제만이 역설적으로 암브로스의 삶을 그 자신만의 고유한 삶으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250~251p, 「100%의 그림자-암브로스 아델바르트」
화해 불가능한, 이 어쩔 수 없음과 저 어쩔 수 없음. 단 이 어쩔 수 없음은 ‘하나를 제외한 모두’의 것이고, 저 어쩔 수 없음은 ‘모두에서 제외된 하나’의 것이다. ‘하나를 제외한 모두’는 ‘모두에서 제외된 하나’를 괄호 속에 묶어버림으로써 ‘모두’로 승격되려 한다. 그러나 슈레버는 괄호 안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모두’에 매끄럽게 통합될 수도 없었다. 그는 ‘하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하나를 제외한 모두’의 어법으로, ‘모두에서 제외된 하나’의 세계가 ‘있다’는 걸 설득하려 했다.
-275p, 「두 겹의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다니엘 파울 슈레버」
▲ 작가의 말 중에서
나는 감히 나의 주인공들을 닮고 싶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닮고 싶기엔, 그들의 외로움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주인공들을 연모한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연모하고 싶지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연모할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나는 너무 멀었다. 다가갈 수 없는 것에 대한 비애의 마음이 이 책을 꾸리게 한 원천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글을 쓰는 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글쎄다. 특별히 이렇다 할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다만 지금의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순을 바꾸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연모하고 싶지만 연모할 자신이 없다, 가 아니라, 연모할 자신이 없어도 나의 주인공들을 연모하고 싶다고. 닮고 싶지만 닮을 자신이 없다, 가 아니라, 닮을 자신이 없어도 닮고 싶다고.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겠다, 가 아니라, 그럴 수 없을 것이라도 그러고 싶다고.
‘그러고 싶은’ 소망보다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더 무겁다. 나는 그것을 지구의 중력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나는 지구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쓰는 문장은 다른 별의 가능성을 언제까지나 나에게 상기시켜주기를. 이 마음까지를 담기 위해, ‘그러고 싶음’과 ‘그럴 수 없음’의 자리를 바꾸기로 한다. ‘그럴 수 없음’ 위에 ‘그러고 싶음’을 힘주어 포개고, ‘그러고 싶음’ 위에, 썼다가 지웠다가 썼다가 지웠다가, 어색함을 무릅쓰고 마지막 문장을 주문(呪文)처럼 얹는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할게.
나도 나의 이야기를 전하도록 할게. 나의 주인공들이 열어놓은 세계를 배회하는 동안 나는 이 문장을 나의 것으로 선택할 수 있는 그만큼만 변했다. 그리고 꼭 그만큼, 나는 예정되었던 것과는 다른 현재에 속해 있다고 해도 좋겠다.
▲ 추천의 말
영혼이 가장 가난한 세기로 기록될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비상식량 중 하나가 될 거다!
신해욱이 들려주는 비성년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 반윤리를 윤리 너머로, 부도덕을 도덕의 재구성으로 개편한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비극을 통해 아름다움을 만나고, 혼란을 통해 독특한 질서와 만난다. 비속이 순정이 되는 삶. 비루함이 숭고함이 되는 삶. 지독한 동물성이 지독한 인간성이 되는 삶. 정상인들이 ‘비굴’을 살아가는 동안, 이 비정상인들은 비정상을 무릅쓰고 ‘불굴’을 살고 있었던 거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게 될 거다. ‘내몰린 자들의 진실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진실된 인간들이 내몰린 자리는 어디인가’에 대해. 이 질문은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문학이 진작에 던졌어야 했을 질문이었다. 신해욱의 『비성년열전』은 이 새로운 문학적 질문이 시작된 자리에서 우리가 꼭 펼쳐보아야 할 책이다.
―김소연(시인)
‘무거운 십자가 밑에 깔린 듯 내 밑에 깔린 내 모습이 보입니다’
-본문 「결혼장애증후군, 혹은 당신의 악마」중에서
이 책은 밤의 숲을 배회하는 괴물들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들은 범죄자이고 예술가이며 편집과 망상에 시달리는 환자들이고 상처로 얼룩진 ‘아무도 안’인 자들이다. 어떠한 비판도 충고도 배려도 그들을 밤의 숲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 신해욱은 숲 한가운데 서서 그들의 참혹을 본다. 깊고 열렬한 시선으로. 그들의 ‘앓음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강렬하고 과도한 감정의 끝은 어디인가. 신해욱의 담담한 어조를 따라가다 보면 밤의 숲을 떠도는 괴물들의 뜨겁고 축축한 울음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황병승(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