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문학』(1999년 7월호-2000년 4월호)에 절찬리 연재된 『예찬』은 (주)현대문학에서 출판된 『짧은 글, 긴 침묵』의 속편에 해당한다.『짧은 글, 긴 침묵』에서도 그랬듯이 『예찬』에도 79편의 짧은 글들, 이 세계의 무궁무진한 풍요로움을 예찬하는 글들이 가득 들어 있다. 여기에 수록된 단상들은 작가의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는데 그것은 외부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 위에서 존재와 사물에 보내는 예찬이다.
1. 예찬
2. 자연에 대하여
3. 몸과 재산 1
4. 몸과 재산 2
5. 이런 곳, 저런 곳 1
6. 이런 곳, 저런 곳 2
7. 계절과 성자들 1
8. 계절과 성자들 2
9. 이미지
10. 인물들
저자 : 미셸 투르니에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자 위대한 작가. 192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소르본대학에서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등과 함께 가스통 바슐라르, 장 폴 사르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철학을 전공했다. 이어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수학했으나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낙방한 뒤 출판사 문학부장을 역임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67년, 43세에 발표한 처녀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전통적 이야기 형식과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조명하고 해석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1970년 두 번째 소설 『마왕』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 『메테오르』, 『황금 구슬』 등과 같은 신화적·종교적 상상력이 숨 쉬는 대작과 『짧은 글 긴 침묵』, 『외면일기』, 『푸른독서노트』, 『흡혈귀의 비상』, 『예찬』 등 깊이 있는 통찰이 돋보이는 산문집, 『사랑의 야찬』, 『일곱 가지 이야기』 등 철학적 성찰을 녹여낸 단편집 들을 선보였다. 1972년 이래로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 심사위원을 맡고 있으며,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다.
역자 : 김화영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행복의 충격』『바람을 담는 집』『소설의 꽃과 뿌리』『시간의 파도로 지은 집』『어린 왕자를 찾아서』 등 10여 권의 저서 외에 미셸 투르니에, 르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로제 그르니에, 레몽 장,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실비 제르멩 등 프랑스 주요 작가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였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18권) 『섬』『뒷모습』『율리시즈의 눈물』『내 생애의 아이들』『걷기 예찬』『마담 보바리』『지상의 양식』 등 다수의 역서를 내놓았다.
본문 중에서
잡초를 뽑고 김을 매어 흙을 골라놓은 정원은 최후의 만찬을 그린 중세의 그림들 같다. 지고한 정원사쎄서는 이로운 풀과 해로운 풀을 서로 구분하여 놓으신 것이다. 선택받은 이들이 낙원을 향하여 줄지어 가듯이, 버림받은 자들이 지옥으로 굴러떨어지듯이, 장미와 백합과 달리아는 화단에 꽃을 활짝 피우는데 별봄맞이꽃과 개밀속은 뽑혀서 생울타리 저 너머 눈에 안 보이는 퇴비장에 쌓이가만 한다.--- p.24
오늘날 승마가 젊은 사람들 가운데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말과의 친화보다 더 교육적인 것은 없다. 말은 기계가 아니다. 말과는 서로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말에 대한 사랑은 그 거대하고 따뜻하고 근육이 발달한, 그리고 땀 냄새와 똥 냄새가 구수한 몸뚱이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시작된다. 그 위에 올라타고 뺨에서 발가락까지 전신을 딱 붙이고 있어보면 여간 관능적인 것이 아니다. 그건 물론 안장 없이 탈 때의 이야기다. 어린아이는 가능한 한 벌거벗은 맨몸이어야 좋다. 그의 몸과 말의 몸 사이에 아무것도 끼여들면 안 되니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야생마의 잔등에 벌거벗은채 비끄러매인 젊은 마제파(Mazeppa)의 강력한 이미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말에 접근하는 그 다음 단계에서는 덮개, 그리고 말의 어깨뼈 사이의 융기부 양쪽에 맨, 두 개의 손잡이 달린 가죽 벨트인 곡마용 뱃대끈을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초보자 기수가 달리는 말의 운동과 균형감에 친숙해지는 데는 말의 곡예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말의 옆구리...오늘날 승마가 젊은 사람들 가운데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고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말과의 친화보다 더 교육적인 것은 없다. 말은 기계가 아니다. 말과는 서로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말에 대한 사랑은 그 거대하고 따뜻하고 근육이 발달한, 그리고 땀 냄새와 똥 냄새가 구수한 몸뚱이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시작된다. 그 위에 올라타고 뺨에서 발가락까지 전신을 딱 붙이고 있어보면 여간 관능적인 것이 아니다. 그건 물론 안장 없이 탈 때의 이야기다. 어린아이는 가능한 한 벌거벗은 맨몸이어야 좋다. 그의 몸과 말의 몸 사이에 아무것도 끼여들면 안 되니까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야생마의 잔등에 벌거벗은채 비끄러매인 젊은 마제파(Mazeppa)의 강력한 이미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말에 접근하는 그 다음 단계에서는 덮개, 그리고 말의 어깨뼈 사이의 융기부 양쪽에 맨, 두 개의 손잡이 달린 가죽 벨트인 곡마용 뱃대끈을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초보자 기수가 달리는 말의 운동과 균형감에 친숙해지는 데는 말의 곡예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말의 옆구리에 매달려서 목에 머리를 꼭 붙이고 함께 달린다는 것, 말잔등에 올라타고 그 리듬과 구심력을 이용하여 - 곡마사는 원형의 승마 연습장 안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는 말의 한쪽에 매다려 있으니까 - 내닫는 것, 이윽고 한두 바퀴를 도는 동안은 그냥 말에 실려서 가다가 그 다음에는 말의 머리 위로 다리를 통과시켜 땅을 짚었다가 금방 단숨에 솟구쳐 오르는 것, 그렇다, 말의 곡예는 초보자에게 자신의 말과 한 몸이 된듯한 저 도취감 어린 환상을 맛보게 해준다. 그래서 그는 때로 왜 이 정도로 그쳐야 하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pp.35-36
내가 꾸는 꿈들은 모두가 아주 특이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나는 언제나 벌거벗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나는 벌거벗고 자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왜 벌거벗고 자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답은 간단하다. 침대는 어머니의 뱃속이기 때문이다...--- p.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