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1 / 0

닫기
인터넷 서점 바로가기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교보문고
다운로드
표지 이미지 보도 자료

소년은 지나간다

  • 저자 구효서 지음
  • 부제 스물네 개의 된소리 홑글자 이야기
  • ISBN 978-89-7275-931-7 03
  • 출간일 2018년 10월 23일
  • 사양 356쪽 | 128*190
  • 정가 14,000원

수상 작가, 소설가?구효서가 유년을 보낸 바닷가 마을의 전후戰後 풍경, 그곳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사정과 속내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그려낸 자전소설 형식의 산문집

▲책 속에서

 

그는 알까. 한 해에 한 번 갯고랑 바닥까지 물을 뺄 때 마을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는 것을. 도난당했던 오토바이라든가, 지폐가 빽빽하게 들어찬 돈궤라든가, 누군가를 찔렀을 흉기. 갯고랑의 물을 뺄 때마다 그런 것들이 하나씩 드러나며 때로는 마을이 몹시 술렁인다는 것을.

알 리 없겠지. 마을 사람들도 그것들의 정체를 모두 알아차리지는 못했으니까. 그것들 중에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전히 썩거나 붇거나 모양새가 변해서 내가 아니고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들도 많았으니까. (22쪽)

 

창말에는 그런 묘한 기운의, 뻥이 있는 것이다. 터져 흩어진. 텅 빈. 뚫려 환해진. 구멍. 빈터. 없음. 유실. 훼손. 결락. 기운. 생동. 과거의 것이면서 현재의 것이고, 있는 것이면서 없는 것이고, 그러다 다시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59쪽)

 

그녀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그냥 여자였다. 언젠가 지워졌을 그녀의 이름은, 회복되지 않았다. 창말 사람들은 그녀를 한사코 여자라고만 불렀다. 무엇이 지워졌던 걸까. 왜 지워졌을까. 지워진 그것은 얼마큼이었을까. 빈 채로 빈 것을 가득 안고 살아가는 여자에게는 도나쓰 같은 구멍이 있었다. (90쪽)

 

마음은 여전히 들뜨고 초조하여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지. 그냥 뭔가에 가쁜 거지. 가빠서 그러는 거지. 막 가빠서.

무언가 없는, 모자라는, 빈, 사라진, 뚫린, 유실되고 결여된, 그리하여 죽은 사람의 입처럼 허망하게 열려 있는 그런, 알 수 없는 창말의 깊고 검은 익명의 무엇. 수렁 같은 그걸 메꾸려고, 자꾸 그러려고 가쁜 거 아닐까 다들 애 어른 할 것 없이. (104쪽)

 

거긴 왜 갈아요?

찢어지거나 구멍이 난 언저리를 특이한 것으로 슥슥 문질렀는데 아이는 그곳을 가리키며 왜 가는 거냐고 했다.

간다기보다는 음, 이건 문지르는 거지.

땜재이가 대답했다. 그의 음성은 작은 그의 무쇠 부뚜막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만큼 따뜻했다.

아이들이 땜재이 주변으로 몰려든 것은 땜재이의 신기를 구경하려는 것이기도 했지만 작은 무쇠 부뚜막에 언 손을 녹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181-182쪽)

 

아이들을 산에 풀어 교실 난로 불쏘시개용 솔방울을 따게 하거나 송충이 잡기 운동에 동원시킬 때도 교사들은 양지바른 곳이거나 바람 시원한 그늘에 마네의 그림처럼 따로 앉아 얘기하고 씹고 먹고 웃고 자고 하품을 했다. 그들이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들을 시켜 사 오게 하는 것들이란 고작 마른오징어, 삼립 크림빵, 크라운 산도였다. 학교 인근에서 구할 게 그런 것밖에 없었다.

크림빵까지는 그렇다 쳐도 최고급의 크라운 산도. 그거라면 1년 가야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한 게 아이들의 실상이었다.

냄새만 맡아도 숨이 넘어갈 그것을 애들한테 사 오라고 시키다니. 하나 먹어보련? 이런 빈말도 없이 먼 가게까지 헐레벌떡 달려갔다 온 애한테 됐어 가봐, 가 고작이었으니 잔인하면서도 잔인한 줄 모르는 그들이 어찌 안 무섭겠는가. (204-205쪽)

 

언제까지 전쟁을 떠올릴 거야? 빨리 잊고 새로 살아야 할 때야.

당초에 애먼 땅을 지들 맘대로 반 토막 낸 놈들 때문이야.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 속지 마라 일본 놈 일어난다는 말이 딱 맞았지.

그런 말 할 땐가, 궉 씨?

못 할 땐가?

궉 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243쪽)

연관 도서

로그인 후 이용해주세요.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우리 현대문학 회원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내지는 타사의 메일을 차단하기 위해,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 2월 19일]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