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면서 ... 4 빈방 인천, 서울, 그리고 큰꿀벌들 ... 13 봄날은 간다 ... 19 내 자신이 빈방이라는 생각 ... 23 고양이의 죽음에 대하여 ... 33 허공에 떠가는 거울 ... 36 지난 여름 마당에서 생긴 일 ... 40 엄마 왜 안 와 ... 43 토끼의 방문 ... 48 오락실에서 난쟁이를 바라보다 ... 51 오이의 속을 파 실로 묶은 두레박 ... 56 구멍과 햇빛과 풀 ... 60 기억과 상징 사이에서 ... 68 수면의 빛 모과나무와 어머니 ... 77 흔적 ... 81 콩나물 삶는 냄새 ... 85 밤강에 흘려보낸 포도알 ... 89 가을의 저쪽 ... 91 오묘한 통증이자 짜릿한 모험 ... 94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 ... 99 토성에서 돌아오다 ... 104 사유의 정원, 공원의 쓸쓸함 ... 113 거미의 향기 ... 115 저녁의 무늬 ... 118 어머니의 편지 ... 124 옴팍집 비료푸대 발 ... 139 바라봄의 이쪽과 저쪽 ... 143 어떤 불꽃놀이 ... 147 날아오르는 일이 갈망이었을 때 ... 157 채변봉투와 부엌칼 ... 161 슬픈 유희 ... 173 밤에 대하여 ... 179 풀잎 우물 고독과 메모 ... 189 가난의 상상력에 대하여 ... 205 샤머니즘과 빈집, 그리고 문학 ... 209 나 자신에게 말걸기 ... 212 누가 내 누이의 벗은 발을 볼 것인가 ... 218
박형준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하였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家具의 힘」이 당선되어 시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 『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빵냄새를 풍기는 거울』『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가 있다. 동서문학상 수상.
■ 이 책은 서정시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냐는 도저한 의견 속에서도 내밀한 서정적 시감(詩感)을 잃지 않고 도시문명에 상처받는 풍경들을 섬세한 시어로 묵묵히 담고 있는 박형준 시인의 첫 산문집 『저녁의 무늬』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문단에 나온 지 13년만에 내놓게 되는 첫 산문집에서 그는 자신의 시의 모티프가 되는 경험과 유년의 추억을 때로는 고통스럽게 때로는 희화적으로 음각하고 있다. “풍경들은 빛의 흔적이고, 빛은 어둠의 흔적”이며 그 흔적을 찾아내는 일이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상기한다는 서문의 말처럼 이 산문집은 희망의 “무늬”를 촘촘히 깁고 있다. 그 무늬는 대개 사람들이 서성이다 돌아간 자리이거나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사소한 것들 속에서 채집되어진다. 어머니,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삶의 기둥이자 시의 원천이다. 동서문학상을 받고 상금 일부를 고향의 어머니에 보내드렸더니 며칠 뒤 고향에서 한약 상자가 올라오고, 안부전화를 하다 고향집 해당화가 보고 싶다고 하자 김치상자와 해당화 옆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택배로 보낸 어머니. 타지에 나가 사는 자식 걱정 가득한 어머니의 언문체 편지들. 그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은 시인에게 “사라지는 기억과 과거가 아니라, 현실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굳건한 추억”이 된다. 그리고 “환상이나 추억으로부터 간신히 현실과 대면하게” 만든다. 늙고 가난한 어머니지만 그 어떤 존재보다 든든한 동반자로 자식을 지켜주기에 “초라한 변두리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고 고백한다. 빈방/구멍/틈/무덤, 이 책의 곳곳에서 보여지고 있는 이 단어들이 가지는 상징은 간단하지 않다. 이들은 모두 비어 있는 공간이고, 비어 있음은 ‘불안’이나 ‘공허함’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시인에게는 상상력이 움트는 불가해한 공간이자, 외부로부터 침범당하지 않는 안전구역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빈방”에 혼자 지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는 그 “빈방”을 “탯줄”삼아 세상을 바라보고, 마치 그 “빈방”의 뿌리처럼 사유하고 시를 쓴다. 때문에 “빈방”은 ‘불안’과 ‘공허함’이 아니라 충일하게 부풀어 오르는 언어의 ‘사원’이 된다. 옴팍집, “가난의 대명사”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불렸던 유년 시절 시인의 고향집. 그 고향집을 무대로 펼쳐지는 유년의 회상은 자연스럽게 읽는 이의 시간도 과거로 돌려놓는다. 까치 알을 꺼내러 전봇대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말까지 더듬는 앉은뱅이가 돼버린 경식이 삼춘의 불행, 하교길에 홍사를 잡았다가 면사무소에 다니는 동네 형에게 빼앗기고 애꿎은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았던 바보 인수, 껌종이를 줍기 위해 헤매다니던 철로변 중국집의 자장면 냄새…. 하나같이 가난하지만 천진한 풍경이 흑백필름을 돌려보는 것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추억이란 늘 아름답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추억은 아픈, 그리움이기 때문이다.”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의 그 ‘아픈 그리움’이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그 추억의 진솔함 때문이다. 평범하고 사소해서 주목받지 못하고 소멸해가는 것들과 가난에 대한 그의 천착은, 흘러넘치는 ‘물질’과 ‘소비’가 곧 삶이라고 착각에 빠지곤 하는 우리에게 청신한 한줄기 바람처럼 다가온다. ■ 본문 중에서 첫 산문집을 묶으면서 내가 새삼 발견하는 것은 삶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다. 내 삶이 허상이나 잔상일지라도, 내가 거기서 어떤 풍경을 창조하려 했다는 것. 나는 지금껏 시골 체험과 도시 체험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이쪽과 저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나날들은 지하터널의 어둠이 거울의 뒷면 구실을 해주는 지하철의 유리창과 같다.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고 부유하면서 자신의 얼굴이 떠 있는 유리창을 거울 삼아 세상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러한 나 자신의 삶에 대한 비애나 연민이 내게는 오히려 위안이 되었고 힘이 되었다. - '시작하면서' 중에서 나는 대신 집에서 혼자 호떡을 만들어 먹었다. 시골에서 아버지가 해주셨던 밀가루떡을 내 식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는 밀가루를 반죽해 설탕과 소다가루, 막걸리를 적당히 섞어 양은쟁반에 올려놓고 가마솥에 쪄 내오시곤 했다. 술냄새가 풀풀 솟아나는 밀가루떡은 내가 명절날을 제외하곤 시골에서 유일하게 맛본 별식이었다. 미싱공장에 나간 누나와 청색작업복을 입고 대우중공업에 나간 형을 기다리며, 나는 미친 듯이 호떡을 만들었다. 어느 날은 20개도, 30개도 만들어 누나와 형이 돌아오기만을 꼬박 기다리기도 했다. 좁은 부엌에서 식어가는 호떡들. - '인천, 서울, 그리고 큰꿀벌들' 중에서 나는 창턱에 턱을 괴고 운이 좋은 날엔 유성의 꼬리를 타고, 상념을 입에 문 채 담뱃불이 확 타오르는 순간을 뇌 저쪽까지 느끼며, 멸망의 유희를 즐기곤 했다. 아마 내가 시를 적는 것은 그렇게 뜻 모르게 타올랐다 꺼져간 유성들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순교의 대상이 있으면 언제든지 순교할 수도 있으리라, 시를 쓰는 동안 유성들은, 하늘의 오랜 떠돌이 거지 성자들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오락실에서 난쟁이를 바라보다' 중에서 그 새, 날아와 방 안의 천장을 빙빙 돌 때 내 머릿속 한켠에 모과의 하얀 속살이 떠올라왔다. 하얗게 내 마음을 닦아주던 모과나무가 사실은 나의 꿈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가난하게 살아도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 라고 늘 내게 말을 해주었던 어머니를 다시 떠올리게 하였다. 어머니는 그 밤에 시골로 내려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못난 아들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세상에 능하지 못하고 꿈만을 꾸는 모과나무 같은 자식을 위해 그날 새벽 한 마리 새로 방으로 날아온 것이다. -'모과나무와 어머니' 중에서 내 마음 속에 살다간 말들, 때로는 순결하기도 했고 적요로웠던 창문들. 그곳에 비친 풍경들은 흐릿했고 나무 그늘에 휩싸여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나를 꿈꾸게 했던가. 오크통 속에서 익어가는 포도주나 기타의 공명통처럼 향기와 울림을 지닌 말들을 나는 얼마나 열망했던가. 시골집에 내려간 어느 비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에 떠오르는 빗방울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그 작은 방울 속에 들어 있는 풍경들이 비의 문(門)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순간순간 떠올랐다가 꺼지는 무수한 빗방울 속에서 마당의 해당화꽃, 낮은 집들의 지붕, 붉은 황토길, 그랬다! 그 문에서 머물다 가는 풍경들은 모두 불꽃처럼 환하디환한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고독과 메모' 중에서 ■ 추천사 그는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무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가끔씩 가슴에 묻어둔 거울을 꺼내 무늬를 찍어내는 사람이다. 그는 앞다투어 지나가는 사람의 무리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그는 앞에 나서지 않는다. 쉽사리 뭔가를 말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게 그가 가진 天性이고, 그의 글이 가진 美學이다. 그의 마음은 비애로 가득 차 있지만, 그 비애는 그가 가진 거울을 통해 아름다운 무늬로 다시 태어난다. 그가 마지막까지 보여주는 세상의 무늬는 알전구 속 필라멘트처럼 섬세하고 눈부시고 아리다. 그는 언제나 뒤에 남아 사람들이 놓치고 간 무늬를 채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녁의 무늬』를 읽다보면, 그의 눈망울과 무시로 맞닥뜨려야 한다. 나는 그가 보여주는 『저녁의 무늬』에서, 오래 전에 버린 희망의 고리들을 주워 담는다. - 이윤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