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아직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꽤 굵직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중견작가 쓰지 구니오와, 작품마다 문학상을 휩쓸며 각광을 받고 있는 재기발랄한 여류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가 아사히신문 북리뷰에 연재했던 문학편지를 모은 책이다. 1년 4개월 동안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도스토예프스키, 플로베르, 프루스트, 노신, 소포클레스,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서양과 일본 동서고금의 대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섭렵하면서 희미해져가는 문학의 위의(威儀)와 감동을 되살려준다.
저자 : 미즈무라 미나에(水村美苗)
소설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되던 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예일대학 불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프린스턴대학에서 강사로 활동했으며, 1984년 일본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다시 도미하여, 1990년 미시간대학에서 객원조교수로 일본 근대문학을 강의했고, 1998년에는 스탠포드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1991년 첫 소설 『속 명암續明暗』으로 게이즈쯔센쇼(藝術選?) 신인상을, 1995년 두 번째 소설 『사소설(私小說) From left to right』로 노마(野間)문예 신인상을, 2002년 발표한 『본격소설(本格小說)』로 요미우리(讀賣) 문학상을 수상해,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학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낳았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고 있는 여류작가로, 소설의 서사와 재미를 복원하려는 작업을 일관되게 경주하고 있다.
저자 : 쓰지 구니오
소설가. 192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에 탐닉해 등교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두 번의 낙제 끝에, 일본 유수의 작가들을 배출해낸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했다.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릿쿄대학, 학습원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1962년, 37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회랑에서(回廊にて)』라는 작품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작품으로 제4회 근대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6세기 일본에 온 한 이탈리아 전도사의 수기 형식을 통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그려낸 『아즈치 왕래기(安土往還記)』로 게이즈쯔센쇼 신인상을, 『배교자 율리아누스(背?者ユリアヌス)』로 마이니치(每日) 예술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여름의 성채(夏の砦)』『사가노명월기(嵯峨野名月記)』『봄의 대관(春の戴冠)』『나무의 소리 바다의 소리(樹の聲 海の聲)』『구름의 향연(雲の宴)』『사이교화전(西行花?)』등의 작품이 있다. 1999년 7월 사망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아즈치 왕래기> 등을 쓴 일본의 소설가 쓰지 구니오와 <속 명암><본격소설> 등의 저자인 미즈무라 미나에가 1996년 4월 7일부터 1997년 7월 27일까지 아사히신문 북리류란에 연재했던 문학편지를 모은 서한집 <필담(筆談)>이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두 작가는 편지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일면식도 갖지 않은 채로, 오로지 신문지상을 통해서만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년 4개월 동안 브론테 자매, 찰스 디킨스, 토마스 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플로베르, 프루스트, 노신, 소포클레스, 무라사키 시키부,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서양과 일본의 동서고금의 대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섭렵하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문학의 위의(威儀)와 감동을 되찾으려는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력을 경주했다.
우선 이 책에서 돋보이는 것은 문학으로 일가를 이룬 노년의 원숙한 남성작가와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학상을 수상하며 각광받고 있는 재기발랄한 여류작가를 파트너로 선정한 참신한 기획이다. 그리고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친숙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인용,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문학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며, 어떤 소용에 닿는 것인지를 자상하고 친절한 ‘대중화법’으로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번역판에는 원서에는 없는 풍부한 각주들이 덧붙여져 독서를 한층 풍요롭게 하고 있다.
‘문학은 무엇보다도 이야기다’ ‘문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공통의 문학적 견해에 입각해, 주로 미나에는 여성의 시각에서 화두를 던지거나 독특한 해석으로 도발하고, 구니오는 그것을 부드럽게 받아 확대시키고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 두 작가는 인류가 쌓아온 문학적 유산의 숲속을 주유하며 대가들의 인간과 작품에 대해, 오늘날의 문학이 처한 위기에 대해, 삶과 세계의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해 자유롭고 개성적인 해석을 펼친다. 오늘날 연애소설을 쓰기가 어려워진 것은 현대인의 자기분석적인 의식과 소설의 전통적인 서사양식의 붕괴 때문이라고 진단해내는가 하면, <미야모토 무사시><작은 아씨들>을 통해서는 일종의 ‘축제로서의 책읽기’의 기쁨을 역설하고, <제인 에어>에서는 인간이 지닌 자유에의 드높은 의지를, <폭풍의 언덕>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찰을 검침해낸다. 또한 디킨스의 소설을 통해서는 문학이 마땅히 지녀야 할 ‘재미’를, 플로베르의 서간을 거론하면서는 작가로서의 엄격한 윤리와 생생한 정열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통해서는 잔인한 시련과 고난을 문학적 자양으로 바꾸어내는 강렬한 작가의식을 요청한다. 그 외에 다니자키의 예술지상주의와 부인과의 기묘한 관계, 나가이 가후의 고독과 자유, 릴케의 ‘미’에 대한 사랑, 스피노자의 마지막 나날들, 체호프의 민중에 대한 연민과 이상주의, 라디게의 사랑의 환희와 고뇌, 기싱의 가난과 상상이 지닌 힘, 스탕달의 ‘행복 사냥’, 오이디푸스의 자기인식의 불능에서 오는 비극 등, 이 두 작가의 문학적 해석의 스텍트럼은 넓고도 깊고, 다채로우면서도 치밀하다.
문학이 인간, 감동, 기쁨, 재미와 소원해져가고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들과 작품에 대해서 감동과 깊이가 번득이는 해석과 설득력 있는 윤리적 판단을 가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보편적인 예지를 이끌어내고 있는, 잘 차려진 정갈한 성찬 같은 이 책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고, 문학에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풍부한 교양과 안목을 제공해줄 것이며, 더 나아가 문학은 언제나 인간에 대해서 발언해왔으며, 또 발언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