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숙한 지성과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변함없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한국 문단의 1세대 평론가 유종호의 회상 에세이 『그 겨울 그리고 가을-나의 1951년』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월간 <현대문학>에 2008년 1월호부터 일 년 동안 연재되었던 것으로, 6ㆍ25 동란기의 체험을 생생하게 복원해내며 장편소설 못지않은 재미와 깊이로 많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은 바 있었다. 특히 이번 회상 에세이는 저자만의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이 시대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는 근접 과거에 대한 역사와 삶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큰 의미와 울림을 전해준다.
1. 북풍한설 찬바람에 2. 내가 받은 첫 새경 3. 은하수 밀크초콜릿 4. 4월의 올드 랭 사인 5. 담요 한 장 짊어지고 6. 부칠 곳 없는 편지 7. 중앙선 간현역 부근 8. 밥집의 공포 9. 여름밤의 산술 10. 마법의 손거울 11. 가을 목숨 시름시림 12. 세월이 간 뒤
1935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와 뉴욕주립대(버팔로)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2006년 연세대 특임교수직에서 퇴임함으로서 교직생활을 마감했고 현재 예술원 회원이다. 1957년 이후 비평 활동을 해왔으며, 저서로 『유종호 전집』(전 5권) 이외에 『시란 무엇인가』『서정적 진실을 찾아서』『다시 읽는 한국시인』『나의 해방전후』 등이 있다. 『그물을 헤치고』『파리대왕』 등의 번역서가 있고, 2004년에 유일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를 냈다. <현대문학상><대산문학상><인촌상><만해학술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성장소설을 뛰어넘는 깊은 감동과 울림! 2004년 출간된 『나의 해방전후』가 1941년부터 전쟁 발발 한 해 전인 1949년 무렵의 이야기를 주로 담았다면, 이번 에세이는 1951년 당시 17세였던 저자의 6ㆍ25 동란기 체험을 담고 있다. 엄동설한에 광목천 배낭 하나 둘러멘 채 떠나야 했던 피란기의 경험을 시작으로 미군부대 노동사무소에서 제니터(문지기)와 서기로 일한 뒤 다시 학교로 복귀하기까지. 저자는 암울하고 힘겨웠던 시대의 풍경을 기억 속에서 하나하나 끄집어내며, 전쟁기의 삶과 역사를 17세 소년의 눈으로 재현해낸다. 특히 이번 에세이는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피란길 이후에 저자가 겪어야 했던 한 시절을 상세한 묘사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한 편의 장편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와 드라마틱한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공포, 그리고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성장해가는 사춘기 소년의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념과 의지로 살아낸 한 시대의 역사 이야기 불과 50여 년 전의 우리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에게 6ㆍ25 동란기의 역사와 삶은 마치 먼 과거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만 들리게 마련이다. 저자가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이 책은 우리 역사가 안고 있는 아픔의 한 시대를 되새겨봄으로써 그 역사가 다시금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무엇보다도 어두웠던 시대의 진상을 왜곡됨 없이 있는 그대로 복원해내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수통스럽기까지 했던 가족과 개인사, 나아가 당시 세대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와 아픔의 추억을 저자는 상세한 세목까지 조심스럽게 들춰낸다. 자의와는 무관하게 주어진 험난한 역사의 급류 속에서 꿋꿋한 신념과 희망에 대한 의지로 살아내야만 했던 시대. 힘겹게 살아낸 하루하루는 추억이 되고, 그 추억들은 모여 역사가 된다.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시대 최고 석학의 회상 에세이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 번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