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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물

  • 저자 이성복 글 | 이경홍 사진 지음
  • ISBN 978-89-7275-454-1
  • 출간일 2009년 12월 22일
  • 사양 248쪽 | -
  • 정가 11,000원

짧은 시간의 노출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먹과 빛이 어우러진 바닷물을 포착해 추상적인 형태의 ‘찰나’를 보여주는 스물넉 장의 사진과 함께 재구성된, 바라봄의 치열함을 언어로 바꿔 그 내면세계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이성복 시인의 두 번째 사진에세이!

바라봄의 치열함을 언어로 바꿔 내면세계를 인화해내는 이성복 시인의 두 번째 사진에세이『타오르는 물』이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에 2009년 1월호부터 12월호까지 12회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글 열두 편에다 미발표작 열두 편을 덧대, 총 스물네 편으로 꾸렸다. 책에 실린 스물네 장의 사진은 경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 작업을 해온 이경홍의 작품들이다. 전작인 『오름 오르다』(사진 고남수)가 사물, 기억, 존재의 비밀을 제주도 오름들의 독특한 형상에 담아냈다면 이번 에세이는 바다를 통해, 구상적 세계의 의미와 가능성을 통해 비구상세계의 무의미와 불가능성을 타진하며 순간과 영원이 하나 되는 ‘찰나’의 숨겨진 얼굴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다. 이성복은 “이처럼 다양한 연상을 통해 떠오르는 은유들은 결코 무작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막막한 삶의 가장자리에 떨고 있는 존재”들이 드러내는 고독감과 무력감이 만들어낸 산실이라고 말하며, 바다의 순간적인 ‘찰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과 에너지, 기억과 망각, 긍정과 부정, 가능과 불가능성 등의 추상적인 이미지로도 다가오지만, 자세, 형태, 외향, 운동 등 보다 실체적인 이미지들이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추상적인 은유’를 작동하는 원인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은유를 통해 구성되는 인간세계 내부에서 대체 어떤 슬픔이 은유를 통하지 않고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슬픔보다 먼저 일어나고 은유보다 먼저 드러눕는 불멸의 악순환에 사로잡힌다.”며 생의 고리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인간 근원의 문제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다. “진실함[眞]은 진실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進] 과정이고, 올바름[善]은 주체가 앞장서[先] 주인 역할을 하는 것이며, 아름다움[美]은 아직 오지 않은[未] 아름다움으로 존재한다.”는 미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시인에게 있어 사진은 “이제 막 피어나기 직전의 극도로 긴장된 장미 봉오리처럼 아름다움과 올바름과 진실함의 존재 방식을 드러내”주는 것이기에, “이 순간이 지나면 진실함과 올바름과 아름다움은 발바닥 굳은살처럼 각질화되고, 큐에 맞은 당구공처럼 산산이 흩어질” 찰나들을 아쉬워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순간순간들을 한 회, 14줄 6부의 정제된 언어로 담아낸 절창이라 할 수 있다.

 

■ 본문 중에서

불필요하게 부풀려진 고통을 제거하고 최소한의 고통을 수락하는 건강한 삶의 관건이 된다. 그것은 마치 알루미늄 캔이나 폐차를 압착하여 극도로 부피를 줄이는 것과 같으며, 더 이상 바깥에서 비 맞지 않고 추녀 밑으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 이때 부피를 줄인다는 것은 물질을 없애는 것이 아니며, 추녀 밑으로 들어선다는 것은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비가 쏟아질 때 빨리 와이퍼를 작동하거나 뿌옇게 흐려진 차 안에서 환풍기를 돌리는 것과 같이 투명한 시야를 확보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러한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오직 모를 뿐!’이며, 이러한 삶의 목표는 은총이 아니라 인내, 행복이 아니라 안심이다. 왜냐하면 갈증이 신기루를 낳듯이 은총은 고통이 일으키는 꿈이며, 제 꼬리를 문 뱀처럼 행복은 불행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본문 37p

 

삶이 기억으로 유지된다는 말이 맞다면 망각으로 존속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뜨개질바늘처럼 촘촘히 삶의 피륙을 짜내는 기억은 또한 예리한 칼과 같아서 슬픔과 절망이 그 손잡이를 들면 오랫동안 공들인 보람도 한순간에 베어버릴 수 있는 까닭에,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기억의 주위에는 항시 망각이 지켜보고 있다. 마치 비정하고 외골수인 아버지 앞에서 유약한 아들을 감싸는 어머니처럼 망각은 기억의 압제로부터 삶을 보호하는 것이다. -본문 77p

 

우리의 인식은 한순간에 하나의 대상만을 포착할 수 있다. 가령 자동차 운전을 할 때도 매순간 운전을 하거나 딴생각을 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초보운전 시절 라인도 없이 길기만 한 사거리 길을 지나놓고 와서, 어떻게 지나왔는지 도무지 생각도 안 날 때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때 우리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순간에 하나의 일만 생각하고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인식과 실천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 한계는 심리적 삶에 부정적 효과만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즉 땅에서 넘어진 자가 땅을 짚고 일어설 수 있듯이, 한계는 한계로 인해 치유될 수 있다. -본문 95p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의 진화는 가능해도 그 역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복잡한 것의 단순화는 벌레에 먹혀 드러나는 잎맥처럼 탈-생명적이며, 에너지의 흐름과 배치된다. 생명에너지는 항상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며 그에 따라 무질서의 정도는 커진다. 그러나 역류하는 강물처럼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의 추이 속에는 대세를 위반하는 흐름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어두운 그늘에도 햇빛이 깃들여 있듯이[陰中陽], 불가역반응 속에서도 부분적으로는 가역반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본문 1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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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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