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5
제1장 담배 그리고 시간
담배 그리고 시간 13 / 드물지만 아름다운 노년 23 / 한 권의 책과 좌우명 하나 30 / 막상 닥치고 보니 36 / 늙기도 서러운데 43 / 독방과 독서실 51 / 그 개 안 물어요 59 / 가까운 것 속의 지혜 67 / 목적과 희망이 사람을 살린다 74 / 싱싱한 벌꿀과 밀랍의 냄새 79 / 초신성과 네잎클로버 84 / 어느 마도로스의 전언 89 / 좋아하는 말·싫어하는 말 94 / 하마터면 그때 99
제2장 그 이름 안티고네
그 이름 안티고네 113 / 소수 의견의 매력 122 / 도편추방에 대하여 134 / 전통과 민주제 140 / 우리 안의 전근대 147 / 덧셈과 뺄셈 153 / 과거의 수모에 대한 복수 160 / 남몰래 흘린 눈물 167 / 환자에서 고객으로 173 / 0 대 22 179 / 옛날은 딴 세상이다 185 / 겨울 나그넷길에서 193
제3장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응을 보며
『채식주의자』에 대한 반응을 보며 201 / ‘구라’라는 마술 208 / 개인사와 사회사의 접점 215 / 모국어의 존엄을 위하여 230 / 시의 해석에 대하여 239 / 고향의 산을 향해 249 / 특성화된 전집을 바라며 258 / 나의 번역 체험 262 / 인문학에 미래는 있는가 279 / 교단을 떠나면서 294
제4장 내 삶의 소롯길에서
지옥의 하룻밤 311 / 불사른 보배 327 / 승산 없는 싸움 속에서 341 / 어느 독자와의 만남 355 / 꾸불꾸불 걸어온 길 366
총 4장으로 구성된 『그 이름 안티고네』에는 저자가 일상에서 건져 올린 지혜와 깨달음들을 기록한 1장부터 사회에 대한 높고 낮은 목소리의 발언의 2장, 문학과 인문학에 관련된 이야기의 3장, 개인의 과거 경험담의 4장까지 다채로운 내용의 산문 41편이 실렸다.
노년의 지혜를 믿지 않는다는 저자의 역설적 어조로 시작된 1장은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것을 배워 보태며 늙어가고 있다”라는 B. C. 6세기 아테나이의 현자 솔론의 말처럼 노년의 아름다움, 노년의 깨달음 뒤에 오는 지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독방이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면서도 군중 속에서 완전해지는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가 빛나는 장이다.
2장에서는 정치적 지형 변화와 조짐들에 대한 여러 이슈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사적 문제들을 엄정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며, 그에 맞는 합당한 방향을 제시한다. ‘소포클레스 3부작’과 같은 신화와 고전을 감상하는 대중들의 수용 방식, 문학작품을 대하는 향수자의 안목이나 성향을 통해 소수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쏠림 현상 등에 가차 없는 일침을 가하고 이에 더하여, 아테나이 민주정치의 도편추방제를 살피며 현 시대의 정치적 어둠과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영웅들을 폄하하려는 시도나 청산해야 할 과거의 잔재에 대해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는 톨스토이의 유효한 말을 통해 송곳 같은 언어로 신랄하게 지적한다.
3장에서는 평론가로서 현장에서 느낀 고민들을 꺼내놓으며, 인문학의 위기가 도래한 현 시대에 대한 회의와 분석,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인문학의 위기 상황은 자연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양과 고급문화의 쇠퇴, 경제 침체, 인구의 확장, 반지성?반지식인주의의 팽배에서 비롯된 범세계적 현상임을 지적하며 그 과정과 원인을 찬찬히 톺아본다. 그리고 현재의 불안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제1의 조건으로 유연하고 열린 마음의 시민적 자질을 제시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다.
특별히 <맨부커 국제상> 수상으로 화제가 되었던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읽는 영미권 작가들의 다양한 반응에 대한 언급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이 작품의 장단長短을 객관적 시선으로 전달하면서도 공신력 있는 잡지에 리뷰가 소개되는 등, 나름의 성취가 있었음에 주목한다. 또한 거장 마르케스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우리의 지엽적 문학 풍토, 전기와 회고록의 사료적 가치, 문학적 모국어의 의미, 글로벌시대의 번역문학의 융성 등에 대해 밝힌 소회는 우리 문학사를 꿰뚫고 있는 지식인의 흔치 않은 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특히 「나의 번역 체험」에서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 번역에 얽힌 저자의 후일담은 필독을 권한다. 작품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세부적 과정―방대한 자료 수집, 각 판본들의 분석, 우리말과 외국어의 적확한 의미 분석에 따른 대체 불가능한 언어 선택을 위한 각고의 노력과 문학적 감수성의 세공―을 거치면서 불굴의 전의를 불태웠던 번역 연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글은 한 편의 번역 작품은 장인정신과 책임의식이 빚어낸 결과임을 통감하게 한다.
4장에서는 요철처럼 굴곡진 우리의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개인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통해 한 인간의 형성기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갈무리한다. 대학 입시를 치르던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겪은 지옥 같은 경험, 부역자로 지목돼 온갖 수모와 불이익을 당해야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저자의 책을 읽고 찾아온 동향의 독자와의 만남 등에 관련한 여러 삽화들은 개인의 체험이 곧 역사의 증거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지나온 시간들은 결국 ‘나’ 자신을 찾아가는 지난한 과정이었음을 고백하며,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만족감과 기쁨,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전방위적 분야에 대한 심도 높은 분석과 경험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의 통합적 이해와 사유를 고취시키는 완숙한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는 유종호의 이번 저작은 난경의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애정 어린 마음으로 전하는 그의 위로와 희망, 당부의 메시지이자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끝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서, 삶이 가리키는 궁극적 진실에 가닿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와 정신의 집약체라 해도 무방하다. 또한, 과거를 분석해 내일을 전망하고 현재에 빗대어 어제를 성찰하는 노비평가의 섬세하고 면밀한 이 기록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방대한 지적 세계와 그가 살아온 궤적, 균형감 있는 삶의 태도를 실감케 하며, 큰 공감과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인생을 충분히 보아온 사람의 원형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될 지혜와 도덕 그리고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시사하는 주옥같은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