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는 자연인으로서 일상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인간적 흔적을 지우려고 애썼던 김춘수 시인. 시인의 맨얼굴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대표산문집 <왜 나는 시인인가>는 시인이 생전에 출간하기를 원했던 마지막 산문선집이기도 하다. 전체 4부에 걸쳐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기, 음식에 대한 취향을 기록한 신변 잡기식 글에서부터 시인의 보수적 세계관이 강하게 피력된 정치 칼럼, 종교적 사색적 묵상이 기술된 수상록 성격의 글까지 시인의 면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을 수록하고 있어 그의 문학세계와 생애의 궤적을 더듬는 데도 훌륭한 단서가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엮은이는 특별히 시인이 평생을 두고 씨름한 주제인 '예수'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의 글들이 선정·수록된 2부에 무게를 두었다. 시인이 평생을 통해 보여준 근면한 글쓰기 노동의 증거이며, 문학적·예술적으로도 일정한 성취를 보여주는 이번 산문선집은 김춘수를 사랑하는 많은 연구자들과 일반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김춘수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1. 시인이 된다는 것 향수/외할머니를 위한 장미/말에 덧붙이는 삽화/옛동산에 올라/지금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나를 스쳐간 그·1/나를 스쳐간 그·2/나를 스쳐간 그·3/시인이 된다는 것/공초 선생을 기리며/폭설이 내리던 날의 밤… 2. 내 속에 자리한 예수 아만드꽃/베타니아의 봄/발바닥만 젖어 있었다/죽음/음영/어찌할 바를 모르나니/베드로의 몫/역사의 속/민중의 정체/처녀 회태/못/그녀의 몫 3. 지금 집 없는 사람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미분화 상태/몽우리/오지 않는 저녁/바다/어떤 비단잉어/잔인한 달/방연/후박나무 위 드높은 하늘/지금 '집'없는 사람은…./여자라고 하는 이름의 바다, 그 깊고 깊은 수심/잃어버린 때를 찾아서… 4. 누군가가 보고 있다 비키니 섬의 거북이 홀태바지와 문어다리·1/홀태바지와 문어다리·2/하나의 물음·1/하나의 물음·2/예술은 질식할까/누군가가 보고 있다/베라 피그넬/토하라/천사는 전신이 눈이라고 한다·1/천사는 전신이 눈이라고 한다·2/예수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 김춘수 시인 작품연보 1922년 경남 통영 출생. 1948년 『구름과 장미』(행문사) 1950년 『늪』(문예사) 1951년 『기旗』(문예사) 1953년 『인인隣人』(문예사) 1954년 시선집 『제1시집第一詩集』(문예사) 1959년 『꽃의 소묘素描』(백자사),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춘조사) 1969년 『타령조打令調 · 기타其他』(문화출판사) 1974년 시선집 『처용處容』(민음사) 1976년 『김춘수 시선詩選』(정음사) 1977년 『남천南天』(근역서재), 시선집 『꽃의 소묘素描』(삼중당) 1980년 『비에 젖은 달』(근역서재) 1982년 시선집 『처용 이후處容 以後』(민음사), 『김춘수 전집』전3권(문장사), 1986년 『김춘수 시전집』(서문당), 1987년 시선집 『꽃을 위한 서시』(자유문학사), 1988년 『라틴 점묘點描 · 기타其他』(탑출판사) 1990년 시선집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신원문화사) 1991년 『처용단장處容斷章』(미학사), 시선집 『꽃을 위한 서시』(미래사) 1992년 시선집 『돌의 볼에 볼을 대고』(탑출판사), 시선집 『꽃의 소묘』(세계출판사) 1993년 『서서 잠자는 숲』(민음사) 1994년 『김춘수 전집』(민음사) 1996년 『호壺』(한밭미디어) 1997년 『들림, 도스토예프스키』(민음사) 1999년 『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 2001년 『거울 속의 천사』(민음사) 2002년 『쉰한 편의 비가悲歌』(현대문학) 2004년 『달개비꽃』(현대문학) 2004년 11월 29일 별세. ■ 엮은이 남진우 시인. 문학평론가. 1960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81년 동아일보에 시, 1983년 중앙일보 평론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평론집 『신성한 숲』, 『바벨탑의 언어』, 『숲으로 된 성벽』,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산문집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작업은 시라고 하였다』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 이 책은… 대여 김춘수 시인의 문학세계와 생애의 궤적을 그려볼 수 있는 대표산문집 『왜 나는 시인인가』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산문 선집은 시인 생전에 출간이 계획되었던 것으로, 마지막 시집이 된 『달개비꽃』과 동시 출간을 계획하였었다. 하지만 단행본 8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읽고 가려, 비슷한 성격끼리 엮는 작업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였고, 결국 시집보다는 한 달여 늦게 출간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산문 선집을 엮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 씨는 “이제 문학사적 인물이 이 시인의 전체적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이들 산문은 반드시 참조해야 될 일차적 자료”가 될 것이라며 이 산문 선집의 가치를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책의 구성은 크게 4부로 나뉘는데, 제4부에서는 표제작을 포함 8편의 단행본 미수록작을 포함하고 있다(본문 398~422p). 제1부 「시인이 된다는 것」에는 김춘수 시인이 걸어온 삶의 궤적에 대한 회고나 추억의 성격이 짙은 자전적 글들이 담겨 있다. 시인의 실제의 고향이자 만년에는 향수의 대상이었던 통영의 풍경과 유년시절, 그리고 이어지는 서울, 도쿄 유학 시절에 경험했던 몇몇 사건이 상세히 씌어 있다. 특히 요코하마 헌병대 수감과 도쿄 경찰서에서 반년의 수감생활은 인간의 양면성을 통렬하게 경험하는 사건으로 시인에게 평생 각인되었던 상처였다. 제2부 「내 속에 자리한 예수」에는 시인이 평생을 두고 씨름한 주제인 예수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의 글들 가운데 중요한 글들을 선정하여 수록하고 있다. 엮은이(남진우)는 특별히 2부의 글들을 주목하고 있고 다음과 같은 평가를 하고 있다. “김춘수의 예수에 대한 에세이들은 우리 산문 문학이 도달한 한 수준을 보여주는 뜻 깊은 성과물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시인은 성서와 관련 연구서를 토대로 집요하게 예수와 그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면서 그들의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 일상과 신비를 성찰하고 있다. 시인은 특정 종교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적 약점을 고스란히 지닌 채 이타적 사랑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다 죽어간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시인이 상상을 통해 재구성한 예수의 모습이 물론 공관복음의 공식적인 초상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예수론은 그 나름의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 매우 아름답게 다가온다. 순수를 갈망했고 남다른 순결벽의 소유자인 이 시인이 왜 예수라는 인물에 집착했는가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 주제임에 틀림없으며 분석을 기다리는 많은 공백을 함축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제3부 「지금 집 없는 사람은」에는 주로 서정적 성격이 강한, 시인의 인품과 체취가 가장 잘 드러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시인의 자화상을 스케치하는 글로 시작하여, 독서편력과 영화와 시작 후기에 이르기까지 부담 없이 시인의 평소 생각을 노출하고 있다. 시에서 되도록 감정을 지우려고 애쓴 것과는 달리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친숙하고 다감하게 다가오는 시인을 만날 수 있는 장이다. 제4부 「누군가가 보고 있다」에는 시인이 틈틈이 쓴 시사 칼럼들 중 일부로, 시대적 추세와 흐름에 대한 객관적인 비판을 가하는 논객으로서의 입장이 선명히 드러나는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다시 한번 이 산문집이 갖는 가치를 엮은이의 말을 빌어 강조하자면, 이 산문집은 “시인의 근면한 글쓰기 노동을 증거해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문학적 즐김의 대상이 될만한 예술적 성취”를 수확하고 있고, 시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줄 다수의 단서를 포함하고 있는” 값진 안내서가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김춘수는 상당한 분량의 에세이와 칼럼을 남기고 갔다. 이 역시 이 시인의 근면한 글쓰기 노동을 증거해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문학적 즐김의 대상이 될만한 예술적 성취를 자랑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산문은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해줄 다수의 단서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에서 비교적 자연인이자 일상인으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한 이 시인도 이들 산문에서는 부담 없이 자신의 일상과 평소 생각을 노출하고 있다. ‘무의미 시’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시에서 되도록 인간적 흔적을 지우려고 애쓴 그가, 그래서 아예 관념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의미’의 구성물을 증발시켜버리려고 했던 그가 이들 산문에선 맨얼굴로 등장하여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들 산문에서 시인은 시의 베일 저편에 실체를 숨기고 지상적 삶에 초연한 비의적 언어를 모색하는 예외적 개인이 아니라 친숙하고 다감하며 인생에서 고민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없지 않은 평범한 일상적 개인의 모습으로 읽는 사람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제 문학사적 인물이 된 이 시인의 전체적 초상을 완성하기 위해서도 이들 산문은 반드시 참조해야 될 일차적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