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문화는 문자와 언어활동을 통해 유기적으로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21세기의 기표를 대표하는 디지털영상의 출현은 문자 고유의 의미에 충격을 주고, 인간의 사유체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산문집은 이러한 문화적 징후를 문학과 문자를 통해 세밀하게 짚어내고, 더불어 문자문명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가늠하고 있다.
문자와 이미지 _007 공간과 문화 _027 칸딘스키와 지폐 _048 석탄과 편지 _062 방랑하는 루마니아인 _078 건축적 상상력 _094 철학자 오이디푸스 _110 꿀벌의 언어 _125 시인이여, 우울하여라 _142 말 없는 그림 _157 만신전 _173 이른 아침에 읽는 사드 _189 미래를 추억함 _204 토끼 사냥 _221 꿈속의 꿈 _239 기억 없는 자의 불행 _253 학교와 소설 _268 마음의 당뇨병 _284 배꼽, 바퀴, 펜 _299 사랑의 최종본 _315 고통 예찬 _329 폭력과 권태 _346 맺음말 _361
이재룡 1956년 강원도 화천 출생. 성균관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학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누보로망 이후 신경향 소설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장 에슈노즈와 장 필립 뚜생,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밀란 쿤데라 등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을 비롯해 으젠 이오네스크, 르 클레지오, 미르세아 엘리아데 등을 본격 소개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루어두던, 문화와 문학의 기본 질료인 언어에 대한 입체적 통찰로 쓰인 『꿀벌의 언어』를 출간한다. 대표적인 번역서로 『외로운 남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벵갈의 밤』 『욕조』 『그리운 이가 오니샤에 있다』 『사진기』 『예술, 그리고 사랑과 혁명의 길』 『카페 여주인』 『장엄호텔』 『일년』 『정체성』 『금발의 여인들』 『장의사 강그리옹』 『해를 본 사람들』 『가을 기다림』 『사랑하기』 『거대한 고독』 『고야의 유령』 등이 있다.
■ 이 책은… 문명과 문화는 문자와 언어활동을 통해 유기적으로 진화되어 왔다. 하지만 21세기의 기표를 대표하는 디지털영상의 출현은 문자 고유의 의미에 충격을 주고, 인간의 사유체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문화적 징후를 문학과 문자를 통해 짚어낸 이재룡 교수의 문학 이야기 『꿀벌의 언어』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 산문집은 월간 『현대문학』에 2004년 1월부터 22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것을 전체적으로 보완하여 펴낸 것이다. 산문집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꿀벌의 언어’는 언어의 미학적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롤랑 바르트가 예로 들었던 것을 차용한 것이다. 꿀벌도 서로 소통하기 위한 “실용적인” 언어를 갖지만 예술 차원의 묘사까지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학 산문집의 책 제목을 “꿀벌의 언어”로 정한 데는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범하는 오류, 즉 삶의 의미를 계몽적으로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것을 경계하고 객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책 『꿀벌의 언어』는 문학의 모든 저변을 탐색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으로부터 『전태일 평전』 등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 자체가 지닌 의미와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다양한 텍스트를 들어가며 분석한다. 또한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신념을 한 작품을 위해 반생을 바친 사르트르와 장 브뤼노 등에서 찾는가 하면 반대로 문학작품 속 작가의 엄결한 이성과 달리 현실의 이데올로기에 굴복하고 진실로부터 멀어진 예를 엘리아데나 라로셀 등에게서 찾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유명한 문학작품에 대한 오독을 지적하기도 하는데, 신화와 소설의 기원으로 불리고 프로이트 심리학의 근간을 만들어준 『오이디푸스 왕』이 전형적인 신화의 형식과 다름을 보여주며, 특히 스핑크스를 비롯한 신화 속 괴물들은 남성성이 아닌 여성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부친살해 콤플렉스와 꿈의 해석은 전면적인 수정이 필요함을 지적한다. 문자예술인 문학작품과 이미지 문화를 상징하는 영화와 그림의 관계 비교는 이 책의 무게중심이다. 문자와 이미지가 공존했던 예와 문자와 이미지가 공존할 수 없게 된 현실을 여러 편의 글에서 보여주는데, 공존할 수 없게 된 주된 원인을 즉물적 가치를 우선하는 자본주의 속성 때문이라고 밝힌다. 문학작품이 그림이 되고 영화가 된 많은 예 중 스탕달의 『적과 흑』이 쿠르베의 그림으로 재현되고,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이 자크 리베트 감독의 영화로 재탄생했다. 반대로 침묵하는 그림이 소설을 낳은 예도 많은데,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과 얀 베르미어의 <진주 귀고리 소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예는 서로의 장르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준” 모범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이미지 시대”인 오늘날 문자와 이미지는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다. 이미지는 사람을 “단숨에 유혹”하고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겨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느리게 설득하는 문자”는 대중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건축과 문학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친화적인데, 그 까닭은 두 장르 모두 인간의 “불멸에의 욕망”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든다. 이를 뒷받침 하는 자료로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인용한다. 위고는 “건축은 튼튼하며, 지속되며, 오래 버틴다”며 건축의 “불멸성”을 예찬한 뒤, “구텐베르크의 납 글자”의 등장으로 “책이 건물을 죽일 것이다”라는 예언을 책 속에서 한다. 모든 문자가 문학작품이 될 수 없듯 이 책의 저자는 어쩌면 이상적일지도 모를 문학작품의 모습을 “벽돌 한 장도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완벽한 구조의 작품, 그런 구조물을 구축하는 상상력을 건축적 상상력”이다라고 묘사한다. 그 밖에 작가와 문학과 파시즘을 다룬 글로 「방랑하는 루마니아인」「마음의 당뇨병」「미래를 추억함」 등이 있는데, 「방랑하는 루마니아인」에서는 루마니아의 대표적인 세 작가 미르세아 엘리아데, 으젠 이오네스코, 에밀 시오랑의 파시즘에 대한 그들의 동조를 비판하고 있으며, 「마음의 당뇨병」에서는 문인이자 프랑스 최고의 문예지 의 핵심인물이었던 드리외 라로셀의 나치에 동조했던 비극적 인생을 조명하고 있다. 「미래를 추억함」에서는 문학과 예술에서 제시되고 있는 유토피아를 인간의 폭력성과 비교하고 있다. ■ 본문 중에서 언어는 설득하지만 이미지는 유혹한다. 문자를 통한 설득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지적 노력을 요구하는 피곤한 일이지만 이미지는 첫눈에 반하는 감미로운 눈요기이다. 레지스 드브레의 말에 의하면 문자 시대의 인간은 설득의 대상인 시민이었지만 이미지 시대의 인간은 유혹의 대상인 소비자이다. 문자는 추론적, 반성적이지만 이미지는 선동적이며 전투적이다. 기호 위주의 문명인 이슬람 국가에서 이미지와 여자를 소쿠리에 넣어 멀리한다. 모두 위험한 미혹의 근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적대적인 기호의 나라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히잡이라 불리는 베일로 가린다. 역으로 이미지가 숭배되는 곳의 여자들은 자꾸 벗으려 든다. ―본문 19-20p 혹자는 글이란 손이 아니라 발로 쓰는 것이라 한다. 하긴 발품을 들여 고생한 만큼 글에 생기가 도는 것이 사실이다. 또는 책상에 붙어 앉아 가슴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글이야말로 감동적일 수 있고 주관적 감정이 절제된 차가운 머리로 투명한 얼음을 깎아 만든 듯한 글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굳이 신체 부위에서 고르라면 좋은 글은 단연 비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영어로 spleen이라 불리는 주먹만 한 이 장기는 예술을 잉태하는 자궁이며 걸작의 혈관에는 검은 담즙(melanian+chole)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서양인의 오랜 믿음이다. 우울이라고 번역되는 멜랑콜리의 본래의 뜻은 검은 담즙이다. ―본문 142p 한 분야에서 낡은 것의 모순을 발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힘은 반드시 외부에서 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수학자 괴델을 인용하곤 한다. 수학 이론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터무니없이 오독했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물리학자 소칼이 인문학자가 자행한 이런 식의 오독을 지적하며 유발된 이른바 '소칼 사건'은 몇 년 동안 국제적 논쟁거리가 되었다. 한 분야의 모순을 인식하고 새로운 길을 타개하는 힘은 대체로 그 분야의 바깥에서 온다는 생각은 굳이 괴델에 기대지 않아도 수긍할 수 있다. 예컨대 자연과학에 속하는 생물학이 사회학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가 하면 의학의 일부분인 정신분석이 예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시인은 시보다도 음악이나 미술에서 영감을 얻고 소설가는 천문학이나 물리학에서 소재를 찾는 것도 흔한 일이다. 일군의 프랑스 소설에서 현대 물리학이나 천문학 이론이 자주 등장한 것도 새로운 사유방식과 소재를 찾으려는 모색의 결과일 것이다. ―본문 170-171p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배꼽이 시빗거리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에 그린 아담을 비롯해서 무릇 서양화에 등장하는 최초 인간의 배꼽은 일찍부터 교회의 고민거리였고 요새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맞부딪치는 논쟁의 중심에 배꼽이 놓여 있다. 하느님이 흙을 빚어 만들었다면 어머니의 흔적인 배꼽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 최초의 인간에게 배꼽이 있다면 그것은 필히 최초 이전의 또 다른 존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모순이 생긴다. 혹은 달리 질문할 수도 있다. 엿새 만에 완성된 세상, 예컨대 에덴동산의 나무를 잘라보면 나이테가 나올까? 한순간에 창조된 아담과 이브에게도 머리카락과 손톱과 같은 성장의 흔적이 있었을까? 성장은 역사성을 전제하는데 모든 최초에는 역사가 개입될 수 없다. 그런데 성화 속의 아담과 이브는 머리카락이 있을 뿐 아니라 이브보다 먼저 생긴 아담의 머리카락은 이브의 것보다 짧다. 아담의 머리카락은 누가 잘라주었는가. ―본문 299-30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