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아랑은 왜> 등의 작가 김영하가 등단 7년만에 묶어낸 산문집. 소설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감각과 재치로 우리 일상의 사소한 사물들의 재조명에서부터 자신의 기억과 추억 더듬기, 세기말-세기초의 문화와 문학까지 작가만의 고유한 생각들을 편안하게 풀어냈다. 일간지, 문예지 등을 통해 발표했던 산문 56편을 수록했다. 글은 5가지의 소제목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ICON에서는 일상에서 마주쳐왔던 카메라, 자전거, 에프킬라 등 누구나 한번쯤 사용해보았을 물건들이 작가의 의식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다. MEMORY CHIP은 만나고 헤어짐을 통해 기억과 추억의 의미를 되새긴다. HEADACHE에서는 학생운동, 문학의 몫 등 시사문제로 이루어진다. POST IT은 날카로운 감수성과 압축된 문장이 돋보이는 짧은 단상들로 엮여 있다. 마지막으로 etc.에서는 현실의 폭력을 비틀어 스케치한 네 편의 글이 담겨 있다.
ICON 카메라 자전거 야쿠르트 조선왕조 주식회사 말표 구두약 삼각관계 쥐 에프킬라 도널드 덕 삐삐 책 인터넷 MEMORY CHIP 봄 타카야마 허탕 불행아 이별 허영 어느 택시드라이버 습격 그레고리안 눈사람 HEADACHE 해찰과 두통 19세기에 태어난 20세기의 여자 죽음, 속도, 휴식 평범 게임 테러 '분'과 '놈' 한강 동강딜레마 POST IT 개 니콘FM2 달과 6펜스 대금 레너드 코헨 맥주 묵주 번호 삐삐 산울림 성서 세제 스텔라GX 액세서리 에곤 쉴레 지포라이터 키보드 트래블 가이드 한영애 Old Spice 포스트잇 etc. 전화 도착, 도착? 칼, 그리고 역지사지 테스트
김영하 196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장편소설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아랑은 왜』『검은 꽃』 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호출』『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오빠가 돌아왔다』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굴비낚시』『김영하 이우일의 영화 이야기』『랄랄라 하우스』 등이 있다. <문학동네신인작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이 책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주목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김영하 씨가 등단 후 7년 동안 써온 산문을 엮은 《포스트잇》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2002년도에 출간되었던 것을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산문집은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의 단서가 될, 그의 사유의 창고에 축적된 중요한 글들이다. 때문에 《포스트잇》은 작가를 만나고 작가의 사유와 접속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 글들은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은 일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점을 적는, 우리의 의식을 환기시키는 작은 메모장이다. 김영하의 그런 메모장 《포스트잇》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유머, 유머를 단초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태클, 혹은 냉정하게 날을 세워 번쩍이는 메스까지 들이대는 글들이 도사리고 있다. 글의 성격을 각기 이미지화한 소제목 ICON, MEMORY CHIP, HEADACHE, POST IT, ETC.로 글의 내용을 분류하고 있다. ICON에서는 일상에서 마주쳐왔던 물건(사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카메라, 자전거, 야쿠르트, 말표구두약, 에프킬라 등, 누구라도 한번쯤 사용해보았을 물건들인데 김영하 씨의 의식을 거치며 이들은 ... [ 출판사 서평 더보기 ]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의 주목을 끊임없이 받고 있는 김영하 씨가 등단 후 7년 동안 써온 산문을 엮은 《포스트잇》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2002년도에 출간되었던 것을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산문집은 소설가 김영하의 작품의 단서가 될, 그의 사유의 창고에 축적된 중요한 글들이다. 때문에 《포스트잇》은 작가를 만나고 작가의 사유와 접속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이 글들은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포스트잇’은 일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점을 적는, 우리의 의식을 환기시키는 작은 메모장이다. 김영하의 그런 메모장 《포스트잇》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유머, 유머를 단초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태클, 혹은 냉정하게 날을 세워 번쩍이는 메스까지 들이대는 글들이 도사리고 있다. 글의 성격을 각기 이미지화한 소제목 ICON, MEMORY CHIP, HEADACHE, POST IT, ETC.로 글의 내용을 분류하고 있다. ICON에서는 일상에서 마주쳐왔던 물건(사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카메라, 자전거, 야쿠르트, 말표구두약, 에프킬라 등, 누구라도 한번쯤 사용해보았을 물건들인데 김영하 씨의 의식을 거치며 이들은 예사롭지 않은 물건으로 탈바꿈된다. 이제는 향수를 불러오는 에프킬라에서는 농활 가서 만난 시골 사람들이 모기 물린 자리에 에프킬라를 척척해질 때까지 뿌려대던 기억에서 시작해 인간은 전세계 수천억 모기떼가 힘을 합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총과 지뢰와 폭탄과 자동차로 간단하게 죽인다는 문명비판과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란 정말 재앙과도 같은 존재'라는 환경문제에까지 이른다. 아이콘처럼 사소한 사물을 통해 본질적인 문제에 도달하는 상상력의 경쾌함은 이 장 곳곳에서 빛난다. MEMORY CHIP에서는 기억과 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충동적으로 떠난 경주여행 중 만난 여대생과 터미널에서의 짧은 만남, 일본 다카야마 민박집에서 만난 쓸쓸해 보이는 민박집 딸, 대학시절 국악연구회에서 만났던 실연당한 선배, 직업군인이지만 농사꾼의 영혼을 가진 아버지에 대한 추억, 유럽 여행 중 코펜하겐에서 매료당한 엘라 피츠제럴드 앨범, 그리고 북한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온다는 황당무계한 수다를 늘어놓던 어느 택시기사, 그리고 새해 첫날 잃어버린 짝사랑의 여자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 장에서는 만나고 헤어지면서 추억으로 이룩되어진 의미들을 되새기고 있다. HEADACHE에서는 제목처럼 사유의 무게감으로 쓰여진 시사문제로 이루어진다. 대학시절 자신의 어중간했던 학생운동을 떠올리며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보타주의 힘이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현대인들이 열중하는 컴퓨터 게임은 현실에선 무능력자라도 가상에선 다른 자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만 문학은 그 반대의 안티 시뮬레이션에 위치하며 무능력자에겐 무능력자라 하고 독재자에겐 독재자라고 하는 것이 문학의 몫이라고 정의한다. 9. 11 테러 이후 인류는 어두움의 상상력으로 테러범과 겨루기보다는 우리, 가련한 영혼들을 위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필요하다며 충격의 치유에 관한 전망을 하고 있다. POST IT은 포스트잇처럼 짧은 단상들로 엮여 있다. 단상이라고 하지만 날카로운 감수성과 압축된 문장이 글에 무게를 싣고 있다. ETC.는 위 네 장의 글의 성격과는 전혀 다른 네 편의 글들로 엮여 있다. 비정상적(?)인 시선으로 현실의 폭력을 비틀어 스케치하고 있다. 《포스트잇》은 7년 동안 쌓아왔던 단상의 흔적들이다. 현실과 문학, 인터넷, 죽음 등의 문제에서부터 현대문명의 심각한 병리학적 현상들에 대한 작가 특유의 전위적인 분석과 깊이 있는 사유는 소설로는 보여줄 수 없는 또 다른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포스트잇》은 현실 속의 사물과 상황에 익숙해져 쉽게 눈에 띄거나 자각되지 않는 것들을 독자들에게 재인식시켜준다. 한 장씩 떨어져나가 독자들의 머릿속에 붙게 되는 포스트잇처럼. ■ 본문 중에서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더욱 신이 나 떠들어댔다. ‘우리 고모가 상궁인데 어제 입궐했다가 주상을 뵈었다지 뭐야.’ 이런 말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물론 자기 삼촌이 별감인 놈도 있겠지. 통역 상궁, 웹디자이너 별감 같은 직업도 생길 테고 말야. 게다가 관광 유발 효과도 만점일 거야. 허수아비 왕이라도 옷 입고 어디 행차하고 그러면 폼나잖아. 교황도 수요일에 손 한번 흔들어주면 성 바오로 광장에 모인 관광객들 좋아라 하잖아." 우리의 표정은 어느새, 그도 그렇겠다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 「조선왕조 주식회사」 중에서 에프킬라의 그 무엇이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 'F' 때문일까, 아니면 '킬라' 때문일까. F는 윗입술과 앞니 사이로 새어나가는 바람을 통해 발음된다. 그때의 바람은 어쩐지 에어로졸 방식의 살충제에서 뿜어져 나가는 압축공기를 연상시킨다. '킬라', 즉 살인자의 냉혹한 이미지도 능히 한몫을 한다. 에프킬라의 매력이 온전히 그 이름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오늘밤도 다가올 대량살육을 암시하는 레몬향 섞인 등유 냄새와 함께 잠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기가 에프킬라, 심지어 인간보다도 더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것이다. - 「에프킬라」 중에서 그는 주변을 살피며 은밀히 속삭였다. "정일이 아버지가 그래도 끝내줬지. 친일파들 다 깨끗이 숙청했잖아."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아, 북에서는 자꾸 오라고 하는데 말야. 일이 바빠서 갈 수가 있어야지." 내 머릿속엔 잠입탈출? 불고지죄? 같은 단어가 신호등처럼 깜빡인다. "왜 그쪽에서 날 자꾸 오라는 줄 알아?" 그가 내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묻자 내 쪽에서도 슬슬 장난끼가 동한다. "자꾸 오라는데 한번 가보시지 그러세요" 하고 넌지시 찔러본다. (?중략?) 나로서는 난생 처음 듣는 국제정치의 비사들을 털어놓았다. "북한 애들이 이젠 살만해. 인구는 천 칠백만 밖에 안 되는데, 석유가 나잖아." 북한에서 석유가 난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서 나는 즉각 반문했다. "석유요?" "몰랐어? 북에선 세 집 건너 한 집에서 석유가 나." 아니, 무슨 석유가 지하수인가? 그의 폭탄발언은 계속되었다. "걔네들은 말이지. 지하 백오십 미터만 파면 암반에서 석유가 나오거든." 뭐, 그렇다는 데야 안 가본 내가 밀릴 수밖에. 나는 입을 다물고 경청하기로 했다. - 「어느 택시드라이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