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1급 작가 투르니에가 만년에 파리 근교 시골 마을 사제관에서 홀로 살면서 쓴 글모음. 집, 도시들, 육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8개의 장으로 나누어 짧은 산문들을 싣고 있다. 그의 산문은 인간과 사물과 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선명한 이미지에 담는다. 작가 특유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집·도시·육체·어린이·육체·풍경·죽음 등 세상의 안팎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산문시에 가까울 정도로 풍부한 이미지로 거북껍질처럼 굳어진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긴다.
저자 :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
1924년 파리 9구 빅투아르 가에서 태어났다. 파스퇴르 고등학교 시절의 스승인 모리스 드 강디약 교수의 철학 강의에 깊은 영향을 받고 소르본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등과 함께 가스통 바슐라르, 장폴 사르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철학을 전공했다. 이어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철학을 연구한 후 교수가 되려 했으나 자격시험에 실패하고, 출판사인 플롱 사에 입사하여 문학 부장을 역임하면서 독일 문학 번역에 몰두했다. 1967년, 43세 되던 해에 발표한 처녀작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작품 <마왕>으로 공쿠르 상을 받았다. 1972년 이래로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 심사위원을 맡고 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다. 1962년부터 파리 근교의 생 레미 슈부르즈 근처에 있는 슈아젤이라는 작은 마을의 옛 사제관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마그리트 유르스나르, 파트릭 모디아노, 르 클레지오 등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 문단의 가장 뛰어난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역자 : 김화영
문학평론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문학 상상력의 연구』『행복의 충격』『바람을 담는 집』『소설의 꽃과 뿌리』『시간의 파도로 지은 집』『어린 왕자를 찾아서』 등 10여 권의 저서 외에 미셸 투르니에, 르클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로제 그르니에, 레몽 장,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실비 제르멩 등 프랑스 주요 작가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였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18권) 『섬』『뒷모습』『율리시즈의 눈물』『내 생애의 아이들』『걷기 예찬』『마담 보바리』『지상의 양식』 등 다수의 역서를 내놓았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은 철학적 신학적 교양으로 무장된 이 작가 특유의 사유의 깊이, 매섭고 해학적인 에스프리, 그리고 시적 몽상이 '집' '도시들' '육체' '어린이들' '이미지' '풍경' '책' '죽음' 등 여덟 개의 장 속에 스며들어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사색의 길로 인도한다.
그의 작품을 읽는 데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이미지'이다. 그는 “나는 사진, 그림, 데생을 좋아한다. 다시 말해 나는 이미지를 좋아한다.”고 토로할 정도로 사물을 바라봄에 있어 우리의 정신이 상상하지 못한 이미지들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책의 '이미지'의 장에서 이 특징은 가장 잘 잘 드러난다. 그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내가 시도하려는 것은 바로 철학에 이미지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라는 그 자신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실린 여덟 개의 '단상'들은 아주 다양한 삶에 대한 탐구와 이해의 진폭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텍스트를 관통하고 있는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고 섬세한 인식을 보여주는 어떤 진정성의 목소리를 발견할 수 있다. 삶의 고독과 유한성의 인식, 변모하지 말아야 할 것의 변모와 변화해야 할 것이 변화하지 않는 삶의 역설, 행복에의 갈증과 충족되지 않는 욕망, 이 모든 인간적인 삶의 다양한 모습들은 사물의 내면을 투시해 들어가는 저자의 직관적 인식에 의해 낱낱이 재구성된다. 그 시선은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어떤 낭만적 환상이나 상투화된 도덕적 시각을 벗어난, 차갑게 가라앉은 응시의 눈길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차가운 눈길에 그치지 않고, 삶에 대한 깊은 사랑의 열정이 배어 있는 시선임을 수록된 여러 단상들의 무늬와 결을 따라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김화영 교수의 유려한 번역으로 더욱 빛을 발하는 [짧은 글, 긴 침묵]은 '산문집'이라는 외면적 장식을 넘어서 현대 프랑스문학의 핵심적인 줄기와 맞닿아 있으면서 삶에 대한 프랑스적 감수성의 보편적 편향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