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단나의 새끼 강아지를 집에 들이기로 결정한 순간 그의 이름은 정해졌다. 화음과 리듬으로 가득한 음악의 집에서 살게 될 강아지가 음악과 조화롭게 공명되는 이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아지는 자신이 방석 위에 있는 것에 놀라며 눈을 떴다. 어미의 물결치는 듯한 하얗고 부드러운 털에 기대있는 것을 꿈꿨을까? 강아지는 일어나 떨며 기지개를 폈다.
“잠이 막 깼어요.” 딸아이가 속삭였다.
나는 주방에 들어갔다. 강아지의 불안해하는 눈빛과 마주했다. 마치 내게 묻는 듯했다. 앞발 하나를 허공에 들고 있었고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며 마치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내 몸짓과 얼굴 표정을 해석하려는 듯 내게 주의를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강아지의 눈빛이 이토록 설득력 있게 의문을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_ 5. 첫 식사
멜로디는 동반자 이상, 친구 이상이 되었다. 걱정이 되어 병이 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동물’이나 ‘짐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도, 참을 수도 없는 피조물이었다. (…) 멜로디는 세상에 아이가 오기를 바라는 나와 아내가 주인공이 되어 불타는 사랑의 놀이, 사랑 행위로 잉태한 아이 같았다. 멜로디는 나의 진정한 딸이었다. 알 수 없는 문명의 전설 속에서 개로 변한 나와, 마찬가지로 암캐로 변한 아내가 교미를 행해 강생한 딸이었다. 있을 수 있는 수억 마리 강아지 중에서 바로 멜로디가 내게 주어졌고 이는 기적이었다. 어느 긴 밤에 유일한 만남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남녀로부터 아이가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적이었다.
_ 11. 새끼들
몇 주 후 새끼들이 다른 하늘 아래서 그들의 삶을 살기 위해 집을 떠날 때 우리 둘 사이에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가족 중 아무도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고통받지 않으면 멜로디는 가능한 한 자주 내 곁에 있으려 했다. 자주 내 팔이나 다리에 매달려, 우리 사이에 1밀리미터의 간격도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에게 힘주어 기댔다. 멜로디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뒤섞이고 녀석의 따스한 배가 항상 차가운 내 발을 따스하게 덥혔다. 녀석의 깊은 숨이 내 귓가에 울렸고 따스한 숨결이 내 폐를 파고들었다. 녀석의 규칙적인 호흡은 내 심장박동에 답했다. 우리는 항상 붙어 다녔고, 친밀하고 또 친밀했고, 서로 한없이 친밀했다.
_ 13. 구해주세요!
우리는 멜로디가 묶여있든 갇혀있든 간에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밖에서 홀로 지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우리는 공동생활의 일원으로서 멜로디도 ‘안’에서 살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멜로디의 발이 흠잡을 데 없이 청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 가지 절차가 생겼다. 신지도 않은 신발을 벗는 대신에 멜로디와 산책하거나 외출을 한 후에는 우리가 현관에서 그의 발을 씻기거나 닦아준 것이었다.
_ 17. 샤워
멜로디가 죽은 지 850일이 지났다. 아버지는 18년 전에 숨을 거두었다. 나의 꿈은 어떤 때는 이 동물, 어떤 때는 이 사람으로 점철되었다. 나약한 유령들, 멜로디와 나의 아버지는 나의 밤의 세계에 고집스럽게 ‘되돌아온다’. 이들은 내가 앞으로 걷는 데에 짚고 나가는 목발과도 같다. 이들은 넓게 퍼져나가는 어둠과 나를 화해시키는 찬란한 횃불과도 같다.
_ 22. 나를 먹어!
어린 시절의 두 강아지를 제외하고 내게 있어서 멜로디는 가장 약하고, 가장 부서지기 쉽고, 가장 무기력한 상태로 완전히 내몰린 존재였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 취약성을 통해 멜로디는 나와 하나로 융합되었던 존재 기간 내내 ‘스승’의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멜로디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제자에게 그 본질을 짐작하게 만드는 데 수련의 핵심을 두었던 일본의 전통 예술을 전수하는 위대한 스승과 같았다.
_ 26. 멜로디와 그의 동반자
서문 - 로제 그르니에
프렐류드
1. 한밤의 울부짖음
2. 2009년 12월 2일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1
I. 예민한 존재, 다정한 존재
3. 두 번의 탄생
4. 첫날 밤의 슬픔
5. 첫 식사
6. 첫 산책을 기다리며
7. 첫 외출
8. 타오르는 젊음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2
10. 첫 이별
11. 새끼들
12. 연민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3
II. 절대적인 변함없는 사랑 : 죽을 때까지의 기다림
13. 구해주세요!
14. 구토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4
15. 징계
16. 산책
17. 샤워
18. 사산
19. 어느 날 저녁
20. 기다림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5
III. “내가 너를 잊는다고? - 걱정 마라, 사랑하는 그대여”
21. 깨울까, 말까?
22. 나를 먹어!
23. 항심과 변심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6
24. 마지막 나날들
25. 화장
26. 멜로디와 그의 동반자
애견가의 수첩에서 나온 쪽지 - 일기 발췌문 7
27. 충실성으로 불타는 불충실한 사람
피날레
28. “모든 동물은 죽었다” 멜로디의 사후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 미즈바야시 아키라 Mizubayashi Akira , 水林章
18세기 프랑스 문학 전문가인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1951년 8월 5일 일본 사카다에서 태어났다. 도쿄 외국어대학에서 수학하고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에서 프랑스어 교사 연수교육을 이수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메이지 대학, 도쿄 외국어대학을 거쳐 2006년부터 일본 조치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받침으로 문화적인 정서를 향유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18세에 프랑스어에 매혹되어 일본어는 어머니의 말인 모국어, 프랑스어는 아버지의 말인 ‘부국어’로 삼았다. 자신을 두 언어의 가운데에 있는 경계인이라고 자평하는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18년을 일본어로 살았고, 그 후 40년 넘게 외국어 속에서 살고 있다. 그는 2011년 프랑스어에 대한 아름다운 헌사인 『다른 데에서 온 언어』로 프랑스 언어와 문학의 전파 부문에서 프랑스 학술원상을, 프랑스어권 작가협회에서 아시아 부문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3년 『멜로디』를 발표하여, 동물 애호 프로그램에서 주는 3천만 애독자상을 수상했다. 2014년 그는 또 프랑스어로 『방황에 대한 작은 찬사』를 발표했다.
일본에서 『행복에의 의지』(1994),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독해』(2007) 외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다니엘 페낙의 『학교의 슬픔』, 로제 샤르티에의 『읽는다는 것의 역사』 등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그는 멜로디의 임종을 지켰던 아내 미셸과, 딸 줄리아 마도카와 함께 도쿄에서 살고 있다.
옮긴이 - 이재룡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꿀벌의 언어』 『소설, 때때로 맑음 1』이 있으며, 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다이 시지에의 『달도 뜨지 않은 밤에』, 앙투안 콩파뇽의 『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 프레데릭 파작의 『거대한 고독』 외 다수가 있다.
일본인 프랑스 문학자 미즈바야시 아키라가 자신이 사랑한 개 멜로디와 함께 보낸 12년간에 대해 쓴 에세이 『멜로디』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았던 첫 만남에서부터 함께 산책하고, 샤워를 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길들여진 시간에 대하여, 그리고 멜로디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까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간과 동물이라는 경계 없이 사랑의 유대를 쌓아간 12년 동안, 두 존재는 서로에게 “동반자 이상, 친구 이상, 걱정이 되어 병이 날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71쪽) 작가는 이 관계를 통해 깨달은 생의 시작에서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의 삶의 교훈과 의미를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전한다.
일본과 프랑스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작가와
자연과 문명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개,
두 존재의 사랑의 연대기
이 책 『멜로디』의 작가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1951년 8월 5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야만적 군국주의 시대에 염증을 느꼈던 그의 아버지는 자식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줄 아는 교양인이 되기를 바라, 헌신적으로 뒷받침을 했다. 그 덕분에 작가는 18세에 프랑스어를 만나 뜨겁게 빠져들었고 아버지의 이끎으로 프랑스어에 빠졌기에, 일본어는 어머니의 말인 모국어, 프랑스어는 아버지의 말인 ‘부국어’라고 했다. 그리고 이후 40년을 프랑스어로 살고 있고, 프랑스어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자신을 두 언어의 가운데에 있는 경계인이라고 자평했다.
그가 사랑한 개, 멜로디 역시 ‘제외되지도 않고 포함되지도 않은’ 경계에 있는 존재였다. 인간의 세계 밖으로 아주 밀려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간 세계 속으로 확실하게 받아들여지지도 못한 존재. 자연과 문명 그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멜로디의 모습에서 작가는 일본과 프랑스 중간 어디쯤에 머무는 자신을 보았고, 그리하여 멜로디에게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멜로디, 그는 충실하게 기다리는 존재.
존재 기간 내내 멜로디는 나의 스승이었다”
작가는 개의 주인이지만 실은 개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회고했다. 거저 주어진 모국어보다는 스스로 택하여 체험한 언어의 단어 하나하나를 충실하게 익혔던 미즈바야시는 멜로디의 언어 역시 성실히 익혔고 그와 진정한 소통을 이룩했다. 그가 스승에게서 배운 제일 첫 번째 덕목은 충실성이었다. 또한 기다림의 미덕을 배웠다. 생명의 발아, 성장, 청춘의 발랄함, 그리고 노년과 병과 죽음을 곁에서 바라보며 삶의 교훈, 특히 죽음의 의미를 깨우쳐준 멜로디를 그는 잊지 못한다.
-옮긴이의 글 중에서
중년의 문학자에게 개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떤 존재였기에, 그 존재를 기리는 이야기로 한 권의 책을 냈을까?
미즈바야시 아키라는 멜로디에 대해 “존재 기간 내내 ‘스승’의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멜로디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제자에게 그 본질을 짐작하게 만드는 데 수련의 핵심을 두었던 일본의 전통 예술을 전수하는 위대한 스승과 같았다.”(258쪽)라고 묘사했다. 작가가 멜로디에게 배운 것은 무엇이었을까?
멜로디는 작가에게 거짓 없이 충실했다. 속이거나 이기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계산한 적이 없었다. 늘 솔직했고, 작가가 아파하면 고통을 물리치겠다는 듯이 충실하게 옆에서 지켜주었다.
또 멜로디는 기다림의 미덕이 있었다. 멜로디는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천성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질서에 맞게 행동했다. 명절이나 모임이 있어 집을 비울 때도 참을성 있게 작가를 기다렸다.
이렇게 충실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멜로디의 모습을 보고, 작가는 10년간 같은 장소에서 변함없이 주인을 기다렸던 ‘하치코’라는 유명한 개의 일화를 떠올린다. 또 20년 만에 거지의 행색으로 돌아왔어도 주인을 알아보았던 율리시즈의 개, 아르고스의 이야기도 떠올린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18세기 프랑스 고전 문학 전문가답게 계몽주의 시대 사상가의 철학과 문학을 오가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는 사유를 펼친다. 이러한 철학이 심오한 문학에만 그친 것은 아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장미의 기사>에서 찰리 채플린의 영화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까지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
멜로디의 사후
“모든 동물은 죽었다”
“제 개가 2년 전에 죽었는데 아직까지도 매일 밤 꿈에 나타납니다.”(4쪽) 작가는 멜로디가 죽은 후에도 잊지 못하는 심정을 책에 담아 전한다. “멜로디가 죽은 지 850일이 지났다. 아버지는 18년 전에 숨을 거두었다. 나의 꿈은 어떤 때는 이 동물, 어떤 때는 이 사람으로 점철되었다. (…) 이들은 내가 앞으로 걷는 데에 짚고 나가는 목발과도 같다. 이들은 넓게 퍼져나가는 어둠과 나를 화해시키는 찬란한 횃불과도 같다.”(195쪽)
작가는 한없이 연약하고, 극단적 취약성을 지닌 존재였지만 불변의 충실성과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쳐준 개, 멜로디를 잊지 못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토록 충실한 동물들을 우리 인간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며 글을 마친다. 인간에게 동물의 존재에 대해, 동물에게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으로, 읽고 나면 묵직한 여운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