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가 여행을 하는 동안 여정과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 따라 변하는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기록한 에세이다. 꾸준히, 그리고 틈틈히 일상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일기'라고 부를 만한 것이긴 하지만 발견과 관찰, 그리고 일화들로 재구성된 외적 기록에 가깝기에 '외면 일기'라는 이름을 달고 출간하게 되었다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난날의 소박한 시골 귀족들이 추수, 아이들의 출생, 결혼, 초상, 날씨의 급변 등을 적어두곤 했던 '출납부'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머리말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옮긴이의 글
■ 지은이 미셸 투르니에 43세에 처녀작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두 번째 작품 『마왕』으로 공쿠르상을 수상하고, 1972년부터는 아카데미 공쿠르의 종신회원으로 활동 중인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소설가적 이력이 투르니에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소르본느와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한 투르니에는 철학자이기도 하며, 파리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교양 있는 교육을 받은 세련된 심미가이며, 1924년에 태어나 우리 나이로 여든의 나이인 그는 유럽의 격변을 몸으로 체험한 20세기의 증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투르니에는 긴 시간을 통찰한 하나의 두께 있는 시선이며, 유럽의 정신사를 담고 있는 지성이고, 인간에 대한 탐욕스러운 관심과 애정 그 자체이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대표작으로는 『예찬』『짧은 글 긴 침묵』『흡혈귀의 비상』『방드르디, 태평양의 끝』『뒷모습』등이 있다. ■ 옮긴이 김화영 고려대학교 불문과 교수. 문학평론가. 『문학 상상력의 연구』『행복의 충격』『바람을 담는 집』『소설의 꽃과 뿌리』『시간의 파도로 지은 집』 등 10여 권의 저서 외에 미셸 투르니에, 파트릭 모디아노, 장 그르니에, 로제 그르니에, 레몽 장,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등 프랑스 주요 작가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였고, 『알베르 카뮈 전집』(전15권)『섬』『예찬』『뒷모습』『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내 생애의 아이들』등 70여 권의 역서를 내놓았다.
■ 이 책은… 현존하는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미셸 투르니에의 예지銳智가 곳곳에서 번뜩이는 산문집 『외면일기Journal Extime』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전의 책 『예찬』보다 훨씬 더 짤막한 단문의 명상적인 글모음으로, 긴 텍스트에 쉽게 질리는 디지털인들도 쉽게 열어볼 수 있는 형식의 책이다. 책 제목과 관련하여 먼저 밝혀둘 것 하나,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 반대의 의미, 외면을 관찰했다는 의미로 ‘외면 일기Journal extime'라 붙인 제목의 ‘extime'는 투르니에가 만든 조어이다. 이 책은 메모가 생활의 일부가 된 투르니에가 그간 쌓인 자신의 30여 권의 수첩 속에서 추려낸 생각의 편린들이다. 짧고 직설적이고 깊이 있고 박학한 기록들, 투르니에의 말대로 다듬지 않은 그대로의 메모라고 보기엔 믿기 어려운 보석 같은 글들이 열두 달의 장章을 수밀하게 장식하고 있다. 일년 열두 달이라는 상징적인 장 분류는 삶의 완전한 한 주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그 한 주기 동안 투르니에의 시선은 사물들, 사람들, 책들, 그리고 여행지의 풍경에 닿아 ‘발견'하고 그들을 ‘존재'하게 만든다. 그가 식물의 동물적 속성을 자신의 정원 안에서 발견하는 장면은 투르니에 문학에 등장하는 욕망의 원형에 선이 닿는다. 두 그루의 전나무가 생존에 필요한 공간과 빛을 독차지하려고 다투는 정원에 들어서면 “강제수용소 같은 증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나무들에게 푸념한다. 그가 쓴, 그리고 쓸 작품들은 거실에 세워둔 ‘예수를 안고 있는 성 요셉 상'에 대유된다. 그는 요셉이 안고 있는 예수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며, 때문에 요셉은 ‘추정상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내가 마음속에 품어 낳은” 작품에 대한 자신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튀니지로의 자동차 여행중에 만났던 히치하이킹 소년은 서정성 짙은 로드무비 한 편을 연상시킨다. 차에 태워준 튀니지 소년이 차 앞유리에 맨발을 붙이고 있다 내린 몇 주일 뒤, 파리로 돌아와 추운 날씨 탓에 차 앞유리에 김이 서리자 또렷이 드러나는 튀니지 아이의 맨발 자국. 투르니에가 즐겨듣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제4번 1악장에 대한 “언제나 변함없는 놀라움과 황홀함. 나는 이 음악의 아름다움에 습관이 되지 않는다”라는 예찬은 베토벤 못지않은 그의 젊은 열정의 표현으로 읽힌다. “나에게 오직 내 분수에 맞을 정도의 양과 질의 진실만을 말해주십시오”라며 책의 끝에 적어넣은 이 한 문장은 투르니에의 금욕적인 생활과 스스로에게 엄결한 글쓰기의 자세를 압축하고 있어 아름답고, 그릇된 독서에서 오는 지적허영까지 경계시켜 즐겁게 책을 덮을 수 있게 해준다. ■ 머리말 중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의 여정과 그때그때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사건들, 날씨, 철따라 변하는 우리 집 정원의 모습,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 운명의 모진 타격, 흐뭇한 충격 따위를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일기'라고 부를 수도 있을 이것은 ‘내면의 일기 journal intime'와는 정 반대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에 ‘외면일기journal extime'라는 이름을 만들어 붙여보기로 한다. 거의 반세기 동안 시골에서 살아온 나는 자신들의 내면적 상태 같은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수공업자들과 농사꾼들의 사회 속에 묻혀 지내는 터이다. 이 ‘외면일기'는 지난날의 소박한 시골귀족들이 추수, 아이들의 출생, 결혼, 초상, 날씨의 급변 등을 적어두곤 했던 ‘출납부'와 비슷한 것이다. ■ 본문 중에서 길과 전선을 위협하는 우리 집 소나무의 뒤틀린 가지들을 잘라냈다. 발그레하고 향기로운 그 나무토막들이 여간 아름답지 않다. 특히 그 단단한 정도가 완벽하다. 다시 말해서 돌이나 쇠붙이로 된 같은 크기의 물건처럼 너무 무거운 것도 아니고 마른 장작처럼 너무 가볍지도 않은 것이다. 양과 질이 잘 혼합된 ‘완벽한 무게'라는 이 기이한 개념. - 본문 15p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다. 적당한 기계를 맞출 생각으로 보청기상과 만날 약속을 해놓았다. 그래놓고는 자꾸만 약속을 연기한다.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과연 남들이 하는 얘기를 듣는 게 그리도 중요한 일일까?” - 본문 21p 봄이 되면 나는 새로운 소일거리를 발견한다. 이 소일거리가 나중에는 거의 편집광에 가까운 것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다름 아니라 우리 집 유리창문을 닦는 일이다. 나는 그 일에서 어떤 커다란 정신적 만족을 얻는다. 창문들이란 분명 집의 의식이요 양심인 것이다. 창문이 투명하면 의식이 맑아지나니……. - 본문 88p 드뷔시의 <바다>. 1939년 여름 빌레르에서였다. 내 나이 열네 살. 나는 캐나다 산의 작은 카누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호두껍질 같은 작은 배였다. 나는 매일 그 배를 타고 한계선을 넘어서 해변이 그저 가느다란 한 개의 노란 선으로 보일 때까지 멀리 나아갔다. 배가 뒤집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나는 절대로 헤엄을 쳐서 해변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늘 혼자였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목숨을 거는 짓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이렇게 물결 위를 흘러다닌 끝에 기슭으로 돌아오면 온통 뒤집어 쓴 물보라가 햇빛에 말라붙어서 나의 온 몸은 하얀 소금에 뒤덮여 있었다. 드뷔시의 음악이 내 귀에 추체험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바다에서 보낸 그 시간들이다. 찬란한 여름, 주변에는 온통 죽음이 에워싸고 있고, 지평선 저쪽에는 번개를 가득 실은 검은 구름을 일으키고 있는 임박한 전쟁. 나는 소금기로 얼룩덜룩해진 벌거벗은 몸으로 파도의 푸른 등 위를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나는 무서우면서도 행복하다. - 본문 1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