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현실 속에서 길 잃은 사람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장의사 강그리옹』『해를 본 사람들』로 국내 독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프랑스의 문제적 작가 조엘 에글로프의 소설 『도살장 사람들』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현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가장 문제적 작가”라는 특별한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조엘 에글로프는 이번 작품으로 독자들이 직접 뽑는 문학상인 <엥테르 문학상>을 수상했다. 특유의 해학적 시각으로 어수룩한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을 펼쳐 보인 『도살장 사람들』, 조악한 환경의 소도시에서 소망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끝이 보이지 않는 진창 같은 삶에서 탈출을 꿈꾸지만 길을 잃고 헤매는 그들의 모습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 즉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자신이 도살장 짐승으로 변하는 악몽을 꾸는 주인공을 통해 암울한 삶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그린 『도살장 사람들』은 탈출구조차 찾을 수 없이 뿌연 안개로 뒤덮인 인생, 그 감옥에 갇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삶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문제작이다.
■ 줄거리 폐수처리장, 쓰레기하치장, 폐차장에 둘러싸인 프랑스의 한 시골 마을, 일 년 내내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고, 비행기가 공중에서 뿌리는 윤활유가 비처럼 내려 끈적끈적하게 몸을 휘감는 곳, 바람 따라 악취가 풍겨나는 황량한 이곳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도살장에서 가축을 죽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피와 체액 그리고 동물들이 질러대는 비명으로 가득 찬 도살장, 그곳에서 조금씩 미쳐가며, 현실에 적응해 무기력하게 삶을 계속하는 동료들과는 달리, 남자는 늘 시궁창 같은 삶에서의 탈출을 열망한다. 한때 그도 폐허와 같은 이곳에서 사랑도 하고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돌아오는 것은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같은 일상뿐, 그에게 현실이란 잠 없는 길고 긴 악몽일 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삶 속에서, 자신이 죽인 도살장 짐승으로 변하는 악몽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길 잃고 방황하는 암울한 삶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그린 조엘 에글로프. 이제 에글로프가 안내하는 황량한 세기말의 풍경은 그가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한 현대의 서사, 바로 그것이다.
■ 지은이 조엘 에글로프 Jo?l Egloff 1970년 출생,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했으며 파리 영화학교를 졸업했다. 영화학교 졸업 후에는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했으며 1999년에 등단했다. 이제 겨우 다섯 작품을 발표한 젊은 작가이지만 에글로프의 소설들은 늘 독자와 비평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폐수처리장, 쓰레기하치장, 폐차장에 둘러싸인 마을에 사는 어수룩한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을 작가 특유의 해학적 시각으로 그려낸 『도살장 사람들』은 프랑스 독자들이 직접 뽑는 권위 있는 문학상인 <엥테르 문학상> 수상작이며, 『장의사 강그리옹』은 <알랭 푸르니에상>을, 『해를 본 사람들』은 <에륵만 샤트라앙상>, 『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했던 것』은 <블랙유머 대상>을 받은 바 있다. 최근작으로 『다른 사람으로 오해받는 사람』 등이 있다. ■ 옮긴이 이재룡 195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프랑스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다. 현재 숭실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꿀벌의 언어』, 옮긴 책으로는 조엘 에글로프의 『장의사 강그리옹』『해를 본 사람들』, 장 필립 뚜생의 『사랑하기』『도망치기』『욕조』『사진기』를 비롯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정체성』『일 년』『거대한 고독』『고야의 유령』『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코르다의 쿠바, 그리고 체』『벵갈의 밤』『부끄러움』『장엄호텔』『슬픈 흰곰의 노래』『로즈의 편지』『가을 기다림』『외로운 남자』『길고도 가벼운 사랑』『이별연습』『포옹』 등이 있다.
■ 이 책은… “나는 철로 변에서 놀았고 전신주에 올라갔으며 폐수처리장 물속에서 수영을 했다. 그리고 커서는 폐차장에 버려진 자동차의 찢어진 좌석에서 첫 섹스를 했다.” 일 년 내내 안개가 끼고 똥 냄새가 나는 곳, 어린아이는 창백하고 어른들은 제대로 늙을 수 없는 곳. 폐허와도 같은 황량한 그곳에 다른 생명을 죽여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도살장 사람들이 있다. 도살장에서는 동물을 죽이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폐차장에서 고물을 줍거나, 폐수에서 썩어가는 물고기를 잡으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 중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악취 나는 현실에서 탈출하고 어디론가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발 딛고 선 땅을 박차고 나갈 용기 또한 없다. 어쩌면 이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폐수처리장, 쓰레기하치장, 폐차장에 둘러싸인 마을에 사는 어수룩한 사람들의 어두운 일상을 작가 특유의 해학적 시각으로 그려낸 『도살장 사람들』은 프랑스의 젊은 작가 조엘 에글로프의 네 번째 소설이다. “프랑스 문단의 가장 문제적 작가” “해학과 시적 표현 사이의 좁은 길을 걷고 있는 독특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조엘 에글로프는 장지를 찾지 못해 길을 헤매는 장의사를 그린 『장의사 강그리옹』과 일식을 둘러싼 한바탕 소동을 그린 『해를 본 사람들』등의 전작으로 국내에서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소개하는 에글로프의 네 번째 소설『도살장 사람들』은 프랑스 평론가들로부터 “첫 작품은 가능성은 보였지만 의혹이 남았고, 두 번째 작품은 가능성은 커졌지만 여전히 미심쩍었으며, 『도살장 사람들』에 이르러 그 의혹마저 말끔히 씻겨 나갔다”며 그의 작품세계가 무르익었다는 평가를 받게 한 소설이다. 악취 나는 현실을 그리되 더럽게 보이지 않고, 빙그레 웃게 만들지만 결코 조롱에 빠지지는 않는 균형감각을 멋지게 펼쳐 보이는 조엘 에글로프.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적 표현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보여주는 에글로프의 작품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