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일제침략기의 만주, 혼돈의 도시의 한 중국 소녀와 일본군 장교가 바둑판 위에서 벌이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 몰락해 가는 청조 집안의 규수인 주인공은 아직 봉건적 관습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찍 외국 유학을 다녀온 부모 밑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또한 자신과 대면한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척 짐짓 사랑의 게임을 리드하는 당돌한 주인공 소녀의 바둑은 거역 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 속에 처한 소녀가 한 나라의 역사를 읽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랑을 감지해가는 성장의 거울이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고감도의 이미지를 로마네스크하게 형상화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위선적이고 틀에 박힌'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한 반항적인 소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 지은이 샨사Shan Sa ‘파리의 태양'이란 타이틀을 달고 떠오른 샨사는 1972년 북경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이미 시를 쓰기 시작하여 9세에 첫 시집을 출간하면서 중국의 예술 신동으로 성장한 그녀는 1989년 ‘장래가 촉망되는 북경의 별'로 선정되었다. 천안문 사태로 온 세계가 떠들썩하던 1990년,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입성, 파리 가톨릭 인스티튜트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7년 만인 1997년 직접 프랑스어로 첫 소설 『천안문』을 쓴 샨사는 1999년에 두 번째 장편소설 『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을 발표하였다. 세 번째 소설인 『바둑 두는 여자』가 프랑스의 고등학생이 가장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한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을 수상하면서 2001년, 2002년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가져왔다. 샨사의 붓이 다 마르기 전에 발표된 『측천무후』는 프랑스 굴지의 두 출판사 그라쎄Grasset와 알뱅 미셸Albin Michel이 판권을 놓고 법정 소송까지 갔으며 이는 프랑스 출판계에 있어 전대미문의 ‘샨사 분쟁'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2003년 시즌 최대의 성공작이자 탐미적인 중국적 언어와 시적 표현이 돋보이는 『측천무후』로 샨사는 서스펜스한 최고의 여성 소설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 옮긴이 이상해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불어과 졸업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낭만적 영혼과 꿈』 『이슬람의 현자 나스레딘』 『바둑 두는 여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악마와 미스 프랭』 『지옥 만세』 『영혼의 산』 『11분』 『돌의 집회』 등이 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이 책은 중국과 일본, 관능과 이성의 두 멘털리티, 자신의 운명을 껴안고 자신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 운명의 바둑판 위에서 벌이는 비극적 사랑의 이중주. 2002년 현대문학북스에서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있는 『바둑 두는 여자』가 현대문학에서 재출간되었다. 2001년 프랑스에서 『바둑 두는 여자』가 출간되었을 때 현지 언론들은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한 형식에, 절제되고 섬세한 문체로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며 앞 다투어 샨사를 극찬했다. 또한 『바둑 두는 여자』가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선정한 가장 읽고 싶은 책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을 수상하면서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1972년생의 젊은 여성인 샨사는 중국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이며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입성했으며, 프랑스어로 소설을 쓴 지 3년 만에 문단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 서예, 그림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표출하는 샨사는 결벽에 가까우리만치 단어와 문체를 갈고 다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둑 두는 여자』는 ‘위선적이고 틀에 박힌'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한 반항적인 소녀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몰락해가는 청조 귀족집안의 규수인 주인공은 아직 봉건적 관습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찍이 외국 유학을 다녀온 부모 밑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성장했다. 대담성과 분방함을 지닌 소녀는 모순과 위선으로 점철된 어른들의 세계를 증오하며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지배하고자 한다. 이 소설에서 바둑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흐름 속에 처한 소녀가 한 나라의 역사를 읽고, 자아를 발견하며, 사랑을 감지해가는 성장의 거울이다. 자신과 대면한 남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척 짐짓 사랑의 게임을 리드하는 당돌한 소녀는 샨사 자신의 사춘기 경험에서 나온 것일까? 각 장마다 번갈아 바둑 두는 소녀와 그 적수에게 내레이션을 맡긴 샨사는 마치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듯 고통스럽고 우울한 문장으로 1930년대 불운의 중국 역사를 읊조린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장면들을 연상시키는 고감도의 이미지를 로마네스크하게 형상화하고 있는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소리 없이 자신의 가슴속에 들끓는 열정의 실체를 찾아 삶의 자그마한 메시지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20세기 초의 역사적 격변기, 일본군 점령 하에 있는 만주의 한 자그마한 도시, 막 성에 눈을 떠가는 한 중국 소녀와 일본 천황을 위해 장렬히 산화하기를 꿈꾸는 한 일본군 장교가 그들을 이어주는 운명의 언저리에서 비극적 사랑의 이중주를 펼친다. 그 슬프고도 안타까운 몸짓의 이중주는 쳰훵 광장의 차가운 바둑판 위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 봉건적 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녀와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청년은 바둑을 통해 서로의 영혼을 읽으며, 숨 막히는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국에는 승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미묘한 마음의 떨림과 그것을 제어하는 방어벽들로 세워진 바둑알들은 죽음으로 적을 포위해야 하는 길을 차단한 채 점점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성장의 아픔에 지친 소녀는 운명적인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청년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끓어오르는 사랑의 욕망을 창녀들을 통해 해소한다. 동양적인 관습과 서구적인 문화가 강력하게 충돌하던 혼돈의 도시 만주를 배경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바둑 두는 소녀. 아직 여물지 못한 감정의 폭풍우에 휘말려 순결을 버리고 끝없는 악몽의 심연 속으로 추락해가지만 한 수 한 수 그녀의 영혼 속으로 바둑을 두며 내려오는 일본 청년은 ‘죽음'의 방법으로 마침내 그들의 사랑을 건져올린다. ■ 해외 서평 중에서 시, 서예 그리고 그림으로도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이 중국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에게서는 만만찮은 야망과 대담성이 엿보인다. 그녀는 극단적이고 역설적인 상황들을 설정하기를 좋아하고, 그녀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많은 경우 현실 바로 저편, 꿈과 악몽 바로 이편을 유영해 다닌다. <르 몽드 Le Monde> 몇 페이지도 채 넘기지 않아 우리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는 두 고수의 승부에 열광하듯 <바둑 두는 여자>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절제되고 효율적이며 수학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면서도 몰아치는 감정의 폭풍들에 뒤흔들리기도 하는 이 소설은 그야말로 놀랍다. <르 스와르 Le Soir> 바둑판 주위에 한 나라의 역사, 자기 자신을 찾는 한 소녀의 이야기,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를 모아놓은 이 아름다운 소설을 통해 소설가는 시적인 문체와 내용의 격렬함이 훌륭한 대조를 이루는 독특한 글쓰기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르 마가진 리테레르 Le Magazine Litteraire> 지상의 모든 고통이 배어 있는 것만 같은 몬환적인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샨사의 소설은 가슴읗 뒤흔드는 진정성과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성을 현식적인 치밀함이 돋보인다. <리르 Lire> ■ 레코 레퓌블리켕L?Echo Republicain과의 인터뷰 중에서 바둑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바둑은 5천 년 전에 중국의 수학자들과 천문학자들이 발명해낸 게임입니다. 전략, 전쟁, 포위의 놀이죠. 바둑 두는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껴안고, 자신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 게임을 벌이는 것입니다. 왜 일본군 장교와 중국 소녀로 하여금 대결을 벌이게 했습니까? 일본과 중국을 대치시키는 이 갈등 속에서 바둑은 8년 간 지속된 뼈아픈 전쟁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또한 관능적인 첫사랑을 발견한 중국 소녀와 사랑의 감각이 마비된 일본군 장교와의 지평이 서로 다른 두 존재의 대결이기도 하지요. 소설 작업은 어떻게 하십니까? 저에겐 진주들만 남도록 끝없이 낱말들을 줄이려는 결벽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음악으로 그것들을 꿰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죠.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 사랑은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우리 각자의 가장 훌륭한 부분, 서로 만나기로 되어 있는 두 존재의 완전한 융합니다. 그러나 삶은 그 존재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또한 욕망은 사랑을 향해 있지만 존재들이 방향을 잃고 마는 길입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들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그래서 삶을 밝히는 시선처럼 반짝이는 섬광이 됩니다. 당신은 운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합니까? 운명을 받아들여만 합니다. 하지만 운명을 관찰하고 삶을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 자신의 의지, 무의식, 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게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삶은 지극히 상징적인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쳰훵 광장, 하얀 서리를 뒤집어쓴 채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다들 눈사람을 닮았다. 코와 입에서 연신 하얀 김이 뿜어져나온다. 모자의 차양 가두리에 맺힌 바늘 같은 고드름들이 땅을 향해 자라고 있다. 진줏빛 하늘 저편으로 진홍빛 해가 끊임없이 기울어만 간다. 해의 무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부터 이곳이 바둑꾼들의 약속장소가 되어버렸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화강암 탁자에 새겨진 바둑판들도 수천 번을 오간 수담手談에 닳아 이젠 얼굴들이, 생각들이, 기도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토시 속에 든 청동 보온기를 두 손으로 꼭 쥔 채 꽁꽁 언 발을 녹이기 위해 끊임없이 발을 굴러댄다. 내 상대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외지인이다. 전투가 치열해지면서 내 내부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른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돌들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갑자기 누군가가 성냥을 켠다. 내 상대의 왼손에서 초 한 자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거의 다 자리를 뜨고 없다. 이렇게 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딸 때문에 어머니가 노심초사하고 있으리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둠이 깔리자 바람이 인다. 사내가 장갑 낀 손바닥으로 불꽃을 가려 보호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한 모금만 들이켜도 목이 화끈거리는 배갈 한 병을 꺼낸다. 나는 그것을 상대의 코앞에 내민다.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병을 바라본다.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이라 도통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눈썹 위에서 시작된 긴 흉터가 꼭 감고 있는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가 찡긋 인상을 쓰고는 단숨에 술병을 비워버린다. 오늘밤은 달도 없다. 바람이 갓 태어난 아이처럼 앵앵거린다. 하늘 저 위에서도 신이 별들을 밀어젖히며 여신과 대결을 벌이고 있다. 사내는 돌을 세고 또 센다. 열여덟 집을 진 그가 한숨을 내쉬고는 초를 나에게로 내민다. 그가 추위에 굳어버린 거구를 일으키더니 가방을 주워서는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린다. 나는 돌을 집어 통에 넣는다. 손가락 사이에서 돌들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난다. 이제 광장엔 나밖에 없다, 내 병사들과 더불어. 가슴이 뿌듯하다. 오늘로 100승째를 올린 것이다.- 9~10p 오래 생각하지 않고 불쑥 나오는 그녀의 응수가 나를 놀라게 만든다. 지난 대국 때 보인 과민함을 깊이 후회한 나는 모든 외부의 영향에 대해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었었다. 나는 30분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야 응수한다. 3분 뒤, 다시 백돌이 놓인다. 이 갑작스러운 착수에 놀란 내가 고개를 든다. 그녀가 재빨리 눈길을 돌려 내 어깨 너머 다른 대국자들을 살피는 척한다. 내 심장박동이 점점 더 빨라진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집중하려고 애쓴다. 놀랍게도 내 눈에는 바둑판의 흑돌과 백돌이 어우러져 그녀의 얼굴을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흑돌을 놓자마자 그녀의 백돌이 바로 옆에 놓인다. 그녀가 그렇게 빨리 응수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나무랄 데가 없는 수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든다. 내 시선이 날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과 마주친다. 나는 온몸을 떤다. 나는 걷잡을 수 없는 동요를 감추기 위해 생각에 골몰한 척한다.- 250p 돌 하나의 위치는 다른 돌들의 움직임에 따라 변화한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돌들 사이의 관계는 속속 변모해 처음에 의도했던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법이 거의 없다. 바둑은 계산을 비웃고, 상상력을 조롱한다. 구름들의 연금술만큼이나 변화무쌍한 모양 하나 하나가 모두 최초의 의도에 대한 배신인 셈이다.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매순간 가장 유연하고, 가장 자유로운 동시에 가장 냉철하고, 가장 정확한 수를 재빨리 찾아내야만 한다. 바둑은 기만의 게임이다. 오직 하나의 진실, 바로 죽음을 위해 온갖 허상으로 적을 포위해야 한다.- 283p 세상 속에는 그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일까? 세상 밖, 숲속의 빈터, 성장의 아픔에 지친 소녀는 청년에게 잠든 자신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 청년은 악몽의 심연으로 끝없이 추락해가는 소녀의 손을 잡아준다. 최후의 순간, 그들은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인 양 이 몸짓을 되풀이한다. 소녀는 청년의 품에서 다시 한 번 잠들고, 청년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감겨오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잠든 소녀를 지켜본다……. 그렇게 서로의 이름조차 모르는(청년은 소녀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그녀가 속삭인 ‘밤의 노래'를 듣기나 했을까?) 그들의 사랑은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