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3부작)로 국내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2005년 신작 소설집.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956년 반체제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11년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작가의 남다른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이 책은 25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편들은 부조리극의 대가 외젠느 이오네스코나 사무엘 베케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낯설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난해하거나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속도감 있게 읽히고, 무리없이 이해가 된다. 이번 소설집에서 아고타 작품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현실에서는 발생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운 정황들을 글감으로삼고, 그 정황들이 마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진술하는 데서 오는 픽션적 리얼리즘의 획득에 있다. 그리고 그는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디테일한 묘사를 포기하고 드라이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혼합하여 진술하는 대담한 방식으로 예리한 의미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 지은이 아고타 크리스토프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8세 되던 해 자신의 역사 선생과 결혼했다. 1956년 반체제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갓난아기를 안고 조국을 탈출했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에 정착해 시계공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헝가리어로 시를 썼고, 망명 문인들의 동인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27세에 대학에 들어가 프랑스어를 배웠고 70년대 이후에는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였다. 대표작으로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전3권), 『어제』 등이 있다. ■ 지은이 용경식 서울대 불문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1986년 〈동서문학〉 제정 제1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전3권)』『어제』, 장 에슈노즈의 『나는 떠난다』, 미셸 우엘벡의 『투쟁 영역의 확장』,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등 30여 권이 있다.
■ 이 책은 현실의 부조리함을 비현실의 낯선 공간에 위치시켜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10여 년 만의 신작!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3부작)로 국내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2005년 신작 소설집 『아무튼』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56년 반체제운동을 하던 남편과 함께 스위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11년 만에 펴내는 이 소설집은 작가의 그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무튼』은 짧은 25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단편들은 부조리극의 대가 외젠느 이오네스코나 사무엘 베케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낯설다. 그렇다고 작품 자체가 난해하거나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속도감 있게 읽히고, 무리없이 이해가 된다. 이번 소설집에서 아고타 작품들이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현실에서는 발생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려운 정황들을 글감으로 삼고, 그 정황들이 마치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태연스럽게 진술하는 데서 오는 픽션적 리얼리즘의 획득에 있다. 그리고 그는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디테일한 묘사를 포기하고 드라이하게 현실과 비현실을 혼합하여 진술하는 대담한 방식으로 예리한 의미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작품들 전체를 관류하는 주제는 죽음, 존재감의 상실이다. 남편을 도끼로 살해한 부인이 의사를 불러 시체를 가져가라며 사건 경위를 설명하는 첫편부터 이 소설집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부인은 자신이 남편을 살해한 게 아니라 도둑이 들 것을 두려워한 남편이 침대맡에 두었던 도끼를 향해 잠을 자다 굴러떨어져 이마에 도끼날이 박히는 바람에 죽었다고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주 홀가분했어요,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거든요, 아주 오래전부터 짊어지고 있던…” 물론 부인은 구급차에 실려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서는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노동자는 “병원 침대의 청결함이 공포”스럽다고 느끼며 저녁마다 소리 없이 흐느낀다. 그의 인생은 “공장이 다 가져가” 버렸고, “사십 년 간의 노동은 치명적인 피로감”을 남긴 것이다. 죽음을 치명적인 피로감이란 단어로 대신하며, 산업사회를 대표하는 공장의 폐기물처럼 버려진 한 노동자의 죽음에 주목하는 아고타의 시선은 수천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선생님들」에서 화자인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선생님의 고통을 죽음으로 잠재워주고 자신의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 인간적인 행동이었다고 스스로 감동한다. 표제작 「아무튼」은 두 사람의 정신이상자의 대화로 이어지는 짤막한 작품. 둘의 대화는 서로 아무런 개연성도 연결성도 없고, 그저 공허히 각기 자기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별일 없습니다. 우리 강아지가 깨끗해졌고, 우리는 신용카드로 가구들을 샀습니다.”라며 끝맺는다. 타인에게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고 자기 세계에 함몰되어가기만 하는 현대인들의 관계맺음의 방식, 바로 이 두 정신이상자의 대화방법 이상도 아닐 것이다. 자전적 성격이 강한 「나의 아버지」는 맨 마지막 작품.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버지 유골을 “콘크리트에 뚫린 작은 구멍”에 넣기 위해 36시간이나 걸리는 “당신이 절대로 모를 나의 모국”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유골이 안치되는 곳은 아버지가 “결코 사랑한 적이 없고, 나와 손잡고 산책해본 적이 없는” 무서운 산업도시의 변두리. 신부도 없이 사회주의식으로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나는 다짐한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훔쳐다가 “아버지의 고향 땅, 즉 강가의 검은 흙 속에 묻어주리라”라고. 『아무튼』에서 보여주는 죽음, 사랑, 슬픔, 절망 등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그려지고, 그것들에 당연히 섞이게 마련인 ‘고통'은 삭제돼 있다. 때문에 이따금 잔혹스럽기도 낯설기도 하게 우리 눈을 서걱거리게 한다. 인간의 잔인함과 황폐함에 돋보기를 들여대고 우리 시선을 거기 두게 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 피안에 있는 인간의 조건들로 우리 스스로를 경각하게 만든다. 아고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약간의 과장을 보태 이렇게 읊조린다. “나는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주제도 나의 재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하지도 흥미롭지도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고독과 싸우고, 때로는 배고픔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내 재주에 걸맞는 어떤 주제를 찾아내게 해줄 영혼의 상태에 이르려면 바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 때문인지 그녀는 아주 적게 쓰는 듯하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독특하고 강한 향신료를 친 듯, 우리의 뇌를 그녀의 압축된 고통의 문양으로 각인시켜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