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처녀 장편소설이다. 우리에게는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밑에> 같은 작품들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지만 헤세를 문학 지망생에서 한 명의 어엿한 작가로 인정받게 만든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첫 작품은 바우어른펠트상을 헤세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헤세의 문학적 역량을 최초로 입증한 작품이고, 헤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신념과 세계관을 고찰하고 분석하는 데 토대가 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그 가치는 결코 이후의 작품들보다 덜하지 않다.
<페터 카멘친트>는 낭만주의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데 알프스 주변의 풍경과 그곳의 사람들에 대한 서정적인 필치가 특징적이다. 산골 소년이 도회지로 떠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통해 시인으로 성장하는 내면의 발전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헤세의 다른 여러 소설들과 함께 성장소설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낯선 세상과 부딪혀 그 세상과 화해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상과의 충돌 이후 고향의 자연으로 돌아와 내면화 혹은 개인화의 길을 걷는다. 이런 면에서도 이 작품은 사회적인 관계보다는 인간 내면의 영혼 쪽으로 포커스를 맞춘 이후 헤세 성장소설들의 초석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제 면에서 이 작품은 헤세의 다른 성장소설들과 큰 차이는 없지만 내용과 스타일 면에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면을 보인다. 양극성의 대립 과정과 그것이 통합되어 조화를 향하는 이중성, 혹은 양극성의 도식적 구도를 내포하고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페터 카멘친트>는 예술가 계열 소설인 <게르트루트>나 자전적 요소가 강한 <수레바퀴 밑에> 같은 작품들처럼 사실주의적인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한 자연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이 작품을 한 편의 '시적 지질학'이라고 평가받게 하기도 하는데 태양과 구름, 산과 바다, 나무와 풀잎 등 모든 살아 있는 자연 속의 존재들을 형상화하고 찬미하는 헤세의 언어에는 '진실성'과 '감정'과 '사상'이라는 그윽한 음성이 고상하게 퍼져 나온다.
한 산골 소년이 학문과 예술을 접하고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체험하면서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이루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 이야기는 '시인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다'고 한 질풍노도 시기 헤세의 또 하나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 헤르만 헤세Herman Hesse(1877~1962)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고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고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질풍노도의 청춘기가 투영되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레바퀴 밑에』『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늑대』등을 발표해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눈을 감았다.
■ 옮긴이
김화경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폰타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독일어문화권연구소 연구부장을 거쳐 지금은 가천대에서 글로벌교양학부 강의전담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쓴 책으로 『폰타네의 소설에 나타난 괴테의 흔적』(독문), 옮긴 책으로 『굿바이 티베트』가 있다.
추천사
이 소설은 만족과 충만을 발산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한 젊은이의 작품이자 고백인데, 만족과 포만감이라는 것은 청춘의 특질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헤르만 헤세
이 책은 호전적 애국주의를 배제한 순수 독일적인 정취와, 영혼의 매춘행위를 떨쳐낸 경건함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실로 모든 생명체에 대한 진실하고 위대한 사랑이 탁월하게 묘사되어 있다. 태양과 구름, 산과 바다, 나무와 풀잎 등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을 형상화하고 찬미하는 헤세의 언어 속에는 ‘진실성’과 ‘감정’과 ‘사상’이라는 그윽한 음성뿐만 아니라 익숙하고 친숙한 음향까지도 한층 더 새롭고 고상하게 퍼져 나온다. - 발터 라테나우
우리는 오늘날 이 작품 속에서 단순히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시대성에 토대를 두면서도 초시대적 파급력을 갖는 만큼 산문의 형태를 빌은 거대한 서사시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그 안에는 주옥같은 글들이 섬광처럼 빛을 발하고 있으며 그 세련미 또한 더할 나위 없이 눈부시다. 산악의 성층을 비롯해 구름과 ‘푄’에 대한 고전적 묘사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한편의 ‘시적 지질학’이 된다. - 오시프 칼렌터
본문에서
우리 마을의 남자들과 여자들도 그들을 닮아서 거칠고 깊게 주름이 패었고 말이 거의 없었는데, 훌륭한 사람들일수록 말수가 적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나무나 돌처럼 바라보며 그들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그들을 말없는 소나무보다 덜 존경하지도 더 사랑하지도 않는 법을 배웠다.
정의로운 자들과 죄를 지은 자들 사이에 서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즐기곤 했던 많은 사람들 속에는 아버지도 끼어 있었다. 어떤 어리석은 짓이 벌어질 때마다 아버지는 몹시 동요했다. 그리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 사람에게 공감하며 감탄하거나 자신은 그런 결함이 없다는 두둑한 자부심을 내비쳤는데, 그 두 감정 사이를 우스꽝스러울 만큼 오락가락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조금씩 시를 쓰기 시작했다. 몇 권의 노트가 차츰차츰 시와 초안과 짧은 이야기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것들은 지금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아마 거의 가치도 없었겠지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비밀스러운 기쁨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시도 후에 아주 서서히 비평과 자기성찰이 뒤따랐다.
그 소녀를 위해서 한 일이 많았다. 마침 짧은 방학을 맞아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매일 온갖 힘든 일을 했는데, 모두 마음속에서 뢰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다. 험난한 산봉우리를 가장 가파른 쪽에서 올랐고, 호수에서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조각배를 타고 빠듯한 시간 안에 지치도록 노를 저어 가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배를 타고 나서 기운이 다 빠지고 허기진 채로 돌아왔을 때 저녁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것이 뢰지 기르타너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먼 산등성이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가 그 소녀의 이름을 부르며 찬미했다.
“그 사랑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불행하게 하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아,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사랑은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그것을 견디면서도 얼마나 굳건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술은 지금까지 내가 얘기했던 그 무엇보다도 나의 삶과 존재를 위해서 훨씬 더 중요했다. 힘세고 감미로운 술의 신은 나에게 충실한 친구였고 오늘날까지도 그러하다. 누가 그만큼 강력한가? 누가 그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열정적이고 명랑하면서도 우울할 수 있을까? 그는 영웅이자 마술사이다. 유혹하는 자이자 에로스의 형제이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가련한 인간의 마음을 아름답고 놀라운 시로 채운다. 그는 은둔자이자 농부인 나를 왕으로, 시인으로, 현자로 만들었다. 텅 비어버린 삶의 배에 그는 새로운 운명을 실어 넣고 난파당한 자를 커다란 삶의 급류 속으로 몰아넣는다.
문학이나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게 끔찍했다. 그 분야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거의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무척 거짓말을 많이 하고 어쨌든 이루 말할 수 없이 잡담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같이 거짓말을 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고 쓸모없고 자질구레한 수다가 지루하고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어떤 부인이 자기 아이들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를 듣거나, 여행이나 그날그날 경험한 소소한 일들이나 다른 현실적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때때로 친밀함을 느끼고 거의 만족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저녁이면 또 술집을 찾았고 갈증으로 타는 목과 냄새나는 지루함을 벨틀린 포도주로 씻어 버렸다.
남쪽 나라에서 기분 좋고 따뜻한 사람들과 한동안 섞여 생활하다 보면 집에서도 계속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 또한 그랬고, 당시에는 특히 더했다. 바젤로 돌아온 뒤 그곳의 낡고 답답한 생활이 전혀 새로워지지도 달라지지도 않았음을 깨닫자, 나는 명랑한 기분의 정상으로부터 한 계단 한 계단씩 기가 꺾이면서 불쾌하게 내려왔다. 그러나 내가 얻은 것 가운데 어떤 것은 계속해서 싹이 터서, 내 작은 배는 맑은 물에서든 흐린 물에서든 적어도 다채로운 색깔의 작은 깃발만은 언제나 대담하고 정답게 휘날리며 흘러갔다.
이제 나의 인생행로와 삶을 위한 노력들을 되돌아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하고 농부는 시골에 살아야 하며, 아무리 재주를 부려 봤자 니미콘 마을의 카멘친트는 도시인이나 세계인이 될 수 없다는 해묵은 경험을 나 역시 체험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나는 이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고, 세상의 행복을 찾으려고 서툴게 추구하다가 본의 아니게 다시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옛 두메산골로 되돌아와서 기쁘다. 나는 산골에 속한 사람이고, 거기에서는 내 미덕과 악덕, 특히 악덕이 그저 평범하고 흔한 것이다. 저 바깥세상에서 나는 고향을 잊었고 나 자신을 거의 희귀하고 기묘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이 내 안에 유령처럼 따라다니는 정신, 바깥세상의 관습에 순응할 수 없는 니미콘 사람들의 정신일 뿐이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