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이 1919년 발표되었을 때 그 파장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비견될 만큼 선풍적이었다. 1차 대전의 패배로 피폐해진 독일 젊은이들은 에밀 싱클레어의 이야기에서 ‘그들 또래의 선지자가 등장해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냈다고 생각해 그 충격에 기꺼이 휩쓸렸고’ 평단에서는 토마스 만, 알프레트 되블린 같은 대가들의 극찬이 이어졌다.
성장기에 접어든 한 소년이 자신을 둘러싼 안락한 세계를 깨고 세상이라는 새로운 무대로 나서기 위해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미안』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의 성장 과정 속에서 겪는 성장통을 예리하고 섬세한 필치로 보여줌으로써 성인으로 입문하기 전에 누구나 한번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데미안』은 헤세의 문학세계에서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밑에』 같은 초기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소위 ‘내면화의 시기’를 여는 첫 작품이다. 헤세가 그 전에 발표했던 작품들과는 다른 태도로 『데미안』의 창작에 임했다는 것은 그가 소설의 주인공인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책을 냈다는 데서부터 엿볼 수 있다. 나중에 이 책이 신인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작으로 결정되자 헤세는 자신이 썼다는 것을 그제야 밝히고 상의 수상을 거부했다. 초기작들에서 일변한 그의 스타일에 세간은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데미안』은 『싯다르타』와 『황야의 늑대』 같은 내면화의 시기의 대표작들과 더불어 헤세의 작품들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고, ‘헤세 르네상스’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헤세가 초기의 낭만과 서정에서 나아가 좀 더 복합적이고 비의적이고 의미심장한 내면화의 시기로 접어든 큰 계기는 카를 융의 정신분석학이라 할 수 있다. 작품 속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밝음과 어둠, 선과 악’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종교의 탄생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대목이나 남성성과 여성성, 감성과 이성, 육체와 영혼 같은 양극적인 요소가 상호 보완을 통해 궁극적인 조화로 나아가게 된다는 생각에는 헤세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으면서 접한 융 사상의 영향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데미안』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한 번은 읽게 되는 책이지만 몇 번을 읽게 되어도 독자의 상황에 따라 읽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텍스트가 내포하는 의미의 층이 다중적이고 다채롭기 때문이다. 한 어린 영혼의 고통과 방황,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가는 투쟁이라는 단순하지만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화두와 잠언들은 『데미안』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윽한 고전의 향기를 뿜어내게 하는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Herman Hesse(1877~1962)
20세기 유럽의 작가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고 소개된 독일 출생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화가.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명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시인이 되고자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다. 15세 때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했고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일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1904년 첫 장편소설 『페터 카멘친트』를 발표했다. 이후 자신의 질풍노도의 청춘기가 투영되고 삶과 자연에 대한 성찰이 담긴 『수레바퀴 밑에』『데미안』『싯다르타』『황야의 늑대』등을 발표해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1943년 13년에 걸쳐 집필한 대작 『유리알 유희』를 발표했으며 이 작품은 3년 뒤에 헤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국지적이었던 헤세의 명성은 6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인 반문화 운동의 기운 속에서 삶의 대안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헤세 붐이 일어났다. 이후『데미안』과 『수레바퀴 밑에』를 비롯해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은 성장통을 겪는 모든 청춘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말년에는 집필 활동을 중단하고 수채화 제작에 오랫동안 몰두했다. 1962년 8월 제2의 고향 몬타뇰라에서 눈을 감았다.
홍성광
서울대 독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마의 산』, 카프카의 『변신』, 『소송』, 『성』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 등이 있다.
추천사
1차 세계 대전 직후에 베일에 싸인 싱클레어의『데미안』이 불러일으켰던 열광적인 반향은 잊을 수 없다. 이 소설은 섬뜩하리만큼 정확하게 시대의 신경을 건드린 작품이다.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들 또래의 선지자가 등장해서 삶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드러냈다고 생각했고 그 고마운 충격에 기꺼이 휩쓸렸다. - 토마스 만
헤세는 비할 데 없는 확실성을 가지고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 그는 근원적 비도덕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나는 그 속에서 ‘실재’를 보고 느끼게 되며, 초도덕적인 영혼의 움직임을 체험하게 된다. 아아! 하지만 그 실재를 직시하고 그 안으로 진입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데미안』은 언어와 몸짓에 있어서 모든 지적인 것을 거부한다. 또한 이 작품 안에서 펼쳐지는 ‘감각’의 세계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 알프레트 되블린
다른 어떤 독일소설과는 달리 이 책은 나를 나치 시대의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았다. 그 즉시 나는 에밀 싱클레어의 발전사를 나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이 소설을 통해 나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나의 고민거리가 해결되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세상의 권력자들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민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다. - 호르스트 크뤼거
본문에서
“우리는 아무도 겁낼 필요가 없어. 사람들이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이 있다고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네가 나쁜 짓을 한 적이 있고, 다른 사람이 그걸 알고 있다면, 그는 너를 지배할 힘을 갖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제 내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내 유년 시절의 종말을 알리는 예감과 꿈의 영상들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야기 할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어두운 세계’, 그 ‘다른 세계’가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때 프란츠 크로머였던 것이 이제는 나 자신의 일부가 되었다.
“세계의 이 온전한 부분, 이 절반 전체가 은폐되고 묵살되어 버렸어. 사람들은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찬미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성생활은 그냥 묵살하고, 가능하면 악마의 소행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 나는 이런 신인 여호화를 숭배하는 것에는 조금도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내 생각에 우리는 인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공식적인 이 절반의 세계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숭배하고 신성시해야 해!”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그러나 아브락사스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의 이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열과 전율, 남성과 여성이 뒤섞인 것, 가장 신성한 것과 가장 추한 것이 서로 뒤얽힌 상태,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진무구함에 의해 경련을 일으키는 깊은 죄악, 이것이 나의 사랑의 꿈속에 나타난 영상이었고, 그리고 아브락사스이기도 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어떤 엄청나게 추악한 짓을 저지르고 싶다면, 그렇게 당신의 내면에서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은 바로 아브락사스라고 잠시 생각해 봐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미워하는 거예요. 우리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에 우리는 흥분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때 갑자기 나의 내면에서 하나의 깨달음이 맹렬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즉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은 있지만 누구에게도 스스로 선택하고 정의하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직분은 없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신을 원하는 것은 잘못이었고, 이 세상에 무언가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완전한 잘못이었다! 깨달은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찾고, 내면을 굳게 다지며, 어디로 가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가는 것 이외에는 어떤 의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의 정신과 이 시대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디서나 동맹과 집단의 형성이 유행하고 잇지만, 자유와 사랑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대학생 동아리와 합창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체는 강제적인 결속이며, 불안과 공포, 당황에서 비롯된 공동체인데, 그 내부가 썩고 낡아서 붕괴 직전이라고 했다.
“전 그 당시 때때로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인생길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힘든 것인가요?”
부인은 내 머리를 손으로 바람처럼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태어난다는 것은 늘 힘든 일이지요. 알다시피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애쓰지요. 기억을 돌이켜 한번 물어보세요. ‘대체 그 길이 그렇게 힘들었던가? 단지 힘들기만 했던가? 또한 그 길이 아름답지는 않았던가? 혹시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알고 있었던가?”
“나는 구세계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 처음에는 아주 미약학 희미한 예감이었지만, 점점 분명해지고 강렬해졌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나 자신과도 관련된 크고 무서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뿐이야. 싱클레어, 우리 우리가 가끔 이야기했던 것을 체험하게 될 거야! 세계는 스스로를 쇄신하려 하고 있어. 죽음의 냄새가 나고 있어. 새로운 것이 오려면 죽음이 따르기 마련이지.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끔찍한 일이야.”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싸우고 있었다. 그 알은 세계였고, 그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