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샨사Shan Sa ‘파리의 태양'이란 프랑스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주목받는 신예로 떠오른 샨사는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8세 때 시를 쓰기 시작하여 9세에 첫 시집을 출간, 중국의 예술 신동으로 성장한 그녀는 1989년 ‘장래가 촉망되는 베이징의 별'로 선정되었다. 천안문 사태로 격변의 시기를 맞던 1990년, 프랑스 정부의 장학금을 받고 파리에 입성, 파리 가톨릭 인스티튜트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프랑스어를 공부한 지 7년 만인 1997년 프랑스어로 첫 소설 『천안문』을 써서 발표하였고, 1999년 두 번째 장편소설 『버드나무의 네 가지 삶』을 발표하였다. 세 번째 발표작 『바둑 두는 여자』는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읽고 싶은 책으로 선정하는 <공쿠르 데 리쎄앙 상>을 수상하였고, 2001년과 2002년 프랑스 독서계에 ‘샨사 열풍'을 가져왔다. 프랑스 굴지의 두 출판사의 법정 분쟁으로 발표 전부터 화제를 뿌렸던 『여황 측천무후』는 탐미적인 시적 표현이 돋보인다는 평과 함께 2003년 시즌 최대의 성공작으로 기록되었고, 이 작품은 곧 미국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다. 2005년 다섯 번째 발표작 『음모자』는 세계 정가의 현주소를 보여주며 샨사 소설 세계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샨사는 현재 아사히신문에 문화 칼럼을 연재하는 등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벌이며 ‘차이나 파워'의 선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 옮긴이 이상해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불어과 졸업 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릴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 『낭만적 영혼과 꿈』『이슬람의 현자 나스레딘』『바둑 두는 여자』『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악마와 미스 프랭』『지옥 만세』『영혼의 산』『11분』『돌의 집회』『여황 측천무후』『아담, 바이러스의 자서전』『음모자』『황산』 등이 있으며, 『여황 측천무후』로 제2회 <한국출판문화대상 번역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 이 책은… 『여황 측천무후』,『바둑 두는 여자』로 세계적인 작가로 각광받은 샨사의 신작 장편소설 『알렉산더의 연인』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샨사는 중국 여황제의 일대기를 다루었던 『여황 측천무후』에 이어 이번에는 세계사에 있어 최고의 정복자이자 서양 영웅인 알렉산더와 전설적인 아마존 여전사의 사랑을 소설화하였다. 『알렉산더의 연인』은 지금까지의 샨사 문학의 특징을 보여줌과 동시에 원숙함을 보여준다. 그녀의 한층 정교해진 시적인 문체는 역사적 신화적 내러티브를 이끌어가는 상상력과 어우러져 작품에 흥미와 개성을 더한다. “알렉산더가 나를 택했기에 이 작품을 썼다”는 샨사의 말처럼, 샨사는 알렉산더와 한 몸처럼 교감하며 알렉산더를 작품의 현실 속으로 불러들여 역동적인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작품은 알렉산더의 사랑에 대한 대서사시이다. 알렉산더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알레스트리아는 알렉산더가 동방 원정 중에 만나 결혼했다는 록산이 모티프가 되고 있지만 샨사가 창조한 인물이다. 알레스트리아는 얼음신의 가호를 받는 시베리아 아마존 부족의 여왕으로, 부와 권력을 경멸하는 엄격한 금남의 부족의 여왕이다. 그녀는 야성적인 동시에 태양을 품을 수 있는 순수한 여전사이다. 그녀는 알렉산더와 결투를 벌이다 자신의 운명이 그에게 향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승리가 사랑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다. 알렉산더는 그녀를 통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폭력적인 욕망과 정복욕, 그리고 삶의 회의로부터 벗어난다. 알렉산더와 알레스트리아는 ‘동양/서양, 남성/여성, 불/얼음, 삶/죽음…' 등 대립하는 것들의 이미지이며, 그들은 하나의 합일점을 이루는 사랑의 정점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영혼의 자유를,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며, 우리에게 감동적인 결말을 선사한다. ■ 작품 줄거리 알렉산더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불타버린 날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필립포스는 자신의 권력을 채우기 위해 그리스 정복에 나선 야심가이자 폭군이다. 반대로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인자하고 여리며 우아한 여인이다. 그런 어머니 품에서 자라던 알렉산더는 어느 날 아버지의 동성애 장면을 목격한 뒤,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한다. 필립포스는 알렉산더가 여섯 살이 되자 왕립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만든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어리고 약했지만 어머니의 미소를 흉내내며 사내아이들을 매혹시킨다. 그리고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 지혜를 배우고, 헤파에스티온을 비롯한 친구들과의 우정을 쌓으며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약관의 나이가 되자 그는 ‘그리스인들의 왕'이 되겠다는 욕망을 실천한다. 올림피아스에 의해 필립포스가 암살당했다는 기록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알렉산더가 충성을 맹세한 친구들을 이끌고 필립포스를 살해하고 반란에 성공한다. 왕위에 오른 그는 그리스 모든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고 펠라로 돌아온다. 펠라로 돌아온 알렉산더는 내적으론 아버지를 살해한 데 따른 오이디푸스적인 망령에 시달리고, 표면적으론 평온한 나날의 지속에 염증을 느낀다. 그의 그런 “번민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미지의 땅”이 필요했고, 페르시아 원정은 최상의 선택이 된다. 그는 오래전부터 원정을 준비해온 군사들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진군한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십만 대군으로 그를 대적하지만 아홉 차례의 전투에서 번번이 패하고 만다. 결국 페르시아를 수중에 넣었지만 알렉산더의 “번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페르시아의 거상 와바레스는 동방 원정을 후원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알렉산더는 그 제안을 수락한다. 알렉산더는 동방을 향해 지나는 시간만큼 어려움 없이 국경을 넓혀갔지만, 병사들은 팔 년간의 대장정 끝에 향수병에 시달리며 전쟁에 극도의 염증을 느낀다. 휘하의 장수들마저 원정의 중단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사기가 떨어진 큰 규모의 군대를 초원에 남겨두고 소규모 분견대를 이끌고 유목전사처럼 질주한다. 그리고 어느 날 예기치 않았던 기습을 받으며 결투를 치르게 된다. 자신의 칼을 받아내는 야만족 우두머리 전사에게 감탄하며, 그를 쫓아 오직 둘만의 결투를 몇 주야 벌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가 남성과 여성이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단숨에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그들을 태워버릴 태양을 향해, 운명을 향해 곧장 질주한다.”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는 아마존들에게 있어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항복이자 “굴욕”을 뜻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그것을 말없이 선택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함께 살아왔던 부족의 존재방식 전부를 던져버리고, 무의미하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알렉산드르제국의 왕비가 되어 알렉산더의 원정에 힘을 불어넣어준다. 알렉산더는 다시 “전투의 기쁨”을 찾고 인도 원정에 나선다. 하지만 인도로 가는 길은 극한의 자연 조건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을 맞는다. 더구나 인도의 왕 포로스는 이제까지 맞섰던 패왕들과 달리 전술에 능한 지혜로운 왕이다. 그와 맞닥뜨리기도 전에 알렉산더의 군대는 열대우림과 싸워야 했고 지쳐갔다. 그러던 중 알레스트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날아들고, 알렉산더는 자신의 아이가 “미래의 모든 것”이라며 기뻐한다. 하지만 불길하게도 알레스트리아는 점점 야위어가고, 끝내는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알렉산더는 아이대신 알레스트리아를 살려내고, 알레스트리아를 동반한 채 원정에 또다시 오른다. 포로스와의 마지막 결전은 알렉산더가 우세한 듯 시작됐지만, 그것은 포로스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도망치는 포로스를 서둘러 쫓던 알렉산더는 이마에 화살을 맞고 사로잡힌다. 포로스는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의 알렉산더를 평화협정 조건으로 돌려준다. 마케도니아 진영으로 실려온 알렉산더는 암흑을 헤매다 알레스트리아의 부름을 듣고 의식이 돌아온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룬 위업에 “흥미를 잃은” 알렉산더는 헤파에스티온에게 제국을 맡기고 알레스트리아와 함께 초원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두 연인은 “태양을 향해” 새로운 “탄생”을 향해 날아오른다. ■ 본문 중에서 나는 필립포스의 아들이 아니다. 나는 신의 아들이다. 아폴로는 나를 불멸의 전사로 만들기 위해 그의 화덕에서 나를 단련시켰다. 날개가 솟았고, 불새는 이제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은 저 높은 곳을 향해, 위험, 도전, 무한이 있는 그곳을 향해 곧바로 날아오를 것이다. ―본문 30p 대초원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를 아마존이라 불렀다. 아마존이란 ‘말을 사랑하는 여자들의 부족'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가장 빠르고 가장 강인한 여자들을 길러내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른 유목민들처럼 우리도 무성한 풀과 맑은 샘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우리는 강하고 외로운 여자들이었다. 우리는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지 않았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신에 대해 아는 사람 역시 없었다. 아마존들은 그들 기원의 비밀을 철저하게 지켰다. ―본문47p 알레스트리아는 길을 막아선 강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그는 나에게서 달아날 수 없었다. 신과 혼령들의 뜻이 그러했다. 나는 다가가 그를 감싸 안았다. 우리는 무기를 던지고 땅으로 미끄러졌다. 우리는 입술과 입술, 가슴과 가슴을 겹친 채 풀숲을 뒹굴었다. 우리의 다리가 휘감겼다. 그런데 알레스트리아는 여자였다! 싸우는 법을 아는 여자! 알렉산더를 납치한 여자! 나를 피해 달아났고, 신의 뜻에 따라 내 곁으로 되돌아온 여자! 아무 이유 없이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곧 내 몸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내 몸이 하늘에서 추락하며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았던 것이다. 내 손, 내 팔, 내 허리, 내 배, 내 무릎, 내 발가락 끝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기 위해 그것들을 기다렸던 나머지 부분과 만났다. 그것들이 서로 휘감기고 엮여져 나무가 되었다. 대초원 곳곳으로 퍼지고, 강 속으로 뛰어들고,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뿌리를 가진 나무가 되었다. ―본문127p “우리는 아직 서로를 몰라. 하지만 우린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어.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너 없이 보낸 세월은 잃어버린 시간이었어. 유혹 따윈 필요 없어. 난 유혹을 싫어해. 맹세도 필요 없어. 난 지켜지지 않는 맹세를 혐오해. 의식도 필요 없어. 난 이미 너무나 많은 의식을 치렀어. 말도 필요 없어. 난 내가 내뱉은 말들을 증오해. 공식적인 건 아무 것도 필요치 않아. 여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우릴 쳐다보지 않아. 난 나를 너에게 바치겠어. 넌 내 거야. 알레스트리아, 내 왕국은 네 거야. 그게 내 사랑의 담보물이야.” ―본문157p 포로스가 알렉산더에게 덫을 놓았던 것이다! 천하무적 알렉산더가 경쟁자를 끝장내려고, 승리를 차지하려고 서두르다 궁수들의 과녁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몸으로 왕을 에워쌌다. 나는 화살을 쳐내기 위해 단검을 휘둘렀다. 허사였다. 화살들이 날아와 내 허벅지에 꽂혔고, 내 다리를 꿰뚫었다. 묵직한 비명에 나는 온몸을 떨며 돌아보았다. 벌써 여러 대의 화살을 맞은 알렉산더가 이마 정중앙에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바닥을 기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이마를 뒤덮은 피가 코를 따라 흘러내려 창백한 뺨을 적시고 있었다. 그 피가 내 눈을 뚫고 들어가 내 머리를 후려쳤다. ―본문271p 시베리아 산 반대쪽에서 온 전사, 나, 알렉산더는 날 어루만지는 내 여왕의 손길을 느끼지 못했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줄 수도 없었다. 나는 그녀의 몸을 마셨고, 그녀의 영혼을 휘감았으며, 그녀의 눈 속에서, 웃음 속에서, 나를 곁에 둔 그녀의 행복 속에서 살았다. 내가 두통에 시달리면, 그녀는 내 위에 누웠다. 그녀의 신선한 피부가 고통의 화염을 진정시켜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 말을 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죽음과 싸우는 내 심장으로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그녀에게 전쟁, 왕국들, 끝없이 이어지는 길들을 선물했고, 그녀는 나에게 고래, 흰 두루미, 생명의 피와 재를 내뿜는 화산을 선물했다. ―본문293p 바람을 타고 초원의 파도를 가르며 질주하는 여전사 알레스트리아, 작고 아담한 몸집, 틀어 묶은 흑발, 도도함이 흐르는 이마, 까만 눈동자, 아무리 봐도 그녀다. 묘하게도 소설 안팎의 얼굴이 자꾸 겹친다. 『천안문』과 『음모자들』의 아야메이, 『바둑 두는 여자』의 야가, 『여황 측천무후』의 조의 얼굴까지. 샨사는 마치 영매처럼 소설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역사적 인물(이번에는 알렉산더 대왕)과 교감하고 그 역사적 현장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특유의 시정으로 남녀 주인공을 얽매는 모든 질곡, 소재로 삼은 역사, 나아가 소설의 서사까지도 서서히 휘발시킨다. 마침내 세상의 소란이 멈추고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된 사랑, ‘영원의 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자의 수수께끼 같은 미소'가 떠오를 때까지. 역사와 신화,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아마존의 전설을 소재로 한 샨사의 신작『알렉산더의 연인』은 유라시아 대륙을 무대로, 동양/서양, 남성/여성, 불/얼음, 해/달, 선/악, 삶/죽음, 서사/서정, 대립하는 모든 것의 경계를 관통하는 꿈, 영혼과 사랑, 힘의 비밀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