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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연필 LES CRAYONS DE COULEUR

  • 저자 장가브리엘 코스 지음
  • 역자 최정수
  • ISBN 978-89-7275-967-6
  • 출간일 2019년 02월 21일
  • 사양 356쪽 | 145*207
  • 정가 13,500원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잿빛이 되어버린 세계
대혼란에 빠진 인류를 구원할 영웅은… … 색연필 한 자루?
?
앞을 보지 못하는 색채 전문가 샤를로트와
실업자로 전락한 전직 색연필 공장 직원 아르튀르의
‘색’을 되찾기 위한 대장정
?

그는 연회색 정장을 입어본 뒤, 재킷 끝자락이 엉덩이 어디까지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틀었다. 바지는 재단이 잘된 편이었다. 그는 숙고해보고, 망설이고, 여러 번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결국 그 옷을 사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옷을 입으니 얼굴이 좀 칙칙해 보였다. 남자는 자라 매장에서 나와 검은 포석 위를 걷고, 몇몇 상점의 진열창 앞을 지나갔다. 하얀 마네킹들이 전부 진회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패셔니스타 몇 명과 마주쳤고, 금속성의 회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내부를 검은 가죽으로 감싼 자신의 검은 자동차로 걸어갔다. 그리고 하얀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서, 가공하지 않은 콘크리트 벽으로 된 주차장을 나서 나선형 경사로로 접어들었다. 라디오를 켜니 기자의 몹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기자는 색이 사라진 이 사건이 세상에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아직은 일일이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여전히 잘 이해하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렸고, 하늘과 똑같이 회색인 두 건물 사이의 도로로 진입했다. 신호등이 강렬한 회색 불빛을 뿜어냈고, 그는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통과했다. 그리고 왼쪽에서 튀어나온 다른 자동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끈적끈적하고 거무스름한 액체가 분출해 자신의 하얀 셔츠 소맷부리를 더럽히는 장면이었다. (61~62쪽)

 

 

색이 사라지고 여섯 달이 흘렀다. 성인들조차 어둠을 무서워하게 된 여섯 달이었다. 놀라움이 두려움으로 변했고, 이어서 공포로 변했다.
색이 사라지고 정확히 사흘 뒤, 페르피냥 근처의 부가라치라는 작은 마을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캠핑카와 밴들이 사방에서 물결을 이루어 끊임없이 그 마을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주민 수가 2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피레네산맥 발치에 자리한 그 고요한 마을은 수만 명의 캠핑객에게 완전히 점령되어버렸다. 공포에 사로잡힌 군중은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드를 넘거나 들판을 건너가 마을이 굽어보이는 산봉우리 측면에 텐트를 치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이어서 100명쯤 되는 기자들이 금세 그들에게 합류했다. 전 세계의 구루들이 ‘예측을 수정’했다. 세상의 종말을 맞아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해줄 외계 우주선, 은하계의 노아의 방주가 이 마을로 내려올 거라고 했다. 2012년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했던 마야 문명의 예언은 몇 년을 잘못 계산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눈물 흘리고, 소리 내어 울고, 변함없이 잿빛인 하늘을 보며 탄원했다. ‘죄인’ 한 명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그러다 균형을 잃고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해 몸이 으스러졌다. 그 장면이 흑백으로 전 세계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다. (89~90쪽)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겁니까?”
“아마도 우리 인간들에게 색이 별 쓸모가 없다는 걸 자연이 깨달았기 때문일 거예요. 선사시대의 인간들은 멀리서도 포식자를 감지하기 위해 혹은 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잘 익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색을 필요로 했죠.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현 시점에서 우리의 미래를 예측한다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색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씀인가요?”
“유명한 SF 영화들을 생각해보세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매트릭스〉, 〈매드맥스〉, 〈스타워즈〉 혹은 〈맨 인 블랙〉을 거쳐 〈가타카〉에 이르기까지, 그 속에 나오는 인간들은 색이 거의 없는 옷을 입고 무색의 환경에서 살아요.”
“하지만 얼마 전까지 우리가 살던 세상은 색이 무척 다채로웠잖습니까!”
“사실 다채로움의 정도가 점점 덜해지고 있었죠. 최근에 유행하던 실내장식을 생각해보세요. 오래된 집을 구입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벽지를 뜯어내고 벽을 흰색으로 칠하는 거예요. 우리 조부모님 시절에는 실내장식에 훨씬 더 다양한 색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각각의 방들을 그 색에 따라 파란 방, 빨간 방, 노란 방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하얀 방, 하얀 방, 하얀 방뿐이에요.” (115~116쪽)

 

 

분홍색이 지닌 여성적 상징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 색을 좋아했던 것에 기원을 둔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녀가 좋아한 색은 분홍색이었어요. 분홍색 침대, 분홍색 리본, 분홍색의 호화로운 드레스들을 사용했고, 심지어 살아 있는 양들의 털을 분홍색으로 염색해서 프티 트리아농에서 그 양들과 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 ‘오스트리아 여자’는 분별없는 사랑 놀음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에, 루이 16세의 궁정 남자들은 왕비와 ‘지나치게 친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두려워 분홍색 옷을 입지 못했답니다. 반면 파리 여자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취향은 따라야 할 절대적 모범이었고, 그래서 많은 파리 여자들이 분홍색 옷을 따라 입었지요. (193쪽)

 

 

루이즈는 아무 말 없이 회색 색연필 하나를 집어 하얀 종이 아래쪽에 수직선 몇 개를 그었다. 회색 수직선이었다. 이윽고 루이즈는 종이 한가운데에 타원을 하나 그리고 색을 칠했다. 역시 회색이었다. 아르튀르와 뤼시앵은 눈으로 질문을 교환했다. 루이즈가 색연필을 쥔 손에 힘을 주어 타원형 앞부분에 천천히 점 두 개를 찍었다. 생쥐의 눈이었다.
“초록색 생쥐가 잡아먹히지 않게 풀 속에 숨겨놨어요.”
몇 초 후, 회색 생쥐는 마치 카멜레온 같아졌다. 색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조금 변했다. 잠시 후에는 회녹색이 도는 것을 식별할 수 있었고, 그 색이 점점 뚜렷해졌다. 생쥐의 색은 담황색으로, 그다음에는 황록색으로, 카키색으로, 올리브색으로, 아몬드색으로, 파색으로, 아보카도색으로, 보리수색으로, 압생트색으로 천천히 변해갔다. (259~5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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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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