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_ 장폴 뒤부아 Jean-Paul Dubois 1950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살고 있다. 『케네디와 나』로 프랑스 <텔레비전상>을, 『프랑스적인 삶』으로 100년 전통의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현재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기자이자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열아홉 권의 소설을 비롯해 다수의 에세이와 여행기를 썼다. 주요 저서로는 『프랑스적인 삶』『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케네디와 나』『남자 대 남자』 등이 있다.
■ 옮긴이 _ 함유선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불문과에 출강했으며, 현재 번역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프랑스적인 삶』『악의 꽃』『나쁜 혈통』『붉은 말』『절망은 날개를 달고 있다』『편안한 죽음』『지중해의 영감』『시간의 옷』『불쏘시개』『게으름의 즐거움』『미남왕 필립』 등이 있다.
■ 이 책은… 장폴 뒤부아가 일러주는 고단한 인생과의 달콤 씁쓸한 화해법 프랑스 <텔레비전상> <페미나상> 수상 작가이자,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족족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장폴 뒤부아는 이제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프랑스의 국민 작가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안주하는 일 없이, 많게는 하루 12시간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치며 창작 활동에 전념하는 장폴 뒤부아는 자신의 열아홉 번째 작품 『이성적인 화해』에 대해 “전혀 자신과 맞지 않는 세계와 이성적으로 화해하는 걸 배워야 하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프랑스적인 삶』에서 보여준 재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삐걱거리는 삶과 이성적으로 화해해야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50대의 스크립트 닥터 폴 스테른은 큰아버지의 죽음으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평생 비웃던 형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버지가 사제같이 살았던 그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큰아버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는 형이 살던 집에서 형의 여인과 함께 생활한다. 게다가 폴의 아내 안나는 지독한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삶과의 정면 승부 대신 수면제에 취해 잠자는 삶을 택한다. 결국 그는 이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할리우드로의 도피를 결심한다. 작가는 이처럼 서로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한 가족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자세히 관찰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위선과 비겁함, 그리고 엉큼한 타협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섬세한 그의 시선이 그리 따갑지만은 않다. 작품 곳곳에서 유머러스한 필치와 함께, 엄숙하고 진지하지만 언제나 애정 어린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는 장폴 뒤부아의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낯설게 하기’ 기법과 작품 곳곳에서 보여지는 장폴 뒤부아 특유의 풍부한 반어법은 삐걱대는 주인공의 삶을 더욱 실감나게 느끼게 하면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독자들은 프랑스 툴루즈와 미국 할리우드를 오가며 코미디와 드라마가 뒤섞인 삶을 사는 주인공과 그 가족을 지켜보는 동안에, 『프랑스적인 삶』에서 한 걸음 나아간,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장폴 뒤부아만이 터득한, 고단한 삶과의 달콤 씁쓸한 화해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성적인 화해』에 보내는 프랑스 언론의 찬사 ㆍ고급한 문학으로 떠나는 잊을 수 없는 여행.『프랑스적인 삶』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한 장폴 뒤부아가 또다시 그의 재능을 확인시켜주었다. -《피가로》 ㆍ이 달콤 씁쓸한 책을 읽는 게 절대로 지루하지 않다. 유머로 가득한 이 책은 우리를 툴루즈에서 할리우드로 데리고 간다. -《르몽드》 ㆍ장폴 뒤부아의 유려한 이야기는 완벽하다. -《렉스프레스》 ㆍ장폴 뒤부아 소설의 달콤 씁쓸한 매력을 어떻게 뿌리칠 수 있을까? 우울하면서도 생기를 불어넣는 소설이다. -《텔레라마》
■ 작품의 줄거리 50대 스크립트 닥터 폴 스테른의 삶은 큰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뒤죽박죽이 된다. 팔십에 가까운 아버지는 평생 비웃던 형의 유산을 상속받을 뿐 아니라 형의 애인과 결혼까지 하고, 아내 안나는 우울증에 빠져 삶과의 정면 승부 대신 잠을 택한다. 폴은 폐기된 영화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스크립트 닥터로 일하고 있지만 붕괴 직전인 가족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는 아내를 도와줄 수도 없고 자신의 신경증을 조절할 수도 없고 아이들을 안심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폴은 이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자는 영화사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만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들 또래이며 그들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셀마를 만난 폴은, 찬란했던 과거를 생각나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에게도 미래가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셀마와 함께 복잡하게 뒤엉킨 실타래처럼 어찌 손을 댈 수조차 없을 것만 같아 보이는 자신의 삶을 잊고자 마음먹는데…….
■ 본문 중에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벗어났을 때, 나는 가끔 <완벽한 신념 속에 몇 달>에 빠져 있는 게 아주 편안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흔한 GPS 방식에 따라, 우선 희망이라는 똑바른 길로 가다가, 그다음에는 안심이라는 길로 가는 데 가장 알맞은 이정표를 선택하는 자동 조종 장치에 우리를 맡기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나 나는 종교도 없으며, GPS도 없고, 나의 아내는 날마다 하루가 다르게 조금씩 더 내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나는 아버지보다 더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더구나 내 아들은 어떻게든 에너지를 보호하려고 전력을 다하는데, 내 딸은 에너지만 많이 잡아먹고 쓸모는 전혀 없는 물건들로 자기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거기에다가 내 작업은 골프 연습장에서 보낸 하루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요로웠다. 큰아버지는 멈춰 선 메르세데스 벤츠 운전석에서 이제 막 세상을 떠나, 동생이면서도 기쁨으로 환한 얼굴을 한 바로 내 아버지의 면전에서 한 줌 연기로 사라졌다. 26p 오늘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내 책임을 따져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우리의 지난 삶을, 무의미하면서 내밀한 사소한 것들을, 어두우면서 빛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바다에 갔을 때 아버지의 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오래전에 썼던 향수의 이름과 그 향기를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30년에 대해서 잊은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말하자면 순간의 기억을 놓쳤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나가 조심스럽게 멀어졌던 그때,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날들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32~33p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 이 말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랑뎅 박사에게 안나가 말한 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만, 그 관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서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관계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협할 준비, 이성적으로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전문가의 대답이, 내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려는 순간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124p 그때 나는 셀마 샨츠가 복도를 지나 옆 사무실로 들어가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 것을 보았다. 몹시 뜨거운 열기가 내 얼굴에서 타오르고 내 가슴은 모든 게 빠져나가서 텅 비고 말았다. 뇌에서 시작하여 안면과 가슴 부위를 거쳐 복부에 이르는 미주 신경이 거북해진 것을 느끼면서 나는 의자 팔걸이를 꽉 잡았다. 그녀는 안나와 닮은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안나였다. 안나의 완벽한 현현이었다. 30년 전의 안나 로카 델 레이와 완전히 닮은꼴이었다. 안나 로카 델 레이, 텔레스포로의 딸이며, 생기와 신뢰로 가득 차 있던, 온전하고 행복한 안나, 잠도 많이 자지 않던 그때의 안나와 닮았다. 확신하건대,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변모시킨 안나였다. 150p 우리 가족이 특별한 한 해를 보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내게 시간이 좀 필요했다. 지난 한 해는 우리가 그때까지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으며, 마치 불이 났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는 짐승들처럼 우리를 앞으로 곧장 내달리며 도망가게 했던 시기였다. 나의 아버지가 가장 먼저 쓰러졌으며, 그다음에 안나가, 그리고 결국엔 내가 쓰러졌다. 우리는 각자 먼 곳으로 아니면 반대되는 곳으로 떠났으며 공포의 여러 다른 형태로 이성을 잃었다. 마치 강압적인 뭔가가 우리를 우리 삶에서 쫓아내는 것처럼. 이 기이한 전염병의 근원은 우리 몸속 어디에선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우리가 묵시적으로 결론을 내린 이성적인 화해는 잠시나마 우리에게 새로운 지진을 피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악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문 뒤에, 다시 나타날 준비를 하고서 숨어 있었다. 3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