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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 (세계문학 단편선 03)

  • 저자 토마스 만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외 11편
  • 역자 박종대
  • ISBN 978-89-7275-664-4
  • 출간일 2013년 11월 08일
  • 사양 432쪽 | 145*207
  • 정가 14,000원

웅장한 독일 문화가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 준 세계문학의 대표자
20세기 초의 가장 위대한 작가, 토마스 만의 걸작 단편들

왜 나는 이런 별종으로 생겨 먹어서 늘 모든 것과 부딪치고, 선생님들과 사이가 안 좋고, 다른 친구들과 있으면 어색한 것일까? 친구들을 봐! 얼마나 선하고 평범해? 걔들은 선생님을 우습게 여기지도 않고, 시를 쓰지도 않고, 누구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누구나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해! 모두들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고, 세상 모든 것들과 일치한다고 느껴! 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앞으로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

- 「토니오 크뢰거」, 72~73쪽

 

내가 너희를 잊었을까? 토니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냐.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한스 너도, 금발의 잉게 너도! 내가 글을 쓴 것도 너희 때문이야. 나는 박수갈채를 받을 때면 혹시 너희가 그 자리에 없는지 몰래 주위를 살피곤 했어. 한스, 예전에 너희 집 정원 문에서 약속했던 것처럼 『돈 카를로스』를 읽었어? 읽지 마! 너한테 더는 그런 요구를 하지 않겠어. 외로워 눈물을 흘리는 왕이 너하고 무슨 관계가 있겠어? 너는 시와 멜랑콜리 같은 것으로 눈을 흐리고, 바보 같은 꿈에 젖을 필요가 없어…… 아, 너처럼 되고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너처럼 자라고 싶어. 너처럼 성실하고 쾌활하고 소박하고 올바르고, 질서에 잘 따르고, 신이나 세상과도 아무 갈등이 없고, 천진하고 행복한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싶어! 잉게 너를 아내로 맞아 한스 너 같은 아들을 낳고 싶어.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에서 벗어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양하고 싶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거야. 어차피 똑같이 될 테니까. 지금까지 그랬던 대로 똑같이 반복될 뿐이야! 세상에는 올바른 하나의 길을 아예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은 필연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

- 「토니오 크뢰거」, 140~141쪽

 

“명심하라, 파이드로스여. 아름다움만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는 감각적인 것의 길이고, 예술가를 정신으로 이끄는 길이다. 얘야, 너는 감각을 통해 정신의 길로 들어가려는 사람이 언젠가 진정한 남자의 품위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판단은 너에게 맡기겠다만, 그게 오히려 정말 위험하고 불쾌한 길이자, 필연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릇된 죄악의 길이라 생각하느냐? 너도 이제 알아야 한다. 에로스가 길동무가 되고 길을 인도해 주지 않으면 우리 작가들은 결코 미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 우리도 나름의 방식으로 건실한 전사와 영웅이 될 수 있지만, 우린 본질적으로 여자와 같다. 우리에게는 정염이 영혼의 행복이고, 사랑이 영혼의 그리움이기 때문이지. 이게 바로 우리의 기쁨이고 수치다. 이제 알겠느냐? 우리 작가들은 지혜로울 수도, 품위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 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사도에 빠지고, 방탕과 감정의 일탈로 흘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들이 쓰는 대가다운 문체는 모두 거짓이고 허튼짓이고, 우리가 누리는 명성과 존경은 한마디로 소극이고, 우리에 대한 대중의 믿음은 지극히 같잖은 짓이고, 예술로 대중과 아이들을 교육하겠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될 무모한 시도다. 태어날 때부터 개선될 수 없는 타락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로 적합하겠느냐? 물론 우리도 그런 타락의 나락을 거부하고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아무리 방향을 돌리려 해도 그 나락이 우리를 끌어당긴다. 우리는 분석적인 인식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파이드로스여, 인식에는 품위도 엄정함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은 신조도 형식도 없이 그저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고, 타락의 나락에 호의적이다. 아니, 나락 그 자체다. 따라서 우리는 단호하게 인식을 배격한다. 대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미뿐이다. 달리 말해서 그것은 단순함과 위대함, 새로운 엄격함, 또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과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파이드로스여, 형식과 자유로움은 도취와 탐욕으로 이끌고, 타락의 나락으로 인도하고, 고결한 자까지 끔찍한 감정의 죄악으로 이끈다. 엄정한 아름다움이 극악한 것으로 여기고 배척하는 그런 감정의 죄악으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작가들이다. 우리는 고상하게 위로 올라갈 능력이 없고, 단지 일탈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간다, 파이드로스여. 너는 여기 남아라. 내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거들랑 그때 너도 떠나거라.”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307~308쪽

 

내가 남들처럼 사회적으로 보탬이 되는 일을 하지 않고 남들과 연을 맺지 않는 삶을 설계한 것은 어쩌면 그런 외적 행복을 현실적으로 포기했음을 의미할지 모른다. 물론 어떤 순간에도 내 삶에 불만을 토로한 적은 없다. 내 삶에 대한 만족감은 흔들려서는 안 되고 의심받아서도 안 된다. 반복건대, 아니 필사적인 심정으로 강조컨대, 나는 행복해지고자 하고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업적과 천재성, 고귀함, 사랑스러움으로 여기고, 불행을 추악한 것, 빛을 두려워하는 것, 경멸적인 것, 한마디로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관념은 내 속에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만약 내가 불행하다면 나는 결코 나 자신을 존중할 수 없을 것이다.

- 「어릿광대」, 356쪽

 

인간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기에 남에 대해서는 진지한 의견을 갖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크게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너 스스로 존중하는 만큼 너를 존중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뻔뻔할 정도로 확신을 보여 주고,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버려라. 너를 경멸할 만큼 도덕적인 사람은 없다. 네가 너 자신과 하나 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만족감을 잃으면 그리고 스스로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이면 남들도 당연히 너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나는 그 점에서 실패했다.

나는 이제 펜을 던지고 글쓰기를 끝낸다. 역겹고 구역질 난다. 삶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은 어릿광대에겐 너무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두렵다. 내가 이대로 살아가고, 먹고, 자고, 아무 일이나 조금 하고, 그러면서 내가 불행하고 한심한 인간이라는 것에 시나브로 둔감하게 익숙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빌어먹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어릿광대로 태어난다는 것이 이런 액운과 불행일지 말이다.

- 「어릿광대」, 371~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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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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