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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세계문학 단편선 10) Don’t Look Now (1971)

  • 저자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지금 쳐다보지 마 외 8편
  • 역자 이상원
  • ISBN 978-89-7275-671-2
  • 출간일 2014년 07월 31일
  • 사양 380쪽 | 145*207
  • 정가 16,800원

스크린이 사랑한 20세기 서스펜스의 여제 대프니 듀 모리에
일상과 악몽의 아련한 경계에서 시작되는 서스펜스의 미로,
전율과 공포의 소름 돋는 명단편들

존이 와인 잔 위로 눈을 들었다. 자리에 남은 쌍둥이 여자가 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무심하고 한가로운 시선이 아니었다. 그 밝은 파란색 눈동자는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강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상한 여자 같으니! 꼭 저런 식으로 쳐다봐야 해? 나도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어.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공격적으로 미소를 흘렸다. 여자는 반응이 없었다. 파란 눈동자는 여전히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_「지금 쳐다보지 마」(11쪽)

 

그는 담요를 내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차가운 회색빛 아침 햇살에 방 안 풍경이 드러났다. 살아 있는 새들은 새벽이 오면서 창밖으로 빠져나가고, 죽은 놈들만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냇은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혀 그 작은 사체들을 응시했다. 전부 다 아주 작은 새들이었다. 바닥에 있는 것만 오십 마리는 되어 보였는데 울새, 피리새, 참새, 박새, 종달새, 되새 등 하나같이 자기들끼리 무리 지어 자기 영역 안에서만 사는 종류였다. 그런 새들이 어찌 된 일인지 다 함께 무리를 만들어 공격을 감행하다가 침실 벽에 부딪히거나 냇의 반격에 죽고 만 것이었다. 깃털이 빠진 놈들도 있었고 부리 부분에 냇의 피를 묻히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_「새」(72쪽)

 

중위가 먼저 사다리를 오르고 내가 뒤따랐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느라 숨이 찼다. 숨을 헐떡거리자 차디찬 공기가 바로 목구멍으로 들어왔다. 갑판에 도착한 후 나는 옆구리가 결려 잠시 쉬어야 했다. 깜박이는 랜턴 불빛을 통해 나는 그 배가 목재나 곡식이 아니라 총을 잔뜩 실은 공격선임을 알아차렸다. 갑판은 작전을 위해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선원들은 맡은 자리에서 준비 태세를 갖추었다. 시끌벅적했고 사람들이 바삐 오갔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명령을 내리는 중이었다. 공기 중에는 짙은 안개와 시큼한 악취,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눅눅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
_「호위선」(125쪽)

 

거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방이 책과 종이 천지였다. 온갖 잡동사니가 바닥을 가득 채웠다. 새장 속 앵무새가 횃대 위에서 깡충대며 환영 인사를 했다. 부인은 입을 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레이스가 돌아 버린 게 분명하군. 지하실은 물론 거실에까지 남자를 들여 집을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다니. 방은 온통 뒤집어엎은 꼴이었다. 의도적으로 주도면밀하게 그녀의 집을 망가뜨린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지. 이건 엄청나게 조직적인 절도범들이야. 전에 갱들이 집으로 침입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레이스는 어쩌면 아무 죄가 없고 지하실에 꽁꽁 묶여 있을지도 몰랐다. 엘리스 부인은 불쌍한 그레이스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아파졌다. 약간 어지럽기도 했다.
_「눈 깜짝할 사이」(147쪽)

 

그녀가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울타리 바깥 가로등 덕분에 완전히 깜깜하지는 않았다. 비 내리는 밤치고는 덜 어두웠다. 그녀의 눈을 뭐라 묘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재주는 없다. 어둠 속에서 야광시계가 어떻게 반짝이는지 아는가. 내게도 그런 시계가 하나 있었다. 밤에 깨어나면 그 시계가 친구처럼 손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눈도 바로 그렇게 빛났다. 하지만 훨씬 사랑스러웠다. 게으른 고양이 같은 눈빛은 이제 없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슬픈 눈빛이었다.
_「낯선 당신, 다시 입 맞춰 줘요」(207~208쪽)

 

웃음 띤 얼굴의 마다는 간호사복을 입고 우유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다가오는 형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지? 간호사 캡을 쓴 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다를 내려다보는 것은 여자 몸에 붙은 소 대가리였다. 뿔 사이에 간호사 캡이 올려져 있었다. 커다랗고 다정한 두 눈도 소의 눈이었다. 콧구멍도 넓고 축축했다. 간호사가 서서 숨 쉬는 모습은 영락없이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 마리 소였다.
“약간 낯선 느낌인가요?”
웃음소리는 여자 간호사의 그것이었다. 브랜드 간호사는 침대 옆 탁자에 쟁반을 놓았다. 마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간호사복을 입은 소가 여전히 곁에 있었다.
_「푸른 렌즈」(232쪽)

 

어쩐지 감상적이 되는 날이 있죠. 그런 때면 극장에서 보는 영화도 꼭 그런 면을 자극하곤 하고요. 그날 밤 제가 바로 그런 상태였어요. 금발의 여주인공을 클로즈업한 화면을 바라보자니 꼭 그 여자가 절 응시하는 듯 느껴졌어요. 내용은 평범했어요. 사랑스럽고 순결한 여자가 잘생긴 남주인공과 사랑에 빠지고 불한당이 등장해 여자를 파멸시키려 하죠. 과연 여자가 파멸되느냐 아니냐가 궁금해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영화였죠. 그때는 불한당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 여자는 남주인공과 맺어지더군요. 영화를 다 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어요. 그대로 앉아 두 번을 연속으로 본 후 여전히 영화 속 세상에 빠진 채 일어선 시간이 12시쯤이었어요.
_「경솔한 말」(281쪽)

 

처음에는 계곡 쪽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또렷했다. 개 짖는 소리, 소 목에 매달린 방울 소리, 서로를 부르는 남자들 소리 등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집들에서 올라오는 푸른 연기가 안개처럼 뭉쳐졌고, 집들은 점점 장난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계곡은 멀리 사라졌고 나는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르막 하나를 넘어 왼쪽으로 돌면 뒤쪽 오르막은 보이지 않게 되고 다시 두 번째 오르막이 나타났다. 그것도 오르고 나면 지나온 두 오르막은 잊어버리고 더 가파르고 그늘진 세 번째 오르막에 도전해야 했다. 오랫동안 단련하지 않은 근육 때문에, 또 맞바람 때문에 속도가 더뎠다. 하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피곤한 줄도 몰랐다. 영원히 등반을 계속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_「몬테베리타」(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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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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