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유명한 옛날 책에 나오는 사건과 너무 비슷하거든요. 제 사촌 올케는,” 그녀가 아주 느긋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프로방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래요.”
나는 절반쯤 놀란 상태에서 그 말을 들었다. 불쌍한 여인은 그 유서 깊은 가문의 정화精華인 백작 부인으로부터 사기당한 것을 아주 흥미로운 일로 여기고 있었다. 유서 깊은 가문이든, 그 가문의 정화이든, 혹은 단 한 알의 진실이든 과연 그 얘기 속에 그런 게 있기나 한지 의문이었으나, 스펜서 양은 그 얘기에 너무나 매혹되어 저금해 둔 돈을 빼앗긴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네 번의 만남」, 32~33쪽
“제네바로 돌아가겠다는 얘기는 진심이 아니지요?”
“우울하게도, 내일 아침까지 반드시 가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그를 우쭐하게 만들 정도로 아주 생기발랄하게 말했다. “아, 윈터본 씨, 당신은 정말 너무해요!”
“아, 그런 가슴 아픈 말은 하지 마세요.” 그가 진정으로 호소했다. “이 마지막 순간에요.”
“마지막이라고요?” 젊은 처녀가 소리쳤다. “전 오히려 맨 처음 순간이라고 말하겠어요! 당신을 여기 두고 저 혼자 호텔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리고 그 후 10분 동안 그녀는 그가 너무하다는 말만 계속했다. 불쌍한 윈터본은 정말 당황했다. 자신의 개인 일정에 대해 이처럼 동요하는 아가씨를 일찍이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데이지는 그 후로 시용성의 기이한 유물이나 호수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황급히 돌아가서 지켜야 할 약속이란 게 다름 아니라 제네바에 있는 매력적인 특별한 여성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 여성에 대한 포화砲火를 개시했다. 어떻게 데이지 밀러 양은 그의 운명을 조종하는 제네바의 여인에 대해서 알았을까? 그런 여인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윈터본은 그것참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데이지의 대담한 추리에 대한 놀라움과, 그녀의 뜬금없는 비판의 방향에 대한 즐거움 사이에서 묘하게 헷갈렸다. 이처럼 공격적으로 구는 그녀는 그에게 순진함과 대담함이 뒤섞인 아주 특별한 여인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데이지 밀러」, 95쪽
그는 마음속에서 그녀에 대하여 황당무계하고 근거 없는 동정심을 느낀다고 자신을 비난했으나 그래도 거기에는 일말의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비참함이 낯선 친구를 만들어 낸다면 동시에 낯선 감정도 친구를 만들어 낸다. 이런 사람들과 오래 살다 보면 사기가 저하되고 또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거칠어지는데, 그 때문에 좋은 매너를 갖춘 사람이었으면서도 펨버턴은 그런 거친 대답을 하게 되었다. ‘모건, 모건, 나는 너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타락해야 하는 거니?’ 그는 속으로 개탄했다. 한편 모린 부인은 아이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홀 아래쪽으로 둥둥 떠가듯 바삐 걸어갔다. 그녀는 걸어가면서 모든 것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듯이 신음 소리를 냈다.
-「제자」, 200~201쪽
나는 캐릭터를 원했고, 어떤 타입에 고정되어 그것의 지배를 받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이 문제를 두고서 나는 몇몇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다. 특히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과는 헤어지기도 했다. 화가는 타입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그 타입이 아름답다면—가령 라파엘로나 레오나르도를 보라—그것에 복종하는 것은 오히려 득이 된다. 나는 라파엘로나 레오나르도가 아니었다. 나는 주제넘게도 뭔가를 추구하는 젊은 현대 화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캐릭터를 구현할 수 있다면 나머지 것은 다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들이 강박적인 형태도 쉽게 캐릭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 나는 다소 피상적으로 되받았다. “그건 누구의 캐릭터인가? 그건 모든 사람의 캐릭터는 될 수가 없으니 결국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실제와 똑같은 것」, 240쪽
그것은 한 권짜리 소설이었다. 그는 단권을 좋아했고 그런 만큼 남들과는 다르게 멋지고 진귀하게 압축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는 책을 읽기 시작했고, 조금씩 조금씩 독서에 몰두하면서 마음이 진정되고 위안을 얻었다.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되돌아왔다. 생각은 경이로움과 함께 되돌아오는가 하면, 무엇보다도 고상하고 장엄한 아름다움과 함께 되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문장을 읽었고, 자신의 책을 넘겼으며, 봄 햇살이 책장 위를 어른거리는 가운데 특별하고 강렬한 정서를 느꼈다. 물론 그의 경력은 끝났으나, 모든 것을 말해 놓은 지금, 그런 특별한 정서와 함께 끝난 것이었다.
-「중년」, 263쪽
“선생님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셨습니다!” 휴 선생의 젊은 목소리에는 결혼식 종소리 같은 강조된 억양이 있었다.
덴콤은 병상에서 그 말을 들었고 마지막 힘을 모아 한 번 더 말했다. “두 번째 기회, 그것은 망상입니다. 원래 기회는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작업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놓습니다. 우리의 의심은 우리의 열정이고, 우리의 열정은 우리의 직무입니다. 그 나머지는 예술의 광기입니다.”
-「중년」, 289쪽
“나는 명쾌하게 평론가에게 단서를 주고 있습니다. 모든 쪽, 모든 문장, 모든 단어가 그렇지요. 그것은 새장 속의 새, 갈고리에 꿰인 먹이, 쥐덫 속의 치즈만큼이나 구체적입니다. 그것은 당신 발이 신발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내 모든 책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문장을 지배하고, 모든 단어를 선택하며, 모든 종지부를 찍고, 모든 쉼표를 집어넣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나의 질문은 우둔하고 나의 통찰력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안녕히 주무시오, 젊은이.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결국 당신은 다른 평론가들처럼 할 테니까.”
-「양탄자의 무늬」, 306쪽
“선생님이 똑똑하게 파악한 다른 것들은 무엇인가요?”
“절 즐겁게 하고, 매혹시키고, 동시에—기이하게도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는데—의아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들이지요. 저 아이들의 지상의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 아주 부자연스러운 선량함, 그건 겉으로 꾸민 것, 놀이예요.” 내가 계속 말했다. “그건 계책이고 사기일 뿐이에요!”
“저렇게 작고 귀여운 애들이요—?”
“사랑스러운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데, 라고요? 미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이에요!” 이렇게 내뱉음으로써 나는 그것을 추적하여 점검하고 또 하나로 종합할 수 있었다. “저 애들은 선량하지 않아요. 표면적으로 나쁜 짓만 안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고, 그래서 저 애들과 함께 살기란 쉬운 일이죠. 저 애들은 나의 것 혹은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저들은 그 두 남녀의 것이에요!”
“퀸트와 그 여자요?”
“퀸트와 그 여자요. 둘은 저 애들을 데려가려 해요.”
그러자 불쌍한 그로스 부인은 애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무엇 때문에요?”
“지나간 무서운 시절에, 그 둘이 저 아이들에게 주입한 사악함 때문이죠. 저 애들에게 악을 가르치고, 악마의 소행을 계속하게 만들려고 그들은 계속하여 돌아오고 있는 거예요.”
-「나사의 회전」, 445~446쪽
그것은 차가운 4월의 황혼 녘에 달려들었다. 병들어 창백하고 초췌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름답고, 또 어쩌면 회복도 가능했을 그녀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한번 짐작해 보라고 했던 그때에. 그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고 그때 짐승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아무 희망 없이 그에게서 돌아설 때 짐승은 달려들었고, 그리고 그가 그녀와 헤어질 무렵, 운명의 표시는 그것이 떨어지기로 되어 있었던 곳에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공포를 정당화했고 자신의 운명을 성취했다.
-「정글의 짐승」, 593쪽
네 번의 만남
데이지 밀러
제자
실제와 똑같은 것
중년
양탄자의 무늬
나사의 회전
정글의 짐승
옮긴이의 말—모더니즘의 선구자, 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 연보
헨리 제임스
(Henry James, 1843~1916)
‘소설은 헨리 제임스 이후 완전히 새로워졌다’(존 밴빌).
헨리 제임스는 현대 영미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작가로, 전통적 리얼리즘 사조가 지배하던 19세기 미국 문단에서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의식 세계를 언어로 형상화해 내며, 후일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원형을 제시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제임스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열두 살 때부터 습작을 하며 문학에 뜻을 두었다. 열아홉 살에 하버드 법대에 입학하지만 곧 그만두고 미국 잡지에 서평과 단편소설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단편소설을 ‘아름답고 축복받은 누벨nouvelle’이라 표현할 정도로 단편 장르에 큰 애정을 가졌던 그는 인간관계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복잡다단한 주제들을 간결한 형식과 문체에 응축해 풍부한 의미를 전했다. 다채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며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그의 문학 세계는 ‘양탄자의 무늬처럼 복합적이며 매혹적이다’(츠베탄 토도로프)라는 찬사를 받는다.
1875년 파리로 이주한 제임스는 그곳에서 이반 투르게네프, 귀스타브 플로베르, 알퐁스 도데와 같은 작가들과는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다. 이듬해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 정계와 예술계의 인사들과도 활발히 사귀면서 빅토리아 시대 사교계의 명사로 떠올랐다. 자신의 예술을 보다 발전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환경을 발견한 그는 이후 영국에 정착한다.
제임스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23편의 장편소설과 112편의 단편과 중편소설, 각종 평론과 여행기, 수십 편에 달하는 비평문 그리고 1만 통 이상의 편지를 남긴, ‘19세기 인물들 중 가장 정력적으로 살아간’(클리프턴 패디먼)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집필 활동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끝을 맺게 되고, 1915년 영국으로 귀화해 1916년 2월 28일, 유럽인으로 생을 마친다.
그는 문학 인생 전반에 걸쳐서 구세계(유럽)와 신세계(미국)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주제를 다루며, 신구 문화의 갈등을 극복하는 더 나은 삶과 문명을 모색했다. 작가의 묘비에는 ‘대서양 양편의 한 세대를 해석한 사람’이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옮긴이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교수를 지냈다.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를 번역했고 최근에는 현대 영미 작가들의 소설을 번역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살면서 마주한 고전』『전문 번역가로 가는 길』『번역은 글쓰기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샤일록은 내 이름』『셰익스피어 깊이 읽기』『작가는 왜 쓰는가』『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향연 외』『돌의 정원』『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어둠 속의 남자』『보이지 않는』『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지상에서 영원으로』『미스 론리하트』『숨결이 바람 될 때』 외 다수가 있다.
현대 영미소설의 형식과 내용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 작가, 19세기 심리적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자 헨리 제임스의 단편선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서른한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마크 트웨인과 더불어 당대 미국 문단을 이끈 제임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하고자 했던 전통적인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관점과 화법을 구사하여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를 포착한 작가였다. 그가 출현할 무렵의 작가들이 찰스 디킨스와 오노레 드 발자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등 19세기 위대한 거장들에 의해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이 소설로 쓰였다고 불안감을 느끼던 상황에서 제임스의 텍스트는 소설의 무한성을 증명하는 하나의 이정표로 제시됐다. 그는 인상적인 광경, 단어 하나도 훌륭한 스토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파편적이고 무질서한 인간의 의식을 언어로 형상화한 그의 시도는 제임스 조이스, T. S. 엘리엇으로 이어져 후에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대표되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시대를 열었다.
제임스의 아버지인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스웨덴의 신비주의 사상가 스베덴보리를 연구한 학자이자 개방적인 교육관을 가졌던 인물로, 제임스가 생후 6개월 때부터 부모는 장남 윌리엄과 차남 헨리를 데리고 몇 달 동안 영국과 파리를 여행했다. 이후로 제임스는 미국과 유럽을 오가는 생활 속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면서 국제적 감각을 익히며 성장했다. 스물한 살 때 미국 잡지에 서평과 단편소설들을 기고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 활동을 시작한 그는 서른셋 무렵 영국에 정착해 40년 가까이 그곳에서 살았고, 타계 1년 전 귀화하여 유럽인으로 생을 마쳤다.
유년 시절부터의 유럽 체험, 그리고 신비주의에 심취했던 아버지의 사상은 제임스 문학 세계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밑거름이 된 요인들이었다. 일생을 이방인으로 살아갔던 그는 문학 인생 전반에 걸쳐서 구세계(유럽)와 신세계(미국)의 충돌이라는 국제적 주제를 다루며 신구 문화의 갈등을 극복하는 더 나은 삶과 문명을 모색했다. 나아가 그는 ‘아메리칸 아담’이라 정의되는, 영웅적인 순진성과 잠재력을 갖춘 미국인의 정체성을 드러내 미국의 가능성을 발견해 내고자 했고, 후대의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이러한 제임스의 업적에 대해 “미국인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랠프 월도 에머슨, 월트 휘트먼 그리고 헨리 제임스, 이 세 작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라고 평했다.
제임스 문학의 대표적 한 축이 ‘국제주의 테마’였다면, 다른 한 축은 바로 개인의 내밀한 심리 드라마를 극대화시키는 ‘초자연적 테마’였다. 그의 아버지는 극심한 우울증이 동반된 정신질환을 겪고 난 뒤 영적 세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자녀들의 삶과 지적 탐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작가의 형이자 저명한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다양성이라는 이름의 열린 태도로 ‘영적 현상’을 수용해 인간의 심리 작용을 분석했다면, 헨리 제임스는 소설에서 유령의 출현과 같은 현상을 통해 개인의 의식 내에서 벌어지는 소외 및 예민한 감수성, 망상, 신경쇠약, 죽음 등을 묘사해 냈다. 불안한 심리를 보이는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제임스의 소설은 분열된 자아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프란츠 카프카 등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시대의 변화와 독자의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낳게 하는 그 다채로운 세계는 “양탄자의 무늬처럼 복합적이며 매혹적이다”(츠베탄 토도로프)라는 찬사를 받았다.
■ 이 책에 대하여
헨리 제임스는 50여 년에 걸친 작가 생활 동안 모두 112편의 중단편소설을 써냈으며, 단편소설을 ‘아름답고 축복받은 누벨’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애정을 보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서 정수로 꼽힐 만한 8편을 엄선하여 실은 이 책 『헨리 제임스』는 그동안 국내에서 단편적으로 다루어진 제임스 문학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수록작 선정에 기준을 두었다. 문학적 의의와 재미뿐만 아니라 제임스 단편소설을 관통하는 3대 주제인 ‘정체성’ ‘유령’ ‘환상’을 한 권에서 아우르는 동시에, 리얼리즘에서 모더니즘으로 옮아가는 작풍의 변화를 좇을 수 있도록 시기별 주요 작품을 고루 뽑아 연대순으로 배치했다. 이렇게 최종 선정된 8편 가운데 「네 번의 만남」 「제자」 「중년」은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며, 단권으로 출간된 바 있는 「데이지 밀러」와 「나사의 회전」을 함께 수록했다. 「데이지 밀러」(1878)와 「나사의 회전」(1898)은 각각 ‘국제주의 테마’와 ‘초자연적 테마’의 대표 걸작이기도 한데, 「데이지 밀러」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씨』,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더불어 미국적 여성상을 대표하는 여주인공을 창조해 낸 소설로 꼽히며, 유령 소설의 모범이 되는 「나사의 회전」은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 「일리아드」 「오디세이」 「신곡」 「햄릿」을 제외한다면 영미권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 책 『헨리 제임스』는 작가가 최종적 가필을 가한 판본인, 찰스스크리브너사에서 발간한 뉴욕판 『헨리 제임스 전집』(전 24권, 1907~1909)을 저본으로 삼았다.
■ 헨리 제임스를 향한 찬사
소설은 헨리 제임스 이후 완전히 새로워졌다. _존 밴빌
동시대 작가 중 가장 지적인 인물. _T. S. 엘리엇
미국이 배출한 가장 뛰어난 소설가. 미국 문학사에서 그에 비견할 만한 작가는 별로 없다. 그의 천재성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_해럴드 블룸
제임스는 어떠한 비밀도 남기지 않는다. 그는 모든 비밀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식으로, 즉 아름답게 드러낸다. _조지프 콘래드
현대예술의 모호함과 불명확성을 훌륭하게 그려 낸 위대한 거장. _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9세기 문학계에서 가장 뚜렷하게 훌륭함을 드러낸 작가. _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제임스는 북아메리카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대여섯 명의 소설가 중 한 명에 들 만한 작가이고, 나 개인의 의견을 말하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소설가라고 말하고 싶다. _이버 윈터스(미국 시인, 비평가)
제임스는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일급의 단편소설 작가로 평가되었을 것이며, 단편을 쓰지 않았더라면 가장 고상한 서한문 작가로 평가되었을 것이고, 편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대담 하나만으로도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_시릴 코널리(영국 비평가, 작가)
소설의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즉 소설을 성인의 마음에 호소하는 아주 진지한 예술이라고 볼 때, 과연 영문학계에서 그가 이룬 것을 능가하는 업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_F. R. 리비스(영국 비평가, 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