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덫에 걸렸다. 아버지와 결혼했고, 생활비를 받기 위해서 아버지와 잠을 잤다. 엄마는 생활비를 아껴서 아침에 마실 진을 샀다. 아버지 역시 덫에 걸렸다. 아버지는 밤마다 문지기 유니폼을 입고서 집을 나섰다. 등이 안 좋은 해크니의 왕자. 아버지는 자신이 짓밟혔기 때문에 엄마를 짓밟았다. 엘리너가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위안을 얻으려고 질문을 한다면 엄마와 아버지는 과연 신경을 써 줄까?
엄마와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엘리너는 런던의 나뭇잎들이 황갈색으로 물들 때 자기를 멀리 데리고 갈 섬세한 손을 가진 남자는 없다고, 데니 프라이스의 두툼한 입술과 그에게서 풍기는 고기 냄새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수지 크럼의 아버지가 루크 부인과 잤고 리즈 존스의 아버지와 철도역에서 일하는 서인도 제도 짐꾼도 루크 부인과 잤다고, 루크 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엘리너가 자기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엄마와 아버지를 돕는다고 해도 두 사람은 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화이트헤드 선생님이 이셔에 있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밤에 홀로 눕는 것으로 이 모든 것과 이혼했다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엄마와 아버지는 엘리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 남자의 망가진 등 때문에 희생자로 살아가는 여자보다는 화이트헤드 선생님이 되는 편이 나았다. 모든 것이 반짝이는 방에서 화이트헤드 선생님은 엘리너의 엄마와 아버지보다 성공적으로 가식 속에 살았다. 버리고 싶던 것을 버렸으며 완벽한 남편감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화이트헤드 선생님은 혼자지만 완전했다.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
브리디는 패트릭 그래디를 생각하면서 그의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 패트릭의 아이를 넷, 아니 일곱, 아니 어쩌면 여덟 명 낳은 어머니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울버햄프턴에 살면서 해가 지면,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남자를 돌보는 대신 극장에 가는 나날을 보낼 수도 있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지만 않았다면 브리디는 사랑하지도 않는 도로 보수 인부의 결혼을 슬퍼하면서 길가 무도회장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두커니 서서 울버햄프턴에 사는 패트릭 그래디를 떠올리는 지금, 브리디는 잠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삶 속에는 농장에도 집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눈물은 사치였다. 눈물은 사료용 사탕무가 자라는 밭에 피어난 꽃이나 부엌방에 새로 바른 회반죽과 같았다. 아버지가 <숨은 재능을 찾아라>를 들으며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녀가 부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권리는 차라리 다리 하나를 잃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깊은 고통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고 그녀를 걱정했다.
「로맨스 무도장」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혼자 사는 이상한 남자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자라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처럼 자란 사람은 병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 해변 도시에서, 아니 이곳을 벗어난 어디에서든 그녀만큼 내 눈앞에 실재하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위해 살면서 나는, 내가 소망하는 대로 그녀를 소유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보낸다. 나는 환영을 향한 육욕을 품고 있다. 이런 내 욕망은 신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며 내가 품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처단하려고 신이 내리는 적절한 벌이다.
「페기 미한의 죽음」
말비 부인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킹 부부가 함께 있을 때에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킹 부부에게 부엌의 본래 색은 자신이 직접 고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얼룩을 문질러 닦는 교사에게 카펫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가신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페인트칠을 하도록 아이들을 부엌에 들여놓고서 뒤늦게 법석을 떤다면 킹 부부는 그녀를 성가시게 여길지도 몰랐다. 그녀가 성가신 존재가 된다면 교사와 킹 부부는 한편이 될 테고, 부시 신부와 미스 팅글 그리고 그로브 부인과 할버트 부인마저도 그들과 같은 편이 될지 몰랐다. 그들은 지금 벌어진 일이 모두 그녀의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부엌으로 페인트를 갖고 들어간 아이들이 당연히 그 페인트를 사용할 것임을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기들끼리 합의를 볼지도 몰랐다.
「결손가정」
1960년대는 지나갔지만 그 떠난 자리에는 마리와 나눈 사랑의 경이로움이 남았다. 그가 마리와의 관계를 털어놓았을 때 힐다가 드러낸 멸시도, 킬번의 방 두 개짜리 더러운 아파트도, 전혀 즐겁지 못했던 리딩에서의 생활도 마리와의 사랑이 선물한 경이로움을 퇴색시키지 못했다. 그레이트 웨스턴 로열 호텔로 마리와 함께 걸어가던 길, 호텔 바에서 마실 능력이 안 되었던 술, 따로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들이 보인 세심하게 계획된 태연함. 이 모든 것이 노먼에게는 기적적으로 현실이 되었던 환상처럼 여겨졌다. 호텔 2층의 목욕탕은, 속삭임과 애무로 가득 찬 목욕탕은 이 환상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노먼이 날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접하는 머나먼 곳들은 그가 그 장소들에 대해서 어떤 본드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관능적인 젊은 여인에게 속삭여 이야기할 때 마법의 기운을 얻었다. 노먼은 이따금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는 그의 가슴속에 남은 크나큰 기쁨을 맛보면서 섬세한 줄무늬가 있는 대리석과 거대한 놋쇠 수도꼭지 그리고 두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욕조를 떠올리고는 했다. 이따금 그의 귓가에는 어렴풋한 음악 속에 섞인 현악기를 퉁기는 소리와 비틀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틀스는 엘리너 릭비를 비롯해 그 당시의 여러 인물들을 찬양한 것처럼 목욕탕에서의 사랑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연인들」
윌리엄 트레버(William Trevor, 1928~)
안톤 체호프와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뉴요커》는 트레버에 대해 “영어로 단편소설을 쓰는,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다.
가톨릭교도가 국민의 대다수인 아일랜드에서 중산층 개신교 집안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배척받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또한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를 따라서 아일랜드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무려 13군데 학교에서 공부했고,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켜봐야 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떠밀려 조국을 떠나서 1954년 이래로 줄곧 영국에 머무르고 있지만 자신은 뼛속까지 아일랜드인이라고 말해 온 트레버는 한평생 이방인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외로움과 슬픔에 젖은 사람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 무시당하거나 오해받는 사람들, 버림받거나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트레버 콕스’란 이름의 조각가로 활동하기도 하고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한 그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쓴 두 번째 소설 『동창생들』로 호손덴상을 수상하면서 1964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소설집 15권에 달하는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단편소설의 아름다움과 힘을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 왔다. 트레버는 단편을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길”이라고 정의한다. 작품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인간관계를, 그 관계를 이루는 사람을 확장된 사회라는 큰 틀로부터 분리시켜 섬세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최소한의 단어만을 사용하여 여백에서 등장인물의 의식의 흐름을 읽어 내게 만드는 독특한 심리 묘사를 통해 현대인의 분열된 삶과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단편소설을 주로 썼다.
한편 트레버는 장편소설 18권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어쩌다 장편소설을 쓰는 단편소설가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단편과 장편 두 분야 모두에서 찬사를 받는 이례적인 작가이다. 오헨리상을 네 번 수상하고 맨부커상 후보에 다섯 번 올랐으며 휘트브레드상, 아이리시 펜상, 래넌상 등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은 상을 수상했고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손꼽히기도 했다.
“내 소설은 때로 인간 삶의 여러 면을 비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의식해서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이야기꾼이다.”
옮긴이_ 이선혜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루앙 대학교에서 2년간 수학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으며 MBC 프로덕션 교양제작국, 프랑스 대사관 상무관실 등을 거쳐 현재 영어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6년』『배반의 자화상』『프로방스의 길고양이』『25시』『여인의 저택』『세 남매의 어머니』『카불 미용학교』「카오스 워킹 시리즈」 외에 여러 권의 책과 <적과 흑> <레미제라블> <멀티플리시티> <천국의 아이들> 외에 여러 편의 영화를 번역했다.
트레버 단편의 특징은 군더더기 없는 적확하고 생생한 묘사와 설정된 인물상의 흔들림 없는 정밀함, 칼같이 예리하지만 동시에 불가사의한 부드러움을 지닌 소설적 시선에 있다.
_무라카미 하루키
안톤 체호프와 제임스 조이스를 계승한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선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열다섯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윌리엄 트레버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헨리상을 네 번 수상하고 맨부커상 후보에 다섯 번 올랐으며 휘트브레드상, 아이리시 펜상, 래넌 문학상, 호손덴상, 왕립문학협회상, 하이네만 문학상, 선데이 타임스 문학상, 아일랜드 문학상, 밥 휴즈 평생공로상 등 무수한 상을 꾸준히 받아 왔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뉴요커》는 그에 대해 “영어로 단편소설을 쓰는,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줌파 라히리는 “트레버의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라고 존경을 표하는 등 1928년생인 이 아일랜드 출신 원로 작가는 전 세계 언론과 평론가, 문인들로부터 대단히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가톨릭교도가 국민의 대다수인 아일랜드에서 중산층 개신교 집안에 태어난 윌리엄 트레버 콕스는 어려서부터 배척받는 기분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느꼈다. 또한 유년 시절 내내 아버지를 따라서 아일랜드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며 무려 13군데 학교에서 공부했고, 지난한 싸움으로 점철된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지켜봐야 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 떠밀려 조국을 떠나서 1954년 이래로 줄곧 영국에 머무르고 있지만 자신은 뼛속까지 아일랜드인이라고 말해 온 트레버는 한평생 이방인이었다. 그런 까닭인지 그의 작품에는 한결같이 죄책감에 사로잡힌 사람들, 외로움과 슬픔에 젖은 사람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 무시당하거나 오해받는 사람들, 버림받거나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트레버 콕스’란 이름의 조각가로 활동하고, 광고 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한 그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쓴 두 번째 소설 『동창생들』로 호손덴상을 수상하면서 1964년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윌리엄 트레버’란 이름으로 소설집 15권에 달하는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단편소설의 아름다움과 힘을 절제된 문체로 표현해 왔다. 또한 그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유명한 『펠리시아의 여행』을 비롯하여 장편소설 18권을 출판하기도 했는데, 스스로를 “어쩌다 장편소설을 쓰는 단편소설가”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두 분야 모두에서 갈채를 받는 이례적인 작가이다. 트레버는 단편을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길”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단편보다 길이가 긴 소설에서는 그 인간관계가 길을 잃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단편소설이란 양식을 빌려서 누군가의 인간관계를, 그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을 확장된 사회라는 큰 틀로부터 분리시켜 섬세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아울러 단편이 지닌 힘은 그 안에 무언가를 담는 것 못지않게 덜어 내는 데에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장편소설이 무의미한 순간들로 채워지다시피 한 우리의 삶을 본뜬 것이라면 단편소설은 모든 군더더기를 떼어 낸 뒤에 남는 뼈대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렇기에 그는 아직도 타자기를 사용하며, 탈고한 몇 달 후에 다시 작품과 마주하면서 영화의 필름을 편집하듯이 일부를 오려 낸다고 한다.
존 파울스가 “무시무시할 정도로 훌륭한 이야기. 나는 이 작품의 매 순간을 즐겼다”라고 평한 「그 시절의 연인들」을 비롯하여 이 단편선에는 23편의 작품이 담겨 있다. 트레버는 불행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자기기만에 빠진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이 삶에 어울리지 못하는 데 대해 비난하거나 조롱하기보다 공감과 유머를 자아낸다. 그는 인간의 욕망과 연약함을 그리지만 감정의 과잉이나 치우침 없이 ‘이것이 인생이며 이것이 인간’임을 간결하게 이야기한다. 인물과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단어만을 사용하여 여백에서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읽어 내게 만드는 독특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며, 그의 정교하게 구축된 세계는 어느 작품에서나 동일한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트레버는 현대인의 분열된 삶과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주로 썼지만 “내 소설은 때로 인간 삶의 여러 면을 비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별히 의식해서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이야기꾼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조이스와 프랭크 오코너의 아일랜드적 토양을 디디고, 형식에 있어 유럽의 대가인 체호프와 모파상을 계승하며, 서머싯 몸, 그레이엄 그린, V. S. 프리쳇과 같은 영국 문학 전통과 함께한다. 이 단편선을 읽으며 독자들은 현대 단편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서 윌리엄 트레버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 반론의 여지가 없는 20세기 소설의 거장. 때로는 역설적이고 때로는 애수를 자아내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트레버의 서정적인 산문은 중독성이 있다. 그의 통찰에는 뼈저린 연민이 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심원한 이야기들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 트레버가 무대에 올리는 인물의 다양함에는 실로 경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이 단편들은 지금 세기의 본질적인 문학예술 양식이라고 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트레버가 남겨 온 독특한 발자국의 놀라운 기록이다. _《뉴욕 뉴스데이》
● 트레버는 섬세함과 정교함의 대가다. 그는 자신의 고독한 인물들의 거죽에 머무르면서 거죽 아래에 있는 도덕적 심리적 복잡성을 가차 없이, 그리고 연민으로서 폭로해 보인다. 그 이야기들은 그리스 비극의 깊이와 품위를 지니고 있다. _《워싱턴 포스트》
● 영어로 작품 활동 중인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 누구도 사회적 유형과 정서적 유대를 인상적으로 아우르는 트레버만큼 확신을 가지고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_《보스턴 글로브》
● 단편소설이란 문학 형태는 실제로 통달하기에는 어렵되 잘 메겨진 화살처럼 강력하다. 윌리엄 트레버는 의심할 여지 없는 이 분야의 대가다. _《오프라 매거진, 오》
● 윌리엄 트레버를 읽는 것은 지쳤을 때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당신은 그의 절제된 산문과 인간 생활에 대한 차분한 이해 이상의 좀 더 강하고 톡 쏘는 음료를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당신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다과를 제공하고 있음을. 그는 어떤 신파극이나 얄팍한 속임수 없이 관심을 사로잡는다. _《선데이 텔레그래프》
● 아름답고 엄격한 산문. 인물들은 간결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공감을 통한 위로를 안다. 이는 인간의 특성을 그의 글에 부여한다. _《새터데이 텔레그래프》
● 영미권에서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작가는 아일랜드계 영국인 윌리엄 트레버다. 셰익스피어와 관련지어 트레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주제넘어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는 이 비교를 타당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현대 작가다. _《글로브 앤드 메일》
● 한 번이라도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던 사람을 위한 교본, 이야기 읽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보물. _《USA 투데이》
● 트레버의 이야기들은 복잡하고 섬세한, 호흡하는 창작물이다. _《뉴욕 타임스》
● 이 소설들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각각의 아름다운 문장에서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있는 단어는 무엇 하나 없다. _《스펙테이터》
● 체호프에 대한 아일랜드의 응답. _《에드먼턴 저널》
● 윌리엄 트레버의 이야기는 슬프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 슬픔은 트레버의 세계에서는 즐거움이다. _《월 스트리트 저널》
● 우리 시대의 훌륭한 기록자. _캐럴 실즈
● 오늘날 쓰이고 있는 가장 섬세하고 세련된 소설. _존 밴빌
● 윌리엄 트레버 단편집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 책에 실린 작품에 견줄 만한 이야기를 단 한 편이라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게 죽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_줌파 라히리
●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이후 최고의 단편들. _그레이엄 그린
● 이 이야기들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견고하고, 정교하게 구성되었으며, 침통하고 가혹한 결론으로 확실히 향하기 때문이다. _윌리엄 보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