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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세계문학 단편선 15)

  • 저자 윌리엄 트레버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 역자 이선혜
  • ISBN 978-89-7275-713-9
  • 출간일 2015년 03월 25일
  • 사양 616쪽 | 145*207
  • 정가 16,000원

현대 단편소설의 계보를 잇는 이야기의 대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민한 관찰자, 윌리엄 트레버

엄마는 덫에 걸렸다. 아버지와 결혼했고, 생활비를 받기 위해서 아버지와 잠을 잤다. 엄마는 생활비를 아껴서 아침에 마실 진을 샀다. 아버지 역시 덫에 걸렸다. 아버지는 밤마다 문지기 유니폼을 입고서 집을 나섰다. 등이 안 좋은 해크니의 왕자. 아버지는 자신이 짓밟혔기 때문에 엄마를 짓밟았다. 엘리너가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위안을 얻으려고 질문을 한다면 엄마와 아버지는 과연 신경을 써 줄까?
엄마와 아버지는 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엘리너는 런던의 나뭇잎들이 황갈색으로 물들 때 자기를 멀리 데리고 갈 섬세한 손을 가진 남자는 없다고, 데니 프라이스의 두툼한 입술과 그에게서 풍기는 고기 냄새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수지 크럼의 아버지가 루크 부인과 잤고 리즈 존스의 아버지와 철도역에서 일하는 서인도 제도 짐꾼도 루크 부인과 잤다고, 루크 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엘리너가 자기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엄마와 아버지를 돕는다고 해도 두 사람은 할 말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화이트헤드 선생님이 이셔에 있는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밤에 홀로 눕는 것으로 이 모든 것과 이혼했다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엄마와 아버지는 엘리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 틀림없었다. 한 남자의 망가진 등 때문에 희생자로 살아가는 여자보다는 화이트헤드 선생님이 되는 편이 나았다. 모든 것이 반짝이는 방에서 화이트헤드 선생님은 엘리너의 엄마와 아버지보다 성공적으로 가식 속에 살았다. 버리고 싶던 것을 버렸으며 완벽한 남편감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화이트헤드 선생님은 혼자지만 완전했다.
「학교에서의 즐거운 하루」

 

브리디는 패트릭 그래디를 생각하면서 그의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는 지금 패트릭의 아이를 넷, 아니 일곱, 아니 어쩌면 여덟 명 낳은 어머니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울버햄프턴에 살면서 해가 지면,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남자를 돌보는 대신 극장에 가는 나날을 보낼 수도 있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그녀를 짓누르지만 않았다면 브리디는 사랑하지도 않는 도로 보수 인부의 결혼을 슬퍼하면서 길가 무도회장에 서 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두커니 서서 울버햄프턴에 사는 패트릭 그래디를 떠올리는 지금, 브리디는 잠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녀의 삶 속에는 농장에도 집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눈물은 사치였다. 눈물은 사료용 사탕무가 자라는 밭에 피어난 꽃이나 부엌방에 새로 바른 회반죽과 같았다. 아버지가 <숨은 재능을 찾아라>를 들으며 앉아 있는 동안에도 그녀가 부엌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옳지 않았다. 눈물을 흘릴 권리는 차라리 다리 하나를 잃은 아버지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깊은 고통 속에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았고 그녀를 걱정했다.
「로맨스 무도장」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혼자 사는 이상한 남자다. 사람들은 내가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채 자라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나처럼 자란 사람은 병적인 상상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 해변 도시에서, 아니 이곳을 벗어난 어디에서든 그녀만큼 내 눈앞에 실재하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를 위해 살면서 나는, 내가 소망하는 대로 그녀를 소유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절망으로 보낸다. 나는 환영을 향한 육욕을 품고 있다. 이런 내 욕망은 신이 내게 보내는 조롱이며 내가 품은 사악하기 그지없는 생각을 처단하려고 신이 내리는 적절한 벌이다.
「페기 미한의 죽음」

 

말비 부인은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킹 부부가 함께 있을 때에도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킹 부부에게 부엌의 본래 색은 자신이 직접 고른 것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얼룩을 문질러 닦는 교사에게 카펫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성가신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페인트칠을 하도록 아이들을 부엌에 들여놓고서 뒤늦게 법석을 떤다면 킹 부부는 그녀를 성가시게 여길지도 몰랐다. 그녀가 성가신 존재가 된다면 교사와 킹 부부는 한편이 될 테고, 부시 신부와 미스 팅글 그리고 그로브 부인과 할버트 부인마저도 그들과 같은 편이 될지 몰랐다. 그들은 지금 벌어진 일이 모두 그녀의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부엌으로 페인트를 갖고 들어간 아이들이 당연히 그 페인트를 사용할 것임을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기들끼리 합의를 볼지도 몰랐다.
「결손가정」

 

1960년대는 지나갔지만 그 떠난 자리에는 마리와 나눈 사랑의 경이로움이 남았다. 그가 마리와의 관계를 털어놓았을 때 힐다가 드러낸 멸시도, 킬번의 방 두 개짜리 더러운 아파트도, 전혀 즐겁지 못했던 리딩에서의 생활도 마리와의 사랑이 선물한 경이로움을 퇴색시키지 못했다. 그레이트 웨스턴 로열 호텔로 마리와 함께 걸어가던 길, 호텔 바에서 마실 능력이 안 되었던 술, 따로 위층으로 올라갈 때 그들이 보인 세심하게 계획된 태연함. 이 모든 것이 노먼에게는 기적적으로 현실이 되었던 환상처럼 여겨졌다. 호텔 2층의 목욕탕은, 속삭임과 애무로 가득 찬 목욕탕은 이 환상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노먼이 날마다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접하는 머나먼 곳들은 그가 그 장소들에 대해서 어떤 본드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관능적인 젊은 여인에게 속삭여 이야기할 때 마법의 기운을 얻었다. 노먼은 이따금 지하철에서 눈을 감고는 그의 가슴속에 남은 크나큰 기쁨을 맛보면서 섬세한 줄무늬가 있는 대리석과 거대한 놋쇠 수도꼭지 그리고 두 사람이 충분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욕조를 떠올리고는 했다. 이따금 그의 귓가에는 어렴풋한 음악 속에 섞인 현악기를 퉁기는 소리와 비틀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틀스는 엘리너 릭비를 비롯해 그 당시의 여러 인물들을 찬양한 것처럼 목욕탕에서의 사랑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 시절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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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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