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민중예술을 대표하는 흑인성의 정수 ‘솔(영혼)’을 최초로 긍지 높게 노래함으로써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존경받는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의 단편선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스무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휴스는 제임스 웰든 존슨, 클로드 매케이, 카운티 컬른 등과 더불어 1920년대 흑인들의 문화적 저항운동의 정점이었던 할렘 르네상스를 빛낸 작가였다. 그는 흑인 영가에서 찾아낸 ‘솔’을 블루스와 구어체적 연설, 흑인 풍속 등에 리듬감 있는 시로 결합한 ‘재즈 시’의 시인이었고, 열여섯 권의 시집뿐만 아니라 두 권의 소설, 일곱 권의 단편집과 자서전, 논픽션, 어린이 책, 역사책 및 수십 편의 극본과 오페라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글을 남기면서 ‘할렘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렸다. 세네갈의 흑인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는 휴스를 가리켜 “시인으로서 가장 자연 발생적이고 표현에 있어서 가장 흑인답다”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비평가 헨리 루이스 게이츠가 “스털링 브라운, 조라 닐 허스턴, 랠프 엘리슨, 토니 모리슨과 같은 최고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문학 전통의 대부분은 휴스의 토착어 변형에서 생겼다”라고 평가할 만큼 할렘 르네상스 시기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던 이 작가는 현대 미국 흑인 문학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문호로 꼽히고 있다.
휴스는 자신의 문학 인생의 시작에 대하여 “나는 고정관념의 희생자였다”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링컨 문법학교 시절, 영어 교사는 그를 시 쓰기 반에 선택했는데 그것은 흑인에게는 타고난 리듬이 있다는 백인의 생각에서 한 일이었다. 비록 이렇게 들어선 문학의 길이었지만 그의 글쓰기 재능은 일찍이 꽃피웠다. 그가 불과 열여덟 살에 쓴 기념비적인 서사시 「흑인이 강을 말하다」에서 그는 인류 문명과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나타내며 흑인의 흑인다움을 선언하는, 그의 평생에 걸친 문학적 노정을 암시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자 한 그의 바람은 그러나 흑백 혼혈인이면서도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인물의 전형이었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피하여 멕시코로 도망쳐 온 아버지는 아들이 미국에서 흑인 작가로 사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결국 휴스는 아버지와 오랜 갈등 끝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에 곧 실망하였다. 그가 그곳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재즈 시대의 중심지 할렘에서 벌어지는 생기 넘치는 생활뿐이었다. 컬럼비아 대학 자퇴 후 잠시 화물선에 올라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 대륙에 도착해서도 아프리카 동포들로부터 ‘가짜 아프리카인’ 심지어는 ‘백인’ 취급을 당하는 일을 경험하면서 휴스는 할렘을 터전으로 삼아 미국의 흑인으로서 가지는 인종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답을 글로 써냈다.
휴스는 자신의 뿌리를 예찬함과 동시에 그 경계성을 넘어 ‘미국인’ 아니면 ‘흑인’이라는 두 개의 영혼으로 분열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새로운 정체성을 추구했다. 재즈와 블루스를 저변으로 한 흑인 대중예술과 유럽 문학에서 영향을 받은 고급예술이라는 할렘 르네상스의 두 가지 전통 가운데 자신은 ‘미국적인 것’에 서 있다고 한 그는 흑인뿐만 아니라 백인들도 끌어안는 문학을 통해 흑인 정체성의 외연을 넓혔다. 젊은 시절에 화물선 승무원, 호텔 벨 보이, 카페 청소부, 심부름꾼 등 온갖 하층 직업을 전전했던 그는 특히 하층민들의 생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변덕스러운 흑인 중산층이 창피하고 품위 없다고 여겼던 노예들의 언어 유산에서 길어 낸 토착어로써 할렘 하층민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 냈다. 그가 남긴 짧고 재기 넘치는 수많은 단편들은 때로는 비참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그들의 일상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유머와 아이러니를 다루는 탁월한 솜씨, 기발한 인물 묘사와 미국적 삶에 대한 통찰이 결합된 작품들로 높이 평가받는다.
휴스는 자서전에서 자신이 “흑인에 대해 글을 쓰고 흑인을 위해 글을 썼다”라고 말했다. 흑과 백의 경계를 넘고자 한 그의 작품에 백인들과의 강경한 투쟁 노선을 주장한 몇몇 급진적인 흑인 지식인들은 백인과 타협한다는 이유로 비판했지만, 그는 작품들에서 같은 현실에서도 미국 흑인들의 경험은 백인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휴스는 무엇보다 흑인 나아가 어떠한 존재도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녔음을 말하고 싶어 했고, 그럼으로써 이방인의 나라 미국에서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진정한 미국의 흑인 작가였다. 불평등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으로, 아프리카 문화를 깊게 성숙시킨 인내야말로 편견을 이기고 흑인들의 꿈을 이뤄 낼 수 있게 하리라고 노래한 그의 작품들은 고된 일상에서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달빛 아래의 몸뚱이들
눈부신 그 사람
꼬마 숫총각
정글의 루아니
경매 부쳐진 소년
떳떳한 코라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이유가 뭐야?
늙은 스파이
핏줄
길 위에서
어떤 용기
교수
대부흥회
천사들의 문제
비극의 목욕탕
저치를 혼내 줘요
아프리카의 아침
정말 그래요
어느 금요일 아침
천국에서 지옥으로
버지니아의 조찬
누가 누구인 척을 하는가?
집으로 가는 길
신문에 이름이 실리다
공통점
마담 상하이
부부가 운영하는 하숙집은 피할 것
분칠한 얼굴들
손수레 상인
루주를 더 발라
후원자
고마워요, 아줌마
난쟁이 여인의 슬픔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초가을
특등실
총
마지막 바람
사랑을 나눌 장소
어느 부활
옮긴이의 말—예술적 상상력으로 흑인 정체성의 외연을 넓히다
랭스턴 휴스 연보
랭스턴 휴스(Langston Hughes, 1902~1967)
1920년대 흑인들의 문화 운동인 할렘 르네상스를 이끈 흑인 문학의 거장 랭스턴 휴스는 흑인 민중예술을 대표하는 ‘솔(영혼)’을 최초로 긍지 높게 노래한 작가로, 오늘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신적 아버지로 존경받는다.
혼혈인 두 부모는 휴스가 어릴 때 이혼했다. 흑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로 흑인들의 열등감과 패배감이 짙었던 20세기 초, 그는 외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조상들의 구전 전통을 익히고, 자유를 향한 그들의 투쟁을 들으며 아프리카 민족의 자부심을 가슴에 새겼다. 열여덟 살에 아버지가 있는 멕시코로 향한 기차가 미시시피 강을 건너던 도중 그는 서사시 「흑인이 강을 말하다」를 썼다. 이는 훗날 흑인 문학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인류의 여명기에 고고한 문명을 이룬 흑인의 역사를 되새기며 노예가 아닌 자유민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다진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종적 편견에 부딪히자 자퇴하고 할렘으로 들어갔다.
휴스는 흑인 영가에서 찾은 ‘솔’을 블루스와 재즈의 음률에 담아낸 ‘재즈 시’의 시인으로 가장 유명해졌지만, ‘할렘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정도로 소설, 극본, 에세이, 전기, 평론, 역사책, 오페라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글을 썼다. 특히 흑인의 관점에서 본 하층민의 생활을 다룬 짧고 재기 넘치는 많은 단편을 남기면서 ‘할렘의 오 헨리’에 비유되기도 했다. 주로 반자전적인 그의 단편들은 유머와 아이러니를 다루는 탁월한 솜씨, 토착어에 대한 애정, 기발한 인물 묘사와 미국적 삶에 대한 통찰이 결합된 작품들로 높이 평가받는다.
그는 수많은 흑인 문학 선집을 출간함과 더불어 흑인을 위한 극장들을 세웠고, 미국 전역에서 시 낭송회를 열어 흑인 문학을 알렸다. 또한 시민운동 조직과,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로 참전하는 등, 일생 억압받는 이들의 인권과 자유, 정신적 고양을 위해 투쟁했던 위대한 민중의 작가였다.
옮긴이 오세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한 뒤 금융업계에 종사하던 중에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 MBA를 마쳤다. 옮긴 책으로 『제임스 서버』 『당신 없는 일주일』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펭씨네 가족』 『여자라면 꼭 가봐야 할 100곳』 『청춘을 위한 기독교 변증』 등이 있다.
본문에서
피아노에 앉은 여인에게 백인 여인의 탄식이 들려왔다. “이게 너를 가르치기 위해 내가 수천 달러를 투자한 결과란 말이니?”
“아니에요.” 오시올라가 자르듯 말했다. “이건 제 거예요…… 들어 보세요! ……얼마나 슬프고도 쾌활한 소리인지. 우울하면서도 행복하고—웃으면서 눈물이 흐르고…… 얼마나 여사님처럼 희지만 나처럼 검은지…… 얼마나 남자 같으면서…… 얼마나 여성스러운지…… 피트의 입술처럼 따뜻한지…… 이게 지금 제가 연주하고 있는…… 블루스예요.”
엘스워스 여사는 얼어붙은 듯 자리에 앉아서 오시올라가 땅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북소리처럼 깊은 저음을 연주할 때 값비싼 페르시아산 화병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백합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연주하는 블루스」, 111쪽
“미국은 니그로들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베풀어 왔어요.” 미스터 챈들러가 말했다. “그런 혜택을 받고 미국을 파괴하려는 행동을 할 리가 없죠.”
브라운 박사는 머리를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박사님의 저서 『편견의 사회학』 중에서,” 불윅 박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가장 공감한 곳은 결론 부분이었습니다. 우리 미국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기독교 도덕률과 정의라는 분명한 원칙에 교수님이 호소를 하는 그 명장면 말이죠.”
“아, 네.” 박사는 연신 그의 검은 머리를 조아렸다. 연봉 육천 달러를 받으면 그는 식구들을 일 년에 세 달 동안 자신들이 니그로라고 느끼지 않아도 좋을 남아프리카로 데리고 갈 수 있을 것이었다. “맞습니다, 불윅 박사님.”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두 인종의 가장 좋은 점들이 기독교의 형제애로 뭉쳐질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저도 박사님만큼이나 확신합니다.”
“정말 아름다워요.” 챈들러 부인이 말했다.
“실제적인 방법이기도 하지.” 그녀의 남편이 말했다.
-「교수」, 176~177쪽
미스 오셰이가 말했다. “미술 위원회가 네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계획을 바꾸었단다.”
낸시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슴에 들여놓을 공기가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위원회에서 보내온 편지가 있어, 낸시.” 미스 오셰이가 편지를 들어서 마지막 구절을 그녀에게 읽어 주었다.
“올해부터는 이 시 안에 있는 여러 고등학교들을 임의로 선정하여 상을 주는 것이 더 현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번 경우, 선정된 학생이 흑인이라는 것을 우리 위원회가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당혹스러움을 진즉에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이 지역의 예술 대학에 흑인 학생이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갑자기 한 명이 입학을 한다면 모두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낸시 리 존슨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에게 미술가 클럽의 상을 수여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스 오셰이는 편지를 내려놓았다.
“낸시 리,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무척 유감이구나.”
“하지만 제 연설은,” 낸시 리가 입을 열었다. “제 연설은……” 말이 그녀의 목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미국에 관한……”
미스 오셰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고 봄을 맞아 교정에 핀 튤립을 창밖으로 내다봤다.
-「어느 금요일 아침」 261~262쪽
엄마는 눈을 감은 채,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 머리를 높이 들고 주님 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이제 찬양을 하는 사람들 쪽에 머물죠!
춤을 추면서 그녀는 마치 모든 세상의 근심을 던져 버리기라도 하듯 두 손을 가슴으로부터 하늘을 향해 올렸다.
바로 그 순간 파키즈 씨의 차 안에 있던 백인 여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존, 정말이지 웬만한 쇼보다 더 재미있어요!”
그녀의 웃음소리를 듣자니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춤을 추며 추임새를 넣고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어쩌면 쇼를 보는 것보다 나은 구경거리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비웃을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백인들이 말이다.
나는 버드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 자신도 그동안 추임새를 넣는 사람들을 얼마나 비웃었는지, 우리의 부모를 바라보며 미쳤다고 얼마나 조롱했는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속 깊은 구석에서는 왜 사람들이 대부흥 집회에 몰려오는지 알고 있었다. 일평생 백인들을 위해 일을 해 온 그들은 “찬양을 하는 사람들 쪽에 머물 수 있다”고 믿어야만 했다.
-「대부흥회」, 186~187쪽
우리는 모두 생선을 주문한 후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얼마나 많은 니그로가 미국 전역에서 백인 행세를 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들로 백인 친구들을 놀라게 만들려 했다. ‘에파트 르 부르주아’ 정신에 입각해서 우리가 포위한 백인 커플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중간에 백인 여인이 우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말했다. “저 있잖아요, 이 말은 다른 데서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만, 나하고 우리 남편도 사실은 백인이 아니에요. 지난 십오 년 동안 우리도 백인인 척하고 살아왔죠.”
“뭐라고요?”
“우리도 흑인이라고요, 당신들처럼.”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백인인 척하는 게 돈벌이에 훨씬 도움이 되거든요.”
그 말을 들은 우리는 기절초풍을 할 지경이었다. 칼렙도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는 이제까지 백인 친구들에게 할렘을 구경시켜 주고 있노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흑인이라니!
칼렙은 절대로 욕을 하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염병할!”
-「누가 누구인 척을 하는가?」, 278~2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