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의 유머가 사회 표면에 드러난 관습을 비평거리로 삼을 뿐이라면 제임스 서버는 좀 더 심오하다. 그의 글과 그림은 우리가 직면한 환경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생생하게 포착해 낸다. 서버의 작품은 이 시대를 기록한 문서로 남을 것이다.
-T. S. 엘리엇
2013년 벤 스틸러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개봉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원작자로 많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기발한 상상력의 대가로 강렬하게 이름을 알린 제임스 서버의 단편선이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열아홉 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서버는 『샬롯의 거미줄』을 쓴 E. B. 화이트, ‘교외의 체호프’라 불린 소설가 존 치버 그리고 <애덤스 패밀리>의 만화가 찰스 애덤스와 함께 192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까지 약 20년간 《뉴요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당대 가장 인기 있는 유머 작가이자 만화가였다. 그는 전 세계에 파급되는 20세기 미국 대중문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으며, 1930~1940년대 잡지의 논조와 시각적 스타일을 정의했고, 커트 보니것, 조지프 헬러, 존 업다이크, 프랜 레보위츠 등의 후배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제2의 마크 트웨인’이라 일컬어졌던 그의 작품들은 미국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그를 국민 작가의 반열에 올렸고, 그의 단편소설과 삽화, 동화, 에세이 등을 모은 선집 『서버 카니발』은 오늘날 미국의 현대 고전으로 꼽힌다.
서버는 스스로를 ‘단편 작가’라 지칭하였는데 그가 쓴 대다수의 작품은 영어로 10페이지 안팎의 짧은 글들로 다른 단편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하여도 상당히 짤막한 편이었다.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작품은 간결해야 한다고 믿었기에 한 번도 장편을 쓴 적이 없었으며, 많은 작가가 긴 글을 쓰다가 좌절에 빠진다고 하면서 자신은 장편 쓰기를 시도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한 기자로 글쓰기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그 영향으로 단어 선택에 적확했고 문장의 쓰임에 낭비가 없었다. ‘Which’라는 관계대명사 하나에 대해서도 장문의 칼럼을 쓸 만큼 글쓰기에 까다로웠지만 그는 어떠한 딱딱한 주제들을 다룰 때조차 늘 특유의 촌철살인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글을 썼다.
흔히 미국식 유머란 어떠한 우울하고 힘겨운 상황도 웃음으로 풍자해 내는 재치와 그 안에 담긴 깊이 있는 통찰을 의미하는바 서버는 그러한 미국식 유머의 전형이자 그 틀을 마련한 모범이었다. 그가 유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주 어릴 때부터 비극적이고 암울한 상황에 처했던 자기 자신이었다. 서버의 인생 그리고 작품 세계에서 가장 주목할 사건은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던 중 어이없게도 형이 쏜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한 일이었다. 소심하고 예민하게 자랄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거시적인 사회나 타인의 삶보다는 자기 내면의 우울함과 일상의 고단함, 불안, 스트레스, 관계 맺기의 어려움 등이 주요한 관심사였다. 그는 그것들을 타고난 감수성으로 세밀하게 포착해 내 짧고 단순하게 쓰고 그림으로써 무한한 상상력의 여백을 제공했고, 이러한 서버를 가리켜 평자들은 ‘풍자적인 미니멀리스트’라 부른다.
이번 단편선에는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집에서 가려 모은 스물일곱 편과 서른아홉 살에 쓴 자서전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의 아홉 작품을 모두 포함하여 총 서른여섯 편을 수록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던 혼란한 시절에 미국 중서부 지방에서 태어난 그는 남북전쟁의 복판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외할아버지와 성공한 정치인을 꿈꾼 소심한 아버지, 그가 “타고난 코미디언”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유쾌했던 어머니와 저마다 개성이 독특한 친척들과 개들에 둘러싸여 자랐다. 서버의 많은 작품에는 그가 직접 겪었던 일과 더불어 작가 자신을 모티프로 한 주인공이나 화자가 등장하기에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은 그의 영감의 원천과 그 세계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다.
여기에 실린 단편들은 크게 부부 관계에 대한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한 통찰과 엉뚱한 현대 도시인들에 대한 스케치 그리고 사실적이고 생생한 공상과 꿈에 대한 이야기들로 나눌 수 있다.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진 사람’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사전에 등재된 ‘월터미티’로도 유명하듯이 서버에게 있어서 지친 현실을 도피할 수 있게 해 준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불분명한 시야로 세상을 살아갔던 작가에게는 남들과 다른 세상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에게 있어 현실과 공상의 모호한 경계는 사람들이 위선이나 가식으로 포장해 감추고자 하는 그들 무의식의 본질이 더 잘 눈에 드러나게 했다.
인생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끌어 가는 사소한 사건들과 삶의 아이러니들을 위트 있게 그려 낸 서버의 초상은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흥겨운 웃음과 잔잔한 감동 뒤에는 지금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진한 여운이 남을 것이다.
● 나의 문학적 열정의 시작은 제임스 서버이다. 그의 작품은 내게 미국적인 목소리와 유머가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_ 존 업다이크
● 서버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서버 자신이 새롭게 발견한 유형이다. 그가 그들을 그리기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존재들을 현실 세계에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서버의 그림을 한번 보고 나면 당신 친구가 보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척 정직한 사람이라면, 그가 당신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볼지도 모른다. _ 아서 밀러
● 대부분 작가들은 서버의 성공적인 열 개의 작품들 중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회고록, 우화, 기사, 풍자, 환상의 세계, 평론과 동화를 썼으며, 지난 20년 동안 그것들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전 세계에 퍼져 나간 수천 점의 삽화는 최정상에 올랐다. _ E. B. 화이트
● 이 낯선 사람들은 서버가 우리의 마음속에 상상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장난꾸러기나 패배자 혹은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 사람이다. 그들 모두는 마치 굽지 않은 쿠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_ 도로시 파커
● 『서버 카니발』은 아마도 지금까지 씌어진 가장 짧고 우아한 자서전일 것이다. _ 러셀 베이커(《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퓰리처상 수상 작가)
● 희극은 서버가 선택한 영역이었고, 그럼으로써 그의 영향의 다양성은 의도적으로 제한되었다. 그러나 그 영역에서는 어느 누구도 서버보다 뛰어나게 글을 쓰지 못했다. 즉 언어의 천재성과 단어의 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감각으로 그는 누구보다 분명하고 유연하게 글을 써냈다. _ 맬컴 카울리(시인, 문학평론가)
● 미국에서 가장 혼란스럽게 재미있는 유머 작가. _ 《라이프》
● 서버는 지금껏 우리가 가진 어떤 작가보다 진정한 미국 작가였고, 우리의 국보이다. _ 《워싱턴 포스트》
에마 인치, 떠나다
토파즈 커프스단추 미스터리
이다 고모의 초상
운 좋은 사나이, 재드 피터스
나는 설리번 졸업생
그랜트 장군이 애퍼매톡스에서 술을 마셨다면
개에 대한 추억
편애
세상에서 가장 위대했던 친구
삶의 파괴적인 힘들
윈십 부부의 결별
아홉 개의 바늘
햄버거 몇 개
펠프스 여사
레밍과의 인터뷰
닥 말로
자전거를 탄 제독
쏙독새
맥베스 살인 미스터리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
그로비 선생님, 여기 잠들다
올림피와의 드라이브
총아
916호실에 투숙한 신사
흑백사진 속의 여인
말해야 하는 무언가
혼자인 사람은 방랑자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
침대가 떨어진 밤
밀어야 가던 차
댐이 무너진 날
유령 소동
한밤중의 경고음들
가정부들 이야기
개 조심
대학에서의 날들
징병검사
옮긴이의 말—공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꿈의 이면을 관찰한 작가
제임스 서버 연보
제임스 서버(James Thurber, 1894~1961)
“재담가는 타인을 희화화하고, 풍자가는 사회를 희화화하며, 유머 작가는 자신을 희화화한다”라는 재치 있는 명언을 남긴, 마크 트웨인을 잇는 20세기 미국 최고의 유머 작가 제임스 서버. 그는 일생 동안 종종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써냈다. 삼 형제의 둘째였던 그는 일곱 살 때 형제들과 빌헬름 텔 놀이를 하던 중 화살에 왼쪽 눈이 맞아 실명하였다. 시력 탓에 혼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경험은 기발하면서도 우울한 상상력을 키우게 했고, “타고난 코미디언”이었던 어머니와 유별난 가족의 영향은 유머라는 형식을 빌려 부조리한 일상에 대한 진지한 기록을 남기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서버는 《콜럼버스 디스패치》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며 밤에는 극단에서 뮤지컬 각본을 썼다. 《시카고 트리뷴》 《뉴욕 이브닝 포스트》를 거쳐 《뉴요커》에 입사한 그는 E. B. 화이트와 펴낸 첫 책 『섹스는 필요한가?』의 삽화를 그리면서 만화가로도 영역을 넓혔다. 서른아홉에 쓴 자서전 『제임스 서버의 고단한 생활』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단편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던 무렵, 오른쪽 눈마저 시력을 잃게 되어 그는 거의 장님이 되었지만, 천부적인 기억력으로 글쓰기 생활을 지속했다.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음식은 웨딩케이크”라는 자신의 우스갯말처럼 첫 번째 아내와의 불행했던 결혼은 서버의 작품에서 드센 여자와 소심한 남자로 자주 반영되었다. 그는 부부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통찰하는 많은 글을 썼다. 특히 평범한 현실과 달리 공상에서는 멋진 활약을 보여 주는 「월터 미티의 이중생활」은 대공황 이후 침체되었던 미국 남자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 ‘월터 미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후 ‘월터미티’는 ‘터무니없는 공상에 빠진 사람’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로 사전에 등재되었다. 한편 서버는 수십 마리 개를 기른 애견가로 개를 주제로 한 작품도 여럿 남겼으며, 말
년에는 동화와 각본에도 주력했다. 1961년에는 자신의 단편들을 엮은 뮤지컬 <서버 카니발>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위트 있는 필치로 미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준 그는 뇌수술로 인한 폐렴 합병증으로 1961년 11월 2일 뉴욕에서 “신이여 은총을…… 빌어먹을”이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오세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통역 장교로 복무한 뒤 금융업계에 종사하던 중에 회사의 지원으로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 MBA를 마쳤다. 옮긴 책으로 『당신 없는 일주일』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펭씨네 가족』 『여자라면 꼭 가봐야 할 100곳』 『청춘을 위한 기독교 변증』 등이 있다.
본문에서
다음 날 새벽, 쏙독새는 전날과 같은 시간에 밝아 오는 날을 가로지르는 메아리의 동심원을 그리기라도 하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킨스트레이는 꿈속에서 자신을 향해 굴렁쇠를 굴려 보내려는, 턱수염이 무성한 세 명의 사내에게 시달림을 당했다. 그는 거대한 대관람차에 올라타려 했는데 흔들리는 객실의 좌석은 헝클어진 침대들이었다. 발 대신 바퀴가 달린 뚱뚱한 경찰관이 그를 향해 굴러 오면서 소리를 질렀다. “윌파워윌, 윌파워윌, 휩푸어윌!”
눈을 뜬 킨스트레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새의 울음을 세기 시작했다. 한번은 쉰세 번을 쉬지 않고 새가 울어 댔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나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환한 빛처럼 쏙독새의 울음소리에는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그 소리를 계속 듣느니 무슨 고백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년 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160~161쪽, 「쏙독새」에서
나는 의아해서 그녀를 쳐다봤다. “그랬다니요?”
“전 잠깐이라도 맥베스가 왕을 죽였다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요.” 그녀가 대답했다. “맥베스의 아내도 그 일에 연루되지 않았을 거고요. 물론 그 두 사람이 가장 의심스럽기는 하겠죠, 하지만 그 두 사람은 절대로 죄가 없어요. 아니, 죄가 있어서는 안 돼요.”
“죄송하지만,” 내가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정말 모르시겠어요?” 미국 여인이 물었다. “누가 일을 저질렀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다면 책을 읽는 재미가 없을 거예요. 그런 짓을 셰익스피어가 할 리는 없잖아요? 제가 아는 바로는 ‘햄릿’이란 인물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셰익스피어가 맥베스라고 파악하기 쉬운 인물로 남겨 두었겠어요?”
나는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 넣으며 그녀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그럼 누가 의심스러웠죠?” 내가 불쑥 물었다.
“맥더프요.” 그녀가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 대답을 했다.
“세상에.” 나도 몰래 탄성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175쪽, 「맥베스 살인 미스터리」에서
[……] 차는 어딘가가 떨어져 나가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도 계속 움직였다. “Poussez le phare!” 나는 소리 질렀지만 “헤드라이트를 밟아요”라는 말이 도움이 될 리가 없었다. “아 아 아!” 올림피가 대답을 했다. 나는 시동을 끄고 핸드브레이크를 잡아당겼지만 차는 이미 멈춰 서 있었다. 차 밖으로 나온 우리는 들이받은 전신주와 우리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차의 오른쪽 흙받기가 구겨진 채 찢겨 있었고 뒤쪽 흙받기도 파손되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나를 쳐다보는 올림피의 얼굴 표정이 너무 초췌해서 한마디 위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Il fait beau(좋은 날씨입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프랑스어는 그게 다였다.
-210쪽, 「올림피와의 드라이브」에서
그녀가 좋아하던(너무 과한 표현을 쓰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의사 중의 한 명인 던햄 박사는 1894년 12월 8일, 오후 느지막이 파슨스 거리에 있는 한 산모의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나는 올브라이트 여사 덕분에 그 집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공연히 말만 고생시키셨구려.” 그녀가 마침내 나타난 의사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당신이 오지 않았어도 잘 처리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한 가지 미심쩍은 점이 있었는데 그것을 의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사내 아기치고는 머리에 너무 숱이 많던데 그런 애들이 좀 지능이 떨어진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던햄 박사는 언제나처럼 그 문제를 잠시 신중하게 고려해 보는 것 같았다. “내 생각엔 이 아기의 경우보다 관자놀이 쪽에 난 머리털이 더 두꺼운 경우에만 그 이야기가 맞는다고 봐요.”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나라면 아기 엄마한테는 이런 이야기를 안 할 거요.” 그가 덧붙였다.
다행스럽게도 강보에 싸여 누워 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해도 아직 이해를 못 했을 것이다.
-245쪽, 「흑백사진 속의 여인」에서
“물러서지 못할까, 이 비겁한 개들!” 할아버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서 다시 대오에 합류하란 말이다, 이 간이 콩알만 한 짐승들아!”
그 말과 함께 할아버지는 치터를 발견했던 경찰의 뺨을 손바닥으로 갈겼고, 경찰은 뻗고 말았다. 다른 경찰들은 방에서 퇴각하려 했지만 할아버지보다 빠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자빠진 경찰의 권총집에서 총을 꺼내 한 방 쏘았다. 총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서까래에 금이 갈 정도였고, 방 안이 연기로 가득해졌다. 경찰 한 명이 욕을 했다가 팔에 총을 맞았다. 우리는 간신히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할아버지가 나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한두 방 더 총을 쏘고는 다시 잠을 자러 갔다.
“우리 할아버지세요.” 내가 조에게 숨 가쁘게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아저씨들을 탈영병으로 생각해요.”
-318쪽, 「유령 소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