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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 해밋 (세계문학 단편선 04)

  • 저자 대실 해밋 지음
  • 총서 세계문학 단편선
  • 부제 중국 여인들의 죽음 외 8편
  • 역자 변용란
  • ISBN 978-89-7275-667-5
  • 출간일 2013년 11월 08일
  • 사양 620쪽 | 145*207
  • 정가 16,000원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챈들러, 스티븐 킹, 마이클 코널리 등이 극찬한 미스터리 장르 최고의 작가이자, 하드보일드 스쿨의 영원한 교장 대실 해밋

 

“우연히 내가 갖게 된 정직한 품성이라든지 고용주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제쳐 두겠습니다. 그런 자질은 당신이 의심할 수도 있으니 던져 버리자고요. 내가 탐정인 이유는 어쩌다 보니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월급은 꽤 괜찮은 편이지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을 수도 있겠죠. 한 달에 100달러만 더 번다고 해도 1년이면 1,200달러에 이릅니다. 지금부터 예순 살 생일까지 햇수를 계산해 보면 2만 5천 내지 3만 달러죠. 그런데 지금 나는 탐정이라서 좋고 일이 좋아서 그 2만 5천 내지 3만 달러를 퇴짜 놓는 사람이에요. 일을 좋아하게 되면 가능한 한 그 일을 잘하고 싶어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요. 그게 바로 나예요. 그 밖에 난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즐기지도 않고, 그 밖의 것들을 알거나 즐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돈의 액수로는 도저히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요. 돈이 좋긴 하죠. 나도 돈에는 유감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18년간 나는 사기꾼들을 뒤쫓고 수수께끼를 풀면서 재미를 느껴 왔고, 또 사기꾼들을 잡아들이고 사건을 해결하면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그건 내가 잘 아는 유일한 스포츠고, 그런 삶을 20년쯤 더 하게 될 미래보다 더 유쾌한 삶은 상상이 되질 않아요. 난 내 미래를 망치지 않을 겁니다!” - 「쿠피냘 섬의 약탈」

 

큰 키에 통통한 몸, 하얀 콧수염을 기르고 할아버지처럼 온화한 연분홍색 얼굴에 테 없는 안경 너머로 하늘색 눈동자를 빛내는 이 칠십대 사나이가 바로 나의 상관인데, 그는 사형집행인의 밧줄보다도 더 온기가 없는 인물이다. 콘티넨털 탐정사무소를 위하여 50년간 범죄자를 쫓아다닌 끝에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명석한 두뇌와 함께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똑같이 부드러운 말투와 온화한 미소로 대하는 가면 같은 정중함뿐이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선 좋은 상황이 곧 나쁜 상황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의 수하에서 일하는 우리는 그의 냉담함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우리는 그가 7월에도 고드름을 뱉어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고, 우리들끼리는 그를 본디오 빌라도라고 불렀다. 그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일을 우리에게 맡겨 십자가를 지게 하면서도 정중히 미소를 짓기 때문이었다. - 「크게 한탕」

 

2층에선 별로 운이 없었지만, 3층에서 세 번째 문의 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려 보자 고리가 돌아가며 문이 살며시 열렸다. 약간 벌어진 문틈 앞에서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코골이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짝에 손바닥을 대고 몇 뼘 더 문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 안은 정직한 정치인의 미래처럼 깜깜했다. 나는 문설주 너머로 손을 뻗어 벽지를 더듬거리다 전등 스위치를 찾았고, 불을 켰다. 천장 중앙에 매달린 두 개의 알전구가 초라한 방 안과 침대에 누워 죽어 있는 아르메니아인 청년의 몸에 흐린 노란색 불빛을 쏟아 냈다. - 「크게 한탕」

 

나는 머릿속에서 어리둥절한 느낌을 밀어내고 지능이 자리 잡을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어리석은 상황은 도무지 말이 되질 않았다. 이런 식으로 일이 풀리는 경우는 절대로 없었다. 멍청한 말라깽이 노인이 한쪽 구석으로 사람들을 몰아다 주면, 구석에 서 있다가 기계처럼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바보짓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 「크게 한탕」

 

우선 나는 그를 신체적으로 평가했다.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키가 크고 몸집이 육중한 이 남자는 과거보다는 민첩성이 떨어졌을지 몰라도 강인하고 튼튼했다. 턱이 넓고 코는 짧고 불그레한 얼굴은 주먹깨나 맞아 본 듯했다. 그는 뚱뚱하진 않았지만 몸을 단련하기엔 너무많이 먹고 마셔 댔으니 허리띠 주변을 물고 늘어지면 좀처럼 견디지 못할 터였다. 신사의 몸이라기엔 거슬리는 게 너무 많았다.

정신적으로도 그는 헤비급이 아니었다. 그의 혁명은 조악한 계획이었다. 혁명이 완수된다면 주된 요인은 반대 세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상상컨대 그의 의지력은 대단하겠지만, 나는 그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두뇌가 달리는 사람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하려면 의지력을 개발해야 한다. 그가 배짱을 갖추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관객 앞에서는 그럴듯하게 포장할 줄 알 거라 추측했다. 그러한 행동은 대부분 관객 앞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두운 구석에 몰리면 약해질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국왕 놀음」

 

 

거구의 사내는 금고 털이범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전역에서 그를 쫓고 있었다. 금고 털이범의 본능은 기차를 이용해 문제를 피해 달아나려고 할 것이다. 화물 열차 기착지는 도시의 이쪽 외곽에 있었다. 혹시 임기응변에 뛰어난 작자라면 멀리 달아나는 대신 납작 엎드려 근처에 몸을 숨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아마도 마켓 가를 아예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숨어 있다면 내일이라도 그를 잡아낼 가능성은 아직은 있었다. 그가 멀리 달아날 계획이라면 지금 잡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다. - 「파리 잡는 끈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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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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