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곳에도 머무르지 않는 남자, 지구라는 별에 잠깐 투숙했다가 떠난 남자, 떠남의 모든 의미를 완성시킨 남자, 파트릭, 그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아무 곳에도 머무르지 않는 남자, 지구라는 별에 잠깐 투숙했다가 떠난 남자, 떠남의 모든 의미를 완성시킨 남자, 파트릭. 파트릭은 프랑스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 캉의 한 원룸에 살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결정적’으로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카지노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떠난다는 마음은 확고했지만 아직 어디로 어떻게 떠날 것인지 구체적으로 수립된 계획은 없다. 그럼에도 미래에 있을 여행을 위한 그의 준비는 ‘신중’하고 ‘완벽’에 가깝다. 가방매장에서 하루를 꼬박 서성거려 구입한 여행가방, 세계 각지의 여행 안내서, 람보 스타일의 다목적 칼,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하든 유행병으로부터 안전을 기하기 위해 맞은 온갖 예방주사, 떠날 때 제출할 사직서에 이르기까지 치밀하다. 하지만 그는 40년 이상의 세월동안 여행 준비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술에 곤죽이 되는 걸 ‘사람답게 산다’고 표현하는 유일한 친구 파스칼이 재혼하는 것을 보았고, 이따금 사랑을 나누곤 하던 르블롱 씨의 아내 사란냐가 아들을 낳고 아들과 떠나버려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20년 넘게 새집처럼 세들어 있던 원룸을 비워주고 호텔에 투숙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여행 경비로 모아둔 21만 유로를 자신이 일하던 카지노에서 한번에 없애버리고 호텔 방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유해는 그의 아들, 그러니까 사란냐가 낳은 사내아이가 유전학자가 되어 돌아와 달나라 연구여행을 떠나는 길에 달에 뿌려준다. 그것으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완벽한 떠남을 완성시킨다.
■ 지은이 로랑 그라프 서른여섯 살이며 갈리마르 출판사의 자료 담당자로 일한다. 두 번째 소설 『그 사람도 우리와 한통속』 이후 문단의 주목받는 신예작가로 부상했다. 『매일 떠나는 남자』는 세 번째 소설 『행복한 나날』 이후 2005년에 발표한 최근작이다.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은 신랄한 풍자와 장난기가 넘치며, 서글프고 비장한 우리의 일상을 행복한 글 읽기로 바꾸어 놓는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2001년에는 프랑스 서점협회에서 수여하는 밀파쥬상을 수상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미얀마 등지를 여행하면서, 자아를 부정하는 종교인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출판 전문 잡지 <리르>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출판사 자료 담당으로 일하지만, 책은 거의 읽지 않고, 여행을 테마로 소설을 썼지만, 여행 가고 싶은 곳은 아무 데도 없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 지은이 양영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3대학에서 불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잠수복과 나비』『테오의 여행』『나의 연인 뒤라스』『서양과 불교의 만남』『행복한 나날』등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를 프랑스어로 옮겼다. ‘코리아 헤럴드' 기자, ‘시사저널' 파리 통신원으로도 근무했다.
■ 이 책은… 프랑스 문단이 주목하고 있는 신선한 신예작가 로랑 그라프의 네 번째 장편소설 『매일 떠나는 남자』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세 번째 소설 『행복한 나날』에 이어 소개하는 이 책은 2005년 신작이다. 『매일 떠나는 남자』의 주인공 파트릭은 프랑스에서 가장 우울한 도시 캉의 한 원룸에 살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결정적'으로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카지노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떠난다는 마음은 확고했지만 아직 어디로 어떻게 떠날 것인지 구체적으로 수립된 계획은 없다. 그럼에도 미래에 있을 여행을 위한 그의 준비는 ‘신중'하고 ‘완벽'에 가깝다. 가방매장에서 하루를 꼬박 서성거려 구입한 여행가방, 세계 각지의 여행 안내서, 람보 스타일의 다목적 칼,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하든 유행병으로부터 안전을 기하기 위해 맞은 온갖 예방주사, 떠날 때 제출할 사직서에 이르기까지 치밀하다. 그리고 그는 언제 떠날지 모를 일이므로, 원룸은 ‘정착'할 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집 안에는 가구는 물론 액자를 걸기 위한 못자국 하나 없다. 방 한구석에 매트리스를 펴고 잠을 자고, 음식은 패스트푸드를 ‘기내식'처럼 일회용 접시에 담아 즐겨 먹기 때문에 주방을 쓸 일도 거의 없다. 때문에 그의 집은 언제나 새집이다. 하지만 그는 40년 이상의 세월동안 여행 준비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아무 곳에도 가지 않는다. 술에 곤죽이 되는 걸 ‘사람답게 산다'고 표현하는 유일한 친구 파스칼이 재혼하는 것을 보았고, 이따금 사랑을 나누곤 하던 르블롱 씨의 아내 사란냐가 아들을 낳고 아들과 떠나버려 이별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20년 넘게 새집처럼 세들어 있던 원룸을 비워주고 호텔에 투숙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여행 경비로 모아둔 21만 유로를 자신이 일하던 카지노에서 한번에 없애버리고 호텔 방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유해는 그의 아들, 그러니까 사란냐가 낳은 사내아이가 유전학자가 되어 돌아와 달나라 연구여행을 떠나는 길에 달에 뿌려준다. 그것으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완벽한 떠남을 완성시킨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떠남은 한 차례였지만, 사실은 그는 매일매일 여행을 떠났던 여행 전문가였다. 그는 파스칼과 술을 마시며 권태의 끝까지 여행을 떠났고, 카지노를 찾았던 늙은 여인과 정사를 벌이며 낯선 욕망의 미로로 떠났고, 아버지의 죽음을 따라 생의 종착지까지 떠났었고, 또 다른 몸처럼 기거하던 원룸을 떠남으로 마지막 소유물로부터 떠났다. 결국 그는 매순간 떠나지 않았던 적이 없다. 그는 떠남으로써 생의 의미를 새롭게 하였으며, 떠남으로써 자신이 속한 ‘이곳'을 밝게 바꿀 줄 알았던 유쾌한 몽상가이자 방랑자였다. ■ 본문 중에서 트렁크는 한결 고전적이다. 트렁크는 전통적으로 여행자를 위한 액세서리이며 떠나가는 사람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단서이다. 손에 트렁크를 들고 있다는 것은 부릉부릉 발동이 걸린 오토바이에 올라앉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말이다. 더구나 요즘 나오는 모델에는 모두 바퀴가 달려 있으니 더 그럴 수밖에. ―본문 11p 나는 담배라고는 피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보카 치카나 마르가리타 혹은 타마타브 같은 곳의 카페에서 내가 담배를 피우는 상상을 자주 한다. 반바지를 입고서 말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의 내 삶은 기나긴 발아기에 불과했다. 이제 여행을 떠나게 되면 오랜 애벌레 생활을 끝내고 다시 태어난 파트릭을 만천하에 알리게 될 것이다. ―본문 63p 내 주검을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다, 세상의 다른 쪽 끝에서. 뱃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듯이, 배우들이 무대에서 죽듯이, 자동차 레이서들이 자기 자동차 핸들 앞에서 죽듯이. ―본문 77p 아무 곳에도 가지 않으면서, 목적지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떠나기. 잠깐 스치고 지나가듯 항상 떠나는 상태에 있기. 우리는 모두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이다. 떠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나는 많이 죽었다. ―본문 123p 우주복을 입은 다음 나는 처음으로 달 표면을 밟았다. 나는 느리고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내 양 팔은 진공상태에서 흔들거렸다. 기지 건물로부터 충분히 멀어졌을 때 나는 밀봉상자를 꺼내 장갑 낀 두 손으로 잘 잡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천체간의 무중력 상태 속으로 대단한 여행가이며 영원한 몽상가, 늘 다른 세계를 동경하던 모험가인 내 아버지의 뼛가루가 흩어졌다. 희뿌연 연기가 빛의 스펙트럼처럼 우주 공간으로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다. ―본문 1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