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속으로
칼럼니스트들과 코뮤니스트들은(나는 이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다) 하나같이 나를 매도하는데, 내가 돈을 밝힌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돈을 끔찍이 원한다. 내 아내는 돈이 필요하다. 내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돈을 쓴다. 누가 뉴욕에 있는 모든 돈을 내게 갖다 준다 해도 나는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 해 동안 새뮤얼 버틀러와 시어도어 드라이저와 제임스 브랜치 캐벌을 합쳐놓은 것보다 50만 부는 더 많이 예약 판매가 되는 책 한 권을 출간하고 싶다. 당신이 출판업자라면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
나는 출판업자다. 나는 어떤 책이든 출판한다. 나는 50만 부가 팔릴 책을 찾고 있다. 지금은 심령적인 분위기를 가진 소설들이 필요한 시즌이다. 가능하다면 나는 열렬한 물질 만능 주의자가 쓴, 부유한 사교가와 검은 눈을 가진 불량한 10대 소녀들에 관한—아니면, 사랑에 관한—얘기였으면 좋겠다. 사랑은 확실한 거니까—살아 있는 자가 하는 사랑, 그것이 필요하다.
_ 「차용증」(1920), 39~66쪽
밤하늘에 덩그렇게 뜬 달은 걸릴 것 하나 없이 곧장 그들을 비추었다. 피터 우즈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도 결국 당신은 내가 멀쩡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든 게 뭐였죠?” 하고 그가 물었다.
“글쎄요.” 그녀는 가만히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저한테 결혼해달라고 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어떤 여자든, 자신에게 프러포즈하는 남자를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할 순 없잖아요.”
“나보다 조금 더 멀쩡한 사람도 상관없었겠군요.”
“그렇지 않아요—달링.” 전에는 결코 써본 적 없던 말이 그녀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제가 제대로 미친 사람을 붙잡은 거 같아요.”
_ 「악몽」(1932), 110쪽
그가 어둠 속에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당신 마음을 바꾸었어요?—샌드위치인가요?”
“아뇨. 내 생각엔 바위인 것 같아요.”
“당신한텐 너무 높지 않아요?”
“아뇨—이건 마치 당신 같았어요. 꼭대기에서 일어났는데 마치 당신 어깨 위에 선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너무도 행복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어요.”
“알겠어요,” 하고 그가 묘하게 대답했다.
“왠지 당신이 절 내버려두지 않을 거란 걸 알겠더라고요. 당신이 계단을 올라왔을 때 별로 놀라지 않았잖아요.”
그는 그녀의 두 손을 그러잡고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
거기서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그날 밤 로비에서 애틀랜타가 듣지 않기를 원했던 얘기를 들었다. 그것은 칼리 딜래넉스가 한 시간 전 침니 록 기슭에서 시체로발견되었다는 거였다.
로저에게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준 계절이 다른 한 남자의 비극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칼리 딜래넉스에게는 뭔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뭔가가—불길한, 너무 오래 살아남도록 만든, 혹은 생활에 치여 너무 오래 죽어 있도록 만든, 그래서 깨어 있을 때조차 썩은 내를 풍기게 만든 뭔가가.
로저는 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그는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유용하고 가치 있는 것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별빛으로 인식되고, 100미터쯤 떨어진 방에서 편히 잠든 애틀랜타를 생각하면 잘된 일이었다.
_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1935/1936), 252~255쪽
그녀는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쯤 나이가 더 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또래 모든 아이들이 자라나듯 그녀 또한 삶을 일종의 우연한 사건으로, 어쩌다 보물 상자가 손에 쥐어진 것처럼, 아주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아버지가 발견했던 진주는 진주가 아니었지만, 그날 밤의 즐거움은 남미산 설치류 40마리의 가죽을 진짜로 발견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몇 달 뒤, 그웬은 악단들이 연주한 곡은 기억할 수 없었지만, 또 다른 진주에 대해서만큼은, 그것이 그녀의 개인용 묵주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기억했다—그건 어쩌면 그녀의 삶에 찾아든 죄책감이 깃든 승리로 느껴졌다. 물론 그녀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았지만. 거기에 대해선 디지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절대 시작하지 않는다고 했었나? 진주와 모피는 우연히 닥친 사건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그에게 축복의 섬을 향한 항해를 선사해준 것은 우연이 아니었고,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그에 대한 연민은 디지에게도 말하지 않았고—누구에게도 절대 말하지 않았다.
_ 「진주와 모피」(1936), 342쪽
사랑하는 사이일지도 모르는 남녀를 떼어놓게 된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자책하며 멋쩍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프랑스 사람들과 함께 팁과 조시는 두 개의 플랫폼에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앞선 객차들이 마음이라도 먹은 듯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아요?” 하고 팁이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전 괜찮아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제 모자를 망가뜨려놨어요.”
앞선 객차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멀리로 달아났다. 그녀는 뒤편 연결 통로에 프랑스인 경찰 주임과 함께 서 있었다.
“이곳 시골 풍경은 참 아름다워요,” 하고 그가 위로라도 하듯 말했다.
“그래요.” 그녀는 짤막히 동의했다.
“사랑에 빠지면 더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죠.” 그가 한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파리에서 친구분과 꼭 재회하실 겁니다.”
“이젠 절 혼자 있게 해주시면 좋겠네요.” 조시가 말했다.
그가 목례를 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조시 양.”
앞서 간 기차는 이제 조그만 얼룩처럼 멀어졌고, 그를 다시 보게 될 기회 또한 그렇게 작아져버렸다. 그녀는 우묵한 수프 접시 같은 펠트천에 담긴 찢어진 장미 리본들을 바라보며 외롭게 서 있었다. 팁과의 일들이 모두 그런 신세가 된 것 같았다.
_ 「엄지손가락의 장엄한 수난」(1936), 385~386쪽
그는 아직 위협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같은 세계 속에서 눈을 떴다. 여전히 5월이었다. 데이비스 사유지의 뜰에는 장미가 온밤을 꼬박 새워 흐드러지게 피어났고, 그 달콤한 향기를 현관과 창문 너머로 마구 뿌려댔다. 하지만 그는 전날 내내 그를 따라다니던 우스꽝스러운 절망감에 날카로운 반발심이 일었다. 내 상태에 대해 사실 그대로 전해 듣긴 한 걸까? 그리고 엘사 할리데이가 과연 오늘도 와줄까—그녀는 2년 전에 헤어진 그 여자가 맞을까? 안에선 불길처럼 신열이 오르고, 가슴에 비밀이 간직된 나는 예전의 나와 다른 나일까? (…)
—여긴 끝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야, 하고 그는 졸음에 빠져들며 생각했다. 엘사도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옆 풀 더미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_ 「그 집의 여자들」(1939), 516~543쪽
■ 차례
서문
편집자 노트
차용증 1920
악몽(어둠 속의 판타지) 1932
어떻게 해야 하나요 1933
그레이시의 바다 1934
동행 1935/1936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레이크 루어의 전설) 1935/1936
사랑의 휴식 1935/1936
침묵의 땅에 몰아친 폭풍 1936
진주와 모피 1936
엄지손가락의 장엄한 수난 1936
치과 진료 1936/1937
오프사이드 반칙 1937
그 집의 여자들(신열) 1939
루시와 엘시에게 경의를 1939
사랑은 아프다 1939/1940
커플 연대 미상
미공개 단편
발레 슈즈 1936
불길이 되어주신 당신께 1936
감사의 글
편집자 후주
참고 서적
■ 지은이_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1896~1940)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1896년 9월 24일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 재학 중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낭만적 이기주의자』를 여러 번의 개작 끝에 1920년 『낙원의 이편』으로 출간하여,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로 등극한다. 작품의 성공과 함께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진 그는 젤다 세이어와 결혼하고 사교계 명사로 떠오른다. 미국 동부와 프랑스를 오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에스콰이어》 등의 신문과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1925년,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이자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 된 『위대한 개츠비』를 출간하여 T. S. 엘리엇, 거트루드 스타인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문학적 천재’로 칭송받으며 전 문단에서 인정받는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미국 대공황과 함께 그의 삶도 추락하기 시작한다. 알코올 중독과 잦은 부부 싸움, 아내 젤다의 신경쇠약으로 인한 입원 등 신산스러운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는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1934년, 9년 만에 야심작으로 장편소설 『밤은 부드러워』를 출간하나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그는 빚을 갚고, 젤다의 병원비를 대고, 딸의 학비를 내기 위해 할리우드로 옮겨 가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며, 『마지막 거물의 사랑』을 집필하던 중 1940년 12월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는 『위대한 개츠비』를 포함한 장편소설 다섯 편과 160여 편의 단편소설을 남겼다.
편저자 앤 마거릿 대니얼
뉴욕의 뉴스쿨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뉴욕 타임스》와 《타임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 문학과 음악에 관한 글을 썼다. 미국 역사와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프린스턴 대학원생이던 그녀는 F. 스콧 피츠제럴드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그 이후부터 피츠제럴드 작품과 미국 모더니즘 문학에 대한 폭넓은 글을 출판하고 있다.
옮긴이 하창수
소설가이자 번역가. 198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청산유감」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91년 장편소설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2017년 단편소설 「철길 위의 소설가」로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지금부터 시작인 이야기』 『수선화를 꺾다』 『서른 개의 문을 지나온 사람』 『달의 연대기』 , 장편소설 『천국에서 돌아오다』 『그들의 나라』 『함정』 『1987』 『봄을 잃다』, 작가 이외수와의 대담집 『먼지에서 우주까지』 『마음에서 마음으로』 『뚝,』 등을 출간했다. 옮긴 책으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킴』 『소원의 집』 등이 있고 주요한 영미 작가들의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열정을 쏟고 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삶의 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문학
80년 만에 최초 공개되는 피츠제럴드의 숨겨진 단편 18편
- 각 단편의 초기 육필 원고와 타이핑 원고 이미지 수록
- 피츠제럴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진 40점 수록
- 피츠제럴드와 아내 젤다 · 에이전트 해럴드 오버 ·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등이
주고받은 편지 내용 수록
- 피츠제럴드 전문 연구가 앤 마거릿 대니얼이 전하는 각 단편에 얽힌 사연들
피츠제럴드라는 작가를 있게 하고, 혈기왕성한 20대 청춘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 『위대한 개츠비』라면, 이 유고 단편집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는 피츠제럴드 생애 마지막 10년의 이야기들이 집약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피츠제럴드가 경제적으로 힘들면서도 자신의 글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라며 쉽게 넘겨주지 않은 것들로 1930년대 당시 잡지사와 편집자들에게는 너무 어둡고 우울하다며 외면받았지만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피츠제럴드의 민낯과 진솔한 속내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매우 뜻깊은 작품들이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미출간 단편 18편이 담긴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2017)가 현대문학에서 출판되었다.
피츠제럴드는 생전에 컵받침이나 레스토랑 메뉴판에 휘갈기듯 남긴 메모부터 육필 원고와 평론가들의 서평까지 모두 모아두었는데, 이것이 프린스턴 대학 기록 보관소에 ‘피츠제럴드 문서’로 보관되어 있었다. 이 책의 편저자 앤 마거릿 대니얼은 그 자료 속에서 그간 잊힌 피츠제럴드의 미발표 단편들을 찾아냈고, 육필 원고와 타이핑된 여러 사본 중에서 피츠제럴드의 최종본이라고 확증된 작품 18편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구성했다.
1920년에 작가로서의 경이로운 출발을 보여준 뒤 피츠제럴드는 ‘재즈 시대의 기수’로 정형화되어갔다. 잡지사와 독자들은 그에게서 가난한 청년이 부유한 아가씨의 사랑을 얻어내고, 파티가 나오고, 아름답고 재기발랄한 신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대공황과 함께 1920년대가 저물고 30대에 남편에, 그리고 아버지가 된 피츠제럴드는 아내 젤다의 병으로 인해 갑자기 의사와 병원이란 세계로 함몰된다. 적잖은 고통을 겪으며 성숙해진 피츠제럴드는 이 시간을 예술로 환원시켜 다른 무엇보다도 온 힘을 다해 문학에 매진했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쓰려 애썼다.
이 책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는 피츠제럴드의 짧지만 뜨거웠던 20년의 작가 경력 중에서 후기에 쓴 것들로, 일시적인 인기나 문학적 유행과 타협하지 않은 작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기의 틀에 박힌 로맨틱한 이야기로부터 탈바꿈한 변화를 보여주는 도저한 실험 정신이 발휘된 사랑과 상실, 분열과 절망에 관해 이야기한 이 작품들은 80년 만에 최초로 공개되는 단편들인 만큼 새로운 피츠제럴드를 만나게 하는 귀한 작품집이다.
피츠제럴드의 숨결이 살아 있는 미출간 단편들
“보물 같은 이야기들, 우리는 운이 좋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에는 피츠제럴드의 미출간 단편 18편이 집필된 순서대로 실려 있다. 편저자 앤 마거릿 대니얼은 매 작품이 시작될 때 해당 작품이 어떻게 쓰이게 되었는지 소개하는 글을 붙였는데, 육필 원고나 타이핑된 원고 이미지와 피츠제럴드의 서신 내용을 활용해 독자들을 피츠제럴드의 글쓰기 과정 속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또한 이 단편들에 얘기된 많은 것들이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낯설 것이란 점을 감안해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는다. 피츠제럴드가 의미한 것과 관련이 있는 장소, 특정한 사건, 상황, 인물과 작가와의 관계를 편집자 후주에 부가적으로 설명해놓았다.
193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자주 아팠고, 빚에 쪼들렸으며, 젤다가 입원한 요양소를 불안한 마음으로 오가며 지냈다. 이 책에 실린 ‘의학 단편’ 「악몽」「어떻게 해야 하나요」「침묵의 땅에 몰아친 폭풍」에는 당시 피츠제럴드의 삶과 명확하게 연결되는 의사와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 피츠제럴드와 젤다가 급격히 무너지던 때의 일과 두 사람 모두에게 끊임없이 이어진 질병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단편소설 형식으로 된 시나리오 「사랑은 아프다」는 할리우드에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던 시절에 쓰게 된 것이다. 피츠제럴드가 영화화되기를 바라며 쓴 유일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그에게 중요한 작품이다.
이 책의 표제작인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는 노스캐롤라이나 산지에서 보낸 그의 슬픈 나날들에 닿아 있다. 자살을 시도했던 그의 이야기가 녹아 있는데, 당시 피츠제럴드의 삶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가 예술로 환원시킬 수 없던 것은 없었다. 피츠제럴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촬영 기사와 영화배우의 사랑에 겹쳐진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진주와 모피」는 딸 스코티와 꼭 같은 나이의 ‘밝은 푸른빛 눈’을 가진 열정적이고 호기심 많은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단편으로, 피츠제럴드는 해럴드 오버에게 “스코티 또래의 아이들에 대해 쓰고 싶은 제 열망의 결실입니다”라고 이 단편을 소개했다.
「엄지손가락의 장엄한 수난」과 「치과 진료」는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 완전히 다른 결말로 완성한 단편이다. 그의 가족에 얽힌 남북전쟁 때의 이야기지만 당시 잡지사들은 “남북전쟁과 관련된 단편은 여러 가지 점에서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으나, 피츠제럴드에게서까지 그런 작품을 기대하진 않는다”며 싣기를 거부했던 작품이다.
프린스턴 대학 시절에 미식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때의 환희와 좌절을 떠올리며 쓴 「오프사이드 반칙」은 “빌어먹을, 아무 걱정 없이,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축구 얘기를 쓰고 싶습니다”라며 병원과 요양소를 오가는 곤핍한 현실과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창작한 것이다.
「그 집의 여자들」은 피츠제럴드가 죽기 1년 전에 쓴 글로, 음주와 마약과 관련된 부분의 6,000단어를 줄이라는 에이전트와 편집자의 조언에 “분량상 힘든 일이고, 불행한 일이란 건 알지만 이 노회한 작가가 고쳐야지요”라며 대략 5,000단어 정도를 줄여 제목도 「신열」로 바뀌었다. 그러나 결국 잡지에 실리지 못했다. 「신열」은 2015년에 발견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스트랜드 매거진》 2015년 7월호에 실렸다. 이 책 『당신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요』의 편저자는 피츠제럴드가 원했던 대로 원본을 살리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신열」이 아닌 삭제된 부분이 없는 원래 원고를 실었다.
「커플」은 집필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으나, 과장스럽게 휘갈겨 쓴 육필 원고의 필체를 감안할 때, 1920년대의 특징을 드러낸다. 또 주로 자신의 나이대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도 하는 단편 속 부부의 모습에서 20대 중반의 피츠제럴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