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굵직한 상들을 석권한 중국 출신 작가 하 진.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두 편의 단편집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남편 고르기』와 장편소설 『니하오 미스터 빈』에 이어 단편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칭송받는 그의 세 번째 단편집 『카우보이 치킨』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미국 문단의 정점에 이른 천재작가’라는 호평을 받아왔듯이 간결한 문장 속에 재치와 유머,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 완벽한 짜임새를 갖춘 최고의 리얼리즘 문학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 지은이_ 하 진 Ha Jin 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나 헤이롱지앙대학과 산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로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 파티』『기다림』『니하오 미스터 빈』『광인』『전쟁쓰레기』『남편 고르기』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난파Wreckage』 『그림자를 바라보며 Facing Shadows』 등이 있다. <푸쉬카트상> <전미도서상> <플라네리 오코너 문학상> <펜/헤밍웨이 문학상> <펜/포크너 문학상> <창작분야 우수 VCCA상> <타운센드 소설상> <아시아아메리칸 문학상> <칸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2회에 걸쳐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오른 유명작가이다. 현재 보스턴대학의 영문과 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작품은 30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옮긴이_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이어하트 재단, 케이프타운 대학, 풀브라이트 재단 등의 펠로였으며 케이프타운 대학과 워싱턴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응구기의 『한 톨의 밀알』 쿳시의 『추락』『어둠의 땅』『야만인을 기다리며』『철의 시대』『엘리자베스 코스텔로』『페테르부르크의 대가』『마이클 K』 하진의 『남편 고르기』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니하오 미스터 빈』『광인』을 비롯한 다수의 역서와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책은 … 《뉴요커》로부터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거의 흡사하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작가 하 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른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카우보이 치킨』 역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일들을 우리 앞에 풀어놓고 있다. 하 진은 주로 떠나온 조국의 억압된 사회주의 체제를 풍자하며, 그 어떤 체제나 탄압으로도 결코 억압할 수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코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다. 화려하고 섬세하진 않지만 소박한 하 진 특유의 재치와 유머, 풍자와 해학이 흡입력 있게 독자를 빨아들인다. 하 진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카우보이 치킨』 역시 단순해 보이는 듯하지만 거기에는 사유의 깊이가 있다. 하 진은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대륙적 기질의 넓은 가슴으로 빼어난 유머와 아이러니에서 그 특유의 페이소스를 구사한다. 어떤 비평가가 그를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놀랍지 않을 작가”라 평한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탄탄한 구성을 갖춘 단편소설을 만나기가 어려운 현실에서 하 진의 보석 같은 단편들을 모아놓은 『카우보이 치킨』은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 수록 작품 소개 『카우보이 치킨』에는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카우보이 치킨」은 중국의 소도시에 문을 연 미국의 패스트푸드점 카우보이 치킨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패스트푸드점으로 대변되는 낯선 미국식 자본주의와 마주하면서 그것에 매혹되다가 갈등을 빚고 결국 파국을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우보이 치킨의 직원들은 주변 사람들에겐 ‘미국의 개’라는 비난을 받지만 열심히 일해 회사가 잘 되면 자신들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일한다. 그러던 중 팔다 남은 치킨을 처리하는 문제와 미국 유학을 다녀온 매니저가 몇 배나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국인 사장과 갈등을 빚게 된다. 회사를 위해 헌신하려 했던 노동자, 철저히 미국식 자본주의로 무장한 사장과 매니저. 이들이 빚어내는 문화적 갈등은 자본주의 하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나의 최고 부하」는 아끼는 부하에게 처벌을 내려야 하는 장교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창녀와의 성관계로 군율을 흐린 부하를 처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그 부하가 용감한데다 성격도 좋아 가히 완벽한 부하라는 데 있다. 결국 뛰어난 부하를 잃고 싶지 않았던 장교는 가벼운 벌을 내리고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 그의 외출을 막는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더욱 큰 문제를 불러오고 만다. 성욕을 참지 못한 부하가 당나귀와 성교를 하다가 발각되고 만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최고의 군인이 될 수 있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에 결국 파멸을 맞고 마는 병사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주의라는 억압된 체제에 대해 풍자하고 있다. 하 진은 동물과의 성행위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통해서 총칼로는 억압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인간의 본성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다. 「고향 사람」은 집안의 원수를 만난 군의관 첸준의 이야기이다. 첸준의 누나와 일방적으로 파혼한 뒤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승승장구하던 추티안. 어느 날 그가 거지꼴을 하고 첸준의 부대로 찾아온다. 당국의 추격을 받는 그를 당장이라도 내치고 싶지만 남의 눈에 고향 사람을 홀대하는 것으로 보일까봐 속내와는 달리 친절을 베풀어야 하는 첸준의 이야기는 하 진 특유의 아이러니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신의 무술 실력만 믿고 안하무인으로 구는 부하를 배짱과 지략으로 굴복시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계약서」, 누구보다 애국심이 강하지만 약해빠진 체력과 여자 같은 곱상한 외모로 인해 늘 웃음거리가 되는 어느 병사의 이야기를 그린 「미스 지」 등은 모두 작가 하 진의 경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군대에 들어간 하 진은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순수했던 지난날을 향수 어린 시선으로 돌아보고 있다. 이밖에도 재능 있는 학자가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제자의 눈으로 풀어낸 편지 형식의 「공식답변」, 제목의 은유에서 알 수 있듯이 편견이 한 여성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찢어진 신발」, 부모에게서 떨어져 처음으로 공동생활을 하게 된 아이의 눈으로 가식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그려가는 「유치원에서」등에서 작가는 인간 본성이 지닌 폭력성과 야만성을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