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인간이 꿈꾸었던 것들을 되살려 내는 현대의 신화, 시대를 초월한 아동문학의 고전 『피터 팬과 웬디』(1911)가 스물세 번째 ‘에오스 클래식’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게 마련이다. 비록 예외도 하나 있긴 하지만.”(9쪽)
저자 제임스 매슈 배리는 소설 『피터 팬과 웬디』의 유명한 첫 문장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무도, 심지어 배리 자신조차 100년 후에도 이 말들이 여전히 신비로운 매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리란 사실을 짐작하지 못했다. 실제로 초판이 발행된 이래 꼬박 한 세기를 지나오는 동안, 이 단 하나의 ‘예외’에 속하는 결코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 팬’의 신화는 전 세계 독자들을 황홀하게 했다. 『피터 팬과 웬디』를 열렬히 좋아했다고 전해지는 찰리 채플린이 “불멸의 인물을 만났다”고 감탄했던 그대로, 이 작품은 1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연극, 뮤지컬, 영화, 만화영화, 드라마, 만화책으로 무수히 재탄생되었고, 정신적 증후군이나 땅콩버터의 상표 등 오늘날에도 파생된 목록을 계속해서 늘려 나가고 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여는 고전’을 모토로 하는 ‘에오스 클래식’은 어린 시절 꿈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전 세계의 문학, 나아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친 세계 최고의 고전 명작들을 엄선해 새로운 완역본으로 현대문학에서 야심 차게 내놓는 세계문학 시리즈이다. 초판본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의의를 깊이 탐색한 각 고전의 기념비적 판본인 ‘주석 달린 시리즈’를 저본으로 삼은 ‘에오스 시리즈’는 수백 수천 개의 주석을 참고하여 우리말로 옮긴 만큼, 원작이 전하는 가장 정확한 의미와 생생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 지금껏 반복되고 답습되었던 번역상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아울러 이 시리즈는 범람하는 세계문학 전집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완역본을 원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어린이, 학생, 교사, 부모, 나아가 고전 읽기를 다시 시도하는 모든 이에게 가장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특히 『피터 팬과 웬디』는 그간 워낙 아동용으로 많이 각색되었으며, 간혹 ‘완역본’이라고 나온 책들조차 어린이 독자를 너무 의식한 까닭에 지나치게 문장을 첨삭하는 한편, 원작의 문단과 행을 무시하고 멋대로 배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주석 달린 피터 팬』을 참고로 한 에오스 클래식 『피터 팬과 웬디』는 아동문학의 황금기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생생한 언어를 옮겨 왔을 뿐만 아니라, 유쾌하게 이상하고 재기 넘치며 철학적인 배리의 원작을 가감 없이 살린 새로운 ‘완역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독특하고 낯선 환상 세계를 통해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 작품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새로운 완역본
“그는 사랑스러운 소년이었으며, 온몸이 잎맥만 남은 나뭇잎으로 그리고 나무에서 흘러나온 진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가 젖니를 모조리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24쪽)
‘피터 팬’이라는 인물은 1904년 배리의 희곡 「피터 팬, 또는 자라지 않는 아이Peter Pan; or, the Boy Who Wouldn't Grow Up」에서 첫선을 보였다. 1911년에는 이 희곡을 토대로 한 소설이 ‘피터와 웬디Peter and Wendy’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것이 흔히 ‘피터 팬’이라고 알려진 작품이다. 또한 1921년부터는 제목이 ‘피터 팬과 웬디Peter Pan and Wendy’로 바뀌어 간행되었으니, 소설 제목이 ‘피터 팬’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셈이다. 다소 낯설기도 한 에오스 클래식 『피터 팬과 웬디』의 제목은 이와 같은 부분을 충실히 따르고자 했다.
한편, 1902년 출간된 배리의 소설 『작고 하얀 새Little White Bird』의 제13~18장에는 ‘피터 팬’이라는 아기가 켄징턴 가든스에서 요정과 만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1906년 이 여섯 장을 약간 손질한 단행본 『켄징턴 가든스의 피터 팬Peter Pan in Kensington Gardens』이 출판되지만, 이 작품들의 ‘피터 팬’은 희곡이나 1911년판 소설에 묘사된 ‘피터 팬’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피터, 웬디, 후크 선장, 잃어버린 아이들, 팅커 벨은 배리의 희곡이 런던에서 처음 무대에 올라 선풍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래 줄곧 어린이들의 마음을 가득 채워 왔다. 당시 영국 부모들에게 ‘피터 팬’은 아이들이 자기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 곧 베드타임 스토리의 정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애초에 배리가 의도했던 대로 『피터 팬과 웬디』는 어른과 아이 모두를 위한 작품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냥 신 나고 아름답지만은 않은 독특하고 낯선 환상 세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날카로운 현실 풍자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하면서, 어느새 흘러가 버린 세월을 실감하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작자의 독백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아울러 에오스 클래식 『피터 팬과 웬디』에는 1911년 초판 삽화를 그렸던 프랜시스 동킨 베드퍼드를 비롯하여 앨리스 볼링브루크 우드워드와 기네드 M. 허드슨의 삽화 71점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 본문 중에서
아이들은 누구나 자라게 마련이다. 비록 예외도 하나 있긴 하지만. 아이들은 머지않아 자기가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아는데, 웬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두 살일 때에 하루는 정원에서 놀다가, 꽃을 또 한 송이 꺾어서 들고 어머니에게 달려간 적이 있었다. 아마도 웬디는 십중팔구 기뻐하는 모습이었나 보다. 왜냐하면 달링 부인이 한 손을 자기 가슴에 얹으면서 이렇게 탄식했기 때문이다. “아, 너는 왜 이런 상태로 영원히 남아 있을 수는 없는 거니!” 이 주제에 관해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은 이게 전부였지만, 그때 이후로 웬디는 자기가 반드시 자라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분도 나이 두 살이 지난 뒤에는 틀림없이 알고 말 것이다. 두 살이야말로 종말의 시작이다. _제1장 피터가 뚫고 들어오다, 9쪽
자기 아이들의 정신 속을 여행할 때마다 달링 부인은 때때로 차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발견하곤 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가장 당혹스러운 것이 바로 ‘피터’라는 단어였다. 그녀가 아는 사람 중에는 피터가 결코 없는데도, 존과 마이클의 정신에는 그가 곳곳에 들어 있었으며, 웬디의 정신에는 그의 이름이 곳곳에 낙서처럼 적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이름은 다른 단어보다도 유독 굵은 글자로 적혀 두드러져 보였고, 달링 부인은 그걸 바라보면서 이 이름이 이상하게도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_제1장 피터가 뚫고 들어오다, 18쪽
(……) 하지만 여러분은 이게 진짜 식사인지, 아니면 꾸며 낸 것일 뿐인지를 정확히 알 수가 없을 텐데, 왜냐하면 그 모두가 피터의 변덕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먹을 수 있었고, 정말로 먹기도 했지만, 그건 먹는 일이 놀이의 일부일 경우에만 그러했고, 단순히 배부른 느낌을 받기 위해서 먹지는 않았는데, 사실 먹는 것이야말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은 먹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꾸며 낸 것은 피터에게 현실과 다름없었으므로 꾸며 낸 것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분은 그가 점점 살찌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힘겨운 일이었지만 여러분은 그의 지휘를 따르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여러분이 자기 나무에 맞지 않게 홀쭉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그는 여러분이 배불리 먹게 허락해 주었다. _제7장 땅속의 집, 145쪽
후크는 좀 더 비위를 맞추려는 태도를 취했다. “네가 정말로 후크라면” 그는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어디 내게 말해 봐라, 그럼 나는 누구지?”
“대구.” 목소리가 대답했다. “너는 대구일 뿐이다.”
“대구라고!” 후크가 공허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바로 그때, 바로 그때에 가서야 비로소, 그의 자부심 가득한 사기는 꺾이고 말았다. 그는 부하들이 자기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지금껏 대구를 선장님으로 모시고 있었다니!” 그들이 중얼거렸다. “자존심 상하는군.”
이야말로 개가 주인을 무는 격이나 다름없었지만, 후크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나머지 부하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처럼 무시무시한 증거에 대항하기 위해 그가 필요로 한 것은 부하들의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의 믿음이었다. 그는 자신에게서 자아가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_제8장 인어의 석호, 171~172쪽
“아, 아주머니.” 벽난로 옆에서 불을 쪼이던 피터는 자리에 앉아서 양말을 깁고 있는 웬디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신과 나에게는 하루의 고생이 끝나고 나서, 어린것들을 곁에 두고 벽난로 옆에 앉아 쉬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이 세상에 없소.”
“진짜 감미롭죠, 피터, 안 그래요?” 웬디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말했다. “피터, 내 생각에 컬리 코는 당신을 닮은 것 같아요.”
“마이클은 당신을 닮은 것 같아.” _제10장 행복한 집, 200쪽
후크는 그의 진짜 이름도 아니었다. 그가 실제로 누구인지를 밝힌다고 한다면, 심지어 요즘 시대에조차 이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이미 추측했겠지만, 그는 유명한 사립학교를 졸업했다. 그 학교의 전통은 여전히 그에게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뿐더러, 실제로 그가 옷을 입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지금까지도 그는 어떤 배를 공격 개시할 때에 입었던 옷을 공격이 끝난 후에 갈아입지 않은 채로 그 배에 오른다는 것에 불쾌해했으며, 여전히 자기가 다닌 학교 특유의 구부정한 걸음걸이에 맞춰 걸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그는 좋은 모습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좋은 모습! 그가 제아무리 심하게 타락했다 하더라도, 좋은 모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만큼은 여전히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 저 깊은 어디선가, 그는 녹슨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또렷한 똑똑똑 소리를 들었는데, 이는 마치 누구나가 잠 못 이루는 밤에 울리는 망치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오늘 너는 좋은 모습을 보였느냐?” 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질문이었다.
“명성, 명성, 그 번쩍이는 싸구려, 그건 내 거야!” 그가 외쳤다. _제14장 해적선, 257~258쪽
“팬, 너는 누구냐, 아니, 무엇이냐?” 후크가 목쉰 소리로 물었다.
“나는 젊음이다, 나는 기쁨이다.” 피터는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작은 새다.”
물론 터무니없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불운한 후크에게는 이것이야말로 자기가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 피터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증거였으며, 이것이야말로 좋은 모습의 정점이나 다름없었다. _제15장 “후크냐 나냐, 둘 중 하나다.”, 285쪽
(……) 전반적인 분위기는 피터가 지금은 웬디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한 정도로만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옷이 준비되면 변화가 있을 텐데, 그 옷으로 말하자면 후크의 가장 사악한 복장 일부를 고친 것으로, 웬디는 그 일에 반대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피터를 위해 옷을 만들고 있었다. 나중에 아이들 사이에서 오간 속삭임에 따르면, 피터는 그 새로운 옷을 입은 첫날 밤에 선실에 한참 동안 앉아서, 후크의 궐련 물부리를 입에 물고, 한쪽 손은 움켜쥔 상태에서 가운뎃손가락만 펴고 있었는데, 그 손가락을 구부려서 마치 갈고리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 위로 치켜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_제16장 집으로 돌아오다, 294쪽
■ 『피터 팬과 웬디』에 대한 헌사
시대를 초월한 아동문학의 고전. _《데일리 메일》
지금까지 쓰인 가장 매력적인 책 중의 하나. _《타임스》
『피터 팬과 웬디』는 부도덕하고 이익만 좇는 시대에 내려진 복福이다. 정련된 작품, 중요하고도 힘이 되는 작품이다. _마크 트웨인
『피터 팬과 웬디』는 배리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풍부하고 재기가 넘친다. 이것은 위대한 선물이다. _버지니아 울프
나는 불멸의 인물을 만났다. _찰리 채플린
나는 매혹적이고 사랑스러우며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_루퍼트 브룩(시인)
『피터 팬과 웬디』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읽고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그 어떤 책과도 다르다. 『피터 팬과 웬디』의 작가는 『피터 팬과 웬디』의 독자와 같다. 자라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 팬과 웬디』는 피터 팬을 닮았다. _로드리고 프레산(소설가 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