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처음 출간된 이래로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으며 시대를 거듭할수록 새롭게 조명받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부인의 『비밀의 화원』이 스무 번째 ‘에오스 클래식’으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비밀의 화원』은 어린이를 위한 잡지가 아닌 성인 잡지(《아메리칸 매거진》 1910년 가을호부터 1년간)에 연재된 최초의 아동문학이다. 평론가 마이클 더다는 “훌륭한 어린이 책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독자의 좋은 책이 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인도에서 영국의 시골 마을로 온 고아 소녀 메리의 이야기는 이후 한 세기에 걸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세대를 넘어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클로버 문고의 『비밀의 화원』이나 NHK 방송국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더빙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번역본만 수종에 이르며, 전 세계적으로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 여러 차례 각색되어 끊임없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한편, 2003년 영국 BBC 방송국의 설문 조사에서 『비밀의 화원』은 ‘영국이 선택한 소설 200선’ 중 51위를 차지했고, 2007년 전미교육협회의 ‘교사가 추천하는 어린이 책 100선’에서는 50위로 꼽혔으며, 2012년 《스쿨라이브러리저널》이 선정한 ‘최고의 책 100권’ 가운데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여는 고전’을 모토로 하는 ‘에오스 클래식’은 어린 시절 꿈과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전 세계의 문학, 나아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친 세계 최고의 고전 명작들을 엄선해 새로운 완역본으로 현대문학에서 야심 차게 내놓는 세계문학 시리즈이다. 초판본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의의를 깊이 탐색한 각 고전의 기념비적 판본인 ‘주석 달린 시리즈’를 저본으로 삼은 ‘에오스 시리즈’는 수백 수천 개의 주석을 참고하여 우리말로 옮긴 만큼, 원전이 전하는 가장 정확한 의미와 생생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 지금껏 반복되고 답습되었던 번역상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물론이다. 이 시리즈는 범람하는 세계문학 전집 가운데서도 제대로 된 완역본을 원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어린이, 학생, 교사, 부모, 나아가 고전 읽기를 다시 시도하는 모든 이에게 가장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 지은이 _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Frances Hodgson Burnett
184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네 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어머니와 다섯 남매는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야 했다. 1865년 온 가족이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주한 후에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겨 읽고 틈틈이 단편소설을 써 오던 버넷은 잡지사에 소설을 기고하기로 결심하고, 원고지 값과 우송료를 마련하기 위해 산포도를 따서 팔기도 했다. 186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네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글쓰기에 전념했으며, 《고디스 레이디스 북》이라는 여성 잡지를 통해 첫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몇몇 잡지사에서 한 편에 10달러를 받고 한 달에 대여섯 편의 소설을 썼다. 『로리가의 그 아가씨』(1877), 『소공자』(1886), 『소공녀』(1905), 『비밀의 화원』(1911)을 비롯해 50편 이상의 소설을 남겼고, 13편의 희곡을 썼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잡지에 발표했다. 대서양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다가 향년 75세로 1924년 뉴욕 주에 있는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 옮긴이 _ 박현주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과 『죽음본능』,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경계에 선 아이들』, 존 르 카레의 『영원한 친구』, 이언 뱅크스의 『비즈니스』, 찰스 부코스키의 『여자들』과 『우체국』,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전 6권), 도로시 L. 세이어즈의 『시체는 누구?』『증인이 너무 많다』『맹독』『탐정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트루먼 커포티 선집(전 5권) 등 여러 권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집 『로맨스 약국』이 있다.
결코 절판된 적이 없는 20세기 최고의 어린이 책
1959년 루이스캐럴상 수상작
기쁨의 놀라운 재발견과 긍정적인 생명력의 이야기
인도에 살다가 콜레라로 갑작스레 부모를 잃고 영국 요크셔의 고모부 댁에 맡겨진 메리 레녹스는 인도인 유모와 하인들 손에서 자란 탓에 매사 제멋대로에 자기밖에 모르는, 낯빛이 나쁘고 심통맞은 열 살 난 소녀이다. 고모부의 장원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간은 음울하고 커다란 저택과 무관심한 사람들, 무엇보다도 침침한 겨울의 색을 띤 메말라 보이는 황야에 질색했지만, 형제자매가 열둘인 순박한 하녀 마사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늘 틀어박혀 있기만 하던 메리가 바깥으로 나가 줄넘기를 배우고 울새와 친구가 되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숨겨진 정원에서 상상도 못했던 마법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비밀의 화원』은 당시 영국의 기후와 식생에 관한 기술을 담은 일종의 식물지로 읽힌다. 또한 당시의 시대상이나 의학적 미신도 담고 있어서 20세기 초의 사상의 일면도 엿볼 수 있다. 작품에서 어린이들은 갖가지 의학적 미신의 희생자이다. 아이가 곱사등이가 될지도 모르니 억지로 척추 교정기를 부착해야 한다거나 야외에 나가기만 해도 감기에 걸려 갖은 병을 옮아온다거나 하는 미신들이 오히려 건강한 삶을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상식과 긍정적인 믿음으로 의학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극복하고 활기를 찾는다. 이는 20세기에 만개하는 과학적 사고와도 연관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비밀의 화원』이 흥미로운 점은 논리와 상식이 승리하는 밝은 세계를 그리면서도 동시에 종교적인 상징이나 자연의 힘과 같은 고전적이며 신화적인 신념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사의 동생인 디컨은 마법사처럼 동물과 대화할 수 있고 예수처럼 어린양을 이끄는 양치기이기도 하다. 디컨 어머니의 푸른 망토에서는 푸른 옷을 걸친 성모 마리아가 연상된다. 메리의 고모부 크레이븐 씨는 저 먼 이국의 땅에서 자기를 부르는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꿈에서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당대의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자연 치유의 힘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준다. 아이들은 건강한 공기를 마시고, 뛰어다니고, 식물을 심고 가꾸면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괴롭혔던 병을 이겨 낸다. 땅과 꽃이 사람들에게 새 삶을 선사한다. 『비밀의 화원』을 통해 독자들은 어릴 적 품었던 감정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파묻혀 느끼는 애정 어린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나이를 불문하고 인간의 영혼을 치유하는 작품의 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에오스 클래식 『비밀의 화원』에는 『비밀의 화원』 삽화로 유명해진 찰스 로빈슨, 『비밀의 화원』 최초의 단행본에 삽화를 그린 마리아 커크를 비롯하여 쥘리에트 리앙하르드제슬레와 앨프리드 브레넌의 삽화 17점이 실려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 본문 중에서
메리는 나뭇잎 아래에 두 손을 넣고 손잡이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옆으로 밀기도 해 보았다. 담쟁이덩굴이 두껍게 덮고 있어서 느슨히 흔들리는 커튼 같았지만 그중 몇 개는 나무와 철로 된 무엇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메리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기쁘고 신이 나서 손이 바르르 떨렸다. 울새는 메리만큼 신이 나는 듯 계속 노래하고 지저귀면서 머리를 옆으로 갸웃했다. 손 아래 잡히는 이것은 무얼까? 각이 지고 쇠로 만들어졌으며 손가락에 구멍이 잡히는 이것은?
그 구멍은 10년 동안이나 잠겨 있던 문의 자물쇠 구멍이었다. 메리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내서 구멍에 맞는지 넣어 보았다. 열쇠를 넣고 옆으로 돌렸다. 그러기 위해 두 손을 다 써야 했지만 돌아가긴 돌아갔다.
그런 다음 메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누구 오는 사람이 없나 뒤편 오솔길을 쓱 둘러보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왔던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메리는 다시 한 번 자기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고 하느작거리는 담쟁이덩굴 커튼을 걷은 후 문을 뒤로 밀었다. 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렸다.
그런 후 메리는 슬쩍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기대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흥분과 놀람, 즐거움으로 숨이 마구 빨라졌다.
메리는 바로 비밀의 정원 안에 서 있었다. _제8장 길을 알려 준 울새, 96~97쪽
“수전은 수완이 있는 여자예요.” 부인은 수다스럽게 말을 이었다. “아침 내내 수전이 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어요. 수전이 이러더군요. ‘한번은 우리 애들이 쌈을 해서 내가 좀 잔소리를 하면서 이랬지. “내가 학교 댕길 때, 지리학 수업에서 세상이 오렌지 같다는 걸 배웠어. 열 살이 되기 전에 오렌지 한 알 통째는 누구의 것도 아니란 걸 알았지. 아무도 조그마한 조각 이상은 가질 수 없고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만큼 충분한 몫이 있는 것도 아니여. 니들이 오렌지 한 알을 통째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어. 그랬다간 잘못이라는 걸 알 테니께. 된통 혼나지 않고는 그걸 깨닫지도 못혀.” 애들은 애들한테 배우는 법이지.’ 그러면서 또 이러더군요. ‘전체 오렌지 한 알 통째로 혼자 움켜쥐고 껍질을 까려 해 봤자 아무 소용 없어. 그랬다간 씨앗도 먹지 못할 테니. 그건 너무 써서 먹지도 못혀.’” _제19장 “마침내 봄이 왔어!”, 242~243쪽
세계에서 살면서 겪는 이상한 일 중 하나는 이따금 내가 영원히, 언제까지나 영원히 살리라고 확신하는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온화하고 장엄한 새벽녘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홀로 서서, 뒤로 머리를 한껏 젖혀 올려다본다. 저 높이 높이 희미한 하늘이 천천히 바뀌며 불그스레해지고 놀랍고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동녘의 광경에 감탄을 내뱉게 될 때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면 심장은 수천 년, 수만 년, 수억 년의 세월 동안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의 낯설면서도 변함없는 장엄함에 가만히 멈춘다. 사람은 그때 실감한다. 영원히 살리라는 것을. 가끔은 해거름의 숲 속, 신비스러운 진한 금색의 잔잔한 적막이 나뭇가지 사이와 아래로 비스듬히 비쳐 들어와 아무리 애써도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느릿하게 다시 또다시 말해 주는 듯할 때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후 가끔은 한밤에 진청색의 거대한 고요가 가만히 바라보던 수백만의 별들과 함께 밀려올 때 그 사실을 확신한다. 가끔은 저 먼 데서 어렴풋이 들리는 음악이 확인해 준다. 가끔은 어떤 사람의 눈에 떠오른 표정이 알려 준다. _제21장 벤 웨더스태프, 265~266쪽
■『비밀의 화원』에 대한 헌사
『비밀의 화원』은 모든 어린이의 책장에 있어야 한다. _《타임스》
버넷 부인은 아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어린이 책을 쓰는 특출한 저자, 몇 되지 않는 재능 있는 작가다. 『비밀의 화원』은 술술 읽히고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이야기다. _《뉴욕 타임스》
버넷 부인의 최고작들의 장점을 두루 갖춘 책. 『비밀의 화원』에는 낙천주의와 건전함, 기쁨이 넘쳐흐른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읽는 이를 건강하게 만드는 신선한 복음으로 가득한 책. _《인디펜던트》
『비밀의 화원』은 단순히 어린이 책이 아니다. 이 작품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은 상징의 심정맥이다. _《북맨》
1911년에 처음 출간되었지만 21세기의 내 딸이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는 사실이야말로 『비밀의 화원』이 대단한 책이라는 증명이 아닐까. _커스티 영(BBC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내가 아는 어린이 책 중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_마르가니타 라스키(평론가)
신비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깊은 위로를 주는 책. _마이클 더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