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작가 주디스 화이트의 신작 장편소설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그동안 현대문학에서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작품들을 통해 인간과 동물의 조화로운 삶에 관해 조망해왔다. 출간 즉시〈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조디 피코의 『코끼리의 무덤은 없다』를 필두로, 미국 작품 최초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된 캐런 조이 파울러의 『우리는 누구나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출간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세 번째 작품이 바로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주디스 화이트는 첫 단편집 『방문 유령』으로 BNZ 캐서린 맨스필드 문학상을 수상하고, 뉴질랜드의 전통 있는 일간지인 <오클랜드 스타> 단편소설 대회에서 1987년과 1990년 2회에 걸쳐 우승하는 등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지금까지 한 권의 단편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문단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는 않지만, 불안한 내면과 일탈 심리를 묘사하는 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극찬과 함께, 명징한 언어와 시적 감수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은 첫 장편소설 『꿈꾸는 밤을 가로질러』(1999) 이후 14년 만의 긴 공백을 깨고 선보이는 야심작이다. 어머니를 여의고 실의에 빠진 50대 중년 여성 해나가 새끼 오리를 돌보게 되면서 겪는 내면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출간 직후 “이례적일 만큼 뛰어난 작품!”(라디오 뉴질랜드), “파울로 코엘료와 뮈리엘 바르베리를 떠올리게 하는 시적이고 지혜로운 우화”(〈위켄드 헤럴드〉)라는 찬사를 받았다. 화이트는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머스커비 오리를 돌보며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중년 여성의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삶을 돌아보고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무엇보다도 가장 돋보이는 점은 화이트 특유의 간결하고 시적인 언어다. 삶과 죽음, 결혼과 사랑, 의존과 집착 등으로 요약되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해나와 오리가 주고받는 유머러스하고도 의미심장한 대화는 소설에 활력을 부여한다. 또한 위트 있는 제목이 붙은 각각의 에피소드는 상실과 고통에 대처하는 법,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관한 지혜와 통찰이 응축되어 있어 한 편의 시 또는 우화처럼 읽힌다. 더불어 머스커비 오리의 습성 및 양육법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오클랜드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도 이 소설만이 선사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 지은이 _ 주디스 화이트 Judith White
1948년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태어나 헤이스팅스에서 자랐다. 작가가 되기 전 실험실 기술자로 일했다. 뉴질랜드를 떠나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스위스, 아프리카 등을 여행하며 집시와 같은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와 결혼하여 웰링턴에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1991년 첫 단편집 『방문 유령Visiting Ghosts』을 발표해 ‘날카로운 관찰력과 시적 감수성, 신랄한 유머가 돋보이는 이야기들’이라는 호평과 더불어 뉴질랜드 북어워드 소설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1999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꿈꾸는 밤을 가로질러Across the Dreaming Night』는 2000년 몬태나 뉴질랜드 북어워드 소설 부문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밖에도 1988년 BNZ 캐서린 맨스필드 문학상을 수상, 〈오클랜드 스타〉 단편소설 대회에서 1987년과 1990년 2회에 걸쳐 우승하는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화이트의 단편소설은 라디오 뉴질랜드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되었고, 여러 단편선집에 수록되었다. 인간의 불안한 내면과 일탈 심리를 묘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찬사를 받아온 화이트는 20년 이상 오클랜드 대학교, 랜지토토 칼리지 등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두 번째 장편소설인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은 첫 장편소설 이후 14년 만의 긴 공백을 깨고 발표한 야심작이다. 화이트는 이 작품으로 뉴질랜드 창작 지원금을 받았다.
■ 옮긴이 _ 이나경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로맨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안데르센동화집』(에오스 시리즈) 『샤이닝』『피버 피치』『박스트롤』『피플 오브 더 북』『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시리즈 『불타버린 세계』『애프터 유』등이 있다.
“모두가 의미 있는 상대에게 의존해요.
나는 당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나요?”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를 통해 전하는
진정한 소통과 사랑의 의미
이 소설은 오리의 언어만큼이나 난해한 인간의 언어, 즉 소통의 어려움에 관해 탐색하고, 사소한 오해가 얼마나 우리의 삶을 비참하게 뒤흔들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해나와 남편 사이먼, 여동생 매기와 제부 토비는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이별의 기로에 선다. 또 이들은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지 대지진이라는 큰 사건을 겪기도 하는데, 그와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애정과 신뢰 또한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모두가 절망하고 혼란스러워하던 그때, 해나는 이들과의 소통을 재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오리와의 대화를 통해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참된 이해와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언어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 소설에서 소통만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화이트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대상 사이에 형성되는 화학 반응과 애착 관계 및 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애정 중독 상태를 통해 사랑의 속성을 심도 깊게 고찰한다. 해나와 사이먼, 해나와 어머니, 해나와 오리, 이웃집 남자 에릭과 첼로, 토비와 알코올 등 이 소설에 나타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불안정하고 뒤틀린 모양새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우리 모두의 생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알게 하는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은 관계 중독에 시달리면서도 역설적으로 소통 부재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나아가 자신과의 화해에 이르는 여정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언젠가는 삶을 다시 평가해야만 하는 때가 오는 거야.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라는 사이먼의 말처럼,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을 향한 찬사
★★★★★ 이례적일 만큼 뛰어난 작품! _라디오 뉴질랜드
★★★★★ 파울로 코엘료나 뮈리엘 바르베리의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이 소설은 삶의 진실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시적이고 지혜로운 우화처럼 읽힌다. (…) 다소 어두운 주제를 넘어서, 작품 속 등장인물들처럼 삶에 대해 성찰하고 회의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_위켄드 헤럴드
★★★★★ 그녀의 문체는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사색적이고, 때로 냉소적이며, 장난스러우면서도 놀라운 통찰력을 지녔다. _헤럴드 온 선데이
★★★★★ 화이트는 특유의 감성으로 사랑에 관한 탐색과 어른들의 인간관계가 지닌 어려움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_도미니언 포스트
★★★★★ 상처 입고 불안해하며 비통에 찬 삶의 내면을 섬세하게 환기시키고, 슬픔과 희극을 능란하게 병치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접속과 단절, 양육과 독립, 유대와 고독을 모두 필요로 하는 인간의 아이러니를 그렸다. _랜드펄 리뷰 온라인
■ 줄거리
어머니의 죽음으로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 있는 해나에게 남편 사이먼은 새끼 오리 한 마리를 가져다준다.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는 데 지친 해나는 처음에는 남편을 원망했지만, 이내 작고 귀여운 오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해나가 오리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과 배변도 가리지 못하는 오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애초에 오리를 친척의 농장에서 데려온 사이먼은 대놓고 싫다는 내색은 못하지만, 오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나 여동생 매기 부부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집으로 놀러오면서 오리에 대한 해나의 집착은 더욱 문제시되고, 매기 부부가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가는 날 사이먼은 해나에게 쪽지 한 장만 남긴 채 그들과 함께 떠나버린다.
■ 본문 속으로
해나는 세상에는 서로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 또는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들로 가득하다고 했다. 아니, 그것보다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누구를 사랑하는지, 또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지,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지에 따라 모든 사람을 규정할 수 있다고 해나는 와인을 더 마시며 말했다. 마음속에 품은 사랑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인간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_29쪽
어머니를 말기 단계에 낯선 사람들 틈에서 지내게 하다니, 참 부당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곧바로 개성도 과거도 없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거기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를 타고 들어오는 순간 시작되었다. 과거에 알았던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어머니는 전형적인 노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없이.
노년의 익명성은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소멸로 가는 과정 또는 그 준비였다. _78쪽
문제는, 솔직히 말하면 문제는 오리가 머스커비 오리라든가, 또는 어떤 종류든 오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싫다는 점이었다. 해나는 그가 오리 무리라든가 떼라든가, 무엇이든 다른 오리들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기를 거부했다. 오리를 분류하는 것이 싫었다. 수컷인지 암컷인지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해나는 본능적으로 오리가 수컷이라고 짐작했지만, 이유는 알지 못했고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리가 누구랑 짝짓기를 하는지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관찰 이외에 다른 출처를 통해 오리에 대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의 오리가 누구든, 무엇이든, 지금 그대로의 하나뿐인 오리 이외의 그 무엇이 되는 것도 원치 않았다. _186쪽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어. 해나가 말했다.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네 의도가 무엇인지도 몰라. 네가 행복한지 아닌지도 모르고.
누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아는 사람도 있나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그 남자 말이니? 해나가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아니거든요. 오리가 교활하게 대답했다.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해석하려고 들어요. _303쪽
결국 언젠가는 삶을 다시 평가해야만 하는 나이가 되는 거야. 나쁜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
부탁이야, 사이먼. 그의 이름이 해나의 목구멍에 들러붙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게 좋아. 어쨌든, 이제 가봐야 해.
해나는 사이먼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래, 가야지. 가야지. 해나가 말했다.
침묵이 흘렀다. 사이먼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가 거기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_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