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룽기를 풀고 위로 올려서 그 천을 목에 둘렀다. 아시아식 변소를 사용하는 것은 그에게는 거뜬한 일이었다. 그는 별 어려움 없이 10분 동안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냄새에 관해 말하자면, 이제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아무도 불쑥 들어와서 그를 민망하게 하지 않도록 닫힌 문을 손으로 붙잡고 있었다.
몸에서 쏟아져 나온 액체의 양은 여전히 놀라울 정도로 많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미첼은 홍수에 휩쓸려서 떠내려가다가 이윽고 자신의 배수구에서 소용돌이치며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아메바들을 상상했다. 이질 덕분에 자신의 몸속과 친해진 셈이었다. 그는 위를 또렷이 의식하고, 잘록창자를 또렷이 의식했다. 자신을 구성하는 부드러운 근육의 관들을 느꼈다. 그의 장에서 연소가 시작되었다. 그런 다음 그 연소는 뱀이 삼킨 달걀이 빠져나가는 듯한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조직이 팽창했다가 늘어났으며, 이윽고 일련의 떨림을 수반하면서 달걀이 떨어지듯 물이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_75~76쪽, 「항공우편」
자연 상태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하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나의 위치는 낮았다. 하이에나 주변 어딘가가 내 위치였다. 내가 아는 한, 문명 상태로 돌아가면 그렇지 않았다. 실용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나는 괜찮은 결혼 상대다. 우선 한 가지 이유는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다. 내 개인퇴직계좌 금액은 25만 4000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정자를 선택하는 일에서는 돈은 분명 중요하지 않다. 웨이터의 팽팽한 엉덩이가 더 중요했다.
_126~127쪽, 「베이스터」
나는 곧 아버지로부터 법인 양식의 문서들을 받기 시작했다. 나를 배런 개발 회사, 또는 애틀랜틱 유리 회사, 또는 피델리티 소형 창고 주식회사의 부사장으로 표기한 문서들이었다. 언젠가는 이 회사들의 수익이 나에게 올 거라고 아버지는 장담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에게 온 것은 의족을 한 남자였다. 어느 날 아침 내 집의 초인종이 울렸고, 나는 그 사람이 들어오도록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었다. 다음 순간 그가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위에서 대머리인 그의 머리에 짧게 난 얼마 안 되는 금발을 볼 수 있었고 가쁜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배달원인 줄 알았다. 계단 꼭대기에 이른 그는 내게 듀크 개발 회사의 부사장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내게 소환장을 건넸다.
_195~196쪽, 「팜베이 리조트」
다왓 소년들은 일곱 살까지 엄마와 함께 살고, 그 뒤로는 거처를 옮겨 남자들과 함께 산다. 이후 8년 동안 소년들은 어른들에게 구강성교를 해주도록 강요받는다. 질을 폄하하는 것과 더불어 남성의 성적인 부분, 특히 정액에 대해 찬양하는 것이 다왓족의 신앙에 자리 잡고 있다. 정액은 놀랍도록 영양이 풍부한 영약으로 믿어진다. 남자가 되기 위해, 전사가 되기 위해 소년들은 가능한 한 많은 정액을 섭취해야 하며, 따라서 그들은 밤에도 낮에도 아무 때고 그걸 한다. 이 전통 가옥에서의 첫날 밤 루스와 그의 조수 모트는 귀여운 어린 소년들이 예의 바른 태도로 각 성인 남자들 앞으로 가서 마치 물에 띄운 사과를 입에 무는 놀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아주 점잖게 표현해서 깜짝 놀랐다. 랜디는 자리에 앉아 메모만 하고 있었다. 모든 남자들이 만족한 후 족장 가운데 한 사람이 두 소년에게 뭐라고 소리쳤고—그것은 틀림없이 환대의 표시였다—그러자 두 소년이 미국인 과학자들에게로 건너왔다. “됐어, 난 괜찮아.” 모트가 자기에게 온 아이한테 말했다. 루스도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_274쪽, 「신탁의 음부」
그녀가 처음 왔을 때는 잎이 무성했던 청사 앞 나무들이 이제는 발가벗어서 콜로네이드 끝 쪽에 있는 말 탄 조지 워싱턴 동상을 드러내 보였다. 어머니는 경찰서 밖에 주차했지만 차에서 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프라크르티는 어머니에게 몸을 돌렸다. “안 들어갈 거예요?”
어머니가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부드러워지고 두루뭉술해진 최근의 새 표정이 아니라 늘 어머니의 것이었던 딱딱하고 엄격하고 못마땅해하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어머니의 손은 운전대를 너무 꽉 움켜쥐고 있어서 손가락 마디가 하얘졌다.
“네가 네 자신을 이 곤경에 빠뜨렸으니 너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을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네 삶은 네가 책임지고 싶다고? 그럼 그렇게 해. 난 끝났어. 희망이 없어. 이제 우리가 어떻게 다른 남편감을 찾을 수 있겠니?”
‘다른’이라는 말이 프라크르티의 마음에 쩍 들러붙었다.
“그 사람들이 알아요? 쿠마르 가족들이?”
“알고말고! 네 아빠가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게 자신의 의무였다고 말하더구나. 하지만 난 네 아빠 말을 믿지 않아. 그 양반은 이 결혼에 동조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거야. 평소와 마찬가지로 나를 욕 먹이는 것이 즐거운 것 같더라.”
프라크르티는 말없이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 소식을 들으니 날아갈 것 같지?” 어머니가 말했다. “네가 원한 거잖아. 안 그래?”
_474~475쪽, 「신속한 고소」
불평꾼들_Complainers
항공우편_Air Mail
베이스터_Baster
고음악_Early Music
팜베이 리조트_Timeshare
나쁜 사람 찾기_Find the Bad Guy
신탁의 음부_The Oracular Vulva
변화무쌍한 뜰_Capricious Gardens
위대한 실험_Great Experiment
신속한 고소_Fresh Complaint
옮긴이의 말
■ 지은이_ 제프리 유제니디스Jeffrey Eugenides
‘평범한 것을 비범한 것으로 바꾸는, 마술적인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1960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생. 고등학교 재학 시절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브라운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과 문예 창작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 1993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처녀들, 자살하다』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화이팅작가상, 해럴드 D. 버셀 기념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99년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큰 주목을 받는다. 2002년 9년간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두 번째 장편 『미들섹스』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프랑스 메디치상, 임팩더블린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다. 2011년에는 세 번째 책 『결혼이라는 소설』을 발표해 살롱문학상과 프랑스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한다. 30여 년간 단 세 편의 장편을 출간한 과작의 작가이지만, 빈부격차, 가족 해체, 젠더 갈등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부터 청소년기의 일탈, 결혼과 사업의 실패 등 개개인의 삶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위기까지 동시대인의 삶과 고민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내어, 오늘날 미국 문단의 주요 작가로 꼽힌다. 『불평꾼들』은 그의 네 번째 책이자 유일무이한 소설집으로, 유제니디스는 이 책을 ‘특정한 주제로 엮이지 않은,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뒤섞인 가방’으로 정의했다. 그의 말처럼 이 책에는 석사 학위 제출 작품 「변화무쌍한 뜰」(1988)과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스위치>의 원작인 「베이스터」(1995), 동료 작가 애니 프루가 ‘미국 최고의 단편’으로 꼽은 몽환적 소설 「항공우편」(1997), 어머니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쓴 「불평꾼들」(2017)을 비롯해, 작가의 30여 년에 걸친 문학 일기와도 같은 다채로운 이야기 10편이 담겨 있다.
■ 옮긴이_ 서창렬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비롯하여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스티븐 밀하우저의 『밤에 들린 목소리들』, 조이스 캐럴 오츠 외 작가 40인의 고전 동화 다시 쓰기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 『저지대』, 시공로고스총서 『아도르노』 『촘스키』 『아인슈타인』 『피아제』, 자크 스트라우스의 『구원』, 데일 펙의 『마틴과 존』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2017 《옵서버》 올해의 책 ★ 2017 《이브닝 스탠더드》 올해의 책
★ 2017 《커커스 리뷰》 올해의 책 ★ 2017 《가디언》 올해의 책
★ 2017 「NPR」 올해의 책 ★ 2017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욕망과,
삶을 뒤바꾸는 순간들에 관한
더없이 우아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콜라주
퓰리처상 수상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30년 문학 일기와도 같은 유일한 소설집
오늘날 미국 사회가 당면한 현실을 빈틈없이 관찰하고 이를 우아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작가. 2003년 『미들섹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소설집 『불평꾼들』(2017)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1993년 첫 장편소설 『처녀들, 자살하다』를 출간한 이래, 2002년 『미들섹스』, 2011년 『결혼이라는 소설』까지 9년 주기로 단 세 편의 장편을 발표한 과작寡作의 작가이지만, 유제니디스는 이 작품들만으로 퓰리처상, 화이팅작가상, 살롱문학상, 피츠제럴드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3대 문학상인 메디치상, 아일랜드의 임팩더블린문학상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평단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주요 작가로 우뚝 섰다.
그의 네 번째 책이자 유일무이한 소설집인 『불평꾼들』은 지난 30여 년간 《뉴요커》 《게티스버그 리뷰》 등에 발표한 단편과 미발표 단편들 중 10편을 골라 엮은 것이다. 유제니디스는 “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작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신과 가족의 일상부터 당대의 가장 첨예한 이슈들까지 꼼꼼히 들여다보고, 동시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써냈다. 이 책에는 스탠퍼드대학 석사 학위 제출 작품인 「변화무쌍한 뜰」(1988), 제니퍼 애니스턴 주연 영화 <스위치>의 원작인 「베이스터」(1995), 명망 있는 작가들이 그해 발표된 단편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엄선해 발간하는 『미국 최고의 단편The Best American Short Stories』 목록에 이름을 올린 몽환적 소설 「항공우편」(1997), 퓰리처상 수상작 『미들섹스』의 토대가 된 「신탁의 음부」(1999), 치매를 앓는 어머니에게 영감을 받은 「불평꾼들」(2017) 등 작가 생활 전반에 걸쳐 쓴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불평꾼들』은 유제니디스 문학 세계의 시작과 변천사, 작가에게 영감을 제공한 내밀한 가족사와 30여 년의 미국 사회상까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의미 있는 문학적 일기이자 아이디어 노트라 할 수 있다.
작가의 섬세한 눈으로 포착해낸
‘지금 우리의 이야기’
유제니디스는 이 책을 믹스드 백mixed bag, 즉 ‘특정 주제로 엮이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뒤섞인 가방’으로 정의했다.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이자 흑인 음악의 발상지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 도시의 발전과 쇠락을 목격하고, 실업, 파산, 각종 범죄 문제,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축복과 1967년 흑인 폭동의 악몽 등을 복합적으로 경험하며 자랐다. 그리고 스스로 “삐딱한 애정”을 품고 있다고 밝힌 그곳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짧은 이야기에 담아 기록했다.
결혼은 포기했지만 아이는 포기할 수 없어 돈으로 남성의 정액을 사는 「베이스터」의 비혼 여성, 부동산 투자에 실패해 빈털터리가 되고도 최후의 저항처럼 허름한 모텔에 희망을 거는 「팜베이 리조트」의 아버지,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과거의 순수한 꿈이 시들어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는 「고음악」의 젊은 부부, 원시부족을 찾아가 자신의 이론을 증명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려 애쓰는 「신탁의 음부」의 성性과학자, 박봉에 시달리다 횡령의 유혹에 흔들리고 마는 「위대한 실험」의 편집자…….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런저런 실패를 경험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좌절하는, 선량하고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유제니디스는 빈부격차, 가족 해체, 젠더 갈등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부터 청소년기의 일탈, 결혼과 사업의 실패, 질병 등 개개인의 삶에 찾아오는 크고 작은 위기까지 현대인의 삶과 고민, 복잡다단한 욕망들을 예리하게 포착해 작품에 옮겨놓았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듯하지만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고, 단 한 번의 실패나 실수로도 삶이 전복되고 마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과 그 속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살아내야 하는 현대인의 숙명을 더없이 사실적이면서도 특유의 위트가 돋보이는 이야기로 그렸다. 그리고 작가의 섬세한 눈에 비친 풍경들은 2021년 한국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때때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저항하다가도, 냉엄한 현실 앞에서 자조하고 타협하며 연민과 웃음을 자아내는 『불평꾼들』의 등장인물들.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긴다.
■ 해외 언론 서평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단편들은 지루하고 고된 일상에 위트를 되찾아준다. 그는 모든 문장, 모든 단락을 진심으로 즐기듯이 쓴다. 그리고 그러한 느낌에는 전염성이 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문학성 높은 소설을 쓰면서도 광범위한 독자층을 가진 매우 희귀한 작가다. 《월스트리트 저널》
유제니디스는 문학에 유행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살아남는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데일리 비스트》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균일하게 훌륭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덜 훌륭한 단편조차도 결코 지루하지 않으며, 작품 곳곳에서 작가의 탁월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불평꾼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더없이 시의적절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옵서버》
유제니디스는 전통적이고 학문적인 언어를 파고들어 은근히 조롱하는 데 탁월하다. 그는 현실적인 배경도 유쾌하게 비틀어 보여줄 수 있고, 이러한 이야기에는 우리로 하여금 종종 ‘미국의 유쾌한 부조리’를 떠올리게 하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처로운 이미지들이 담겨 있다. 《워싱턴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