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고딕 소설의 대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신작 『인형의 주인』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1964년 데뷔한 이래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여 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쉼 없이 써내며 전미도서상, 오헨리상, 페미나상, 브램스토커상 등 주요 문학상들을 석권한 오츠는 매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되는 영미 문학의 명실상부한 거장이다. 인간 내면에 깃든 어둠과 광기, 근원적 불안과 공포를 깊이 탐구하고, 이를 섬뜩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로 형상화하여 종종 ‘공포소설의 완성자’인 에드거 앨런 포에 비견되기도 한다.
『인형의 주인』에는 사이코패스 소년의 내면을 1인칭으로 서늘하게 묘사한 표제작 「인형의 주인」을 비롯하여, 미국 백인-기독교인 사회의 뿌리 깊은 우월주의를 다룬 「군인」, 유년시절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여성의 기억을 다룬 「총기 사고」, 가장 사랑했던 이에게서 자신을 향한 살의를 느끼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여성을 그린 「적도」, 국제스릴러작가상 최우수 단편상 수상작인 「빅마마」, 그리고 아름답지만 수상한 고서점을 무대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주식회사」 등 섬뜩하면서도 환상적인, 괄목할 만한 이야기 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인형의 주인
군인
총기 사고
적도
빅마마
미스터리 주식회사
옮긴이의 말
■ 지은이 조이스 캐럴 오츠 Joyce Carol Oates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조이스 캐럴 오츠는 현대 미국 문단의 대표 작가이자 고딕 호러의 대가이다. 1938년 뉴욕주 록포트에서 태어났고,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문학이 주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 이후 브론테 자매, 포크너, 헤밍웨이, 소로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열네 살 때 할머니에게서 타자기를 선물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작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으며, 시러큐스대학교 재학 중이던 열아홉 살에 「구세계에서」로 대학생단편소설공모전에 입상했다. 1964년 첫 장편소설 『아찔한 추락』을 시발점으로 지금껏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여 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발표했다. 이외에도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서의 왕성한 활동과 함께 부조리와 폭력, 은폐된 욕망과 불안을 예리하게 포착해냈다.
1967년과 1973년에 「얼음의 나라에서」와 「사자」로 오헨리상을, 『좀비』(1996), 『악몽』(2011), 『검은 달리아와 하얀 장미』(2012),『인형의 주인』(2016)으로 브램스토커상을 수상했다. 1970년 『그들』로 전미도서상을, 2005년 『폭포』로 페미나상을 수상했으며,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무려 다섯 차례나 올랐다. 2003년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커먼웰스상과 케니언리뷰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6년 시카고트리뷴문학상을, 2019년에는 예루살렘상을 받았다.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로저 S. 벌린드 석좌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옮긴이 배지은
서강대학교 물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동안 휴대전화를 만드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번역학을 전공하고 소설과 과학책을 번역하고 있다. 『엿보는 자들의 밤』 『밤의 새가 말하다』 『열흘간의 불가사의』 『꼬리 많은 고양이』 『무니의 희귀본과 중고책 서점』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아파트먼트』 『물질의 탐구』 『입자 동물원』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전자부품 백과사전』(전 3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강자의 뒤틀린 욕망과 광기, 약자의 한없는 고독과 무력함
약육강식의 세계 속 인간 내면의 근원적 공포를
탁월하게 조명한 여섯 편의 이야기
“인생에는 포식자가 있고 먹잇감이 있다. 포식자는 미끼를 던지고, 먹잇감은 이 미끼를 자양분으로 착각한다.”(367쪽)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공통적으로 그려내는 것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각 작품은 ‘포식자’와 ‘희생자’의 대립 구도를 통해 인간 내면에 숨겨진 잔혹성을 드러내 보이고, 강자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자들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인형의 주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약자이거나 한때 약자였던 이들이다. 가족과 사회에 융화되지 못하고 점차 자기 안의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소년,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서 외로워하고, 어른들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다가 끝내 비극적 결말로 치닫고 마는 소녀들, 집단적 광기에 휘둘려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된 남자……. 인종차별과 성차별, 계층 갈등, 종교적 맹신, 소통의 단절을 조장하고 방치하는 부조리한 사회는 인간 내면의 불안과 분노, 광기를 자극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포식자’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을 낳는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누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포식자’ 앞에 내던져진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중 인물들이 경험하는 공포는 초자연적 존재나 재해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으스스하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면이나 충격적인 반전 하나 없이도 우리 안에 내재된 불안을 파고들어 최고의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조이스 캐럴 오츠. 이 거장의 내공은 『인형의 주인』에서 또 한 번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선사하는 공포는 호러와는 결이 다른 공포다. 특별히 자극적인 장면이나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존재가 나오지 않아도,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내면 깊은 곳의 두려움을 건드린다. 어찌 보면 영미권 독자들의 지적대로 참신한 반전도 없고 결말도 예측이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 안에서 최고 수준의 서스펜스를 끌어내는 것은 작가의 내공이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심연에 닿는 공포라는 측면에서 이 소설들은 탁월한 ‘공포 소설’로 꼽힐 만하다.” _「옮긴이의 말」에서
■ 추천의 글
장르를 불문하고 오츠의 작품에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절박한 상황에 빠진 이들을 최후의 운명으로 몰아가는, 인간의 나약함을 다루기 때문이리라. 무력감은 공포의 본질이며 오츠는 그 감정을 현존하는 어떤 작가보다도 잘 전달한다.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인간의 마음속 가장 불안한 구석을 이보다 더 잘 조명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_《시애틀 타임스》
각 단편의 핵심에는 포식자와 먹잇감의 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그토록 섬뜩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 모두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먹잇감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인간의 기이한 특성 중 하나는 우리 본성의 더 어두운 면에 깊이 끌리고, 때로는 괴로워하면서도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적 충동의 은밀한 내면을 『인형의 주인』에서 오츠가 보여준 것만큼 잘 보여준 작가는 없었다. _《피츠버그 포스트가제트》
지겹도록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을 무대로 고딕풍 멜로드라마에 나올 법한 순간들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_《가디언》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도 긴 여운이 남을 것이다. _《세인트 루이스 포스트디스패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