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내 딸을 내줄 테니 손님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 마시오”
—환대의 두 얼굴
“제가 보시를 이전보다 더하게 해주십시오”
—수대나태자의 무조건적 환대
“생을 사랑함은 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타자로서의 나환자, 그 목소리
“서러운 사람에겐…… 서러운 이야기를”
—몽실 언니의 환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용기”
—디아스포라 작가의 한숨과 향수
“나는 존재한다 따라서 사랑한다”
—환대의 계보
“HGWXX/7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적대적인 타자의 환대
“흐르는 눈물을 보며 내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타자로서의 장애인
“아무것도 몰랐던 거, 미안해”
—타자에 대한 낙관과 긍정
“신명껏 돕겠습니다. 아니 강제라도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닌 당신들의 천국
“나는 그를 몰랐지만,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타자에게서 불어오는 윤리의 바람
“그들이 당신에게 용서하지 않을 권한을 주었나요?”
—얼굴 없는 타자의 환대
“사랑하는 힘은 죽어가고 있다”
—예루살렘의 우울한 사랑
“조국이여, 진창에 빠져버려라”
—팔레스타인의 눈물
“이렇게 빵을 잘 굽다니 어디서 배운 거니?”
—환대의 최종적인 수혜자
“우리 위에, ‘그’ 위에 다른 존재가 있는 것 같아요”
—밤비의 환대
“나도 네 이름이 마음에 들어”
—철조망 안으로 들어간 소년
“안 하고 싶습니다”
—박해의 트라우마와 바틀비
“나는 내 꽃에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와 ‘길들임’의 윤리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환대로서의 애도
지은이 :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클래리언대학교와 메릴랜드대학교에서 각각 영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H. B. 이어하트재단, 케이프타운대학학술재단,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 및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해외파견 교수를 역임했으며, 케이프타운대학과 워싱턴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있었다. <유영번역상> <전숙희문학상>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생명의신비상> <전북대학교 학술상> <전북대학교 수업상>을 수상했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고, 현재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의 시대』 『피의 꽃잎』 『연을 쫓는 아이』 등 40여 권의 역서와 『J. 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우수도서), 『문학의 거장들』(한국연구재단 우수도서), 『애도예찬』(<전숙희문학상>), 『타자의 정치학과 문학』(<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 세종도서),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생명의신비상>, 세종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타인을 향한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환대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작가가 ‘애도’ ‘상처’ 그리고 ‘환대’에 이르기까지 ‘치유’라는 일관된 주제에 천착하여 목소리를 내게 된 건 20년 전 자크 데리다의 강연을 듣고 우리 사회의 한숨과 고통의 원인을 들여다보게 되면서부터다. 나치 독일과 유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과 흑인,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등등 이해와 적대를 둘러싼 인간의 갈등관계가 만들어내는 폭력과 증오, 잔인한 전쟁 속에서 희생되거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후 상심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채 살아가는 ‘타자’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고통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마침표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기에 실패하더라도 애도의 과정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하고,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며 스스로를 보듬고, 고통의 원인을 제공한 이까지를 용서하는 선한 순환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사랑의 한 방식으로서의 ‘환대’를 예찬한다.
다시 말해서, 결코 용서할 수 없고 진정으로 환대할 수 없는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과 태도가 바로 이상적 환대이며, 그리고 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환대라는 아름다운 정신이 일으킬 사소하고도 거대한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환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환대이며, 이것이야말로 틀림없이 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이 책은 우리에게 선사한다.
시대의 고전, 환대의 서사들
필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화 『어린왕자』 『몽실언니』부터 시대의 고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석가모니의 이야기 『수대나태자경』부터 구약의 『창세기』와 『판관기』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부터 최근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신예 최은영의 단편 「씬짜오, 씬짜오」까지, ‘트래지컬리 힙’의 리드보컬인 고드 다우니의 음반이자 그래픽 소설인 『비밀의 길』부터 흥행 영화 「타인의 삶」까지, 환대의 서사들을 종횡무진 경계 없이 찾아 소개하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환대,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다.
구약 성서 『창세기』와 『판관기』의 일화를 바탕으로 몇천 년 전에 행해진 ‘무조건적 환대’가 가진 절대적 의미와 거기에서 파생된 이면의 폭력과 희생의 역사를 되짚어보며, 이상적 환대의 예를 제시한다.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아이들을 달라는 바라문에게 피눈물을 흘리면서 제 자식들을 내주는 희생과 보시를 실천한 수대나태자의 일생을 그린 『수대나태자경』을 소개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주는 것, 더 이상 내줄 것이 없을 때까지 행하는 보시가 곧 환대임을 역설한다.
비천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낮은 자’들을 품고 그들을 위해 희생해온 한 여인의 삶을 그린 권정생의 『몽실 언니』는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작가 권정생이 인생의 마지막까지 추구했던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미한 모든 생명에 대한 환대와 연민으로 가득했던 권정생과 몽실 언니의 선한 태도는 마치 한 사람의 것처럼 느껴진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나의 삶에 다른 사람의 삶을 얻는 삶”보다 더 큰 환대가 없음을, 이 소설의 초가족적 “환대의 계보”를 통해 그 본질을 탐색한다. 이 작품이 시대의 고전으로 남은 이유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 『경험의 노래』에 나오는 「타인의 슬픔」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의 평생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환대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연작소설?『새로운?사람이여?눈을?떠라』에 수록된 오에 겐자부로의 진솔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의 삶, 그리고 그 소수자를 껴안고 살아가는 가족으로서의 삶을 다시 한 번 심고하게 한다.
2016년 캐나다의 록 가수 고드 다우니의 시에 제프 르마이어가 그림을 그린 그래픽 소설 『비밀의 길』은 한 번도 만난 적 없으나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어간 인디언 소년 차니 웬작을 향한 가수의 진정성 있는 환대의 노래이며, 그 한 명의 노래가 모두의 합창으로 확장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영어권 작가’라 일컬어지는 J. M 쿳시Coetzee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에서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환대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내적 결핍, 윤리적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정신 활동이 환대의 진정한 정신이며, 더불어 환대의 수혜자는 행하는 자가 될 수도 있음을 역설한다.
존 보인의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에서 철조망을 가운데에 두고 우정을 쌓게 된 두 소년이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인간 내부의 “윤리적 존재”가 지시하는 순진하고도 무모한 모험적 형태의 환대를 보여준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 왕자』에 그려진 어린 왕자와 여우의 대화를 통해, 타자에 대한 인내심 있는 접근과 그로 인해 서로 세상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책임감 있는 관계 형성이야말로 진정한 환대임을 강조한다.
작가 한강의 사적인 경험을 다룬 에세이이자 소설인 『흰』과 80년 5월의 아픔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가 교차하는 지점에 주목하면서 애도 역시 환대의 한 형식이며, 따라서 애도에 실패하는 것은 환대에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