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파비오 제노베시 Fabio Genovesi
197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해변 마을인 포르테 데이 마르미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 수영 강사, 사이클 코치, 웨이터 그리고 번역가로 일하면서 글쓰기에 매진했다. 상류층이 즐겨 찾는 유명 휴양지이자 러시아 혁명의 영향이 남아 있는 고향 땅은 그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됐다.
2008년 첫 소설 『베르실리아 로큰롤 시티』로 등단한 그는, 2013년 두 번째 소설 『살아 있는 미끼』가 10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되는 등 문단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5년 세 번째 소설 『파도를 보내는 사람』이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스트레가상 최종심에 올랐다가 아쉽게도 고배를 마시지만, 국내외 40여 개 중고등학교에서 선발한 400명의 청소년 심사단이 뽑은 ‘젊은 스트레가상’ 부문에서 최종 수상작으로 결정된다.
2017년 발표한 『물이 깊은 바다』는 그의 자전적 소설로, 남들과 다른 괴짜 대가족에서 자란 한 소년의 성장 과정을 들려준다. 인생의 희비극적인 면을 극적이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리면서 1980년대 토스카나 지방에 대한 향수를 담아낸 소설은 2018년 이탈리아 3대 문학상인 비아레조상 및 코라도 알바로·리베로 비지아레티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저서로는 회고록 『모르테 데이 마르미』(2012), 『내 마음의 결승선에 있는 모든 사람들』(2019), 어린이 그림책 『묘지의 롤란도, 두 유령을 구출하라』(2019) 등이 있다.
제노베시는 현재 자신의 여러 작품 속 배경이자 고향인 포르테 데이 마르미에 살면서 소설을 집필하는 한편,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문학지 《레투라》에 정기적으로 서평을 기고하고, 다양한 매체에 영화, 문학, 스포츠에 대한 기사를 쓰고 있다.
■ 옮긴이 최정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이탈리아 피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만만한 세계도전, 이탈리아어 첫걸음> 동영상 강의를 진행했고,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오페라로 배우는 이탈리아어>를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 『나 혼자 간다! 여행 이탈리아어』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여덟 개의 산』 『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노베첸토』 등이 있다.
“아무도 당신의 물고기를 잡아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가는 한 소년의 눈부신 성장기
모두 2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주인공 파비오가 여섯 살을 맞아 학교에 입학한 첫날부터 열세 살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안의 유일한 어린아이로 한 번도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할아버지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사냥이나 낚시 따위를 하며 자란 파비오에게 학교생활은 미지의 행성에 온 듯 온통 낯설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파비오는 모험과 상상력이 넘치는 자신의 세상과, 규칙이 지배하는 바깥세상 간의 불균형 속에서 성장하지만 가족의 애정과 특별한 우정들, 그리고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게 해주는 책들과의 만남을 통해 유년기에서 청소년기로 전환되는 예민한 과정을 통과해나간다. 아이가 마주한 이 세상은 끝없이 어두운 저 아래 무엇이 존재하는지 보이지 않는 ‘물이 깊은 바다’와 같은 곳으로, 두려움과 불안이 혼재된 이곳에는 또한 온갖 경이로움이 숨어 있다. 비록 남들과는 다르나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헤엄치는 파비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는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님을, 저마다의 특이함이 우리 각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보물임을 전하는 메시지 속에서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당신의 물고기를 잡아가지 않는다.
이상하게 헤엄치고 마구잡이로 헤엄쳐도 결국은 당신에게로 온다.
_4장 ‘이제 수영할 줄 알지’에서
순수한 소년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천하무적 괴짜 가족 이야기
유머러스하게 승화한 이야기 속에 담긴 80년대의 추억과 시대의 아픔들
작가 제노베시는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서 3년 동안 원고를 소리 내 읽으며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밝고 다채롭고 시적이며 다양한 문체가 어우러진 소설은 리듬감 있게 단숨에 읽히면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순식간에 가슴을 울린다.
파비오가 자란 때는 1980년대로, 동네 사람들이 흑백 브라운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월드컵을 관람하고 라디오 카세트에서는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작가는 80년대 골목 풍경과 유년기의 추억을 되새기는 데서 나아가 어린 파비오를 통해 소설 속에서 부모님과 할아버지 세대가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을 되새기며 가족의 서사를 완성한다. 여기에는 항상 유쾌하고 소란스러운 할아버지들 마음에 남은 전쟁의 비극과, 말수 없는 아버지가 폭풍처럼 쏟아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있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간직한 돌아가신 할아버지와의 로맨스가 담겨 있다. 과거의 향수와 시대의 아픔을 유머러스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로 다시 써나가면서 작가 파비오 제노베시 그리고 소년 파비오는 천하무적 괴짜 가족들을 향한 사랑과 자부심을 새삼 발견한다.
어쩌면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리 가족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기 그지없고 미치광이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엔, 주변 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외부에서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만 없다면 그야말로 멋지고 놀라운 것들이 넘치는 가족일 것이다.
_7장 ‘나는야 텔레비전’에서
■ 해외 언론 및 평단의 찬사
제노베시는 탁월한 능력으로 어린 파비오의 순수하고 매혹적인 시선뿐만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 상상, 놀라움, 경이로 가득한 내면세계를 표현한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면서 웃음부터 감동에 이르기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에 마음을 사로잡히게 된다.
_2018 비아레조상 심사평에서
제노베시의 책은 인류에게 선물이다. _《배니티 페어》
제노베시는 당신을 웃고 울게 만들고, 결국 행복을 느끼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 _《코리에레 델라 세라》
재미있고, 동화적인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사랑스럽게 읽힌다. _<롱 스토리 쇼트>(독일 랜덤하우스 팟캐스트)
경이로움과 상상력에 대한 송가. _《도나 모데르나》
감동적인 한 집안의 가족사. 꼭 읽어보시길! _《OK!》
태양과 바다, 그리고 잠재된 용기와 삶의 기쁨이 살아 숨 쉬는 책. _《모카》
유머와 따뜻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 _《TV Star》
톡 쏘는 듯한 바다의 짠 내음 뒤에 숨겨진 행복을 감지하는 소설. _《마리 클레르》
만약 존 어빙에게 이탈리아인 아들이 있다면, 그 이름은 파비오 제노베시일 것이다. _《다스 보너 슈타트》
■ 책 속으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조상 중 누군가 파라오의 무덤을 모독했거나, 마녀를 화나게 했을 수도 있고, 신성한 동물을 해쳐서 신이 앙심을 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후로 우리 가족은 무서운 저주에 걸렸다는 것이다.
끔찍하지만 사실이었고 학교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제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건 바로, 세상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많다는 것과 이 아이들에게는 기껏해야 서너 명밖에 없는 할아버지가 내게는 열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외할아버지에게는 결혼은 고사하고 여자와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노총각 형제들이 많았다. 이런 대가족에서 태어난 아이는 오직 나뿐이었고, 난 이들 모두의 손자였다.
_1장 ‘저주’, 13쪽
그리고 마치 우주비행사가 귀환한 듯이 많은 사람이 길가에 나와 나를 반겼다. 그들은 내가 미처 자전거에서 내리기도 전에 나를 빙 둘러싸고 학교는 어땠는지, 난 어땠는지, 아이들이 내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우리 가족들이었다.
내가 어땠는지는 나도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많은 할아버지를 한 명씩 쳐다보았다. 마치 그들을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을 삼촌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내가 물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들이 엄마에게 소리쳤다. “들었지? 이래서 학교에는 보내는 게 아니었어!”
_1장 ‘저주’, 15쪽
아토스처럼 그의 손가락도 네 개뿐이었다. 알도 삼촌의 손가락도 그랬고, 이제 생각해보니 아라미스 삼촌의 왼손가락은 세 개뿐이었다.
그래서 아델모의 손에서 벗어나자마자 손가락을 어떻게 잃은 건지 물었다.
“왜 그러니?” 알도가 말했다. “뭐 이상한 거라도 있니? 사람 손가락이 몇 개여야 하는데?”
“열 개요!”
그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과해! 손가락 열 개는 너무 많다고! 처음에는 열 개지만, 갈수록 많은 일을 하고 고생하다 보면, 그리고 또 사고로 최소 한두 개는 없어지기 마련이지. 이게 정상이란다.”
_3장 ‘손가락 열 개는 너무 많아’, 56쪽
물에 닿으면 끝없이 깊은 어두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물속에는 상어와 범고래 그리고 촉수로 나를 잡아, 악력이 무시무시하고 위험한 다리 사이에 있는 앵무새 부리 같은 입으로 물어버리는 대왕오징어가 가득하다. 아무것도 없는데 발로 버둥거리며 디딜 곳을 찾고 가라앉아 바닷물을 들이마시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느낌이었고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쯤 몸이 떠올라 숨이 쉬어졌고 쌍동선에서 나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가 뭔가를 말했는데 다시 아래로 가라앉아 또 물을 먹느라 듣지 못했다. 토할 것 같았고 토하면서 죽는 것은 그야말로 역겨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을 한다는 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거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물에 빠져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발아래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 머리가 물 밖으로 나와 있고 몸은 발버둥 치며 떠 있고 그제야 홀딱 젖고 흥분한, 그리고 어느 때보다 생기 넘치게 나를 꼭 붙잡고 있는 삶이 보였다.
아빠는 담배를 다 피우고 웃으면서 한쪽 팔을 뻗어서 나를 잡아 끌어 올렸다.
“이제 수영할 줄 알지, 행복하니?”
_7장 ‘이제 수영할 줄 알지’, 73∼74쪽
“이봐, 곱슬머리, 책 한번 들여다보지 않을 거야? 펼쳐 보는 건 공짜란다.”
“고마워요, 아주머니. 근데 제가 필요한 건 책이 아니에요.”
“그걸 어떻게 아니?”
“우리 학교에서 쓰는 책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책들은 뭐예요?”
“안내서란다.”
“네, 그런데 무슨 과목요.”
“뭐라고?”
“이탈리아어나 역사, 과학책들이에요?” 그러고 나서 진흙투성이의 절망의 늪까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 수학 참고서인가요?”
“아니란다. 다행히도 그런 따분한 책들이 아니야!”
“그럼, 실례지만, 어느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인지.”
“곱슬머리야, 학교에서 쓰는 게 아니고, 이것들은 실용서라는 거야. 네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가르쳐준단다. 인생학교에서 필요한 것들이지.”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했고, 말은 마법과도 같다는 것이 정말 사실이었다. 실제로 여기 이것들은 지루하고 무의미한 어느 수요일 아침을 결코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으로 바꾸어놓았다.
_9장 ‘인생학교’, 156∼157쪽
그러나 할아버지는 무사히 한 발을 떼었고 그다음도 또 그다음도 그렇게 집까지 돌아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젊었을 때 떠나 늘그막에 돌아왔지만 어쨌든 무사히 돌아왔다. 해 질 녘에 할머니가 있는 그 밭으로 돌아왔고 둘은 부둥켜안았고 거기에서부터 우리 아빠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이렇게 디노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못했겠지.
사실, 도메니코 신부님이 몸은 죽어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간다고 말해주셨을 당시에는 그 영혼이라는 게 상상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모든 사람의 영혼이 뭔지 깨달았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름다운 이야기일수록 입과 귀로 많이 전달되며 오래도록 남는다. 우리의 몸은 관 속에 머물지만 이야기는 전 세계를 여행하고 길이길이 남는다.
_11장 ‘디노와 마리우차의 노래’, 188∼1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