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포크너문학상><전미도서상>을 비롯해 미국 문학계를 대표할 만한 굵직한 상들을 다수 수상한 경험이 있는 중국 출신의 작가 하진. 그의 두 번째 소설집 『남편 고르기』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첫 번째 소설집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에 이어 작가는 이번 책에서도 ‘미국 문단의 정점에 이른 천재작가'라는 호평이 무색하지 않게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진실한 눈으로 단편소설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 지은이_ 하 진 Ha Jin 1956년 중국 리아오닝에서 태어나 헤이롱지앙대학과 산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브랜다이스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문단에서 ‘천재작가'라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중국 출신 작가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4년(1992년부터)만에 원어민 작가들을 제치고 ‘미국 문학의 최정상'에 선 작가 하 진은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되며 <펜/헤밍웨이 문학상> <펜/포크너상>을 2회에 걸쳐 수상(2000년, 2005년), 각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퓰리처상> 최종 후보도 두 번이나 올라 세계 문단을 놀라게 했고,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닌 비범한 작가”라는 최고의 호평과 함께 “무한한 재능의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소설로 『붉은 깃발 아래에서Under the Red Flag』 『사전Ocean of Words』 『기다림Waiting』 『연못에서In the Pond』 『광인The Crazed』 『전쟁쓰레기War Trash』 『신랑The Bridegroom』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난파Wreckage』 『그림자를 바라보며Facing Shadows』 등이 있다. 현재 보스턴대학의 영문과 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그의 작품들은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옮긴이_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며,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이다. 전북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어하트재단과 케이프타운대학, 풀브라이트재단의 펠로, 케이프타운대학과 워싱턴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하 진의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와 『남편 고르기』를 비롯해, 닥터로우의 『래그타임』, 보니거트의 『내 마음의 어둠』,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 고디머의 『거짓의 날들』(문화관광부 청소년권장도서), 응구기의 『한톨의 밀알』, 브링크의 『메마른 계절』, 쿳시의 『페테르부르크의 대가』『추락』『야만인을 기다리며』『철의 시대』『어둠의 땅』『엘리자베스 코스텔로』『소년시절』『마이클 K』 등을 비롯한 다수의 역서와 『J.M. 쿳시의 대화적 소설』(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책은 …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삼이사,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보았음 직한 어린 시절의 추억, 어둡고 초라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중국의 변두리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하 진 소설집 『남편 고르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고 사건들이다. 하 진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결코 기이하거나 새로운 것이 아니다. 파격적이거나 자극적이지도 않다. 어쩌면 구닥다리로 치부될 만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재치와 유머, 아이러니로 무장한 작가의 힘이 경직되고 위축되어 있는 우리들의 어깨를 슬쩍 치고 가는 느낌이다. 『남편 고르기』에서 작가 하 진이 보여주는 매력은 무엇보다도 ‘웃음'의 코드에 있다.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이 어둡고 폭력적이고 비극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고 정겨움이 넘친다. 작가는 열악하고 어두운 현실세계를 휴머니티가 내재된 재치 있는 웃음의 코드로 맞받아친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소재와 배경이지만, 이 웃음의 코드 뒤에는 인생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숨겨져 있다. ‘미국 문단을 점령한 차이나 파워'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 하 진. ‘노벨문학상을 받아도 놀랍지 않을 작가'라는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두 번째 소설집 『남편 고르기』에서 그는 경쾌하고 짧은 문장,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형식미를 통해 문학다운 문학, 단편소설다운 단편소설의 백미를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 수록 작품 소개 『남편 고르기』에는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장례식 위의 바람과 구름」은 어느 마을에서 벌어지는 장례식장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집단농장의 실권자가 되기 위해 매장을 원했던 어머니를 화장할 수밖에 없는 아들. 살아남은 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현실 갈등을 아이러니하게 그리며, 작가는 삶의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진다. 「십 년」은 주인공이 초등학교 시절 살았던 마을에 가서 웬리 선생을 회고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선생과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주인공은 직접 그 선생을 찾아가는데, 막상 10년 후 다시 만난 그녀의 모습은 우악스럽고 고집스러운 중년의 여인이다. 작가는 문화혁명 당시 억압받고 짓눌렸던 중국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그 속에 담겨진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꼬마 아이들의 권역과 실권 다툼을 통해 세상살이의 험난함과 인생의 우여곡절을 비유해 보여주는 「우리들의 황제」, 아들의 이름이 장군이 될 자신의 운명을 가로막고 있다는 이유로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팔자」, 구두쇠 짓을 하는 갑부를 못마땅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몰아세워 골탕을 먹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큰 부자가 된다는 내용의 「갑부」 등은 인간이 지닌 본연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극적으로 희화화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자식 사랑」은 아이가 없는 한 부부가 남의 아이를 돌봐주면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그것을 통해 느끼는 행복을 이야기하며, 하 진 소설의 특징 중 하나인 휴머니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남편 고르기」는 두 남자 사이에서 제비뽑기로 결혼 상대를 결정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한 여자가 겪어가는 이야기이다. 철없고 이기적인 여자의 욕심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해프닝,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까지 넘나드는 한 여자의 젊은 날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 이밖에도 남편의 장례식날 밤 강도를 만난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이야기하는 「봄바람이 다시 불었다」,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삶의 반전이 거듭되는 「살아남은 자의 서글픔」등은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의 우여곡절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 추천의 글 인생의 한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삶의 아이러니와 인간의 진실을 대면케 하는 것이 단편소설이라면 하 진의 작품이야말로 진짜 단편소설이다. 하 진의 작품들은 정통의 품격과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삶과 세상에 대한 구체적 이해'라는 소중한 문학적 가치의 실현과 보존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다운 소설, 문학다운 문학을 갈구하는 독자들에게 하 진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 이남호(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선생님, 질문이 있는데요.” 가오 지앙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는 학급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였다. “질문이 뭐죠?” 웬리 선생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선생님은 러시아 수정주의자들과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쓰레기가 아니라고 하시지만, 마오 서기장님께서는 분명히 쓰레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죠?” 웬리 선생의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쓰레기가 아니에요. 그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그들을 쓰레기라고 하는 것은 그들을 경멸하기 때문이에요.” “그들도 인간이라는 말씀이신가요?” 니우 펜이 대들었다. “그, 그래요.” 웬리 선생이 말했다. -「십 년」중에서 사흘째가 되었다. 어머니와 딸은 아직도 선택할 수가 없어 제비뽑기로 결정하기로 했다. 첸 부인은 두 장의 종이에 각각 “펭”과 “팡”이라고 써서 그것을 둘둘 말아 공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찻잔 속에 넣었다. 그녀는 찻잔 입구를 손바닥으로 막고 흔들어 종이공을 번들번들한 벽돌 침대 위에 떨어뜨렸다. “홍, 하나를 골라라. 조심해라. 네가 고르는 사람이 네 남편이 될 것이다.” 홍은 눈을 감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종이공들을 비틀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비틀렸다. “좋아요, 이걸로 할 게요.” 그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건넸다. 첸 부인이 그것을 폈다. “안 돼, 너는 잘못된 걸 뽑았어!” 종이에는 “팡”이라는 글자가 당당히 씌어 있었다. -「남편 고르기」중에서 “손자, 이 개자식아!” 벤리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너, 돌을 사용하다니, 니 할미 씹이다.” 비스듬하게 찢어진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피가 그의 왼쪽 눈 주위로 흘러내렸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손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넌 복수하려고 그랬어.” 벤리가 앞으로 나아가 그를 잡으려고 했다. “그래, 맞다.” 손자가 단도를 꺼내더니 휘둘렀다. “나한테 손만 대봐라.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벤리는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우리는 흙덩어리를 내려놓고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벤리는 몸을 돌려 돌멩이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자 손자가 병뚜껑치기 놀이를 할 때 쓰는 원반처럼 생긴 납덩어리를 꺼냈다. 그는 그걸 들어올리며 말했다. “벤리, 나는 준비가 돼 있다. 가까이 오면, 이걸로 네 대갈통을 바숴버리겠다.” 그는 창백해 보였지만 눈은 번쩍이고 있었다. “벤리, 덤벼라. 너는 집에 부모가 있지만 나한테는 부모가 없다. 서로 죽여서 누가 잃을 게 더 많은지 두고 보자.” -「우리들의 황제」중에서 하 진의 소설은 독자에게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해주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갖게 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은 그래서 아주 효과적이다. 작가는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펼쳐나가면서 듣는 사람이 꼼짝 못하고 자리를 지키게 만든다. …… 하 진은 스토리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평범하고 서술적인 문장들 속에 감정의 힘을 슬그머니 집어넣는다.” 억압받고 눌리고 으깨지고 찢어지고 뒤집힌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넓은 가슴과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것은 바로 그 “감정의 힘” 때문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