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다가간다고요?”
“그래요. 역시 우리 섹슈얼 마이너리티는 여러 상황에서 힘든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요. 그들이나 그녀들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더 뛰어난 부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
“이 세상에서 늘, 무엇이 보통이고 보통이 아닌지 그런 장벽과 마주한 환경에서 살아왔어요. 틀림없이 그런 경험이, 어떤 사람의 어떤 상황에도 상상력을 발휘해 사람들 마음에 다가가는 원천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말이죠, 그게 의료 종사자로서 정말 소중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_65~66쪽, 「‘스트레이트’가 ‘마이너리티’」에서
“그치만 여자에게 출산은 평생의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고민도 가지가지, 감동도 가지가지죠. 나도 물론 알고 있어요. 한 인간이 태어나는 거니까요. 그걸 시시하다느니, 매일 똑같은 일의 반복이라느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상당히 별난 거죠.”
“에이, 처음에는 당신도 건방진 꼬마 녀석이었으면서.”
“꼬마 녀석, ‘녀석’…… 음, 듣기 좋은 말이네.”
“뭐가?”
“남자한테만 허용되는 말이잖아요.”
“……당신, 눈물 글썽이지 마. 얼마든지 말해 줄게. 이 꼬마 녀석아!”
_70~71쪽, 「핏기 가신 소시지롤」에서
“저기, 알고 있죠? 트라우마에서 도망친 사람이나 아무런 고민도 없는 사람보다, 필사적으로 상처와 마주한 사람이 훨씬 더 강해진다는 거.”
“강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린 행운아 아닌가요?”
“……행운아……라고요?”
“그래요. 인생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전부예요. 과거는 변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어난 일에 대한 수용 방식은 바꿀 수 있어요.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바뀌죠.”
그렇게 말하며 오케이는 쓰구오에게 윙크했다.
_123쪽, 「고통과 마주하다」에서
“불안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야. 온갖 잡음도 마음속에서 계속 들려올지 몰라. 하지만 네 진짜 마음을, 너 자신이 단단히 받아들여.”
오케이는 하루카 앞에 서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아기를 버리는 부모는 되지 않아.”
_175쪽 「미검진 이유」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를 돌보는 일은 자신이 상상했던 대로는 되지 않아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젖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흔하고, 처음 얼마 동안은 수유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엄마니까 이런 게 당연해’ 하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는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생기고 말죠. 그럴 때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정신적인 낙담과 실망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렇구나. 하긴 완벽주의인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면서 자기가 스스로 만든 규칙을 곧이곧대로 지키려 하죠.”
(…중략…) “태어난 것 자체,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부모에게 전폭적인 애정과 신뢰를 얻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자면 ‘시험을 잘 봤다’거나 ‘착한 일을 많이 했다’거나 그런 조건들이 붙게 되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강박적인 사고가 생겨나기 쉬워요. 그것을 고치지 않고 성장하게 되면 ‘당연족’의 경향이 강해지고, 그것이 산후 우울증으로 연결되기 쉬운 성격이 되죠.”
부모와의 관계와 산후 우울증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쓰구오에게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
_211~213쪽, 「행복한 육아를 위해」에서
인생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이날의 하늘처럼 맑을 때도 있고, 구름이 낄 때도, 황사가 뒤덮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
_286쪽, 「오케이의 과거」에서
진통의 큰 파도에 올라타다
태아의 목소리를 듣는 산부인과 의사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아카펠라
신장 190센티미터의 조산사
‘언니 산부인과’에 잘 오셨어요!
절망으로부터의 재출발
‘스트레이트’가 ‘마이너리티’
핏기 가신 소시지롤
‘행복한 출산으로, 행복한 인생을!’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트라우마
(엄마를 도와주세요) 하고 호소하던 태아의 목소리
“당신이 내 아내를 죽였어!”
‘어머니’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
은둔형 외톨이 생활에서의 탈출
고통과 마주하다
남자와 달리 닭튀김은 배신하지 않는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각자의 고민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새로운 한 걸음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전화
19세의 ‘대박’ 임부가 찾아왔다
미검진 이유
엄마와의 ‘약속’
“내가 아기를 죽였어요”
고독한 육아
행복한 육아를 위해
하루카의 출산
목숨을 건 쓰구오의 설득
‘밀착 케어’ 카운슬링
엇갈린 부부
오케이의 과거
유코의 진통이 시작됐다!
붉은 경종
긴급 제왕절개!
새로 ‘태어나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생명을 이어 가며 살다
저자 후기
■ 지은이 고다 도모 豪田トモ
1973년 도쿄도 출생. 주오대학 법학부 졸업 후 6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다가,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캐나다로 건너가 영화 제작을 공부했다. 귀국 후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 등을 제작했고 주식회사 인디고 필름스를 설립, 2010년에 첫 다큐멘터리 영화 <태어나다>(내레이션 : 쓰루노 다케시)를 공개했다. 이어 2014년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늘, 함께>(내레이션 : 기키 기린)까지 더해 다큐멘터리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9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감독으로서 주목받았다. 2019년에 첫 장편소설 『오네 산부인과』를 발표한 그는 이듬해 이 소설을 쓰면서 조사한, ‘산후 우울증’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세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엄마를 그만둬도 되나요?>를 공개했다. 그 밖에 지은 책으로 『태어나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당신에게로』 『잘 태어났어』(공저)가 있으며, ‘생명과 가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내는 작품들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 옮긴이 김해용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 편집자로 일하며 다수의 일본 작품을 번역하고 편집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버라이어티』 『나오미와 가나코』, 이사카 고타로의 『악스』, 모리미 도미히코의 『야행』, 츠지무라 미즈키의 『도라에몽 : 진구의 달 탐사기』 등의 소설과 『조류학자라고 새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지성만이 무기다』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신공룡 도감 : 만약에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등 여러 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 이 책에 대하여
태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산부인과 의사가 다양한 젠더의 의료종사자들이 모인 클리닉에서 겪는 웃음과 감동의 이야기 『오네 산부인과』가 현대문학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저자 고다 도모는 그간 <태어나다> 시리즈를 통해 출산과 육아, 가족 간의 사랑, 다양한 형태의 가정과 그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영상으로 포착해 왔는데, 자신의 첫 소설에 이 경험을 녹여 ‘생명과 가족’이라는 주제를 따뜻하고 유쾌한 필치로 그려 냈다.
이 책은 배 속 태아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판타지적인 설정과 산부인과 의료진이 모두 LGBT라는 독특한 상상으로 쌓아 올린 소설이지만, 의료, 심리, 성소수자들을 다루는 만큼 수십 명의 인터뷰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철저한 감수를 거쳐 써냈다고 저자는 밝힌다. 아울러 영상화를 목표로 한 오락 소설로서 문장부호와 같은 비언어적, 시각적 기호를 적극 활용했고, 간결한 표현과 짧은 문장으로 구성해 텍스트가 빠르고 쉽게 읽히도록 했다. 저자는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육아에 바쁜 부모도 이 소설을 편하게 읽을 수 있게끔 했고, 나아가 임신, 출산, 육아, 산후 우울증, 애착장애, 소수자의 삶과 같은 주제를 대중 독자에게 무겁지 않게 전달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픽션 세계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다소 민감하게 여겨지는 산부인과를 이야기의 무대로 삼으면서 이 책은 다른 의료 소설들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는 데 더해 다양하고 유용한 의학 정보까지 담았다.
태아의 목소리를 듣는 초식남 산부인과 의사
대망의 첫 출근 날, 새 직장의 비밀(?)을 알게 되다
“여기는 LGBT에 프렌들리한 오네 산부인과입니다” ― 간략 줄거리 소개
여기는 오네시市. 도쿄에서 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곳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지역 주민들이 친근함을 담아 ‘언니 산부인과’라고 부르는 클리닉이 자리한다. 담당 환자가 산후 우울증에 걸려 자살한 사건으로 인해 한동안 은둔 생활을 하던 의사 다치바나 쓰구오는 어머니의 소개로 오네시의 클리닉에서 새 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출근 첫날, 난생처음 보는 특이한 출산 현장과 맞닥뜨린 데 이어 자신을 제외한 직원 모두가 LGBT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쓰구오는 오네 산부인과에서 무사히 의사 생활을 해 나갈 수 있을까?!
행복한 출산과 육아를 위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진료소,
오네 산부인과에서 펼쳐지는 버라이어티한 일상들
총 39개의 짤막한 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환자의 자살로 트라우마에 빠진 의사가 ‘오네 산부인과’라는 지방 클리닉에서 보내는 사계절을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 보인다. 일반적인 대학병원 진료만을 경험해 온 주인공에게 오네 산부인과는 온통 낯선 것투성이이다.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직원들이 찾아와 아카펠라로 축하해 주고, 자궁과 두 개의 난소를 형상화한 건물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퇴원 후에도 놀러 오도록 각종 놀이 시설을 설치해 개방해 두며, 산부인과 검진뿐 아니라 임상심리사가 심리 상담까지 해 주는 ‘밀착 케어’를 운영한다. ‘행복한 출산이 행복한 육아와 행복한 가정으로 이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원장은 또한, 되도록 산부들이 원하는 방법대로 분만하게 도와준다고 방침을 정한바, 분만실에서는 이따금씩 듣도 보도 못했던 기상천외한 출산 현장이 펼쳐지기도 한다. 때로는 눈물 나게 웃기고, 때로는 응급 분만 등 긴박감이 넘치며, 때로는 가슴 뭉클해지는 탄생의 순간이 가득한 이곳에서의 일상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덧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와 그 소중함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해.”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래…… 그 첫 번째 도움을 주는 게 산부인과 의사의 일이야.”
_336쪽, 「태어나 줘서 고마워」에서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서로 마주하고 의지하며 더불어 성장해 가는 이야기
오네 산부인과의 또 하나의 주요 특징은 이곳의 의료진을 포함한 직원 대다수가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인 이른바 LGBT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다고 여겼던 이들과의 만남에 처음에는 당황한다. 그러나 이곳 원장의 말처럼 누구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자신의 오랜 고민과 트라우마를 극복하여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해 나가는 데 도움을 받는다.
LGBT가 다수자이고 이성애자가 소수자인 ‘오네 산부인과’의 독특한 풍경을 통해 작품은 ‘평범함’이나 ‘보통’이란 어쩌면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고, 각자의 ‘자기다움’을 인정하는 것이 심리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유를 그 어느 텍스트보다 강렬하게 전한다. 이와 더불어 ‘애착장애’와 ‘산후 우울증’ 간의 관계나, LGBT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등 전문가의 감수를 거쳐서 이 책에 담긴 다양한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소설의 재미뿐 아니라 의미 있는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