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이색적인 작품집
영웅도 초능력자도 강도도 살인 청부업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들려주는 ‘특별’한 만남에 관한 여섯 편의 이야기
발표하는 작품마다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국내에도 확고부동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 이사카 고타로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가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단편보다 장편을 즐겨 쓰고 연애소설에는 관심이 없다고 공언해 온 이사카 고타로가 발표한 연작 단편 형식의 연애소설집으로, 2015년 일본의 전국 서점 직원이 고른 ‘가장 팔고 싶은 책’인 서점대상 최고작 10위권에 선정되고, 일본 내에서만 1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는 총 여섯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는 사이토 가즈요시로부터 연애를 테마로 한 노래의 작사를 의뢰받아 가사 대신 쓴 소설이고, 두 번째 단편 「라이트헤비」는 2007년에 발매된 사이토 가즈요시의 싱글 앨범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의 초회한정판 부록으로 수록된 소설이다. 이렇게 쓰여진 「아이네 클라이네」와 「라이트헤비」에서 파생된 이야기 몇 편을 덧붙여 완성시킨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기존 소설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이번에 아름다운 가사와 잔잔한 선율처럼 흐르는 플롯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색적인 작품집을 내놓았다.
이사카 고타로 소설 전반에 비해 이 작품집이 또 하나의 실험적 도전이라 명명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소설에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 영웅이나 초능력자, 강도 같은 인물과 기상천외한 설정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작은 밤의 음악’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보통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엮어 가는 만남과 그에 따른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영롱하게 빚어냈다. 아울러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문체, 재치와 통찰이 번뜩이는 아포리즘, 다채로운 복선, 작품 간의 정교한 연결 고리 등 개성적인 작풍이 더해져, 이사카 고타로의 팬들은 물론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교감의 극치를 보여 줄 작품이다. 그가 한 문예지 인터뷰에서“처음으로 독특한 인물이나 설정 없이도 이사카 고타로다움을 느낄 수 있고, 스토리만으로도 놀라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발견을 했다”고 언급한 대로, 이번 단행본은 그의 작가적 기량을 확장시킨 괄목할 만한 작품집이다.
■ 언론의 찬사
★★★★★ 만남이 없다고 한탄하는 당신의 마음을 시원하게 위로해 줄 마법의 소설집. _요시다 다이스케(평론가)
★★★★★ 경묘한 문체, 멋진 경구, 치밀한 복선, 이사카 고타로 작품의 진수가 듬뿍 담겼다. _일간 겐다이
★★★★★ 처음부터 독자를 사로잡으며 놓지 않는다. 경쾌한 문체로 흥을 북돋우는 명연주로, 각각의 에피소드는 조용히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장을 덮는 것이 아쉽다. _산케이 조간 신문
★★★★★ 인생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소소하지만 사랑스러운 기적이 있는 6편의 단편들. _다키이 아사요(작가)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라는 제목 그대로, 조용한 밤에 한 편씩 읽고 행복한 기분으로 잠이 들게 해 주는 책이다. _오야 히로코(평론가)
■ 지은이 _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郞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이름 앞에 항상 ‘천재’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일본 작가.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중국, 한국, 대만 등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되었으며 국경을 넘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짧은 인생을 상상력에 내던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라는 문장을 보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전설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太郞의 이름과 같은 획수의 한자를 조합한 필명 이사카 고타로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닮으라는 바람을 담아 가족들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
1996년 「악당들이 눈에 스며들다」로 산토리미스터리대상의 가작을 수상, 2000년 『오듀본의 기도』로 신초미스터리클럽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2002년 『러시 라이프』로 평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2003년 추리소설 독자는 물론 대중으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얻은 『중력 삐에로』로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2004년 『칠드런』 『그래스호퍼』, 2005년 『사신 치바』, 2006년 『사막』, 그리고 2008년에는 『골든 슬럼버』로 여섯 번째로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나 ‘집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고사한다. 2004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같은 해에 『사신 치바』로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에서 수상했고, 2008년 『골든슬럼버』로 야마모토슈고로상과 서점대상뿐만 아니라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1위에 올라 3관왕을 달성했다. 서점대상의 제1회부터 제6회까지 매회 최고작 10위권에 선정된 유일한 작가로, 2015년 제12회에는『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와 『캡틴 선더볼트』 두 작품이 동시에 최고작 10위권에 올라 변함없는 저력을 과시했으며, 2016년에는 12년 만에 『칠드런』의 후속작 『서브머린』을 출간하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중층적이고 정교한 구성력과 경쾌하고 소탈한 필치로 풀어내는 것이 작품의 특징이며, 최근에는 대중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순문학 작가로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비롯한 11개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등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영화나 연극, 만화, 드라마 같은 다른 분야로도 확장되어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 옮긴이_최고은
대학에서 일본사와 정치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일본 대중문화론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책들을 소개하려 힘쓰고 있다.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 시리즈」,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유메노 큐사쿠의 『소녀지옥』, 노리즈키 린타로의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어느 밤에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 같은 것……”
번잡한 도시의 밤하늘을 수놓는 그들만의 세레나데!
‘그때 거기 있던 사람이 그 사람이라 정말 다행이었다’라고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첫 번째 단편 「아이네 클라이네」에서 리서치 회사 직원인 사토는 아내가 집을 나갔다는 회사 선배나 스무 살 때 만나 결혼한 대학 동창 부부 등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진정한 인연이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직 싱글인 그는 새로운 인연을 기대하며 지인들에게 배우자와의 운명적 만남에 관한 ‘조사’를 벌인다.
두 번째 단편 「라이트헤비」는 1년째 전화 통화로만 관계를 이어 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미용사인 미나코는 단골인 이타바시 가스미로부터 그의 남동생 마나부를 소개받는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유약하긴 해도 다정다감한 성격의 마나부가 미나코도 싫지만은 않은데, 그는 시간이 지나도 만나자거나 사귀자고 하지 않는다. 이렇게 지내다가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마나부로부터 연락이 끊어진다.
월드컵이나 온바시라 축제처럼 특별한 이벤트는 아니지만, 5년에 한 번 열리는 작은 이벤트가 있다. 후지마에게 그건 바로 운전면허 갱신이다. 세 번째 단편 「도쿠멘타」에는 사토의 직장 선배 후지마가 등장한다. 10년 전 후지마는 운전면허 갱신 마지막 날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갓난아이를 안고 다가와 다짜고짜 그의 안경을 벗겨 가져갔다. 준비성 없고 덜렁대는,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여자에게 호기심을 갖는 후지마. 이후 5년마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거울처럼 꼭 닮았다.
네 번째 단편 「룩스라이크」에서는 자전거 주차권 도둑을 잡겠다고 나서는 정의감 넘치는 소년 소녀와 ‘기근 없는 에도시대의 태평성대’처럼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젊은 남녀의 에피소드가 교차한다. 언뜻 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두 커플의 교집합에는 서로 빼닮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어설프지만 순수한 청춘의 열정이 있다.
다섯 번째 단편 「메이크업」에서는 학창 시절의 갑을 관계가 사회인이 되어 역전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유이는 고등학생 때 동급생 고쿠보 아키에게 왕따를 당했는데, 세월이 흘러 고쿠보가 회사에 찾아와 광고 건을 영업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그러나 유이는 잊고 있었던 마음속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깨닫고 복수를 망설인다.
마지막 단편 「나흐트무지크」에서는 지금까지 전개된 다섯 단편 속 인물과 사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이 작품은 복싱 선수 오노가 방송에 출연하여, 19년 전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당시 오노는 일본인 최초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지만, 1년 안에 벌이는 리턴매치에서 무참하게 패배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는 젊지 않은 나이로 미국의 천재 복서 오언과 타이틀매치를 치른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는 무심코 지나칠 법한 소소한 ‘만남’들이 ‘특별한 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 삶을 변화시키는 ‘기적’에 의해 나타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비관적 상황에서 낙관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이사카 고타로의 바람처럼, 그가 전하는 유쾌하고 따스한 세레나데는 쳇바퀴 돌듯 진부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소소한 행복이라고 할 ‘서프라이즈’를 선사해 줄 것이다.
■ 본문 속으로
“아까 했던 얘기 말인데, 결국 만남이란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뭔데?”
“그때는 뭔지 몰라서, 그냥 바람 소리인가 생각했지만, 나중에 깨닫게 되는 거. 아, 그러고 보니 그게 계기였구나, 하고. 이거다, 이게 만남이다, 딱 그 순간에 느끼는 게 아니라,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거.”
“작은 밤의 음악처럼?”
“맞아, 그거.”
_35쪽, 「아이네 클라이네」
“지금도 그 친구가 자랑스러워?”
“물론이죠.”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지금의 유미가 훨씬 자랑스러웠다. “그 특이한 남편도 지금은 수박에 뿌리는 소금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구나.”
“얼마 전에 친구한테 물어봤어요. 대체 남편의 어디가 좋았냐고.”
그런 질문을 한 건, 오랜만에 고향에서 만났을 때였다. 패밀리 레스토랑 구석 테이블에서 그녀는 유모차를 옆에 두고 다정하게 미소 짓더니,“잘은 말 못 하겠는데 남편하고 나, 아이들의 조합이 꽤 맘에 들어”라고 대답했다.
_80쪽, 「라이트헤비」
5년 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사근사근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분노나 불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는 그랬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있었고, 딸아이가 한 살이 되었을 무렵이었던가. 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을 무렵의 내 모습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5년 전의 자신에게 질투가 났다. “너는 모르겠지만” 하고 사진 속 자신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다음 갱신 때에는 홀로 쓸쓸하게 맥주를 마시며 아내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휴대전화를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놈이 되어 있을 거야.
_104쪽, 「도쿠멘타」
“후지마, 잘 들어. 부부 문제는 외교야, 외교. 여자는 종교도, 역사도 다른 외국이라고 생각해야 해. 그런 사람들끼리 한지붕 아래에서 살 부비며 살려면 당연히 외교적 교섭 기술이 필요하지. 첫째, 의연한 태도. 둘째, 상대의 면을 세워 주면서. 셋째, 확답은 하지 않는다. 넷째, 국토는 수호한다. 알겠어? 이혼도 하나의 선택지야. 함께할 수 없는 타국과는 거리를 두는 게 국민을 위해서도 좋지.”
_116쪽, 「도쿠멘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정한 연인 사이였다. 크게 싸운 적도 없었고, 다른 이성에게 한눈을 판 적도 없어서 ‘기근 없는 에도시대처럼 태평성대다’라고 표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는‘아니, 에도시대보다 우리가 훨씬 평화롭지’라고 구니히코가 웃으며 대답했고, 아케미도 동의했다.
흑선도, 메이지 유신도 없이 이대로 둘이서 결혼하게 되겠지. 아케미도 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흑선이 나타났다.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하는지 아케미도 알 수 없었다. ‘질렸다’나 ‘매력이 안 느껴진다’ 같은 종류의 감정은 아니었다.
_174쪽, 「룩스라이크」
의식이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들은 건 마쓰자와 켈리의 목소리였다. 하염없이 ‘일어나’라고 외치고 있었다. 관람석에서도 제 이름을 부르는 대합창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오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불현듯 그저께 집 근처에서 들었던 ‘사이토 씨’의 노래가 조용히 흘렀다. 작은 밤의 노래가, 음악이 오노를 조용히 흔드는 것 같았다.
_314쪽, 「나흐트무지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