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은 가능한 한 여러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_ 이사카 고타로
● 2003년 제56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후보
● 2004년 제131회 나오키상 후보
● 2004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5위
● 2004년 ‘기노쿠니야 베스트 30’ 2위
● 2005년 제18회 야마모토슈고로상 후보작
● 2005년 제2회 일본서점대상 5위
“아이들과 마주하는 데 심리학이며 사회학이 다 뭡니까. 녀석들은 통계가 아니고, 수학도, 화학식도 아니라고요. 맞죠? 그리고 누구나 자기는 온리 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와 닮았다는 소리는 질색한다고요. 누가 나한테 존 레넌하고 닮았다고 해도 싫습니다. 그런데 조사관이 ‘아, 얘는 이런 가정환경 패턴이군’ ‘이건 예전에 다뤘던 사건하고 같은 경우네’ 하고 틀에 끼워 맞추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아니에요? 밸런타인데이에 다른 남자애들하고 같은 초콜릿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좋아하는 애한테 초콜릿을 받고 좋아서 풀어 봤는데 다른 애들한테 뿌린 싸구려 초콜릿이었다는 것만큼 비극적이라고요. 비극은 필요 없어요. 조사관은 담당하는 아이가 ‘다른 누구와도 다른, 세상에서 하나뿐인 아이’라고 생각하고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요.”
_「칠드런」 85쪽
“세상에 좋은 부모는 없지만, 부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도 없지 않을까?”
“하지만 비행의 원인이 꼭 부모 탓인 것 같지는 않아요.” 시로는 말을 이었다. “내 주변에는 심심풀이로 범죄를 저지르는 애들도 있거든요. 그런 애들이 더 많지 않을까요?” 시로는 감자튀김을 집어 와그작와그작 씹었다. “아저씨 같은 조사관들을 감쪽같이 속이는 약아빠진 애들이요.”
그건 사실이었다. 반쯤 장난으로 비행을 저지르고, 가정법원에 오자마자 ‘부모 잘못이다’ ‘사랑을 받지 못했다’라고 하는 아이들도 개중에는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애들은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그들은 혼자 있을 때는 문제가 없더라도 여럿이 뭉쳐 집단이 되면 삐뚤어진다.
“아이는 영어로 차일드지만, 복수형은 차일즈가 아니라 칠드런이잖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거라고.”
애들은 그런 거다, 진나이 씨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_「칠드런」 107쪽
“우리 일이 그거라고.”
“그게 뭔데?”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야.”
순간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소년의 건전한 육성? 평화로운 가정생활? 소년법과 가정심판법의 목적? 그딴 거 전부 거짓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우리 목적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 그뿐이야.”
옆에 있던 우리는 곤혹스러워했지만, 진나이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리 높여 외쳤다.
“안되는 놈들은 안된다고 했지? 절대로 새사람이 될 수 없다고. 지구의 자전이 멈춘다 해도, 지구온난화가 기적처럼 멈춰도, 암 특효약이 발명되어도, 스티븐 시걸이 악역한테 져도, 비행 청소년이 새사람이 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지?”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잖아.”
중년 남자가 화를 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진나이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걸 우리가 한다고.” 진나이 씨는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당신들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나?”
그리고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들을 들여다보았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는 엉터리 주장이었지만, 진나이 씨의 말에서는 알 수 없는 설득력이 느껴졌다. 마지막 말은 이랬다.
“애초에 어른이 폼 나면 애들도 삐뚤어지지 않아.”
_「칠드런 2」 212~213쪽
뱅크
칠드런
레트리버
칠드런 2
인
참고 문헌
작품 해설
옮긴이의 말
■ 지은이_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
1971년 5월 25일 일본 지바 현 마쓰도 시 출생. 고등학생 때는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의 열성 독자였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순문학에 매료되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짧은 인생을 상상력에 내던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라는 문장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도호쿠 대학교 법학부 졸업 후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여러 신인문학상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1996년 「악당들이 눈에 스며들다」로 제13회 산토리미스터리대상의 가작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2003년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로 출간된다. 2000년 『오듀본의 기도』로 제5회 신초미스터리클럽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2002년 출간된 『러시 라이프』로 평론가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독자층에 극적인 확장을 가져온다. 2003년 『중력 삐에로』로 대중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추리소설 독자는 물론이고 대중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후 2004년 『칠드런』『그래스호퍼』, 2005년 『사신 치바』, 2006년 『사막』, 그리고 2008년에는 『골든 슬럼버』로 여섯 번째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나 ‘집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고사한다. 2004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제25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같은 해에 『사신 치바』로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2008년 『골든 슬럼버』로 제21회 야마모토슈고로상과 제5회 서점대상뿐만 아니라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1위에 올라 3관왕을 달성했다. 서점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되어 독자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반영한다고 알려진 서점대상의 제1회부터 제6회까지 매회 최고작 10위권에 선정된 유일한 작가이며, 2015년 제12회에는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와 『캡틴 선더볼트』 두 작품이 동시에 최고작 10위권에 올라 변함없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 『마왕』『종말의 바보』『마리아 비틀』『가솔린 생활』『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사신의 7일』 등이 있다.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중층적이고 정교한 구성력과 경쾌하고 소탈한 필치로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며, 대중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순문학 작가로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한 작품의 인물이 다른 작품에 살짝 등장하는 식으로 작품 간에 미묘한 연결 고리가 있어, 이를 찾아내는 일은 독자의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 대학생 때부터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 거주한 때문인지 작품의 상당수가 센다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동네이므로 설정에 허점을 줄일 수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영화나 연극, 만화, 드라마 등 다른 분야로도 확장되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피쉬 스토리』를 비롯한 11개의 작품이 영화화되었고, 특히 『골든 슬럼버』는 일본에서 1억 1500만 엔의 수익을 올렸으며 한국에도 개봉되었다.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는 필명. 추리소설 작가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太?의 이름과 같은 획수의 한자를 골라 조합한 것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라는 의미에서 가족이 생각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사카 고타로ISAKAKOTARO를 로마자로 바꾸어 거꾸로 읽으면 오라토카카시ORATOKAKASI가 되는데, 여기서 카카시(허수아비)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명실상부한 일본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중국, 한국, 대만 등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되었으며 국경을 넘어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 옮긴이_ 최고은
대학에서 일본사와 정치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일본 대중문화론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좋은 책들을 소개하려 힘쓰고 있다.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증명 시리즈」, 오쿠다 히데오의 『침묵의 거리에서』, 요코야마 히데오의 『64』, 요네자와 호노부의 『부러진 용골』, 유메노 큐사쿠의 『소녀지옥』,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사카 월드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기념비적인 첫 작품집
소설가 중에도 올라운더는 존재한다. 장편과 단편 모두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나아가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작가. 이사카 고타로는 뛰어난 올라운더다. 그러한 면이 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칠드런』이며, 각 단편의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전체적인 구성에서도 독자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_ 가야마 후미로(평론가)
이사카 고타로의 대표작의 하나이자 2005년 국내에 그의 이름을 처음 알렸던 『칠드런』이 현대문학에서 최고은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소설 겐다이》 2002년 4월호에서 2004년 3월호에 걸쳐 발표된 다섯 편의 연작소설을 묶은 『칠드런』은 문장과 대화의 통통 튀는 재미, 조형력이 돋보이는 개성적인 등장인물과 기상천외한 설정, 산뜻한 감동 등 ‘이사카 고타로적’인 것들이 고루 담긴 그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집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즐겨 쓰는, 한 작품의 인물이 다른 작품에 살짝 등장하는 식으로 작품 간에 미묘한 연결 고리를 두는 세계관의 공유를 중간중간 발견할 수 있어 이사카 고타로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가장 먼저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특히 이번의 『칠드런』은 일본에서 2007년 발행된 문고본을 번역한 것으로 평론가 가야마 후미로의 작품 해설이 더해져 그즈음 한창 조명되던 신예 작가 이사카 고타로를 다시금 만날 수 있게 한다.
이사카 고타로는 『칠드런』에 대해 “단편집인 척하는 장편소설”이라 평했는데, 「뱅크」「칠드런」「레트리버」「칠드런 2」「인」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단편은 저마다 배경이 다르고 화자 역시 다르지만 읽어 나가다 보면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가 밑바탕에 그려진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바로 이사카 고타로의 등장인물 중에서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기억하고 사랑하는 남자 진나이이다. 그는 터무니없는 말로 상대를 얼떨떨하게 만드는 괴짜에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방약무인, 마이동풍 등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사자성어가 무척 잘 어울리며 자신만의 정의를 가지고 주변을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이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이다. 게다가 불가사의하게도 그는 항상 소동의 중심에 있으니 사건이 그를 따라다닌다고 할 법하다. 흥미로운 것은 『칠드런』이 진나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네 사람―가모이, 무토, 유코, 나가세의 시선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아울러 다섯 개의 단편이 시간순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궤적을 좇다 보면 어느 순간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불가사의한 훈훈함을 선사하는 다섯 개의 기적 이야기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야.”
순간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소년의 건전한 육성? 평화로운 가정생활? 소년법과 가정심판법의 목적? 그딴 거 전부 거짓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우리 목적은 기적을 일으키는 것. 그뿐이야.”
옆에 있던 우리는 곤혹스러워했지만, 진나이 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소리 높여 외쳤다.
“안되는 놈들은 안된다고 했지? 절대로 새사람이 될 수 없다고. 지구의 자전이 멈춘다 해도, 지구온난화가 기적처럼 멈춰도, 암 특효약이 발명되어도, 스티븐 시걸이 악역한테 져도, 비행 청소년이 새사람이 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지?”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잖아.”
중년 남자가 화를 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진나이 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걸 우리가 한다고.” 진나이 씨는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야. 그런데 당신들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나?”
_「칠드런 2」 212~213쪽
왜 은행 강도는 인질 모두에게 야시장에서나 팔 법한 만화영화 인물 가면을 씌웠을까? 첫 번째 단편 「뱅크」에서 센다이의 대학생 가모이는 친구 진나이에게 이끌려 영업 종료 직전의 은행에 갔다가 강도와 맞닥뜨려 인질이 된다. 어떤 일에든 맞서 싸우는 게 신조인 진나이는 비틀스의 노래를 부르는 등 저항을 시도하지만 상황은 악화되기만 하고, 그런 진나이의 행동에 속으로 투덜대던 가모이는 함께 인질로 붙잡힌 시각장애인 청년 나가세로부터 사건에 관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은 정말로 어머니를 살해해 정원에 묻었을까? 두 번째 단편이며 표제작인 「칠드런」에서는 순진하고 성실한 가정법원 조사관 무토가 절도를 저지른 고등학생과 그의 무뚝뚝한 아버지를 면접조사 하면서 어딘가 수상쩍은 구석이 있는 부자를 추적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뱅크」로부터 12년 후의 이야기로, 놀랍게도 진나이는 무토의 선배이자 가정법원 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큰 줄기는 비행소년과 가사 분쟁을 해결하는 가정법원 조사관이 하는 일을 다루고 있지만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한 진나이의 엉뚱한 조언들로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과 반복되는 행동들…… 시간이 멈춘 듯한 벤치 주변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 번째 단편 「레트리버」는 「칠드런」에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 「뱅크」에서 만났던 나가세의 연인, 유코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나가세와 유코는 센다이 역 근처에서 실연한 진나이를 위로하는데, 진나이가 뜬금없이 트루먼 커포티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주변의 시간이 멈추었다는 말을 꺼낸다. 과연 그들 주변의 벤치에는 두 시간 전부터 같은 사람들이 계속 앉아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진나이와 친구들은 초자연적이라고도 할 만한 이 불가사의를 파헤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단편 「칠드런 2」는 「칠드런」에서 1년 후의 이야기로, 진나이가 시험 관찰 중인 소년과 무토가 담당한 이혼 조정 중의 부부가 등장한다. 사건다운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진나이의 기이한 행동이 역시 의외의 결과를 불러일으키며, 「칠드런」에서 얼핏 드러났던 가정법원 조사관의 진면목이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펼쳐진다.
이 사람은 정말로 진나이가 맞을까? 마지막 단편 「인」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 「뱅크」에서부터 1년 후의 이야기이다. 나가세와 유코는 진나이가 아르바이트한다는 백화점 옥상에 찾아가지만 진나이는 보이지 않고, 어느덧 혼자 남겨진 나가세는 소소한 모험을 겪다가 진나이를 만나지만 어쩐지 그의 모든 것이 평소와는 다름을 느끼게 된다.
『칠드런』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진나이는 자신들의 일상에 던져진 비일상적인 존재이다. 그들은 진나이를 통해 작은 위안을 얻고,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를 겪는다. 독자들 역시 『칠드런』을 읽음으로써 지금 서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