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타 고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사건이 발생하고 범인을 잡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란 점에서 마땅히 추리소설로 분류해야 하지만 그보다 넓게 보면 온갖 군상이 등장하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일류 호텔을 드나드는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그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어쩌면 “우리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될지 모른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범죄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수사 과정이 호텔이란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과 교차하면서 숨 가쁘게 이어지는 소설이다. 일설에 의하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코르테시아도쿄의 실제 모델인 니혼바시 로얄파크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탈고 후 “상상력을 극한까지 쏟아부었다는 실감이 든다. 그만큼 작업의 보람도 충분히 느꼈다. 앞으로 똑같은 작업을 한다 해도 이보다 더 잘해낼 자신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공 들인 작품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지금의 대중적 인기를 불러온 본 격 추리소설부터 미스터리 색채가 강한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해왔다. 이중 상당수의 작품이 영화와 TV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사랑을 받았다. 최근작으로 작가 생활 25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기린의 날개』 『한여름의 방정식』 『매스커레이드 호텔』과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있으며, 지난 2011년에는 여태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총망라해 소개한 『히가시노 게이고 공식 가이드』가 출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대표작으로 『용의자 X의 헌신』(제134회 나오키상, 제6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 상) 『비밀』(제5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 『백야행』 『붉은 손가락』 『악의』 『유성의 인연』 『성녀의 구제』 『신참자』 외 다수 가 있다.
옮긴이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번역으로 일본 고단샤가 수여하는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그동 안 번역한 책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붉은 손가락』 『유성 의 인연』 『악의』,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 『철도원』,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꿈의 도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시리즈 등이 있다.
연쇄살인의 다음 장소로 예고된 매스커레이드 호텔은 최상의 서비스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소동이나 손님들은 ‘최상’이란 수식어에서 한참 멀어 보인다. 심히 정체가 의심스러운 그들의 가면이 벗겨지고 맨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그때그때 가면을 바꿔 써야만 하는 얄궂은 운명의 인간 군상을 대면하게 된다. 싱글룸 요금으로 스위트룸를 욕심내는 뻔뻔한 거짓말쟁이, 보상을 바라고 허위 절도 공작을 꾸미는 커플, 해고당한 분풀이를 무고한 호텔 직원에게 해대는 남자, 가방 속에 스토커의 사진을 넣어 갖고 다니는 여자, 객실 안에서 귀신이 느껴진다는 시각장애인 등등, 닛타 형사와 마주한 이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거리낌 없이 가면을 쓴다.
제목에 쓰인 ‘매스커레이드’는 ‘가면, 가면무도회’라는 뜻이다. 한 사회에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그때그때 적절한 가면을 번갈아 얼굴에 붙이고 나서는지도 모른다. 각각의 직업에 적합한 가면을 쓰기도 하고, 때로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임시방편의 가면을 둘러쓰기도 한다. 가족이나 직장에서의 위치에 따라 가면의 모습이 다양하게 달라지기도 한다. 어쩌면 마지막까지 지녀야 할 본래의 얼굴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허상인지도 모른다. ‘호텔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손님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에 찾아온다’는 야마기시 나오미의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하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에서 우리의 자화상과 마주친다. 이 작품이 오락성 강한 추리소설로만 읽히지 않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