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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妊娠カレンダー

  • 저자 오가와 요코 지음
  • 역자 김난주
  • ISBN 978-89-7275-744-3
  • 출간일 2015년 07월 27일
  • 사양 208쪽 | 127*188
  • 정가 0원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메마른 수식으로 감동을 전한 오가와 요코,
평온한 일상에 숨은 두려움과 혼란을 투명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그리다.
제10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 『세상 끝 아케이드』 『고양이를 안고 코끼리와 헤엄치다』의 작가 오가와 요코의 소설집 『임신 캘린더』가 현대문학에서 번역을 다듬어 재출간되었다. 제104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임신 캘린더」를 포함해 아쿠타가와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 「기숙사」, 《뉴요커》에 영역판이 실리며 오가와 요코 문학을 해외에 알린 「해 질 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까지, 그림자처럼 흐릿해 더욱 서늘한 두려움을 담은 세 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가는 이 책에서 출산, 해외 이주, 결혼이라는 커다란 생활의 변화를 앞둔 여성들이 겪는 막연하고 모호한 두려움과 혼란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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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는 까닭은 잼을 그냥 먹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기형적인 몸 때문인 것 같다. 커다랗게 부푼 배 때문에 몸의 온갖 부분이, 예를 들면 장딴지와 볼, 손바닥과 귓불, 엄지손가락과 손톱과 속눈썹의 균형이 일그러져 있다. 그녀가 잼을 삼키면 목살이 위아래로 천천히 꿈틀거린다. 숟가락 자루가 부어오른 손가락에 자국을 남긴다. 나는 그런 언니의 몸 이 부위 저 부위를 말없이 하나하나 바라본다. 마지막 한 숟가락을 깔끔하게 핥아먹자 언니는 어리광을 부리듯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이제, 없네.”

“내일 또 만들어줄게.”

나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온 집 안에 있는 그레이프프루트를 다 잼으로 만들고 나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슈퍼마켓에서 또 사 들고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일 매장 담당자에게 “이거 미국산 그레이프프루트 맞나요?” 하고 확인한다.

- 66쪽,「임신 캘린더」에서

 

나는 조심조심 손을 내밀어보았다. 방울 하나가 가운뎃손가락 끝을 스치고 떨어졌다. 용기를 내어 조금 더 손을 내밀자 그다음 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

차갑지도 뜨끈하지도 않았다. 그저 끈끈한 감촉만 남았다. 나는 그것을 손수건으로 닦아낼까, 아니면 쥐어 뭉개버릴까 망설이면서 손바닥을 편 채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방울은 톡, 톡 쉬지 않고 떨어졌다.

‘대체 뭐지?’

나는 열심히 생각했다. 선생님은 잠들었고, 사촌 동생은 합숙 중이고, 수학을 전공하는 그는 행방불명이 되었다. 나는 정말 혼자였다.

‘연필을 쥐고 수학 문제를 풀고 꽃삽으로 구근을 심었다는 그의 아름다운 왼 손가락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톡.

‘왜 저렇게 묘한 색의 튤립이 핀 것일까.’

톡.

‘왜 나는 늘 사촌 동생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

톡.

방울과 함께 온갖 의문이 떨어졌다.

‘왜 선생님은 사촌 동생의 근육과 관절과 견갑골을 그렇게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점차 숨이 갑갑해졌다. 벌리고 있는 손바닥이 저리면서 무거워졌다. 갈 곳 없는 방울이 손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 145쪽,「기숙사」에서

 

“저는 눈도 깜박거리지 못하고 그저 서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설명하고 싶은데, 뭐라고 표현이 안 되는군요. 무서웠다, 싫었다, 그런 단순한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면 벌써 옛날에 잊어버렸을 겁니다. 감정이 끓어오르기도 전에 뜨뜻미지근한 김의 아른거림과 삽 끝에서 떨어지는 스튜 방울과 짓뭉개진 감자에 찍힌 장화 자국, 그런 불가사의한 광경들이 제 가슴을 짓눌렀죠.”

“그 후인가요? 먹을 수 없게 된 게.”

나는 얘기의 핵심을 파악하듯 천천히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루미늄 그릇 소리만 들려도, 급식 당번이 복도 저쪽에서 뛰어오기만 해도 그 풍경이 하나하나 되살아났죠. 정말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게는 급식이 수영장과 똑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죠. 아무리 손발을 버둥거려도 몸이 가라앉는 것처럼, 급식을 숟가락으로 떠서 입에 대려고 하면 뚱뚱한 아줌마와 삽과 고무장화가 가로막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저도 어쩔 수가 없어서 책가방을 멘 채로 학교에는 가지 않고 온 동네를 싸돌아다녔어요. 체육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마침 좋았죠. 수영 팬티와 빨간 수영모가 들어 있는 비닐 가방을 무릎으로 차면서 걸었습니다. 저는 꽤 오랜 시간을 혼자 돌아다닌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두 시간 정도였어요. 그때쯤 할아버지가 저를 찾아내셨으니까요.”

- 185쪽,「해 질 녘의 급식실과 비 내리는 수영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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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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