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교외에 있는 평범한 한 가정의 정원에서 발견된 어린 소녀의 사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가족의 깜짝 놀랄 음모와 반전, 그리고 이를 파헤치는 가가 형사의 치밀한 두뇌 플레이.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감동과 긴박감 넘치는 흡입력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역작!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용의자 X의 헌신』으로 국내에서 이미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붉은 손가락』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은 작가에게 데뷔작 『방과 후』이후 정확히 60권째가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2006년 나오키상 수상 이후 출간한 첫 장편소설이다. 추리소설계의 일인자라 불리는 명성에 걸맞게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긴박감 넘치는 사건 전개와 흡입력, 허를 찌르는 반전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어우러진 문학적 감동으로 다시 한 번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 지은이 _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사카 부립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방과 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 1999년 『비밀』로 제52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을, 2006년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제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숙명』『백야행』『둘 중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다』『살인의 문』『편지』『흑소(黑笑) 소설』『독소(毒笑) 소설』『방황하는 칼』 등 다수의 저서를 낸 베스트셀러 작가로 일본 미스터리계의 제일인자이며, 미스터리라는 틀로 묶을 수 없을 만큼 폭넓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 옮긴이 _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2005년 소설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講談社)의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다. 『슬픈 이상(李箱)』『그리운 여성모습』『글로 만나는 아이세상』 등의 책을 썼으며, 『남쪽으로 튀어!』『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겐지와 겐이치로』『철도원』『칼에 지다』『지금 만나러 갑니다』『장송』『플라나리아』『오, 마이갓』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이 책은… 반전의 쾌감, 반전의 서글픔, 반전의 감동…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 갖는 매력은 추리소설로서의 ‘섬세한 플롯'과 ‘반전의 감동'이 완벽하다는 점이다. 신작 『붉은 손가락』에서도 작가는 이 같은 독자의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준다. 아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범인의 가족이 벌이는 행태는 책장을 덮는 마지막 순간까지 초조함과 최고조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찬사를 절로 나오게 만든다. 다른 추리소설들이 사건의 범인을 결말에서 알려주는 것과 달리, 『용의자 X의 헌신』에서와 마찬가지로 도입부에서 이미 범인을 알려주고 시작하는 과감한 구성도 작품의 흡입력과 사건의 흥미를 더해준다. 독자들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하나 힘 안 들이고 풀어가는 사이, 작가는 허를 찌르는 반전을 곳곳에 숨겨놓는다. 하나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가 싶더니, 이내 또 다른 반전이 불쑥 튀어나온다.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슬픔으로, 몇 번이나 거듭되는 반전의 반전이다. 『붉은 손가락』은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가능한 반전의 매직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작품이다. 추리소설을 넘어선 감동의 문학 작품 이 작품은 ‘어린 소녀의 죽음'이라는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세 가족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살인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려는 아키오의 가족,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신참 형사 마쓰미야의 가족, 그리고 암 말기 판정을 받은 아버지와 왕래조차 하지 않는 네리마 경찰서의 노련한 형사이자 마쓰미야의 사촌형인 가가 교이치로의 가족이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족 같지만, 그 이면에는 저마다 가슴 아픈 가족사를 안고 있다. 이들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동안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과 마주하게 되며, 이 과정을 통해 작가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울러 작가는 현대화에 따른 가족의 해체, 고령화 사회의 노인문제, 청소년 범죄 등 폭넓고 다양한 문제의식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그래서 『붉은 손가락』은 추리소설로서의 완벽한 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추리소설의 범주를 넘어서는, 문학적으로도 손색없는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 작품의 줄거리 일반적인 추리소설과 달리 『붉은 손가락』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소시민 가족이 주인공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저 평범하기만 한 가정에 ‘살인'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범죄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인 이들 가족과 냉철한 성격의 프로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사건의 진실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어쩌면 싱거울 만큼 일방적인 게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숨겨진 진실이 사건의 이면에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 가족의 이야기! 작품의 중심에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자리잡고 있다. 조명기구 회사에서 일하는 47세의 중년 가장 아키오. 퇴근 무렵 그는 아내로부터 긴박한 전화 한 통화를 받고 급히 집으로 간다. 집에 도착하니 컴컴한 집 안에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그제서야 아내 야에코로부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게 된다. 정원에 방치된 어린 소녀의 사체. 중학생인 그의 아들 나오미가 소녀의 목을 졸라 죽인 것이다. 경찰에 자수할 것을 원하는 아키오와 아들의 살인죄를 덮어서 무마하려는 아내 야에코의 실랑이가 한참 진행되는 동안, 정작 살인을 저지른 아들 나오미는 제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런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하지만 아키오는 야에코의 심한 반대 때문에 결국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심하고 사체를 공원에 내다 버린다. 사건 다음날 아침, 네리마 경찰서 소속의 가가 형사는 범인을 찾기 위해 공원 주변의 동네를 탐문하게 되는데, 그중에는 아키오의 집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아키오의 집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가가 형사는 치매에 걸린 아키오의 어머니를 우연히 보게 된다.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경찰의 유일한 증거는 사체에 붙어 있는 정원의 잔디, 그리고 자전거를 이용해 공원까지 사체를 운반했다는 것. 이 단서를 바탕으로 노련한 가가 형사는 범인의 추적에 박차를 가한다. 한편 자신의 가족에게 경찰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아키오는 아내와 함께 아들의 살인죄를 숨기기 위해 끔찍한 일을 꾸미게 된다. 이들 가족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가가 형사의 집요한 추적은 계속되는데……. ■ 본문 중에서 나오미의 숨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필사적으로 게임에 빠져들려고 하고 있었다. 그걸로 귀찮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키오는 우두커니 선 채 아들의 갈색 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텔레비전 모니터에서는 화려한 효과음이며 음악이 흘러나왔다. 캐릭터들의 비명이며 고함 소리도 뒤섞여 있었다. 아들의 손에서 컨트롤러를 빼앗아버리고 싶었다. 텔레비전의 전원을 꺼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판국에서도 아키오는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전에 한 번 그랬다가, 나오미가 반미치광이 상태가 되어 집 안의 물건을 때려 부수는 꼴을 목격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키오가 힘으로 잡아 넘어뜨리려고 했더니 도리어 맥주병을 치켜들고 덤벼들어왔다. 아들이 휘둘러 내리친 맥주병이 아키오의 왼편 어깨에 맞았다. 덕분에 거의 2주일 동안 그는 왼팔을 쓰지 못했다. - 본문 48쪽 경찰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오미가 소녀를 살해하기 전까지 어떤 행동을 취했었는지, 아키오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분명하게 목격자가 나왔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도 어떻게든 대충 속여 넘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아키오는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이미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도 막상 경찰이 찾아왔다고 하니 역시 불안과 두려움으로 다리가 후르르 떨릴 것만 같았다. 프로 수사원들을 상대로 아마추어인 자신의 속임수가 어디까지 통할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고 솔직히 끝까지 버텨낼 자신도 없었다. 문을 열기 전 아키오는 눈을 감고 열심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슴이 마구 뛰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겠지만, 호흡이 지나치게 흐트러져 있으면 경찰관들도 수상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아키오는 스스로에게 뇌까렸다. 경찰관들이 집에 찾아왔다고 해서 반드시 뭔가 들통이 났다고 할 수는 없다. 단순히 사건 현장 주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 본문 107쪽 “가가 군이 일하는 방식을 잘 봐두라고. 자네, 이제부터 엄청난 상황에 입회하게 될 게야.” 말의 진의를 생각하느라 마쓰미야가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그럼, 수고해”라면서 전화는 끊겼다. 마쓰미야는 가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제 곧 너도 알게 돼. 하지만 이 말만은 해두지. 형사라는 건 사건의 진상만 해명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냐. 언제 해명할 것인가, 어떤 식으로 해명할 것인가, 그것도 아주 중요해.” 영문을 몰라 마쓰미야가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 가가는 그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집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어. 이건 경찰서 취조실에서 억지로 실토하게 할 이야기가 아냐. 반드시 이 집에서 그들 스스로 밝히도록 해야 하는 거야.” - 본문 230쪽 가가 형사의 말대로 이 세상에 ‘평범한' 가정이라는 건 없는지도 모른다. 저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혹은 대충 얼버무리고 뒤로 미루면서 생활이라는 나른한 마비의 흐름에 휩쓸려 하루하루를 쌓아나간다. 그 속에서 문제점은 곪고 곪아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커나간다. 상식의 선 안에서 살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을 통해 그런 믿음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다. 읽어나갈수록 화가 치미는 주인공들의 행태,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와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 추리소설이 가져야 할 ‘안배(按配)의 규칙'을 이만큼 정확하게, 이만큼 모범적으로 구사한 작품도 드물 것 같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또한 단순한 오락에서 끝나지 않는 ‘의미 있는 책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꼭 권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본문 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