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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나무 くちなし (2017)

  • 저자 아야세 마루 지음
  • 역자 최고은
  • ISBN 979-11-90885-59-1
  • 출간일 2021년 02월 22일
  • 사양 268쪽 | 104*182
  • 정가 13,000원

불완전한 사랑밖에 품을 수 없는 나와
완전한 사랑이 아니면 용납하지 못하는 당신,
둘 중 어느 쪽이 더 추한 걸까.

★제158회 나오키상 후보작★
때로는 레이스처럼 섬세하고, 때로는 뱀처럼 요사스럽게 빛나는
사랑과 관계에 관한 일곱 가지 은유

그날 밤, 희한한 꿈을 꾸었다. 나는 흐느끼는 아쓰타 씨 부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녀의 울음은 멎지 않았다. 온몸이 푸른빛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단 팔이라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그녀의 몸에서 사랑스러운 팔을 떼어냈다. 슬픔에서 분리된 팔은 부드러운 하얀 빛을 발하며 솔직함과 온화함을 되찾았다. 아직도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다른 한쪽 팔도 떼어냈다. 이로써 그녀의 6분의 1 정도는 울음을 그친 셈일까. 치마를 들어서 포동포동한 허벅지를 누르며 두 다리도 떼어냈다.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새하얀 살갗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며 몸통의 경계선을 찾았다. 배꼽 바로 아래, 명치, 가슴 사이. 찾아낸 경계를 하나씩 분리할 때마다 부인은 점점 줄어들었다.

_31쪽, 「치자나무」

 

 

낡은 B2 사이즈의 파일 중간에서 젊고 매끈한 남자의 뒷모습을 찾았다. 유진.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 달콤하고 음란한 내음이 흑백 지면을 넘어 기억 속에서 피어올랐다.
날렵하게 다져진 남자의 발목에는 터질 듯 꽃잎을 펼친 자그마한 꽃이 피어 있었다. 당시 나는 무척이나 흥분했던 것인지, 유진의 몸보다 꽃을 더 정밀하게 그렸다. 끝부분이 살짝 꺾인 꽃잎의 커브. 바깥에서 안을 향해 녹아들 듯 변화하는 색의 농담과 남자의 피부에 생생하게 드리운 그림자.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꽃잎 표면에는 섬세한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때는 그저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을 뿐,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레이스 뜨기나, 잎맥처럼 표면을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눈 섬세한 선이 꽃의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날개다, 방울이 울리듯 자각했다. 벌레의 날개다.
이 선은, 막처럼 펼쳐진 날개를 받치는 역할을 하는 시맥翅脈이다. 아아, 어쩌면 좋지. 유진이 옳았어.
우리 몸에는 정체 모를 벌레가 살고 있다.

_59~60쪽, 「꽃벌레」

 

 

작은딸이 뱀이 되었다고 털어놓았을 때, 남편의 미간을 스치고 지나간 희미한 혐오. 그리고 날마다 깃털이 자라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스민 두려움을 알아챈 뒤로 우리 부부는 더욱더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두려워하지 마. 사실은 날 미워하고 있던 거야? 왜 알아주지 않는 거야,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걸 망가뜨릴 작정이야? 말다툼이 격해질수록 아이들은 움츠러들었고, 잠자리 깊이 파고들어 서로 껴안은 채 번데기처럼 잠들기 시작했다. 그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나하고 아이들이 변이하면, 당신은 남자들을 데려와서 막대기와 손도끼로 우릴 죽일 거야?”

_151~152쪽, 「짐승들」

 

 

마을의 시스템이 부산스레 변해가는 가운데, 나는 한결같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임종을 기록했다. 그것에 의미가 있는지, 무엇에 도움이 될지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그저 누적되는 죽음이 형태를 갖추면 마음이 놓였다. 모래사장에 떠밀려 온 고동이나, 아름답게 늘어선 물고기 비늘 같은 것을 세어보는 감각과 비슷했다.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났을 때, 동창들은 모두 죽었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이토다도 스가도 내가 보내줬다. 이토다는 끝까지 장난꾸러기였고, 실없는 소리만 했다. 스가는 그녀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두 팔을 안긴 채 떠났다. 이토다의 이야기도, 스가의 이야기도 모두 썼다. 어떤 집에 살았는지, 어떤 식으로 살았고, 무엇에 쫓겼으며, 무엇을 손에 넣었고, 마지막에 무엇을 바랐는지.

_255~256쪽, 「산의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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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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