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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장난기 가득한 미스터리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소설집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를 현대문학에서 출간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추리소설의 발전에 공헌한 작가에게 주어지는 ‘일본 미스터리 문학 대상’을 2023년 올해 수상하며 자신의 명성과 파급력을 많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이 책에 미스터리 콩트, 다크 판타지, 블랙 코미디 호러, 괴수 소설, 타이포 그래픽션 소설 등 그의 장난기 있고 스타일리시한 매력이 가득한 소설 14편을 묶었다. 그중 「선로 나라의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미래인 F」는 에도가와 란포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를,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대담하게 재해석한 소설이다. 그의 악마적 패러디 재능으로 거장의 화려한 명작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그 누구든 반가워할 명작과의 만남일 것이다.
수록된 작품 중에는 테마를 받아서 쓴 소설도 있고, 분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쓴 소설도 있다. 짧은 작품은 두 페이지, 긴 작품은 중편이라 할 정도이다. 자유롭고 비범한 인상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하여, 이 책을 ‘아리스가와 아리스 소설의 견본집’이라 할 수 있겠다. 상상력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또한 독자의 흥미를 한순간도 잃게 하지 않으니, 30년 넘는 세월 동안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 온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마지막 장까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하는 걸작 단편들. 수수께끼, 추리, 미스터리를 필요로 한다면 이 책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로 한껏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다시 읽으며 등장인물들이 “여전히 활기차게 모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다. 활력 넘치는 인물들이 거침없이 전개하는 이야기에 독자는 단순히 미스터리를 읽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탐정의 기분으로 직접 사건을 따라가며 추리하고 해결하는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에도가와 란포의 문체를 발견하거나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탐정 캐릭터 에르퀼 푸아로를 닮은 형사를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도 숨어 있다. 그렇게 이 책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재치 있고, 노련하고, 여전히 탁월한 재능에 흠뻑 빠져드는 독서를 선사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有栖川有栖
195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도시샤 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월광 게임』으로 데뷔했다. 2003년 『말레이 철도의 비밀』로 제56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2008년 『여왕국의 성』으로 제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2017년 『유령 언덕』으로 제5회 오사카 혼마 책대상, 2018년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로 제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고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외딴 섬 퍼즐』 『46번째 밀실』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쌍두의 악마』 『자물쇠 잠긴 남자』 등 다수가 있다.
옮긴이 김선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 문학을 소개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온다 리쿠의 『꿀벌과 천둥』을 비롯하여, 이사카 고타로의 「명랑한 갱 시리즈」 『러시 라이프』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종말의 바보』, 요네자와 호노부의 「고전부 시리즈」 「소시민 시리즈」 『왕과 서커스』 『흑뢰성』, 그 밖에 『완전연애』 『손가락 없는 환상곡』 『흑사관 살인사건』 『열쇠 없는 꿈을 꾸다』 『꽃 사슬』 『문신 살인사건』 『경관의 피』 『고백』 등이 있다.
“그렇긴 한데 꼭 논리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일이거든.”
움직이지도 않는 ‘논스톱 열차’가 역에 서 있고, 열차가 걸음 속도보다도 느리게 달리고, 이곳에서는 논리적이지 못한 일들뿐이라 앨리스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말은 대부분이 논리적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나 할 수 있는 말일 텐데요. _52면 「선로 나라의 앨리스」에서
어차피 언젠가 죽는다면 지금 여기에서 좋아하는 소녀와 함께 저항할 수단 없이 괴수에게 짓밟히는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그녀에게는 끔찍한 비운이다. 고통스러울 테고, 무의미하고 영웅적이지도 못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내게는 최고의 죽음 아닐까? _129~130면 「괴수의 꿈」에서
자살 희망자가 모이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죽음의 향기를 맡다보니 결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다들 기분 좋게, 혹은 지루함을 참아가며 보는 영화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당신들, 이렇게 시시한 걸 용케 보고 있군!”이라는 표정으로 퇴장한다. 보란 듯이 뽐내는 자살.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함께 나갈 거야”라고 말하는 자살은 제법 재치가 있다. _151~152면 「극적인 폐막」에서
바다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 바다海라는 글자에는 어머니母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독毒이라는 글자의 아래 절반도 어머니다. 확실히 그에게 어머니는 독성을 가진 존재였다고 피식 웃고 말았다.
독을 품은 어머니. 어머니라는 독. _160면 「극적인 폐막」에서
모퉁이가 나올 때마다 “어느 쪽으로 갈까?” “이쪽 괜찮아?”라고 의논했지만 아무리 가도 출구에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미로는 원래 저도 모르는 사이 출구에 도착하는 법이다. _190~191면 「출구를 찾아서」에서
“지하 통로에서 그는 ‘규칙도 어겼으면서’라고 욕지거리를 했지.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1960년대가 무대인데 작가가 알려준 미래의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었던 거야. 그의 말대로 이번에는 조금 지나쳤는지도 모르겠어.”
“우리가 소설 속 등장인물……”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아 고바야시 소년은 뺨과 가슴을 만지작거리며 자기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_234면 「미래인 F」에서
“다음번에는 철인이네, 우주인이네, 기계 인간이네, 투명 인간이네, 해저인이네, 지저인이네, 나는 쉴 새 없이 고민해야 하는데 그 작자는 아무 지혜도 짜내지 않고 항상 ‘네가 20면상이로구나!’ 한마디면 끝이잖아. 크리에이티비티가 눈곱만큼도 없잖아. 이런 표현은 이 시대에 걸맞지 않지만 그런 말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군. 진절머리가 난다니까. 미래인을 그렇게 써먹었으니…… 이제 뭐가 남았지? 자네한테 좋은 생각이 있으면 좀 알려줘. 단, 나는 독창성을 중시하는 범죄 예술가니까 다른 사람이 사용한 아이디어는 거절하겠어. 토호에서 만든 영화에 나온 가스 인간이나 액체 인간, 버섯 인간 같은 것도 안 돼. 심심풀이 삼아 잠깐 고민 좀 해봐. 재미있다니까. 신선한 아이디어를 부탁하겠네.” _236~237면 「미래인 F」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오늘의 미스터리죠.”
몇 초 동안 침묵이 깔렸다. 쓴웃음이라도 짓고 있겠지 싶었는데 예상도 못한 지시가 내려왔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엄지손가락의 아픔』이라는 책을 살펴봐. 만약 뭔가 꽂혀 있으면 그 페이지를 적어놓도록. 이상.” _270면 「책과 수수께끼의 나날」에서
외딴섬의 저택에 초대받은 열 명의 손님. 주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만찬 자리에서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를 폭로하는 음성이 흘러나오고…… 손님들은 한 명씩 살해당한다. 제목으로 보건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목숨을 잃는 것 같다. _357~358면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에서
히비키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사건은 해결되었소.”
경감은 그것이 낭보로 들리지 않았다.
“해결이라니, 무슨 뜻입니까?”
“전부 알아냈다는 뜻입니다. 아미고 미오amigo mio, 나의 친구여.”
탐정은 벽난로 위의 인형으로 시선을 던졌다. _439~440면 「이리하여 아무도 없었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