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청춘의 리듬은 8비트
단 한 순간이라도 좋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옷을 만들고 싶다.
패션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골방에서 미싱을 밟는다!
금색 짧은 밤송이머리에 마음은 날마다 태풍 요이치,
일도 사랑도 어렵기만 한 샐러리맨 겐지, 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재봉사 쓰바키,
‘가슴에 태양을’ 가쓰오……
만사태평 유쾌발랄 거침없는 녀석들의 태풍 청춘기
제12회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작
일본 청춘소설의 결정판 스즈키 세이고의 소설 『로큰롤 미싱』이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패션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청춘들의 꿈과 열정, 도전이 투명할 정도로 눈부시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신인 작가의 작품에 수여하는 신인상으로서 일본 내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작이자, 1998년 출간된 이래 중쇄를 거듭하며 사랑받아온 일본 청춘소설의 현대적 고전이다. 또한 2002년에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으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다.
태풍 같은 청춘을 지나는 이들에게 외치는 한마디, 어쨌거나 파이팅!
패션학교 졸업 후 좀처럼 일하고 싶은 회사가 없다며 헌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이어가던 요이치, 판다 곰처럼 짙은 눈 화장에 주렁주렁 피어싱을 한 패션학교 선생 쓰바키,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며 자신의 패션 철학을 ‘가슴에 태양을’이라고 정한 유학파 가쓰오. 이들 셋이 의기투합해 만든 인디 의류 브랜드 ‘스트로보 러시’에, 매너리즘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 입사 3년차에 회사를 관둬버린 샐러리맨 겐지가 합류를 제안받는다. 슈트만 입고 다니는 성실한 회사원이었던 겐지에게 독특한 정신세계와 패션세계를 가진 ‘스트로보 러시’ 3인은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들의 패션에 대한 열정과 땀에 감동받아 겐지도 함께 다림질을 하고 단추를 달게 된다. 그렇게 전시회 성공을 기원하며 밤낮없이 재봉틀질을 하던 넷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은 단지 옷이 좋아 무작정 옷 만들기를 시작한 청춘들이다. 이들의 무모하리만치 순수한 열정은, 열정이 꼭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설혹 실패하더라도 청춘의 열정이야말로 그 자체로 무한한 재능임을 일깨워준다.“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마음속은 날마다 태풍”이라는 요이치의 말처럼,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수한 꿈과 불안과 열정이 혼재된 청춘들을 예찬한다. 그리하여 지금도 청춘의 터널을 부지런히 지나고 있는 이곳 수많은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청춘소설의 결정판이자 어패럴 소설의 바이블
『로큰롤 미싱』은 짧은 청춘 속에서 고뇌하고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젊은이들의 얘기로, 실패와 좌절이 있기에 감동적인 청춘을 생생하게 스케치해낸 수작이다. 오랫동안 쇄를 거듭하며 일본의 대표적 청춘소설로 사랑받아온 이유다.
첫 작품인 『라디오 데이스』로 문예상을, 이듬해 이 작품으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최연소 수상한 스즈키 세이고는, 일본 패션업계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문화복장학원 출신으로 꼼데가르송 생산기획부, 문화복장학원 강사를 거쳐 패션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이 작품은 패션업계 출신 현장 전문가가 쓴 실감나는 업계 소설로 구체화됨으로써 어패럴 소설의 바이블이란 평을 받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로큰롤 미싱』으로 감각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일본 청춘소설의 경쾌한 모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글
밴드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바느질하는 미싱의 이름이라니. 하긴 <프로젝트 런웨이>를 보니까, 옷 만드는 것도 록음악만큼 재미있었다. 『로큰롤 미싱』은 옷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패션업계에 막 뛰어든 청춘들의 스케치이다.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고, 이상만으로 성공이 주어지지도 않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형태가 되면 그것이 이미 진실’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옷을 만들고, 그들이 원하는 형태로 인생을 만들기 위해 달린다. 로큰롤처럼 신나게, 제멋대로.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난 그냥 옷이 좋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옷에 죽고 사는 소설 속 네 녀석, 처음 옷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밤낮으로 단추를 달고 재봉틀을 돌리고 웃고 좌절하고 그리고 아침이면 또 어김없이 옷을 만든다. 설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꿈과 열정이라는 괴력에 진짜 실패란 없는 법. 소설을 읽을수록 네 녀석들을, 지금 이곳의 무수한 청춘들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파이팅이다! -최범석(패션디자이너)
■ 본문 중에서
“사실은 있지, 난 ‘스트로베리 로봇’이 좋다고 그랬거든. 그랬더니 가쓰오가 ‘러시아워’가 좋다는 거야. 그래서 합쳐버리자, 이렇게 된 거지. 왜 밴드 이름 같은 것도 그런 것 있잖아?”
쓰바키 메구미가 쿠앵트로를 핥듯이 마시면서 말했다. 처음 접하는 타입의 여자였다. 겐지는 혀 짧은 말투와 화려한 화장만 빼면 제법 자기 취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트로베리 로봇 러시아워’라는 이름이 됐거든. 그랬더니 요이치가 ‘그럼 스트로보 러시다!’라고…… 사실 뭐든 줄인다고 좋은 게 아니잖아, 그치. 이름이란 거 중요하지 않아?”
“맞아요. 내가 말한 러시아워의 아워는 어디로 갔냐고요.”
니트 모자를 쓴 가쓰오라는 사내는 네모나고 길쭉한 갈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요이치와 쓰바키에게 존댓말을 썼다. 빈 잔을 보고는 추가 주문을 했다.
“됐어, 그런 거. 정식 명칭 따위 상관없잖아. 스트로보의 빛이 러시하는 거라는 의미로 됐어. 번쩍번쩍하고 빛의 홍수에 싸여 있는 느낌도 들고. 나도 그런 체험 해보고 싶기도 하고.”
요이치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스트로보의 빛을 표현했다.
-22~23쪽
“이건 로큰롤 미싱이라고 하는 거야. 바지 옆 재봉선 같은 것 뒤집어보면 이거하고 비슷하지?”
요이치는 옆에서 일하는 걸 보고 있는 겐지에게 재봉틀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 재봉틀로 처리된 천의 테두리를 보니, 트레이너나 티셔츠를 뒤집어보면 시접이 똑같이 되어 있던 게 생각났다. 이 재봉틀을 돌리면 천이 풀어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왜 로큰롤이야?”
“잘 들어봐. 재봉틀 소리의 리듬이 8비트잖아. 페달을 세게 밟으면 16비트도 돼.”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여보았지만, 리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62~63쪽
“있잖아, 너희들은 왜 옷을 만들기로 한 거야?”
“엉?”
“아니, 저기, 뭐랄까,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겠지만, 그 이유랄까 계기랄까…….”
세 사람은 멈춰 서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하는 느낌이었다. 요이치가 말했다.
“뻔하잖아, 패션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지.”
“……응?”
“세계 정복!”
쓰바키와 가쓰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물었더니, 두 사람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했다.
-71~72쪽
“먼저 내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서 그것이 무의식중에 나오는 거라고. 정보가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거지. 정말로 독창적인 것이란 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난 평소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럼 나는 내 속에 고여 있는 뭔가부터 꺼내고 싶어. 처음부터 베끼는 건 싫어. 나로서는 기존에 있는 것들을 일단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어.”
“아냐, 너는 긍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봐.”
“전부가 아니라 참고하는 정도로 아이디어를 얻으면 되잖아. 내일부터라도 자료를 모으는 게 어때? 나도 학교에서 학생 작품 중 괜찮은 것 있으면 사진을 찍어 올 테니까.”
“학생 작품?”
“그런 건 됐어. 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야, 만들려면 새로운 것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새로운 게 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무언가.”
“얼마든지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너무 과하면 안 돼요.”
“난 유행에는 관심 없어.”
“뭐 어쨌든 강렬함이라든가 임팩트가 없으면 안 돼. 오직 우리밖에 만들 수 없는 걸 생각하자.”
“우리밖에 만들 수 없는 거라…… 뭘까? 가쓰오도 생각해봐.”
“예에…….”
“내가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만든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거나 멋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아?”
“응. 난 그렇게 생각해. 작위적인 것은 싫어. 애초에 우리의 방향성은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 판다, 그것뿐이었는걸.”
-81~82쪽
“난 앞으로도 줄곧 패션을 하고 있을 거란 예감만은 있어.”
“결심이 아니라?”
“응, 예감이야.”
“그러니까 너는 죽을 때까지 ‘스트로보 러시’를 계속할 거라는 거야?”
요이치는 아무 대답도 없이 빙그레 웃었다. 축구공이 발밑으로 굴러왔다. 겐지는 멀리서 달려온 소년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단 한 순간이어도 좋으니까 빛이 나는 듯한 옷을 만들어보고 싶어. 그야말로 스트로보의 빛처럼 사람들이 눈부셔 하는 옷.”
요이치는 전에 몽키 바에서 그랬던 것처럼 양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91쪽
겐지는 옷 만들기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재료를 준비하고 손질한다. 또 의외로 많은 재료가 사용되고, 각각의 부분이 잘 결합해서 하나의 형태가 된다. 기술과 상상력과 솜씨가 필요하다.
-99~100쪽
네 명 다 말이 없는 가운데 방에는 재봉틀 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 공간에는 패션 특유의 화려함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가쓰오는 아무리 바쁠 때여도 옷은 챙겨 입고 있지만, 요이치는 같은 옷으로 이삼 일 지낼 때도 있고, 쓰바키는 수업이 없는 날은 화장도 하지 않고 왔다. 바닥에는 바늘과 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빈 깡통과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그리고 그들은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103~104쪽
“글쎄, 그런가? 그보다 지카다 씨는 왜 전시회를 기대하게 된 거야?”
“뭐랄까, 분출하는 모두의 땀에 감동받은 것 같아요.”
“오호, 그랬어.”
“쓰바키 씨는 ‘스트로보 러시’의 어떤 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진실 따위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점?”
“무슨 뜻?”
“난 패션학교에 있지만, 양재밖에 못하는 여자야. 디자인이나 창작은 젬병이지. 요이치는 그 반대지만.”
“오, 그래요?”
“학교는 기초를 가르치는 곳에 지나지 않으니까, 항상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주입하게 돼. 그렇지만 옷본이 이상해도 소재가 나빠도 재봉질을 못해도 멋있는 옷은 멋있어. 그런 정신이 어딘가에 있어서, 음, 뭐랄까, 틀에서 삐져나오는 것 같다고 할까. 나 자신이 말이야. 무턱대고 한다고 해도 형태로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지만, 형태가 되면 그것이 이미 진실이야. 그러니 진실 따위 없지? 알겠어?”
“어렴풋이…….”
“그런 점이 재미있고 즐거워.”
-105~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