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_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郞
1971년 5월 25일 일본 지바 현 마쓰도 시 출생. 고등학생 때는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의 열성 독자였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순문학에 매료되었다. 고등학생 때 부모님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짧은 인생을 상상력에 내던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라는 문장을 보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도호쿠 대학교 법학부 졸업 후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여러 신인문학상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1996년 「악당들이 눈에 스며들다」로 제13회 산토리미스터리대상의 가작을 수상했는데, 이 작품은 2003년 대대적인 손질을 거쳐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로 출간된다. 2000년 『오듀본의 기도』로 제5회 신초미스터리클럽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2002년 출간된 『러시 라이프』로 평론가에게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이 작품은 그의 독자층에 극적인 확장을 가져온다. 2003년 『중력 삐에로』로 대중문학 작품에 수여하는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추리소설 독자는 물론이고 대중에게 대단한 인기를 모았다. 이후 2004년 『칠드런』『그래스호퍼』, 2005년 『사신 치바』, 2006년 『사막』, 그리고 2008년에는 『골든 슬럼버』로 여섯 번째 나오키상 후보에 오르나 ‘집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고사한다. 2004년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제25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같은 해에 『사신 치바』로 제57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단편 부문, 2008년 『골든 슬럼버』로 제21회 야마모토슈고로상과 제5회 서점대상뿐만 아니라 2009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1위에 올라 3관왕을 달성했다. 서점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되어 독자의 목소리를 가장 많이 반영한다고 알려진 서점대상의 제1회부터 제6회까지 매회 최고작 10위권에 선정된 유일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 밖의 작품으로 『마왕』『SOS 원숭이』『바이바이, 블랙버드』『마리아 비틀』『가솔린 생활』『사신의 부력』 등이 있다.
기상천외하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중층적이고 정교한 구성력과 경쾌하고 소탈한 필치로 풀어내는 것이 특징이며, 대중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순문학 작가로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울러 한 작품의 인물이 다른 작품에 살짝 등장하는 식으로 작품 간에 미묘한 연결 고리가 있어, 이를 찾아내는 일은 독자의 또 다른 즐거움의 하나. 대학생 때부터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 거주한 때문인지 작품의 상당수가 센다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동네이므로 설정에 허점을 줄일 수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영화나 연극, 만화, 드라마 등 다른 분야로도 확장되어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피쉬 스토리』를 비롯한 10개의 작품이 영화화되었고, 특히 『골든 슬럼버』는 일본에서 1억 1500만 엔의 수익을 올렸으며 한국에도 개봉되었다.
이사카 고타로伊坂幸太郞는 필명. 추리소설 작가 니시무라 교타로西村京太郞의 이름과 같은 획수의 한자를 골라 조합한 것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라는 의미에서 가족이 생각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이사카 고타로ISAKAKOTARO를 로마자로 바꾸어 거꾸로 읽으면 오라토카카시ORATOKAKASI가 되는데, 여기서 카카시(허수아비)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명실상부한 일본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중국, 한국, 대만 등 10개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되었으며 국경을 넘어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 옮긴이_ 오유리
이사카 고타로의 『오듀본의 기도』『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사막』『그래스호퍼』『가솔린 생활』,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마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사양』, 요시다 슈이치의 『파크 라이프』『일요일들』『워터』『최후의 아들』『랜드마크』, 시게마쓰 기요시의 『나이프』『소년, 세상을 만나다』『안녕, 기요시코』, 가와카미 히로미의 『나카노네 고만물상』, 모리 에토의 『다이브』, 후지타 요시나가의 『텐텐』, 쓰지무라 미즈키의 『달의 뒷면은 비밀에 부쳐』, 하야미네 가오루의 『괴짜탐정의 사건노트』 시리즈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문학이 시대상의 기록이자 작가의 시선이라고 한다면, 번역문학을 읽는 국내 독자들은 낯선 작가의 시선을 좇고, 낯선 시대, 세상의 기록을 아우르는 데 보탬도 모자람도 없어야 합니다. 깊숙이 작품에 빠졌다가 작업 후에 늘 드는 저 생각에 해를 더해도 신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 번역 작가의 숙명이겠지요. 그래도 작품을 붙들고 씨름할 때가 제일 행복하니 말입니다.”
2004년 제25회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200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2004년 제1회 일본서점대상 3위
2004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이사코 고타로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걸작 미스터리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가 현대문학에서 오유리의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다섯 번째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2007년 국내에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는데, 이번의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일본에서 2003년 발행된 최초의 단행본이 아니라 2006년에 작가가 좀 더 다듬어 선보인 문고본을 번역한 것이며, 한층 정교해진 이사카 고타로의 구성력은 독자들에게 이전과는 또 다른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현재까지도 추리소설뿐만 아니라 순문학, 아동문학, SF, 전기傳奇소설, 라이트노벨 등 다양한 문학상으로 등단한 신예 작가를 기용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도쿄소겐샤의 추리소설 시리즈 ‘미스터리 프런티어’의 첫 번째 작품으로 배본되었다. 네 번째 장편소설 『중력 삐에로』의 대단한 성공으로 인해 이사카 고타로를 향한 기대치가 한창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청춘 소설의 반짝임과 추리소설의 묘미를 겸비한 이 새로운 걸작의 등장은 일본 문단과 독자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웃집 청년과 서점을 습격하는 현재의 ‘나’
부탄에서 온 청년과 애완동물 학대범을 추격하는 2년 전의 ‘나’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할 때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배가 고파 과일 가게를 터는 예술가라면 그래도 폼이 좀 날 수 있겠지만…… 나는 모형 권총을 들고 서점 뒷문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밤이라서 그런지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죄의식은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부모님한테는 켕긴달까. 작은 구둣방을 꾸리고 있는 부모님은 대형 할인 마트가 근처에 생기는 바람에 장사가 잘되지 않았는데도 대학을 보내 주었다. 게다가 내가 혼자 사는 데 필요한 돈까지 부쳐 주기로 했다. 이런 짓이나 하라고 대학에 보낸 건 아니라고 그들이 비난한다면, 나로서는 음…… 그것도 일리는 있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_ 9쪽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센다이의 한 아파트로 이사 온 시나는 온통 검정색으로 차려입은 악마 같은 인상의 이웃집 남자 가와사키에게 함께 서점을 털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어떤 거창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단지 애인과 헤어져 실의에 빠져 있는 같은 아파트의 외국인에게 국어사전 한 권을 선물하기 위해서. 서점을 터는 짓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시나에게 가와사키는 “정치가가 잘못하고 있을 때는, 그 세계의 정의는 모두 잘못됐다”라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 학습지 방문판매 사원의 사탕발림에 말려들어 수십만 엔짜리 교재를 살 뻔한 전력이 있는 시나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수상쩍은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모형 권총을 들고 서점 뒷문에서 망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무대가 바뀌어, 센다이의 한 펫숍에서 일하는 고토미가 애인인 도르지와 함께 사라진 개를 찾는 장면이 그려진다. 도르지는 “착한 일이든 악한 짓이든 자기가 한 건 모두 자신에게 돌아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태어난 후에 대가가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는 부탄에서 온 유학생 청년이다. 고토미는 개를 찾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그즈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던 애완동물 학대 사건의 범인들과 맞닥뜨리고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이처럼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시나’가 화자인 ‘현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토미’가 화자인 ‘2년 전’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현재’와 ‘2년 전’을 오가며 읽어 나가다 보면 두 시간 축을 메우는 공통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추리가 시작된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사회문제를 다루었음에도 이사카 고타로의 독특한 감상과 발상에서 나온 기이하고 황당한 사건들이 탁월한 캐릭터 조형력에 의해 탄생된 개성적인 등장인물들을 만나 경쾌한 흐름으로 펼쳐지며, 독자들은 흩어진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면서 또 한 번 이 소설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윤리’의 확립을 도모한다.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에는 맑고 깨끗하며 강인한 윤리가 있다. 세련된 대중 추리소설이지만, 동시에 유연한 정통 문학이다.
_ 이케가미 후유키(평론가)
“한 가지 물어봐도 돼?”라고 묻는 가와사키는 여유로웠고, “뭔데요?” 하고 대답하는 나는 눈치를 살폈다.
“서점을 털면 왜 안 돼?”
지금 농담하자는 건가 싶었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이 쏙 들어갔다. 진지했다.
“그, 그건 법률 위반이잖아요.” 이것은 법학부 학생이 될 몸으로서는 당연한 대답이고, 칭찬받을 만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이런 말 알아?” 가와사키가 우쭐대며 말했다. “정치가가 잘못하고 있을 때는, 그 세계의 정의는 모두 잘못됐다.”
_ 현재ㆍ2, 52쪽
“(착한 일이든 악한 짓이든 자기가 한 건 모두 자신에게 돌아와.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태어난 후에 대가가 돌아올 거야. 지금 내가 한 짓은 좋은 일이 아니잖아.)”
다분히 윤회를 믿는 불교 국가의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아까 도르지가 한 건 좋은 일이야.)”
“(그런가……?)” 그는 얌전히 되물었다.
“(그 정도는 신도 못 본 척 눈감아 주었으면 좋겠어. 긴급 상황이었으니까. 신이 잠시 어딘가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멋대로 지껄였다.
“(신, 이라고……)” 그는 맥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들에게 ‘신’이란 존재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을까. 부처를 뜻하는지, 좀 더 막연한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무튼 귀찮으니 신을 어딘가에 가두고, 전부 없었던 일로 해 버리자고. 그럼 모르겠지.)”
_ 2년 전ㆍ2, 77~78쪽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시점에 이미 나는 서점을 털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꾸역꾸역 설득한 기억도 없고, 나로서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단이 있었음에도 그의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니, 고백하자. 아마도 나는 흥분하고 있었다. 무의미하고 무식하며 법에 저촉되는 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데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코흘리개들의 소매치기나 고등학생들의 흡연과 다르지 않다. 여행지에서 불법 성매매를 하는 것과도 비슷할지 모른다.
이 정도라면 크게 문제 될 것 없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고, 혹시 누가 알아? 한참 후 남들한테 무용담처럼 떠벌릴 수도 있을 거라는, 팔푼이 같은 기대도 있었다.
_ 현재ㆍ5, 154쪽
“(고토미는 무서운 선생님이야.)” 도르지는 삐치는 기미 없이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그럼, 아히루와 카모, 어떻게 다릅니까?”
나는 사전을 단 한 장 들추기도 전에 “(아히루, 그러니까 집오리는 외국에서 온 오리고 카모, 이건 들오리인데 원래 일본에 살던 오리야)” 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들은 기억이 있다.
“정말, 입니까?”
“(아닐지도 몰라.)” 한 번 더 물으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게 내 성격이기도 하다. 그나마 내 성격의 좋은 부분…… 사전을 넘기며 ‘집오리’를 찾고, 그다음 ‘들오리’를 찾았다.
기대했던 대답이 적혀 있지 않아 나는 실망했다. 사전에는 그냥 조류로서의 특징만 나와 있었다.
하지만 집오리는 중국 쪽에서 개량된 들오리다, 라고는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도르지에게 설명했다. “(아무튼 집오리는 외국 새고, 들오리는 일본 새라고 생각하면 틀리진 않을 거야.)”
“(좀 이상해.)” 도르지는 의심했다. “(만약 그렇다면 나와 고토미는 집오리와 들오리잖아.)”
집오리와 들오리…… 그다지 나쁘지 않은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비슷한 동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_ 2년 전ㆍ6, 201~202쪽
애완동물 학대범. 꺼내고 싶지도 않은 단어다. 증오 때문이 아니다. 그 반대다. 그들의 잔혹성과 거만함이 ‘애완동물 학대범’이라 명명된 순간에 너무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대의 자존심을 깎아내려 돈을 갈취하는 행위를 ‘공갈 협박’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면, 실제 그 행위의 심각성보다 가볍게 인식되는 것과 비슷하다.
_ 2년 전ㆍ11, 324쪽
카세트를 왼손으로 받치고 오른손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시디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조금 있자 경쾌한 연주가 울려 퍼졌다. 음량은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았다.
“밥 딜런.” 나는 금방 알았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온 것은 그의 대표곡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이다.
“맞아.” 가와사키는 그러고 나서 곧 카세트를 코인로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뭐 한 거예요?”
“신을, 가두었어.” 가와사키가 대답했다.
“네에?”
나는 얼른 머리를 굴려 추측해 보았다. 그는 딜런의 목소리를 ‘신의 소리’라고 했다.
“신의 소리를 로커에 넣는 게 신을 가두는 거예요?”
“그래.” 가와사키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복 설정을 해 두었으니 계속 소리가 날 거야.”
_ 현재ㆍ14, 381~382쪽